우리를 둘러싼 도시의 공간들
“도시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도시에는 역사와 삶의 흔적이 만든 복합적인 풍경이 담겨 있다. 서울역은 찬란하고 서글펐던 역사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며,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는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며, 덕수궁 정관헌은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도시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헌법재판소는 상식과 원칙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의 공간’이며, 광장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는 시끄러운 ‘민주적인 공간’이며, 국회는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싸우고 절충하고 ‘타협하는 공간’이다.
도시는 우리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캠퍼스는 지성의 열매를 구하는 ‘연대감과 자부심의 공간’이며, 서점은 지식의 교류와 교감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골목은 도시 재개발에 밀려 하나씩 사라지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다. 우리를 둘러싼 도시의 공간에는 사람과 시간과 일상과 자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쇠락해간 시간의 역사를 보며, 우리는 그곳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현대의 도시 풍경을 읽게 된다.
임형남·노은주의 『공간을 탐하다』는 두 건축가를 매혹시키는 장소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더불어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의 일상에 담긴 시간들을 더듬어가며 엮었다. 또 이 책은 건축을 보며, 그 건축에 관한 매혹에 대해, 그 공간이 주는 감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모은 것이다. 다시 말해 ‘공간을 위한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임형남·노은주 건축가는 건축은 가장 오래 남는 물질문명이며 문화이고 시대를 반영하는 척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거리를 거닐다 만나는 작은 가게, 누군가의 정성 어린 손길이 담긴 작은 정원,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오래된 시장 등 흔하디 흔한 익숙하고 일상적인 풍경도 그 안에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순간 마법처럼 그 공간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공간은 의미가 더해지고 점점 더 넓어져 하나의 작은 우주가 된다. 결국 개개인의 기억이 모여 역사가 되고 도시가 된다.
제1장은 도시의 공간이다. 역사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서울역,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헌법재판소, 넓고 시끄럽고 민주적인 광화문광장,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싸우고 절충하고 타협하는 국회의사당, 자본주의의 첨병에 서 있는 캠퍼스에 대한 이야기다. 제2장은 기억의 공간이다.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덕수궁 정관헌,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역사를 기억하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만나는 이탈리아 산 카탈도 공동묘지, 실존적인 나와 만나는 스위스 발스 온천에 대한 이야기다.
제3장은 놀이의 공간이다. 지식의 교류와 교감이 이루어지는 서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을지로 골목, 자유와 저항을 노래하는 홍대 클럽, 예술과 문화가 넘치는 매혹의 장소인 홍대 앞과 낙원상가, 도시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는 서울로 7017에 대한 이야기다. 제4장은 휴식의 공간이다. 상업주의에 물들어 사막화되어가는 홍대 앞의 아미티스 가든, 도시 재생의 모범적인 사례인 선유도공원, 자연을 존경하게 되는 창덕궁 후원과 일본 교토 무린암과 중국 쑤저우 줘정원, 자연으로 들어가는 건축인 데시마 미술관, 사람과 자연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교토 고안에 대한 이야기다.
도시, 사람을 담다
서울역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후에도 서울의 관문 역할을 오랫동안 하면서 많은 사람의 흥망성쇠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기차를 통해 거리를 극복했고 시간을 극복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기차는 인류를 근대로 옮겨준 교통수단이었다. 그 많은 기차역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존재는 서울역이다. 많은 해후와 이별이 이루어지며, 기회를 얻기 위해 분주히 서울로 올라오는 많은 사람이 꼭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기차역은 사람들을 실어나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도 실어나른다.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 등 많은 민자 역사에는 백화점, 극장, 푸드 몰 등 사람들이 모여서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서울역도 2004년 새로운 민자 역사가 신축되면서 구(舊) 역사는 폐쇄되었다가, 2011년 원형 복원 공사를 마친 후 사적번호 284에서 따온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던 찬란하고 서글펐던 한 시대의 기억이, 다시 문화라는 이름의 플랫폼이 되어 우리를 머물게 한다.
광장은 정치적인 장소이며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구의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싹을 틔웠으며 자라났다.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편을 나누고 결정을 하는 시끄럽고 복잡한 과정이 민주주의의 전통이 되었다. 하지만 서구에서 들어온 원래의 개념, 즉 광장이라는 넓고 시끄럽고 민주적인 공간이 우리에게 맞는 곳으로 거듭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우리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고 그 앞에서 마음껏 놀아보라고 해도, 마음이 가지 않으면 그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그냥 허울만 좋은 광장일 수밖에 없다. 광장은 울타리 안으로 모여드는 공간이 아니라 경계 없이 밖으로 한없이 뻗어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될 때, 광우병 파동 때,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에 사람들은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집에서 걸어 나와 죽어 있는 광화문광장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사람이 모이고 사람을 담는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 굽이치는 그런 광장을 열었다.
도시, 시간을 담다
덕수궁 정관헌은 전통 양식의 목조건축이 아닌, 어딘가 양식풍이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양식으로 보이지는 않는 묘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로 칭했지만, 그 호기와는 달리 정관헌은 쓸쓸함이 느껴지던 당시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 고종은 황제에 즉위하기 전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을미사변’과 자신이 러시아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는 ‘아관파천’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관헌은 고종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만들어놓은 정자라고 흔히들 알고 있는 건물이며, 이곳에서 다과나 연회를 열었고, 한때는 태조·고종·순종의 영정과 어진을 모신 적도 있었다. 덕수궁 한 귀퉁이에 이국적이며 쓸쓸한 모습으로 오도카니 자리 잡고 있는 정관헌에서 고종은 외세에 둘러싸여 나라를 걱정하고, 그보다도 먼저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정관헌은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한 약한 나라에 대한 회한과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상처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원폭 돔은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파괴되고 남은 원폭 피해의 유적이다. 이것은 인류가 영원히 기억하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어떤 상징이다. 1915년에 지어진 원래의 건물은 얀 레첼(Jan Letzel)이 설계했고, 산업 장려 등을 목적으로 한 전시장이자 사무실이었다. 원폭 당시 투하 지점에서 580미터 거리의 이 건물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망했고 건물도 부서졌지만 외벽과 골조의 일부가 남았다. 건물 안의 시계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8시 15분을 가리키며 멈춰 서 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전쟁이 일어나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거두고 어렵게 이룬 문명의 흔적이 한순간에 파괴되기도 한다. 인간의 욕심은 통제가 불가능해지고 더욱 탐욕스러워졌다. 모든 것이 과학이나 기술의 진보로 통제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인류를 지키기 위해 발전시키고 만들어지는 하늘의 천둥이나 거대한 파도보다 더욱 위력이 강한 무기들은 사람들을 겨누는 흉기가 되고 있다.
도시, 일상을 담다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는 일차원적이다. 그러나 서점에 책을 사러 가는 행위, 그 안에서 지식의 그물에 빠지는 행위, 지식을 선택하는 행위 등 많은 차원의 지식의 교류와 교감이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서점에 가는 행위는 단순히 구매라는 의미를 뛰어넘는 또 다른 문화 행위인 것이다. 대형 서점은 책을 사고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재미를 주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대형 서점이 인터넷 서점에 밀리고, 그 인터넷 서점이 헌책까지 사고팔면서 오프라인 서점은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상은 돌고 돈다고 서점이 각광을 받고 있다. ‘독립 서점’으로 불리는 작은 서점들은 대형 서점에 비하면 규모는 비교할 엄두도 낼 수 없지만, 대형 서점에서 찾을 수 없는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보고 싶은 책을 파는 곳, 책을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곳, 골목을 걷다 만날 수 있는 가까운 동네 서점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서울 을지로 입정동 골목에는 사람들이 불안하게 살고 있다. 그곳은 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후, 개선이나 이주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도심 속의 섬처럼 유리된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활발히 성장하면서 을지로통도 매우 빠른 속도로 상업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결국 집들은 하나씩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기계로 쇠를 깎아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그 공장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굉음은 우리의 성장과 발전을 축원하는 찬가로 들리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기계가 채웠던, ‘산업화의 역군’들이 나가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러나 입정동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조선옥이나 을지면옥 등 유명한 식당들이 있고, 응접실다방·순정다방·화성다방 등이 있고, 서울의 여느 번화가만큼 혹은 신도시의 상가건물처럼 많은 간판이 붙어 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음악을 듣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일상이 있는 곳이 어둠이 내린 폐허 속으로 들어간 줄 알았는데, 그곳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고 사람들의 체온이 느껴지는 일종의 생태계와도 같았다.
도시, 자연을 담다
선유도공원은 서울시가 진행한 도시 재생 사업 중 가장 돋보이는 사례다. 이곳은 선유정수장 시설을 활용한 생태공원으로 한강의 역사와 동식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선유도는 ‘신선이 노니는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멋진 풍광을 갖고 있었다. 원래는 섬이 아니고 한강의 남쪽에 붙어 있는 땅이었고, 그 끄트머리에 아름다운 봉우리가 솟아 있어 선유봉으로 불리던 곳이었다. 선유도공원은 기존 정수장의 껍질을 그대로 살린 것이 전부다. 그 안에 담긴 시간을 살리고, 오랜 시간 고난을 겪은 땅을 자연이 다독이며 서서히 치유시켜주는 곳이다. 정수장 내부의 물길들을 그대로 살려 산책로로 조성해 고대의 유적지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장소에 대한 이해와 문화적인 안목을 기반으로 할 때 진정한 공간과 시간의 재생을 일구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방식의 재생을 통해 아주 오랜 시간 쌓여온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형태의 개발 혹은 파괴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일본이나 중국의 정원은 그 경계가 칼로 자른 것처럼 선명하고 명확하다. 경계뿐만 아니라 각 공간의 프로그램도 아주 정확하다. 그에 비해 한국의 정원은 그 경계를 손으로 선을 뭉개놓은 것처럼 아주 흐릿하다. 심지어 그곳이 정원인지 그냥 풀들이 자라서 만들어진 풀밭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자연의 일부가 인간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공간이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 같은 역동성이 느껴진다.
창덕궁 후원은 구릉과 계곡과 폭포 등 자연 지형을 살린 조화로운 정원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자연 위에 절묘하게 얹혀 있는 한국의 정원을 이야기할 때 첫손에 꼽히는 공간이다. 그만큼 땅의 흐름과 기운의 흐름대로 공간들 간의 상호 존중과 땅들끼리의 교감을 바탕으로 지어놓았고, 그 배치가 절묘하다. 더구나 너무 자연스러워 만든 이의 의도를 알 수 없게 만든다.
일본 교토 무린암은 ‘이웃이 없는 집’이라는 뜻이다. 삼각형 모양의 땅의 영역에 담을 두르고 그 안에 못을 파고 나무를 심어놓아 심산유곡까지는 아니더라고 속세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정원은 ‘지센카이유(池泉回遊)식 정원’이라고 한다. 지센카이유식이란 물을 가둔 못이 하나 있고, 그 못을 중심으로 다리를 놓고 주변에 산책로를 만들고 숲을 만들며, 멀찌감치 작은 초막이나 커다란 개구부를 가진 집이 있어서 정원을 바라보게 만들어진 방식을 의미한다. 다다미가 깔린 방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다다미 선에 맞추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정원과 눈을 맞추게 된다.
중국의 4대 정원으로 불리는 줘정원은 크기가 크고 동적인 구성을 이끈다. 줘정원에는 기암괴석과 오묘한 모양의 산이 가득하다. 가히 명원(名園)이라고 해도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건물과 정원 전체를 압도하며 건물과 나무와 사람을 비추는 물이 있다. 또한 물처럼 굽이치며 정원을 휘돌며 감싸는 회랑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사람이 한곳에 머물지 않고 회랑을 통해 계속 움직이게 만들며, 중간중간 경치의 의미나 그런 경치를 대하는 자세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글귀가 나타난다. 또 주인이 들려주고자 하는 많은 이야기를 풍경으로 만들고, 그것을 문자와 시적 운율을 통해 전해주는 음악적인 흥겨움이 숨어 있는 정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