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툼 레이더 영화음악 (Lara Croft: Tomb Raider OST) [메탈 골든 트라이앵글 컬러 2LP]

2021 RSD 한정반

[ 개봉 20주년 기념반 / 2500장 한정반 ]
The Chemical Brothers 작곡/Missy Elliott, Outkast, Moby, Delerium 노래 외 11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Real Gone Music (USA) / Real Gone Music (USA) | 2021년 06월 04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37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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툼 레이더 영화음악 (Lara Croft: Tomb Raider OST) [메탈 골든 트라이앵글 컬러 2LP]

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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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2021년 06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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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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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

Disc1
  • A1 Elevation (Tomb Raider Mix) - U2
  • A2 Deep - Nine Inch Nails
  • A3 Galaxy Bounce - The Chemical Brothers
  • A4 Get Ur Freak On (Vocals by Nelly Furtado) - Missy Elliott (Feat. Nelly Furtado)
  • B1 Speedballin' - OutKast
  • B2 Ain't Never Learned - Moby
  • B3 The Revolution - BT
  • B4 Terra Firma (Lara's Mix) (Vocals by Aude) - Delerium (Feat. Aude)
Disc2
  • C1 Where's Your Head At - Basement Jaxx
  • C2 Illuminati (Vocals by Bootsy Collins) - Fatboy Slim (Feat. Bootsy Collins)
  • C3 Absurd (Whitewash Edit) - Fluke
  • C4 Song Of Life - Leftfield
  • D1 Edge Hill - Groove Armada
  • D2 Satellite - Bosco
  • D3 Devil's Nightmare - Oxide & Neutrino

아티스트 소개 (16명)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는 ‘브레이크 비트 록과 빅 비트의 제왕’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들이 테크노 뮤지션임을 고려한다면 이는 다소 이례적인 경우이다. 하지만, 음악을 들어본 청자들은 대개 이 표현에 동의를 표한다. 물론 당사자들은 ‘우리들은 록과 댄스를 결합하려는 십자군이 아니다’라며 강경하게 부인하지만, 그들의 음악에 록적인 필이 넘치는 것만은 사실이다. 1989년 에드 사이먼스...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는 ‘브레이크 비트 록과 빅 비트의 제왕’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들이 테크노 뮤지션임을 고려한다면 이는 다소 이례적인 경우이다. 하지만, 음악을 들어본 청자들은 대개 이 표현에 동의를 표한다. 물론 당사자들은 ‘우리들은 록과 댄스를 결합하려는 십자군이 아니다’라며 강경하게 부인하지만, 그들의 음악에 록적인 필이 넘치는 것만은 사실이다. 1989년 에드 사이먼스와 톰 롤랜즈는 서로의 음악적 관심사가 비슷함을 확인하고 더스트 부러더스(Dust Brothers)라는 이름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최초의 레코딩은 디스 모탈 코일(This Mortal Coil)의 곡(원곡은 팀 버클리(Tim Buckley))을 새롭게 리믹스한 'Song to the siren'이었다. 이 싱글은 맨체스터 댄스 씬에서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이들은 여러 뮤지션으로부터 리믹스 제의를 받게 되었다. 동시에 클럽에서 DJ활동도 겸하면서 둘은 서서히 레코딩을 준비했다. 이들의 첫 번째 성과물은 1994년의 와 였다. 싱글들 중 ‘Chemical beats’가 클럽에서 큰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들에게 대중적인 인지도를 안겨주었다. 미국의 더스트 브라더스가 밴드 이름에 이의를 제기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밴드의 이름을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로 바꾼 뒤 발표한 1집 (1995)는 여타 일렉트로니카 밴드와 구분되는 이들의 독창성을 잘 보여주었다. 특히 (밴드만의 트레이드마크인) 리듬 라인의 다채로운 변화와 더불어 사운드 질감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곡을 다양하게 구성한 점이 돋보였다. 불협화음의 적극적인 사용, 와우와우 이펙트처럼 들리는 효과음의 도입으로 형성되는 훵키함, 맨체스터씬 특유의 댄서블함이 한데 어울려 새로운 ‘화학적인’ 결과물을 일궈낸 것이다. 1997년에 발매된 2집 (영국 차트 1위)의 대성공은 어느 정도 예견된 바였다. 앨범 발매 전에 나온 싱글 ‘Setting sun’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었기 때문.(특히 오아시스의 노엘 겔러거의 참여가 큰 몫을 했다.) 미국 차트에서도 테크노 앨범으로는 전례 없는 차트 13위로 등장했다. 이것은 아마도 이 작품이 힙합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도입, 브레이크 비트와의 결합을 시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첫 싱글인 ’Block rockin’’ beats‘와 타이틀 곡 ’Dig your own hole‘이 이를 잘 보여준다. 멤버들도 ’우리는 힙합을 하는 테크노 밴드요, 테크노를 하는 힙합밴드이다.‘라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3집 (1999)는 테크노라는 장르의 유구한 역사에 대한 소개서이자 개정판이었다. 초기의 크라프트베르크와 디트로이트 테크노에서부터 출발, 맨체스터 씬의 댄서블함과 애시드 하우스의 세계를 거쳐 현재의 빅 비트까지, 여러 스타일을 한데 묶어 케미컬 부라더스만의 사운드트랙으로 재창조시켰다. 임팩트는 전작들에 비해 떨어질지 모르나 대신 이들의 노련함이 빛을 발한다. 참여한 게스트의 면모도 화려하다. 오아시스의 노엘 겔러거, 뉴 오더의 버나드 섬너, 매지 스타의 호프 샌도벌 등이 바로 그들이다.
버지니아 태생의 미시 엘리어트는 3장의 독집 앨범을 발표한 실력파 래퍼이자 작곡가, 프로듀서로도 명성이 드높은 캐리어우먼이다. 그녀는 예측불허의 펑키 리듬 위에서 느릿하게 펼쳐내는 래핑으로 독특함을 인정받고 있다. ''The rain(Supa dupa fly)'', ''Hit'' ''em wit da hee'', ''Get ur freak on'' 등의 히트곡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녀는 또한 휘트니 휴스턴(Wh... 버지니아 태생의 미시 엘리어트는 3장의 독집 앨범을 발표한 실력파 래퍼이자 작곡가, 프로듀서로도 명성이 드높은 캐리어우먼이다. 그녀는 예측불허의 펑키 리듬 위에서 느릿하게 펼쳐내는 래핑으로 독특함을 인정받고 있다. ''The rain(Supa dupa fly)'', ''Hit'' ''em wit da hee'', ''Get ur freak on'' 등의 히트곡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녀는 또한 휘트니 휴스턴(Whitney Hiuston),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지누와인(ginuwine), 알리야(Aaliyah), 702, 릴 킴(Lil Kim), 다 브랫(Da Brat) 등의 앨범에서 곡을 쓰거나 프로듀서를 맡아 히트를 기록하며 흑인 음악계의 마이다스 손으로 불리고 있는 인물이다. 1971년 태어난 미시 엘리어트는 어머니를 학대하는 아버지를 둔 불행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부모님의 싸움하는 소리를 듣기 않기 위해 홀로 방안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때부터 쌓여진 노래실력은 학창시절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고, 이후 시스타(Sista)라는 팀에서 활동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비록 시스타에 재직하면서 앨범을 발표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이 당시 팀발랜드(Timbaland)라는 훌륭한 프로듀서 겸 작곡가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팀발랜드와 함께 엘리어트는 상기한 여러 아티스트의 프로듀싱 작업과 작곡에만 몰두하며 히트 메이커로 거듭났다. 이를 밑천으로 미시 엘리어트은 1996년 자신의 레이블 < 골드 마인드(The Gold Mind) >를 설립했고, 1년 뒤인 1997년 데뷔작 < Supa Dupa Fly >를 발표했다. 파트너 팀발랜드와 함께 완성한 음반은 리듬 앤 블루스와 소울풀한 감각이 자연스레 녹아들면서 끈적끈적한 느낌을 부각시켰다. ''Hit'' ''em wit da hee'', ''The rain(Supa dupa fly), ''Beep me 911'' 등의 트랙들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접할 수 있다. 이어 1999년에는 에미넴(Eminem), 아웃캐스트(Outkast), 레드맨(Redman), 릴 킴 등의 초호화 게스트가 참여한 두 번째 앨범 < Da Real World >를 내놓았고, 예의 많은 뮤지션들과 음악적 교류도 병행했다. 올해 5월 선보인 신작 < Missy E... So Addictive >에서도 미시 엘리어트의 독창적인 래핑과 힙 합 스타들의 피처링은 빛을 발한다. 인도 악기 타블라를 도입한 첫 싱글 ''Get ur freak on'', ''메소드맨과 레드맨이 협연한 ''Dog in heat'', 디스코 사운드의 ''Old school joint'' 등 색다른 시도와 미시 엘리어트 본연의 자세가 모두 담겨져 있다.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리듬 앤 블루스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싱글 ''Get ur freak on''도 톱 텐에 진입하는 등 순항을 하고 있다. 작곡, 작사, 프로듀서, 편곡, 싱어, 래퍼 등 다양한 직함을 가지고 있는 만능 탤런트 미시 엘리어트는 분명 힙 합 신의 걸출한 스타임이 틀림없다.
노래 : Outkast (아웃캐스트)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신의 듀오 아웃캐스트는 구디 몹(Goodie Mob)과 함께 남부 랩을 상징하는 그룹이다. 그들은 서부 랩의 간판인 갱스타 랩을 남부로 끌어들여 서던 소울과 펑크(Funk) 등을 가미시킨 독특한 스타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닥터 드레(Dr. Dre)가 창안한 지 펑크(G-Funk)를 남부 특유의 강직한 음악 스타일로 재 탄생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웃캐스트는 1992년 고등학교 ...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신의 듀오 아웃캐스트는 구디 몹(Goodie Mob)과 함께 남부 랩을 상징하는 그룹이다. 그들은 서부 랩의 간판인 갱스타 랩을 남부로 끌어들여 서던 소울과 펑크(Funk) 등을 가미시킨 독특한 스타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닥터 드레(Dr. Dre)가 창안한 지 펑크(G-Funk)를 남부 특유의 강직한 음악 스타일로 재 탄생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웃캐스트는 1992년 고등학교 친구 사이인 드레(Dre)와 빅 보이(Big Boi)에 의해 탄생된 팀. 그들은 그룹을 결성하기 전부터 서로 랩 배틀을 벌이며 차곡차곡 실력을 갈무리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듀오의 잠재력은 TLC와 엔 보그(En Vogue)의 프로듀서로 명망이 드높은 오거나이즈드 노이즈(Organized Noise)의 눈에 띠게 됐고,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엘 에이 리드(L.A. Reid)가 세운 < 라페이스(LaFace) > 레이블과의 앨범 계약 체결로 이어졌다. 친구의 승승장구는 시작됐다. 1994년 그들의 데뷔 싱글 ''Player''s Ball''은 빌보드 랩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그해 공개된 데뷔작 < Southernplayalisticadillacmuzik >도 플래티넘을 획득하는 성과를 얻었다. 1996년 소포모어 앨범 < ATLiens >, 1998년 3집 < Aquemini > 역시 모두 사이좋게 차트 2위에 랭크되었고, 당연하게 백 만장을 돌파했다. ''Elevators (me and you)'', ''Two dope boyz (in a cadillac)'', ''Atliens'', ''Rosa parks'', ''Chonkyfire'' 등이 히트 행진을 벌였다. 아웃캐스트는 지난해 내놓은 네 번째 음반 < Stankonia >을 또다시 앨범 차트 2위에 올려놓으며 힙 합 팬들의 끊임없는 애정에 화답했다. 아직도 차트에 머물려 삼 백 만장 이상을 팔아치운 앨범은 듀오의 실험 정신을 확인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속사포처럼 매우 빠르게 내리꽂는 그들의 래핑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B.O.B.'', 묵직한 베이스 라인이 신선하고 독특한 ''So fresh, so clean'' 등이 대표적이다.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Ms. Jackson''은 아웃캐스트의 음악 본령이다. 단지 힙 합 카테고리뿐만 아니라 2000년에 발표된 모든 팝 앨범들 사이에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요즘 백인 악동 에미넴(Eminem)이 힙 합의 대변인을 자임하고 있지만, 힙 합의 주인은 역시 흑인이라는 것을 아웃캐스트는 뛰어난 음악으로서 증명하고 있다.
노래 : Moby (모비,Richard Melville Hall)
리차드 멜빌 홀(Richard Melville Hall)이란 본명의 모비(Moby)는 자기와 이름이 같은 허멘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모비딕(Moby Dick)에서 따온 것이다.(그리고 자신은 Herman Melville의 먼 자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모비 자신은 소설의 반영웅과는 다르게 고래들을 사냥하는 것보다 보호하는 쪽에 더욱더 많은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모비는 그 열광적 음... 리차드 멜빌 홀(Richard Melville Hall)이란 본명의 모비(Moby)는 자기와 이름이 같은 허멘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모비딕(Moby Dick)에서 따온 것이다.(그리고 자신은 Herman Melville의 먼 자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모비 자신은 소설의 반영웅과는 다르게 고래들을 사냥하는 것보다 보호하는 쪽에 더욱더 많은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모비는 그 열광적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확고한 환경보호론자이자 반마약옹호론자이며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지닌 온건한 사람이다. 이 철학과 졸업생은 마이클 잭슨, 펫샵 보이스(The Pet Shop Boys),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이레이저(Erasure)같은 뮤지션들을 위해 리믹싱 작업을 하면서 ''The Iggy Pop of Techno''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모비의 테크노 기본기는 다양한 음악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열살때 클래식 기타를 시작했으며 십대시절 내내 펑크, 뉴웨이브, 힙합, 레게 그리고 스피드 메탈까지 다양한 음악속에 파묻혀 살았다. 또한 그는 하드코어 밴드였던 플리퍼(Flipper), 그리고 4AD 소속의 비비드 씬(Vivid Scene)에서 밴드 생활을 하기도 한다. 80년대말부터 모비의 관심은 애시드 하우스 그리고 레이브 씬에 집중된다. 데뷰싱글인 ''Go''는 1991년도에 발매되었으며, 데비비드 린치 감독의 TV시리즈인 테마를 심혈을 기울여 재작업해낸 것이었다. 그 뒤로 ''I feel it'', ''Move'', ''Hymn'', ''Everytime you touch me'' 같은 히트싱글들이 연달아 탄생하게 된다. ''I feel it''의 비사이드 트랙인 ''Thousand''에서는 1015BPM(1분에 1015타)이라는 엄청난 속도의 리듬을 선보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싱글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였다. 미국 레이블인 인스팅트(Instinct)에서 3장의 비공식 앨범을 발매한후 최고의 테크노 앨범인 을 1995년도에 발표한다. 이 앨범은 완벽한 테크노 음악들로 구성되어있으며 또한 현대생활에 대한 불복, 체계화된 종교 그리고 환경파괴 등에 관한 메시지를 부클릿을 통해 전달하였다. 앨범이 자신의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한 첫번째 앨범은 아니고 모비는 싱글들을 통해 ''동물들은 먹기 위한 것이 아니다''(참고로, 모비는 채식주의자이다.)라는 비문 등과 예수에 관한 사랑을 항상 전달하곤 하였다. 은 90년대에 가장 빛나는 테크노 앨범이다. 본작의 우선적 가치는 건반이 살아있는 테크노라는 것이다. 전편을 아우르는 피아노는 그의 음악적 기본기를 잘 증명한다. 모비의 테크노에는 노래가 있고 연주가 있으며 피아노가 있고 기타가 있으며 앰비언트가 있고 하드코어가 있으며 여자보컬이 있고 남자보컬이 있으며 백인보컬이 있고 흑인보컬이 있다. 그 앨범을 통해 총체적인 ''무차별'' 테크노를 구체적으로 선보이며 감상자를 극단으로 그리고 잔잔한 앰비언트 호수위로 몰고 다닌다. 1997년에는 존베리의 007 제임스본드 테마를 리메이크하였고 1999년 앨범에선 여전히 피아노를 기반으로한 안정적인 기본기 속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테크노 빛깔을 펼쳐보인다. 모비는 정말 테크노 고래이다. 동물적 감각으로, 가장 거대한 덩치로 일렉트로니카 씬을 유영한다. 모비에 비한다면 피라미들이 너무 많다. 미흡함 없는 완벽한 테크노 아티스트는 단연, 모비이다. 사실, 모비는 디제이가 아니다. 모비는 단순한 디제잉아닌 테크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노래 : Basement Jaxx (베이스먼트 잭스)
1994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는 사이먼 래트클리프(Simon Ratcliffe)와 펠릭스 벅스톤(Felix Buxton)으로 구성된 일렉트로닉 댄스 듀오이다. 세기말 급부상하며 매니아층을 형성하기 시작한 이들의 음악은 클럽 댄스, 하우스, 일렉트로니카, 투스텝(2-Step)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가 서로 혼합되어 있다. 베이스먼트 잭스는 1970년대를 풍미한 흑백 혼... 1994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는 사이먼 래트클리프(Simon Ratcliffe)와 펠릭스 벅스톤(Felix Buxton)으로 구성된 일렉트로닉 댄스 듀오이다. 세기말 급부상하며 매니아층을 형성하기 시작한 이들의 음악은 클럽 댄스, 하우스, 일렉트로니카, 투스텝(2-Step)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가 서로 혼합되어 있다. 베이스먼트 잭스는 1970년대를 풍미한 흑백 혼성그룹 워(War)와 재즈 뮤지션 조지 듀크(George Duke)의 라틴펑크(Funk)에 깊이 매료된 래트클리프와 시카고 하우스에 심취한 벅스톤이 의기투합해 만든 그룹이다. 초창기 그룹의 시작은 1994년 < 애틀랜틱 잭스(Atlantic Jaxx) >라는 인디 레이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 세 장의 EP앨범을 만들었고, 1995년 ‘Samba magic’, ‘Summer daze’ 등의 곡을 발표해 나갔다. 1996년 그룹은 ‘Fly life’로 영국에서 톱 20의 히트를 기록했고, 댄스 듀오 펫 숍 보이스(Pet Shop Boys)를 위해 ‘Red Letter Day, Pt.1’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 애틀랜틱 잭스 >에서 공개된 베스트 트랙을 모아둔 컴필레이션 음반 < Atlantic Jaxx Recordings: A Compilation >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앨범은 베이스먼트 잭스를 알리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작품이다. 이후 그룹은 몇몇 메이저 레이블의 레이더망에 걸려 프로디지(Prodigy)의 레이블로 유명한 < XL >과 계약한다. 결국 1999년에 선보인 데뷔작 < Remedy >는 디스코, 하우스, 펑크, 개러지 등 다채로운 요소들을 자유자재로 믹스한 풍성한 소리의 향연을 일궈냈다. 특히 미국과 영국, 호주, 캐나다, 일본 등지에서 댄스 차트를 석권하며 차츰 세계적인 그룹으로 도약을 시도했다. ‘Rende-Vu’, ‘Red alert’, ‘Bingo bango’ 등의 빌보드 댄스차트 넘버 원 곡들이 잘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음반은 음악전문지 < 롤링스톤 >과 < 스핀 >에서 호평과 찬사를 얻어냈고, 이들이 선보인 하우스 비트는 순식간에 지구촌 댄스플로어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룹은 2년 뒤 소포모어 작품 < Rooty >을 공개해 디스코, 뉴 웨이브, 록 비트, 하우스 리듬까지 선보였다. 음반은 일렉트로닉 앨범 차트 5위까지 기록했고, 첫 싱글 ‘Romeo’(댄스차트 5위), 주니어 산체스(Junior Sanchez), 에릭 모릴로(Erick Morillo)가 게스트 보컬로 참여한 ‘Where’s Your Head At’(댄스차트 3위) 등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세기말 일렉트로니카 성향의 댄스음악으로 지각변동을 야기한 베이스먼트 잭스는 뉴 밀레니엄에도 여전히 관심대상이다.

* 디스코그래피
1999: Remedy
2001: Rooty
2003: Kish Kash
2006: Crazy Itch Radio
2009: Scars
노래 : Groove Armada (그루브 아마다)
영국 런던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댄스 듀오 그루브 아마다(Groove Armada)는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 모치바(Morcheeba), 엠제이 콜(MJ Cole) 등과 함께 세기말 유행처럼 번진 일렉트로니카와 트립 합의 계보를 이어간 그룹이다. 이들은 레벨 42(Level 42),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샤카탁(Shakatak) 같은 일련의 재즈펑크(Jazz-Funk) 퓨전 ... 영국 런던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댄스 듀오 그루브 아마다(Groove Armada)는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 모치바(Morcheeba), 엠제이 콜(MJ Cole) 등과 함께 세기말 유행처럼 번진 일렉트로니카와 트립 합의 계보를 이어간 그룹이다. 이들은 레벨 42(Level 42),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샤카탁(Shakatak) 같은 일련의 재즈펑크(Jazz-Funk) 퓨전 그룹들처럼 언더그라운드 클럽가를 중심으로 출발해 이후 영국 실험주의 음악노선을 초토화시키는데 든든한 공을 세웠다. 톰 핀들레이(Tom Findlay)와 앤디 카토(Andy Cato)의 2인 체제로 구성된 그루브 아마다는 일렉트로니카, 앰비언트, 다운비트, 트립 합, 테크노 등의 다양한 장르를 한데 융합한다. 아울러 이들은 음반을 통해 몽환적이고 중독성 강한 일렉트로닉 연주 음악을 들려주는가 하면 객원싱어들을 초빙해 각 앨범마다 독특한 색깔을 주조해낸다. 1997년에 이르러 선보인 ‘4 tune cookie’, ‘At the river’ 등의 몇몇 싱글과 이듬해 발표한 데뷔음반 < Northern Star >(1998)부터 그러한 사운드 특징을 잘 증명한다. 그룹은 1999년 보다 범위가 폭넓어진 2집 음반 < Vertigo >을 발표해 영국차트 톱 20에 들어가는 성적표를 얻어냈다. ‘If everybody looked the same’, ‘At the river’, ‘I see you baby’(팻보이 슬림에 의해 리믹스) 같은 히트곡을 배출해내며 이들을 일렉트로티카 계열 그룹의 리스트에 당당히 올려놓았다. 이후 그룹은 엘튼 존(Elton John) 공연의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서며 조금씩 성공가도를 내달렸고, 2000년에 접어들어 2집 < Vertigo >를 미국에서 재 발매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넓혀나갔다. 2000년 발표된 < The Remixes >에 뒤이어 선보인 < Back to Mine >(2000)은 알그린(Al Green), 베리 화이트(Barry White),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루츠 마누바(Roots Manuva) 등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앨범의 질을 드높였다. 나아가 그룹은 이듬해에 드디어 주류로 진입해 일렉트로닉 앨범차트 7위를 기록한 3집 음반 < Goodbye Country (Hello Nightclub) >에서 이스트코스트 래퍼 제루(Jeru)가 피처링한 ‘Suntoucher’와 싱글 ‘Superstylin’ 등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자신들의 개성을 거침없이 표출했다. 2년 뒤인 2003년에 발표된 4집 < Lovebox >은 전작보다 진일보해 일렉트로닉 앨범차트 3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둔다. 특히 앨범은 이글 아이 체리(Eagle-Eye Cherry)의 누나인 네네 체리(Neneh Cherry), 랩 그룹 내피 루츠(Nappy Roots), R&B 여가수 선샤인 앤더슨(Sunshine Anderson), 포크 싱어 리치 헤이븐스(Richie Havens) 등과 함께 작업해 다양한 양질의 사운드를 구사하기도 했다.
노래 : Nelly Furtado (넬리 퍼타도,Nelly Kim Furtado)
현재 커다란 세(勢) 몰이에 주력중인 여성 싱어 송 라이터 군(郡)의 선두 주자인 넬리 퍼타도는 가히 인간 ’멜팅 포트(Melting Pot)’라 부를 만 하다. 각종 음악 소스들을 한데 버무리는 솜씨가 대단히 탁월하다는 뜻이다. 포르투갈의 피가 흐르는 캐나다 인이라는 태생적 배경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넬리 퍼타도는 어린 시절, 취미 생활로 기타와 우크렐레(ukulele)를 배우면서 음악... 현재 커다란 세(勢) 몰이에 주력중인 여성 싱어 송 라이터 군(郡)의 선두 주자인 넬리 퍼타도는 가히 인간 ’멜팅 포트(Melting Pot)’라 부를 만 하다. 각종 음악 소스들을 한데 버무리는 솜씨가 대단히 탁월하다는 뜻이다. 포르투갈의 피가 흐르는 캐나다 인이라는 태생적 배경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넬리 퍼타도는 어린 시절, 취미 생활로 기타와 우크렐레(ukulele)를 배우면서 음악적 토양을 다졌다. 동시에 팝, R&B, 브릿 팝, 힙합 등 장르를 불문하는 청취 경험을 통해 다양한 음 영양분을 섭취했다. 포르투갈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포르투갈의 전통음악인 파두와 브라질의 민요에도 항시 귀를 열어놓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토론토로 건너간 뒤, 넬리 퍼타도는 주경야독하며 본격적인 음악 인생을 닻을 올렸다. 힙합 듀오인 넬스타에 가입해 작곡가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추어나갔던 것도 이 즈음이었다. 이후, 펑크 팝(funk-pop) 밴드인 더 필로서퍼 킹즈(the Philosopher Kings)의 레이다망에 포착되면서 그녀의 뮤직 캐리어는 급격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넬리 퍼타도의 음 세계에 반한 그룹이 데모 제작을 도와주겠다고 제의했던 것.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2000년에 발매했던 데뷔 음반 로 이 준비된 스타는 단숨에 팝 팬들과 언론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앨범은 단숨에 플래티넘 고지를 정복했고 ’I’m like a bird’, ’Turn off the radio’ 등이 히트했다. 캐나다 최대의 음악 시상식인 는 2001년 무려 4개의 상을 그녀에게 몰아주었고 는 2002년 최우수 여성 팝 보컬 부문 트로피를 안기며 음악적 성과에 찬사를 보냈다.
팻보이 슬림을 얘기하면서 빅 비트(Big Beat)를, 그리고 빅 비트를 언급하면서 스킨 레코드(Skint Records)를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스킨 레코드는 빅 비트의 출원지이자 당대 빅 비트 최고의 뮤지션인 팻보이 슬림의 노먼 쿡이 속해있는 테크노 전문 레이블이기 때문이다. 스킨 레코드는 1993년, 27살의 데미안 해리스가 세운 레이블이다. 런던의 남부 도시 브라이튼을 거점으로한 스킨 레코드는 ... 팻보이 슬림을 얘기하면서 빅 비트(Big Beat)를, 그리고 빅 비트를 언급하면서 스킨 레코드(Skint Records)를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스킨 레코드는 빅 비트의 출원지이자 당대 빅 비트 최고의 뮤지션인 팻보이 슬림의 노먼 쿡이 속해있는 테크노 전문 레이블이기 때문이다. 스킨 레코드는 1993년, 27살의 데미안 해리스가 세운 레이블이다. 런던의 남부 도시 브라이튼을 거점으로한 스킨 레코드는 벤틀리 리듬 에이스, 로우-파이 올스타즈, 팻보이 슬림 등을 통해 지명도를 확보하였다(스킨 레코드에서 배출한 뮤지션들은 거의 100%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팻보이 슬림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스킨 레코드 초기부터 각별한 관계를 맺어온 팻보이 슬림의 < Rockerfeller skank >가 빅히트를 기록함에 따라 그는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유명레이블의 선두주자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팻보이 슬림은 앞서 언급한 스킨 레코드의 간판 스타이자 실세이며, 빅 비트 문화의 맹주로서 기세를 떨치고 있는 노먼 쿡의 또 다른 이름이다. 1980년대 하우스마틴스에서 베이스 주자로 활동하던 노먼 쿡은 비츠 인터내셔널을 결성하여 댄스씬에 입문하였으며,1989년과 1991년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였다. 덥과 하우스를 근간으로한 비츠 인터내셔널의 사운드는 영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그의 이름을 바다 건너 미국에까지 각인 시키는데 성공하였는데,이러한 비츠 인터내셔널의 성공으로 노먼 쿡은 리믹스 디제이로의 명성마저 쌓기 시작하였다. 노먼 쿡은 이후 핏자맨과 프릭 파워라는 두 개의 프로젝트 팀을 가동시키며 1994년, 1996년에 앨범을 발표하기도 하며, 그 사이사이에 마이티 덥 캣츠, 노먼 쿡 프리젠트 와일드스키, 프라이드 훵크 푸드라는 이름으로 여러 장의 싱글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현재에 이르러 노먼 쿡은 스킨 레코드를 통해 빅 비트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팻보이 슬림의 이름으로 발표된 데뷔 앨범 < Better Living Through Chemistry >은 훵크와 소울을 바탕으로 플로어 지향주의가 강한 노먼 쿡의 뛰어난 음악적 감수성과 스킨 레코드 특유의 유머스러운 사운드가 어울려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2000년 발매된 < Halfway Between the Gutter and the Stars > 여전히 재기어린 그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노래 : Oxide & Neutrino (Alex Rivers, Mark Oseitutu)
Alex Rivers와 Mark Oseitutu로 구성된 런던의 영어 DJ 및 MC 듀오 Alex Rivers와 Mark Oseitutu로 구성된 런던의 영어 DJ 및 MC 듀오
< 롤링 스톤 >지은 84년 이 그룹을 ‘올해의 밴드’로 선정하고 대서특필했다. 미국의 대중주간지 < US >는 85년 “아일랜드에서 온 성난 십자군들이 미국을 산산조각내고 있다”며 그들의 미순회공연을 충격적으로 보도했다. < 타임 >지는 87년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 그룹이 비틀즈 다음에 랭크되어야 한다고 썼다. 언론의 지적처럼 이 그룹은 실로 ‘80년대 최고의 록 밴드’였다. 음악전문가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 < 롤링 스톤 >지은 84년 이 그룹을 ‘올해의 밴드’로 선정하고 대서특필했다. 미국의 대중주간지 < US >는 85년 “아일랜드에서 온 성난 십자군들이 미국을 산산조각내고 있다”며 그들의 미순회공연을 충격적으로 보도했다. < 타임 >지는 87년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 그룹이 비틀즈 다음에 랭크되어야 한다고 썼다. 언론의 지적처럼 이 그룹은 실로 ‘80년대 최고의 록 밴드’였다. 음악전문가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반 팬들에게 당대 록 그룹 인기서열 1위는 언제나 이들 차지였다. 심지어 “지진이 일어날 만큼 수많은 관객이 운집해 열광하는 그들의 공연을 누가 능가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교황만이 가능할 것이다.”라는 얘기도 나왔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4인조 그룹 유투(U2). 그룹명을 고공첩보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이들은 이런 인기 외에 가수의 울타리를 뛰어넘은 영향력까지 누리고 있다. 아일랜드의 수상 가렛 피처랄드가 이 그룹 리더에게 정부의 실업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그 일례에 속한다. 리드 싱어 보노(Bono)의 원시적 야수성이 번득이는 보컬, 에지(Edge)의 자극적인 기타 연주(그룹 후의 피트 타운센트는 “그의 연주를 들었을 때 기타 연주를 포기하고 싶었다”고 실토한 바 있다). 아담 클레이튼(Adam Clayton)의 베이스, 래리 뮬렌 주니어(Larry Mullen Jr.)의 드럼이 융합되어 토해내는 ‘스트레이트 록큰롤’은 가히 일품이다. 발라드나 댄스곡 일색인 이 시대에 유투의 광포한 록 사운드처럼 팬들 가슴에 불을 당긴 밴드는 없었다. 록 뮤직의 본질인 폭발성과 열정 그리고 현장성의 부재에 갈증난 팬들에게 이들은 ‘가뭄 속의 단비’였다. 그렇다고 유투가 이같은 록큰롤에 대한 투신만으로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평가받게 된 보다 정확한 이유는 사회현실을 주시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파헤쳐 고발하는 ‘매서운 감시 기능’에 자리한다. 워싱턴 대학의 부총장이자 록 역사가인 데이비드 P. 차트메리 씨는 91년 펴낸 『록킹 인 타임』이란 저서에서 “유투는 록 음악이 60년대에 보여준 ‘비판정신’이 복원되고 있음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실체”라면서 그들의 음악을 저항적이라고 기록했다. 유투 본인들도 자신들이 거둔 성공의 주된 이유는 “좋은 노래, 즉 현실적(real)인 노래를 쓴다는 데 있다”고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리드 싱어이면서 모든 가사를 쓰고 있는 그룹의 실세 보노(본명 폴 휴즌)는 더 구체적으로 “80년대 사람들은 칵테일 감성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들려나오는 소위 ‘무드음악’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반대하는 것들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자세로 음악을 한다.”고 그룹 이념을 밝혔다. 바로 이런 태도가 그들에게 인기 외에 존경을 더해준 것이다. 지난 76년에 결성된 유투는 78년 기네스 맥주회사가 주최한 가요제에서 우승하면서 팝 무대에 공식 진출했다. 상당기간 충전을 거듭한 뒤 80년 첫 앨범 < 소년(Boy) >과 81년 < 10월(October) >을 연이어 출반했으나 비평가들의 찬사만 들었을 뿐 판매는 부진했다. 여기까지 그들은 평범한(물론 나중의 음반과 비교해서) 소재를 다루었으나 이후에는 음악에 정치적 메시지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입장 정리를 끝내고 나자 유투는 < 전쟁(War) >, < 잊혀지지 않을 불꽃(The Unforgettable fire) >, < 여호수와 나무(Joshua Tree) >, < 분노의 소리(Rattle and Hum) > 등 걸작을 터뜨리면서 한 번도 현실과 등진, 공허한 상업성의 메아리를 울리지 않았다. 전환점은 82년 10월 북아일랜드의 항구도시 벨파스트에서 가진 공연이었다. 여기서 유투는 역사적인 아일랜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일요일, 피에 젖은 일요일(Sunday, Bloody Sunday)’을 관객들에게 선보여 일대 주목을 받았다. 왜곡된 현실의 제문제들을 취급하기로 마음먹은 그들이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유투의 눈에 걸려든 것은 자신들의 조국 아일랜드의 분단과 전쟁이었다. ‘아이들 발 아래 깔린 깨진 병들, 막다른 골목길에 널린 시체들, 투쟁이 막 시작됐어. 많은 사람이 죽어가지만 승리한 자는 누구인가. 참호가 패이는 것은 우리들 가슴 속이지. 어머니의 자식 형제들 누이들이 찢어지고 ...’ 아일랜드 상황을 그린 존 레논의 72년도 노래와 제목이 같은 이 곡에서 유투는 종교의 차이 때문에 나라가 남북으로 갈려 끝없이 다투는 것을 두고 언제까지 우리가 레논의 노래를 불러야 하겠느냐며 ‘오늘밤에라도 우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유투의 소원은 고국 아일랜드의 통일이다. 보노는 “하나의 섬인 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경계선은 완전한 허위”라고 주장한다. 유투의 눈에 세상은 투쟁과 분열로 혼탁하며 반민주적 상황이 도처에 산재하고 있는 ‘문제의 세상’이었다. 이 노래가 수록된 83년의 음반 < 전쟁 >이 시사하듯 세계적 현실은 여러 가지 레벨의 전쟁 상황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국제간의 정치 분쟁, 핵 지대화, 민권 침해 등 주요 문제들이 이 고공첩보기의 감시를 받는다. ‘서에서 동까지 당신들은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식이야. 야밤의 도둑처럼 당신들은 촛불로 세상을 보고 있는 거야. .. 매일 매일이 혁명인 거야. 소련, 동독, 런던, 뉴욕, 북경! 배후를 조종하는 앞잡이들이야. 안녕, 안녕, 안녕하는 데는 1초밖에 걸리지 않아. 버튼을 누르고 플러그를 당겨. 안녕이야.’ ‘초(Seconds)’ 역시 < 전쟁 >에 실려 있는 이 곡은 핵무기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다. ‘부서진 등은 천장에 걸리고 깨어진 코는 바닥에 닿아 있지. 난 문 뒤에서 웅얼거리는 침묵에 비명을 지르지. 간수는 말하는 거야. 비상구는 열려 있으니 나가려면 은과 금이 있어야 한다고. .. 이 사슬은 더 이상 날 묶지 못해. 발에 있는 족쇄도 마찬가지야. 죄수는 밖으로, 안에는 자유를! 그들을 풀어주라.’ ‘은과 금(Silver and Gold)’ 요하네스버그 남부에 사는 어느 흑인을 소재로 했다는 이 곡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서슬퍼런 흑인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신랄할 비판이 담겨 있다. 이 노래는 리틀 스티븐의 제창으로 아파르트헤이트의 반대를 호소한 음반 < 선 시티(Sun City) >에 보태기 위해 만든 곡이다. 유투는 특히 인권 탄압에 예민하다. 세계 도처에 행해지고 있는 인권 침해의 현실을 문책하는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에 깊이 관여하면서 85년, 86년 이를 위한 공연에 잇따라 참여했다. 유투의 팬들은 < 선전 >이라는 잡지를 발행, 독자들로 하여금 국제사면위원회를 대신해 인권을 탄압하는 각국의 정부에 편지를 띄우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유투의 노래 방향은 한마디로 ‘민주주의’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그 어느 정치 체제나 경제 이데올로기의 입장에는 서있지 않다. 이들의 관심은 어떤 이념의 체제이든 그 국가가 현실정치에서 저지르고 있는 반민주적 요소와 왜곡을 규탄하고 전면적 반성을 촉구하는 데 집중된다. 따라서 60년대와 70년대 록 스타에게서 가끔 나타나던 반체제, 무정부주의, 반종교의 기색은 발견되지 않고 이념과 체제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 가운데서 운동성이 출발한다. 이들의 음악이 우리의 귀에 다소 시끄럽게 들리는 것은 그 속에 70년대 중반 영국을 휘몰아쳤던 펑크 사운드가 살아 있는 까닭이다. 유투는 펑크의 소리만 되살린 데 그치지 않고 펑크의 ‘저항 정신’을 함께 복원시켜 저항을 자신들의 슬로건으로 내세웠지만 반체제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다시 말해 ‘부정적인’) 옛 펑크와는 저항의 본질을 완전히 차별화했다. 기타주자 에지는 말한다. “펑크는 죽었다. 그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했던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현재 밀어닥치는 새로운 팝의 소용돌이 속에 펑크는 버팀목으로서 음반 < 전쟁 >이 기획되었다. 우리는 클래시의 초기 주장과 리차드 헬, 그리고 섹스 피스톨즈를 좋아해왔다. 그러나 우린 분노와 사랑을 동시에 원한다. 우린 프로테스트(저항) 음반을 원하지만 분명히 ‘긍정적인’ 프로테스트 음반을 원한다.” 반종교 또는 반그리스도 주장 또한 이들에게는 ‘큰일날’ 소리다. 이들은 파문을 일으켰던 존 레논의 “우린 예수보다 위대하다”는 발언을 끔찍한 것으로 여긴다. 레논의 음악과 저항 자세는 존경할 만하지만 그가 무종교주의자라는 점은 배격한다. 영국과 아일랜드 출신, 특히 아일랜드산 가수 중에는 반미감정의 소유자가 적지 않은 편인데, 유투의 경우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탄력적’인 것은 이와 같은 ‘긍정적 비판’ 혹은 ‘비판적 지지’의 자세에서 연유한다. 이들은 < 여호수와 나무 >에 수록된 ‘푸른 하늘에 총탄을(Bullet the Blue Sky)’을 통해 80년대 중미 국가에 행사된 미국의 압력적 개입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악마의 씨를 뿌리고 화염을 일으킨다. 그들이 십자가를 불태우는 것을, 높이 높이 솟구치는 불꽃을 보라. .. 가시덤불의 장미처럼, 로열 플래시의 모든 색깔처럼 그리고 그는 달러 지폐를 낙하시키고 있다. 난 전투기가 아기가 잠든 진흙 오두막집을 가로지르고 조용한 도시의 거리를 지나는 것을 본다. .. 벽을 통해 우린 도시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미국이 밖에 있다. 미국이 밖에 있다.’ 그러나 결코 원색적 반미의 기조는 없다. 유투에게 미국은 ‘신의 나라’이며 ‘마음의 땅’이기도 하다. 보노는 87년 < LA 타임즈 >와의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개진한 바 있다. “미국이 특히 중미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악몽인 것은 틀림없다. 미국은 농부와 인민의 황폐화를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난 미국 시민에 대한 증오에서가 아니라 진정한 존경심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난 미국이 ‘악몽이면서 꿈’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다." 상당수는 이러한 유투의 ‘체제 인정, 현실 지적’의 노선(부연하자면 혁명을 통한 체제변화의 방식이 아닌 개혁에 의한 체제의 수정, 발전을 모색하는 방식)을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론’이라고 판단하고 이들에게 지지를 보내주는 것 같다. 87년에 발표된 < 여호수와 나무 >는 영국에서 1백50만 장, 미국에서 4백만 장, 전세계적으로 1천5백만 장이 팔려나가 팬들의 성원이 압도적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이들이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미국의 제도권으로부터도 환영받는 것(언론의 그 호의적인 반응을 보라)은 이같은 노선에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일부로부터는 - 당연히 급진적 좌파가 되겠지만 - 이들이 일정한 한계에 머물러, 앞서 지적한 영국의 클래시나 섹스 피스톨즈 같은 펑크 그룹이 보여준 진보성에는 훨씬 못미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유투는 60년대의 혁명정신을 계승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그들의 혁명은 ‘체제의 혁명’이 아니라 ‘사랑의 혁명’이다. 그들이 87년 < 뮤지션 >지에 밝힌 내용을 통해 유투의 혁명관을 분석할 수 있다. “황량하기만 한 시대인 현 80년대에서 우린 60년대를 돌아본다. 그 시대는 정말 ‘재능’과 ‘드높은 이상’ 그리고 ‘무언가를 변화시키려는 의지와 욕구’의 저장탱크였다. 나는 그때의 아티스트들처럼 사랑의 혁명에 관심을 갖는다. 물론 그들의 일부는 사회혁명을 외쳤지만 우리는 사랑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한다. 혁명을 하고 싶다면 자신의 가정에서부터 주변사람들과의 인간 관계에서부터 혁명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의 모든 노래는 결국 ‘사랑을 통한 화합’으로 귀결된다. 기독교적 박애의 분위기다. 이런 탓에 급진성의 함량 미달이라는 혹평 말고도 너무 잘난 척만 일삼고 성직자연한다는 비아냥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투는 60년대 히피처럼 사랑만이 모든 질곡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임을 확신하고 있다. ‘한 사람이 사랑의 이름으로 왔다네. .. 4월 4일 이른 아침 멤피스의 하늘에 총성이 울렸지. 마침내 자유다! 그들이 당신의 목숨은 앗아갔지. 그러나 당신의 자부심은 빼앗지 못했지. 사랑이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은. 사랑의 이름 이상의 그 무엇이 있으랴.’ ‘프라이드(Pride in the Name of Love)’ 여기에 등장하는 한 사람은 비폭력 민권운동 지도자였던 마르틴 루터 킹 목사. 유투는 이 곡을 그의 영전에 바쳤다. ‘나는 나의 과거를 정복했지. 마침내 미래가 여기 있지. 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다네. 내 바로 앞에 있는 파멸들은 곧 나를 놓치게 될 것이야. 사랑은 나를 구조한다네.’ ‘사랑이 나를 구조하네(Love Rescue Me)’ 유투는 래리 뮬렌이 열네 살 때 마운트템플 고교 게시판에 공고를 내 조직한 그룹. 보노나 뮬렌 둘다 모친을 병 또는 사고로 잃어 그 동병상련을 깊은 연대감으로 승화시킨 그룹. 처음에는 악기 하나 소리 하나 제대로 못내다가 절차탁마를 거듭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된 ‘노력지향’의 그룹(보노는 노래에 별다른 소질이 보이지 않아 매니저가 되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으나 지금은 천부적 노래꾼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가사는 보노가 쓰지만 작곡은 모든 멤버가 임해 스스로를 ‘네발 달린 테이블’이라고 하는 공동체적 민주주의 그룹. 이들에게 단단한 팀웍이 구축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 결과인지도 모른다. 네 명의 유투 멤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투의 관계자들 대부분이 그들과 같은 공동체 의식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의 매니저인 폴 맥기니스와 관련한 소식 하나. 맥기니스는 평소 솔직한 발언을 잘 하기로 이름이 나있는데, 90년 더블린에서 가진 한 세미나에서 슈퍼스타 폴 매카트니와 피트 타운센트를 크게 꾸짖었다. 이유는 그들이 돈많은 갑부인데도 불구하고 염치없이 떼돈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폴 매카트니가 순회 공연을 하면서 비자카드의 후원을 잡아 수백만 달러를 챙기고 티켓을 살 때 그 카드만 사용하도록 한 것을 보면 그는 정말 탐욕스러운 사람이다. 공연할 때 후원이 없으면 남지 않는다고 그가 주장한다는 것은 정말 ‘개똥’ 같은 얘기다. 그처럼 돈많은 사람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그룹 ‘후’가 맥주회사를 공연 후원업체로 잡았을 때 난 무지 당황했다. 피트 타운센트는 회복기의 알콜중독자 아닌가. 이러한 이율배반을 그가 몰랐던 게 아니라 무시했다고 생각한다.” 맥기니스는 심지어 그들의 공연 후원잡기 행태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먹는다는 뜻에서 ‘파우스트적 거래’라고 맹공했다. 매니저부터가 실로 유투적이다! 유투는 88년 < 분노의 소리 >이후 4년간 공백을 갖다가 92년 < 액퉁 베이비(Achtung Baby) >라는 제목의 새 앨범을 내놓았다. 슈퍼스타답게 역시 이 음반은 크게 히트했고 기독교적 사랑을 전체 수록곡을 통해 제창하고 있다. 앞으로 또 음반을 내도 유투는 계속해서 기독교적 사랑을 노래하고 사회현실을 지적할 것이다. 이 작업은 87년의 빅 히트곡 ‘난 아직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지(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의 가사처럼 아마도 끝없는 여로일 터이다. ‘난 가장 높은 산을 올라갔지. 난 들판을 가로질러 달렸지. 난 뛰었고 기었지. 이 도시의 벽을 기어오르기도 했지. 오로지 그대와 함께 하기 위하여. 그러나 난 아직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지.’
밴드 : Nine Inch Nails (나인 인치 네일스)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의 원 맨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는 세기말 사운드라 불리는 ‘인더스트리얼’의 결정체이다. 혼돈과 무질서로 대변되는 어지러운 시대에 그가 퍼트린 ‘소음의 미학’은 일대 사운드의 반란이었다. 기존 록음악의 양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예쁘장한 소리대신 귀에 거슬리는 노이즈를 의도적으로 채택했다.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였다. 대중들도 ...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의 원 맨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는 세기말 사운드라 불리는 ‘인더스트리얼’의 결정체이다. 혼돈과 무질서로 대변되는 어지러운 시대에 그가 퍼트린 ‘소음의 미학’은 일대 사운드의 반란이었다. 기존 록음악의 양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예쁘장한 소리대신 귀에 거슬리는 노이즈를 의도적으로 채택했다.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였다. 대중들도 열렬히 환영하며 기꺼이 그의 추종자가 되기를 자청했다. 또한 한때 절친한 친구이자 수제자였던 ‘맨슨교 교주’ 마를린 맨슨(Marilyn Manson)도 레즈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만큼 세기 끝물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인더스트리얼 전도는 반짝 반짝 빛을 발했다. 하지만 트렌트 레즈너가 인더스트리얼을 창조한 것은 아니다. 모든 음악 장르가 그렇듯 긴 세월동안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번듯하게 세기말의 축복을 받았다. 그는 1970년대 중반 전통적인 대중 음악의 패턴을 전복시키고자 기계의 각종 소음들을 전자 사운드에 결합시켜 생소한 사운드를 만들어낸 스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 같은 영국 그룹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사운드의 거부감 때문에 별다른 조명한번 받지 못하고 사라져간 선배그룹들과 달리 그는 ‘대중성’을 가미시켜 음악 트렌드로 이끌어냈다. 음지에 갇혀있던 사운드를 양지로 길어 올린 것이다. 트렌트 레즈너가 인더스트리얼로 귀의(歸依)한 연유는 그의 성장과정에서 유추할 수 있다. 그는 1965년 5월 17일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머서(Mercer)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부터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다. 할머니의 관심 속에 피아노와 색소폰, 튜바 등을 배우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클래식음악에 빠져있던 그가 극단적 음악으로 선회하게 된 계기는 인근 알리제니 대학(Allegheny College)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면서부터였다. 전자 음악의 아이콘인 컴퓨터를 다루면서 풍성하고 이질적인 효과음과 소리들에 심취하게 됐다. 졸업 후에는 클리브랜드로 이주, 악기점과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노이즈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이와 병행하여 이노센트(Innocent), 엑소틱 버즈(Exotic Byrds), 프러블럼스(Problems)같은 그룹에서 활동하며 앨범을 발표하는 등 실전에도 전념했다. 그는 1988년 언더그라운드에서 갈고 닦은 이론과 실기를 바탕으로 데모 음반을 제작하고 자신의 페르소나(Persona) 나인 인치 네일스를 출범시켰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은 다른 인디스트리얼 밴드에 비해 접근이 용이하다. 멜로디에 생동감이 넘치며, 사운드도 라이브무대에서 실제 연주가 가능하게끔 제작하기 때문에 기계적이면서 기계적이 아니다. 그 내면에 인간의 박동소리가 고동친다. 1997년 시사 주간지 ‘타임’이 그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하면서 "트렌트 레즈너는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황제이다. 그는 암울한 인더스트리얼 음악에 인간성을 부여한 시인이다."라는 코멘트가 웅변한다. 그가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1989년의 데뷔작 < Pretty Hate Machine >에서 잘 드러난다. 레즈너의 최고 싱글 중 하나로 꼽히는 ‘Head like a hole’, 테크노의 전형을 보여주는 ‘Sin’ 등 ‘깨끗함으로 세탁된’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선사한다. 그는 그러나 이후 발매되는 앨범들부터 ‘인간에 대한 예의’는 어느 정도 지키고 있지만 기계의 실험성에 보다 더 집착했다. 1992년에 내놓은 미니 앨범 < Broken >에 수록된 ‘Happiness in slavery’, ‘Wish’에서 그 포문을 열었다. 사운드의 벽이 한층 두꺼워졌고, 공격적이며 폭발력이 강해졌다. 다음해 ‘Wish’로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메탈 퍼포먼스’상을 받은 것은 그의 음악 텍스쳐에 대중들이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리고 그것의 최고 절정은 2년 뒤에 발표한 2집 앨범 < The Downward Spiral >에서 만개했다. EP < Broken >의 방법론을 그대로 따르며, 그 위에 현대 산업사회의 천사이자 악마인 기계에 대한 모티브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프로그레시브적인 형식을 입혔다. 미국에서는 2위, 영국에서는 7위를 기록하는 등 상업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March of the pigs’, ‘Closer’ 같은 곡들이 꾸준한 인기몰이를 했다. 트렌트 레즈너의 후속작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신을 돌봐왔던 할머니의 죽음과 절친했던 마를린 맨슨과의 결별 등 죽음과 믿음 상실이라는 고통 속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를 향한 언론과 팬들의 무조건적인 기대감 역시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그 사이에 영화 ‘내추럴 본 킬러스’와 ‘로스트 하이웨이’의 음악 감독을 맡아 그의 음악을 갈망하는 팬들에게 잠깐이나마 위로를 해주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1998년 공개된 3집 앨범 < The Fragile >은 수록곡 23곡에 러닝 타임 100분의 두 장 짜리 CD로 그의 모든 음악적 역량을 쏟아 부었다. 피아노 발라드 ‘La mer’에서 증명되듯 전작보다 멜로디 라인이 수려해 데뷔 앨범처럼 듣기가 수월하다.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웅장함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실험정신을 버린 것은 아니다. 첫 싱글 ‘We`re in this together’에서 보여지는 비트의 쪼개짐은 놀랍다. 리듬을 자유자재로 교차시키며 음악의 숲을 일궈나간다. 레즈너 특유의 탐미도 여전했다. < 롤링스톤 >은 이 앨범을 ‘소외와 공포의 출구인 핑크 플로이드의 < The Wall >의 트렌트 레즈너 버전’이라며 극찬했다. 이어서 그는 올해 초 < The Fragile >의 리믹스 버전인 < Things Falling Apart >를 발표했다. 그의 작업 경로로 볼 때 리믹스 작업은 당연한 후속 조치다. 하나의 곡을 가지고도 끊임없이 새롭게 재해석, 변형시켜 한 곳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그의 자세가 빚어낸 결과이다. 그는 이미 2집의 리믹스 앨범 < Further Down The Spiral >을 1995년에 내놓은 바 있다. 작용과 반작용은 늘 공존하기 마련이다. 트렌트 레즈너가 대중 음악계에 쌓아 올린 가장 큰 메리트는 인더스트리얼의 대중화다. 소음의 놀이터로만 머물던 것을 ‘소음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당당히 보여줬다. 반대로 이것은 또한 상업성을 타도하자는 정신에서 출발한 인더스트리얼의 기조를 스스로 허무는 결과를 낳았다. 그가 마를린 맨슨을 ‘돈 잘 버는 사업가’에 비유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작용과 반작용을 만들어 내는 노력이다. 그것을 위해 지금도 나인 인치 네일스의 주인공 트렌트 레즈너는 전진하고 있다.
폴 데일리(Paul Daley)와 닐 반스(Neil Barnes)의 듀오 밴드인 레프트필드(Leftfield)는 통상 프로그레시브 하우스(Progressive House)계열로 분류된다. 하지만 여기서의 ‘프로그레시브’란 수식어는 70년대의 대곡 지향의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차용된 뜻이 아니다. 이것은 이들이 하우스라는 이름 아래 여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적극 도입, 실험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즉, (의외로)... 폴 데일리(Paul Daley)와 닐 반스(Neil Barnes)의 듀오 밴드인 레프트필드(Leftfield)는 통상 프로그레시브 하우스(Progressive House)계열로 분류된다. 하지만 여기서의 ‘프로그레시브’란 수식어는 70년대의 대곡 지향의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차용된 뜻이 아니다. 이것은 이들이 하우스라는 이름 아래 여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적극 도입, 실험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즉, (의외로) 단순히 ‘진보적인, 실험적인’ 이라는 뜻을 지니는 수식어인 것이다. 본래 레프트필드는 닐 반스의 원 맨 밴드였다. 하지만 반스가 리듬 킹(Rhythm King)레이블과 계약하고 ‘Not forgotten’을 다시 레코딩하던 중 폴 데일리가 리믹서로 참여하면서 듀오밴드로 전향하게 되었다. 사실 이 둘은 이전부터 잘 알고 있던 사이였고 서로의 음악적 관심사도 일치했기 때문에 하나의 팀으로 활동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Not forgotten’은 프로그레시브 하우스의 교과서격인 싱글이 되었고, 레프트필드는 하우스 씬의 기대주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후 이들은 다른 아티스트들의 리믹스 작업에 중점을 둔 활동을 시작했다. 단순한 리믹스가 아닌 ‘전혀 새로운’ 스타일로의 재창조를 목표로 한 이들의 작업은 음악계에서 상당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리믹스 작업기간 동안 계속되었던 리듬 킹 레이블과의 법정 투쟁이 끝나고, 이들은 직접 하드 핸즈(Hard Hands)레이블을 설립해서 싱글들을 발표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음악들은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모아 정식 음반으로 제작한 앨범이 바로 1집 < Leftism >(1995)이다. 물론 ‘Storm 2000’등의 신곡들도 다수 선보였다. 앨범은 첫 곡 ‘Release the pressure’부터 렘 시세이(Lemn Sissay)가 참여한 마지막 곡‘21th century poem’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요소들을 혼합한 새로운 하우스의 형태를 제시했다. 4년 뒤에 발표한 2집 < Rhythm and Stealth >(1999)는 1집과 마찬가지로 하우스의 우산 아래 여러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혼합하고 있다. 물론 1집에서 보여주었던 신선함(1집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은 보이지 않지만, 대신 이들의 관록과 노련미가 그 자리를 충실히 보완하고 있다. 첫 트랙인 ‘Dusted‘의 사이키델릭한 무드, ‘Chant of a poor man’에서의 덥과 트립합적인 면모, 속도감 있는 비트의 향연이 돋보이는 ‘Phat planet’등에서 보듯이 그들은 또 한번의 ‘진보적인’ 스타일을 개척해 낸 것이다. 단 2장의 앨범으로 이렇게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뮤지션은 그다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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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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