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
국내작가
1958 ~ 1990
노래만을 위해 혼을 불사른 가수로 사후에 절대적인 평가를 받는 김현식은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에 몸담은 경력이 있으며 학교에서 자퇴한 후에는 음악다방에서 통기타를 치며 음악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는 1978년 이장희의 주선으로 솔로 앨범을 준비했으나 대마초 사건과 회사 사정으로 2년이나 늦게 자신의 앨범을 갖게 된다. 이 앨범에는 후에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주요 레파토리가 되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있고 3집에 다시 실리는 ‘떠나가 버렸네’ 등이 실려 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밤무대를 떠도는 무명의 가수로 생계를 이어간다. 결혼과 함께 피자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1984년 그의 소울 창법이 블루스 속에서 빛을 발하는 2집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 ‘사랑했어요’와 ‘어둠 그 별빛’, ‘당신의 모습’ 등이 크게 사랑 받았으며 그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서서히 얻기 시작한다. 그는 한때 조원익이 리드하고 최구희가 기타를 치던 그룹 동방의 빛 리드싱어로 있기도 했으며 이 그룹의 해체 후에는 정성조가 팀을 이끌어 가던 메신저스의 싱어도 맡으면서 진가를 발산하기도 했다. 김종진, 전태관, 고 유재하와 후에 빛과 소금이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는 박성식 장기호 등과 함께 만든 그룹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이 한 3집은 그를 인기 가수로 만든 앨범이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은 ‘비처럼 음악처럼’은 비가 오는 날이면 여지없이 라디오의 전파를 탔으며 ‘그대와 단둘이서’, ‘쓸쓸한 오후’ 등이 연이어 인기를 끌었다. 이 앨범에는 후에 그들의 앨범에 실리게 되는 ‘쓸쓸한 오후’를 비롯한 봄여름가을겨울의 작품과 유재하의 작품 ‘가리워진 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마초로 약 2달간 전인권, 허성욱 등과 구속되었던 그는 삭발 콘서트를 벌여 대성공을 거두고 1988년 4집을 발표한다. ‘언제나 그대 내 곁에’가 사랑을 받은 4집에는 윤상의 데뷔 곡 ‘여름밤의 꿈’ 고 유재하의 ‘가리워 진 길’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3집의 ‘우리 이제’에 이어 ‘한국 사람’이라는 하모니카 곡이 그의 연주로 한 트랙을 차지하고 있다. 이정선과 엄인호의 신촌블루스에서 절절한 필링의 블루스를 열창하던 그는 강인원, 권인하, 신형원 등과 영화 의 메인 타이틀을 불러 엄청난 인기를 모은다. 그러나 고독을 항상 술로 달래던 그는 이 때부터 육체적으로 힘든 나날 속에 노래를 부르는 병자의 모습으로 살게 되고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가운데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한다. 1990년에는 그의 공식적인 앨범으로서는 마지막인 5집이 발매되고 하반기에는 그가 ‘이별의 종착역’을 부른 신촌블루스 3집이 발매된다. 그의 5집은 특별한 히트곡은 없었지만 ‘넋두리’, ‘향기 없는 꽃’이 사후에 사랑을 받았으며 에 실린 ‘그 거리 그 벤치’도 영화 사운드 트랙의 판매에 힘입어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 나왔다. 1990년 11월 1일 오후 5시 20분 그는 초인적인 힘으로 6집을 녹음하다 지병인 간경화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불과 서른 두 살의 나이로 그를 아끼는 많은 팬들과 동료들의 염원도 소용없이 너무나도 빨리 지상에서 사라졌다. 사후 앨범인 6집은 팬들의 명복 속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히트곡 ‘내 사랑 내 곁에’는 오태호에게 작곡가상의 영예를 안겨 주었다. 그의 사망 1주기에는 추모콘서트가 열려 김수철, 이정선, 전영록, 강인원, 조하문, 한영애, 김태화, 봄여름가을겨울 최호섭, 권인하 등 30여 명의 가수들이 참가해 그의 노래를 부르며 그의 부재를 안타까워했고 2000년에는 그의 트리뷰트 앨범에 신인 가수와 중견 가수들이 골고루 참여해 그를 기리는 것은 물론 가요계 화합의 장으로 이어졌다. 김현식, 그는 모든 악기와 곡의 멜로디, 리듬을 떠나서 목소리만으로도 영혼을 울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그의 음성 자체가 외로움이 되고 사랑이 되며 무궁무진한 절대적 표현이 됨을 보여준 절창의 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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