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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3년 06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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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020쪽 | 1,337g | 150*210*8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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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프롤로그를 읽는 동안, 양쪽 턱 아랫부분에 있는 편도선에 강한 자극이 밀려왔다. 그 느낌은 어떤 섬뜩한 것을 대할 때 몸이 긴장으로 반응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소설 ‘28’의 첫 느낌은 그렇게 다가왔으며, 역시 전작 ‘7년의 밤’처럼 이 소설을 빨리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만 하룻만에 책을 다 읽었다.
며칠 전, 매일경제 신문에서 ‘정글만리’를 쓴 작가 ‘조정래’의 인터뷰 내용이 간략히 소개되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요즘 젊은 작가들이 늘 1인칭 시점의 글만 쓰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다는 말을 한 것을 읽었다. 이 소설 ‘28’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의 글이며, 그 관찰자는 소설의 주인공들인 서재형, 한기준, 링고, 김윤주, 박동해, 노수진을 번갈아 쫓아가며 소설을 풀어낸다. 소설은 프롤로그, 1~6장, 그리고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 6장, 에필로그를 제외한 나머지 1~5장에는 각 주인공들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소제목이 등장하고, 3인칭 관찰자는 그 주인공들의 눈으로 이야기의 전개를 이루어낸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방식의 소설을 구현해낼 수 있었을까? ‘7년의 밤’에서도 그랬던가? 이와 같은 구성방식을 썼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만약 같은 구조라면, 이 구조는 정유정 작가의 독특한 소설 구성방식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전작 소설 ‘7년의 밤’이 너무나 강렬한 느낌으로 각인되어 있었기에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전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입부는 전작에 비해서 훨씬 강렬했으며, 소설 중반의 흡입력은 전작과 유사했으며,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전 편보다 훨씬 아팠다. 아프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아프다는 것 외에는 적절한 다른 표현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이제 간단한 느낌을 기록해본다.
첫째, 인간 말종인 박동해의 모습에 치를 떨었다.
가끔 뉴스에 인면수심의 범죄인들이 등장하는데, 박동해가 딱 거기에 맞는 인물이었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애정의 결핍이 정신적 반항으로 이어졌으며, 그 정신적 반항은 결국 물리적인 반항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어, 사회 적응 부적격자의 악랄한 모습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개를 지속적으로 없애버리거나, 군대에 가서도 개를 가학적으로 죽여버리는 모습, 어머니가 있는 집을 불사르거나, 아버지에게 시너가 든 병을 던짐으로써 결국 아들을 구하기 위해 총을 쏘는 아버지가 불에 타서 죽게 만드는 모습까지. 반사회적인 인물을 작가는 이번 글에서도 등장시킴으로써 소설을 읽는 독자의 분노를 키우는 데 일조를 하면서, 결국 그의 죽음을 속 시원히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둘째, 기자 김윤주의 직업적 속성은 이 소설을 진행시킨 중요한 동기가 된다.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기본적인 명제에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그 기자의 보도가 잘못된 것일 때의 파장이란 작은 것이 아니다. 소설 속 김윤주는 주인공 서재형에 대한 박동해의 음해성 제보를 그대로 믿고 기사를 내보냄으로써 서재형을 위기 속으로 몰아넣는다. 비록 본인이 일부러 서재형을 그렇게 만들고자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서재형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모습을 제대로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고 김윤주는 느꼈기에 기사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자료 조사는 깊이가 없었으며, 그런 깊이 없는 기사로 인한 일말의 죄책감이 그녀로 하여금 서재형을 찾아가게 만들었으며, 결국은 아수라장인 현장을 눈으로 목격하도록 만들게 되었다. 또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시 ‘화양’에 번진 그 치사율 100%의 병이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감염시킬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그녀의 기사 한 줄이 결국 도시 내 모든 개를 죽이는 대학살로 연결이 되었다. 만약 그 기사가 나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셋째, 주인공 서재형의 슬픈 이야기.
11년 전, 알래스카에서 열린 개썰매 경주에서, 늑대들에게 개들을 ‘결국’ 내어줌으로써 트라우마를 안고 귀국해서, 유기견들을 돌보는 수의사로 살고 있던 그에게, 말도 안 되는 신문기사로 촉발된 개인적인 어려움. 그리고, 창궐한 알 수 없는 전염병. 하필, 그 전염병은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개 사육업자의 집에서부터 출발했고, 그 개 사육업자와 사육업자를 살리기 위해 출동했던 구급대원들, 그리고 거기서부터 또 다시 접촉이 시작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되었다. 유기견을 돌봄으로써 11년 전 알래스카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있던 서재형에게 이러한 병의 출현과, 죽어가는 개들, 그리고 사람들은 슬픔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나 그가 아끼고 사랑하던 개였던 쿠키가 병으로 죽고, 그 병으로 촉발된 한기준의 오해에서 비롯된 또 다른 개인 스타의 죽음. 그리고 그 오해의 또 다른 대상이었던 ‘링고’와의 죽음. 처음에는 껄끄러웠으나 결국에는 사랑하게 된 윤주와의 이별.
넷째, 한기준의 이야기.
특전사 출신으로 119구조대에서 근무하는 한기준은, 개 사육업자를 구하러 갔다가 늑대만큼 큰 개인 ‘링고’와 처음 마주쳤다. 그리고, 도시에 병이 돈 이후로 자신의 부인이 개들에게 물어 뜯겨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이후, 무작정 개들을 찾아 나섰다가, 몰살당한 다른 개들을 살리기 위해, 매장된 개들을 입으로, 발로 땅을 파냄으로써 살리고 있던 ‘스타’와 ‘링고’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는 손도끼로 ‘스타’를 죽였고, ‘링고’ 또한 죽이려던 찰나에 개들을 찾아 나섰던 재형의 방해로 ‘링고’는 놓치고 말았다. 한기준은 119구조대원의 특별한 사명감으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애를 쓰지만, 부인과 딸의 죽음을 초래한 ‘개’들에 대해서는 이유 없는 적개심을 표출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링고’와 건물 옥상에서 사투를 벌이게 되고, 그 사투를 막기 위해 나타난 재형이 링고의 마지막 공격을 스스로의 몸으로 막는 것과 죽어가는 것을 지켜봄으로써, 자신이 개에 대해 가졌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소설은 다양한 등장인물과 주인공들만큼이나 복잡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5명의 사람과 1마리의 개가 주인공인 이 소설은 각 장에서 각 주인공이 적절하게 순서를 바꾸어서 등장하고, 그 등장하는 순서에 따라 소설이 잘 짜맞춘 톱니바퀴처럼 잘 읽혀진다. 2장에서만 ‘재형’이 2번 등장할 뿐, 1~5장까지 각 주인공이 모두 한 번씩 등장하면서 소설은 참 짜임새 있게, 그러나 정말 숨가쁘게 돌아간다. 개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개가 주인공인 소설이라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소설에서 개가 다른 주인공들과 동일한 비중으로 등장한다는 것 또한 이 소설의 색다를 매력이다.
작가의 철저한 계산이었겠지만, 그 오랜 28일이나 되는 시간이 지나서야, 왜 국가는 이 도시에서 발생한 병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만 기준의 생각을 통해서 말했을 뿐이다. 발병한 동물과 사람의 혈액을 채취해서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인구 29만명의 도시를 그냥 ‘차단’하는 것이 맞는 것이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런 구성이었기에 이 소설이 가능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그 다양성이 때론 극한 폭력을 동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섭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다 읽고 옛날 생각이 잠깐 났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결혼하기 전까지는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대학생이 되어서 살던 집에서 개를 키웠던 적이 있다. 오래 되어서 그 개의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주 작은 개였는데, 키운 지 몇 달 만에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간 지 한참 만에 만신창이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누구한테 끌려갔었던 것인지, 나가서 놀다가 길을 잃고 헤매이다가 겨우겨우 집을 찾아 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 버티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그 당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 이후로는 개를 키우지 않았다.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그리 아프게 죽어가는 모습을 본 이후로는 개를 키울 수 없었던 것이다. 작가는 구제역으로 수백 만 마리의 동물이 죽어나가던 것을 보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물 중 가장 인간과 가까운 ‘개’에게서 발생한 병으로 인하여 인간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이 소설로 표현해 내었다. 작가에게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많은 공부를 하고, 많은 고민을 해서 쓴 소설이고, 그렇기에 단숨에 읽는 것이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이다. 작가가 또 언제 책을 낼지 모르겠으나, 다음 책도 기다려진다.
그렇지만, 며칠 간은 소설로 인한 마음의 부담으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것 같다.
2013. 07. 21
아무도 결백하지 않다.
이른바 '엽기적 살인마'는 최근에서야 급부상한 키워드는 아니다. 실은 사람이 사람을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하는 일은 수백년전, 혹은 수천년전에도 있어왔다. 다만 그것들이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게 된데에는 괴물같은 파괴력을 지닌 '인터넷'이라는, '정보 교환'의 '수단'이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놀이터'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있다. 매일매일, 매순간, 매초.. 업데이트 되는 다양한 '소식'들이 당신의 모니터 화면에, 혹은 스마트폰 액정에 떠오른다. 그 '소식'들 중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스캔들이 아마도 압도적인 비율로 많을 것이다. 그 스캔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문자화 되는 순간, 많은 이들의 오감을 자극하고, 소문을 만들어내고, 적절한 절차(조롱에 가까운 패러디)를 거쳐 소위 '신상털기'와 그것의 재빠르고 광범위한 '배급'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이것이 '스캔들'의 종착역이다. 누군가의 신상이 철저하게 털리고, 수많은 커뮤니티에 실어나르고,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다면 그것으로 성공적인 마무리를 자축하고 그뒤에 따라붙은 '정정기사'나 '드러난 진실'에 대해서는 알은체하는 사람 조차 없다. 물론 뒤늦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로 압축되는 조금은 이성적인 반론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그것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각설하고,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작가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맹점에 주목했다. 여기 '한 남자가 여자아이의 목을 비틀어 살해한 후, 호수에 던졌다' 라는 사실이 있다. 이 한 줄의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는 맨 처음 무슨 생각을 하게될까? 혹은 어떤 말을 내뱉게 될까? 적어도 "그 남자는 어쩌다가 그런 불행한 일과 맞닥뜨리게 되었을까?"는 아닐것이다. 또, '여자아이를 살해한 그 남자는 모두가 잠든 밤에 댐의 문을 열어 근처에 살고있는 주민 수십여명을 살해했다' 는 어떤가? 아마도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남자'라는 이를 정상인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미치광이 살인마'정도는 귀여운 수식어이고, 온갖 화려한 육두문자가 '그 남자'에게 쏟아질 것이다. 그뿐인가? '그 남자'의 아들, 아내, 가족들은 '살인마'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평생 지고 살아가야 할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우리 스스로 '살인자'가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은, 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는 늘 '피해자'의 입장이 우세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작가들은 '살인범'과 그들의 가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모방범'을 들수있다. '모방범'은 기존 추리소설의 방식을 뒤엎으며, 탄탄한 이야기 구성과 캐릭터에 대한 철저한 분석으로 독자에게 끊임없이 극적 긴장감과 재미를 안겨준다. 더불어 인간 존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혀준다.
정유정 소설 <7년의 밤>의 경우도 플롯은 '모방범'과 흡사하다. '범인이 과연 누구인가?' 혹은 '범인은 어떻게 소녀를 죽였는가?'에 이야기의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고, '그는 왜 살인자가 되어야 했는가?' 혹은 '그는 왜 댐을 열어 주민들을 수장시킬 수 밖에 없었는가?'에 그 방점이 찍힌다. 이처럼 누군가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일은 어쩌면 모든 예술가의 의무의자 권리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그 사실들을 만들어냈느냐에 집중하는 일. 작가는 현재와 과거, 그리고 더 과거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겉잡을 수 없이 파멸을 향해 치닫는 등장인물들을 치밀하게 묘사해낸다. 지루할사이없이 엄청난 속도로, 그러나 철저하게, 모든 진실들이 눈 앞에 펼처진다. 그리고 독자는 그 엄청난 진실들 사이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가끔씩 책을 덮게될지도 모르겠다. 이 엄청난 압박감에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도대체 7년 전 그날 밤. 무엇이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는가? 정말로 무슨일 일어났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혹은, '현수'의 아들 '서원'처럼 혹시 모를 어떤 가능성. 사실은 '내 아버지가 그렇게 잔인한 살인마는 아닐 것이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라는 희망의 가닥을 잡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의 끝자락에서 결국 '어느 누구도 결백하지 않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 뿐이다. 이 모든 진실을 그저 흘려보내지 못한 채, 아니면 그저 '이야기의 끝'을 보고자 중간에서 '이야기를 끝낼 수 없었던' 승환 조차도. 그리고, 이 소설을 쓴 작가, 이 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려간 나, 그리고 당신 조차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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