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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0년 08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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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2쪽 | 428g | 135*210*20mm |
ISBN13 | 9788950989712 |
ISBN10 | 8950989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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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에두아르 잔느레그리, 건축에 입문하다.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그리(Charles-Edouard Jeanneret-Gris, 이하 ‘에두아르’)는 카를 마르크스가 ‘거대한 시계 산업 단지’라고 부른, 알프스 산간 마을인 라쇼드퐁에서 태어났다. 시계에 에나멜 칠을 하는 아버지와 음악을 가르치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한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지역 미술학교로 옮겨 시계 장식과 세공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계 장식가인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려 했지만, 그의 남다른 재능을 눈여겨본 미술 학교의 교사 샤를 레플라트니에(Charles L'Eplattenier, 1874~1946)의 강력한 권유로 17세에 처음으로 건축이라는 낯선 세계에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물론 이때의 경험만으로 그가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흑역사로 생각한 그의 첫 건축인 빌라 팔레 설계로 번 돈으로 여행을 하면서 그는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피렌체 외곽의 에마수도원은 에두아르가 여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건축에 오롯이 집중한 곳이었다. 먼 훗날 그는 잊지 못할 그때의 경험을 “나는 토스카나의 음악 같은 풍경 속에서, 언덕에 왕관을 씌운 듯한 ‘현대 도시’를 보게 되었다. 풍경 속 고귀한 자태, 연속적인 왕관 모양 수도실들,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각 방의 전망, 그리고 낮은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향해 흘러내리는 경사지. 나는 그토록 환희에 찬 거주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각 수도실 뒤로 문이 나 있고, 그것들은 순환 통로, 즉 아치로 이어진 회랑에 연결된다. 기도, 손님 접대, 저녁 식사, 장례식 같은 공동체의 모든 기능이 여기에 집약되어 있다. 이 ‘현대 도시’는 15세기에 지어졌다. 그 찬란한 모습은 항상 나와 함께했다” [p. 57]고 말했다.
에마수도원
출처: <르코르뷔지에>, p. 56
반항아, 일하면서 배우다.
고향에서 안정적인 지역 건축가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고, 고향을 떠난 후에도 오스트리아 빈이나 독일의 드레프텐에서 장식미술을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두아르는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프랑스 파리로 갔다. 그곳에서 에두아르는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한 건축의 선구자인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 1874~1954)의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무거운 돌덩어리와 과도한 장식에서 건축을 해방시키고, 간결한 구조로 아름다움과 효율성을 동시에 얻어(내는)” [p. 78]것을 배웠다. 그리고 베를린으로 가서 피터 베렌스(Peter Behrens, 1868~1940)의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리듬감과 조화로운 비례를 강조”[p. 90]하는 법을 배웠다.
여행, 건축을 가르치다.
베를린을 출발해서 프라하, 빈, 부다페스트, 이스탄불, 아테네, 품페이 등을 방문하는 ‘동방 여행’은 그의 인생에 있어 어쩌면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다.
예를 들면, 이스탄불에서 그는 건축과 도시를 이해하게 되었다. “황금빛 모스크와 추적추적 내리는 비, 질척이는 도로, 무질서한 사람들, 관리되지 않아 지저분한 사원 담장, 비에 젖은 목조 주택. 오스만제국의 수도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비참한 현실을 드러냈다. 위풍당당했던 동로마제국 수도의 위용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괴상한 거리 풍경만이 그들을 맞이했다. (에두아르는) 환상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환경이 더 열악한 부르사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이후에야 비로소 이스탄불의 상대적인 아름다움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루 이틀 사이에 도시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에두아르는 이국적인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것에서 의미를 찾고자 했다. 건축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는 오랜 기간 오스만제국의 수도에 머물며 그들의 삶을 경험했고, 비로소 건축과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pp. 105~106]
어쨌든 그는 동방 여행이라고 불리는 “여행을 통해 비로소 (건축에 대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대리석이니 철근콘크리트니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언덕 위 신전은 그 앞에 펼쳐진 바다처럼 수천 년간 그 자리에 있었고, 여전히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의 건축이 나아갈 길은 명확했다. 굳건히 서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각적 기쁨을 영원으로 승화시키는 시적인 건축. 동방 여행은 건축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었고, 에두아르를 진정한 건축가로 거듭나게 했다.” [p. 123]
르코르뷔지에와 새로운 건축
어쩌면 화가가 되었을 지 모를 에두아르에게 새로운 자극을 준 것은 화가 아메데 오장팡(Amedee Ozenfant, 1886~1966)였다. 그들은 너무 화려하고 장식적인 큐비즘 대신 기하학적이고 간결한 형태를 강조한 ‘순수주의(Purism)’를 표방했다. 그리고 이를 최초의 퓨리즘 선언인 <큐비즘 이후(Apres le Cubisme)>라는 책을 통해 널리 알렸다.
다시 건축으로 돌아온 에두아르는 ‘르코르뷔지에’라는 필명으로 투고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건축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얇은 기둥 몇 개로 건물을 떠받치는 ‘필로티’ 구조는 건물을 지열과 습기로부터 보호한다. 커다란 건축물의 경우, 필료티는 건물의 앞과 뒤 사이의 단절을 막아주고 넓은 정원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둘째, 경사지붕과 다락방을 없애고 만든 ‘옥상정원’은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고, 가벼운 신체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셋째, 철근콘크리트 구조는 벽이 아니라 기둥에 하중을 전달한다. 덕분에 원하는 곳에 벽을 자유롭게 세울 수 있었고, 유연한 공간 활용이 가능했다. [자유로운 평면]
넷째, 가로로 긴 ‘수평창’은 집 안을 밝게 만들고 외부 풍경을 끌어들여 파노라마처럼 집 안에 펼쳐놓는다.
다섯째, ‘자유로운 입면’. 외벽을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었다. 수평창을 비롯해 어떠한 형태의 개구부 디자인도 가능 [p. 171]
빌라 사보아
출처: 정성갑, "르 코르뷔지에가 남긴 17개의 건축유산", <LUXURY> 2017년 1월호(http://luxury.designhouse.co.kr/in_magazine/sub.html?at=view&info_id=76320)
그리고 이 원칙을 푸아시의 언덕 위에 짓게 될 빌라 사보아에 적용했다. 덕분에 빌라 사보아는 근대 건축의 기념비로 남게 되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비가 많은 푸아시에 지은 이 건물이 제대로 방수가 되지 않아 내부로 비가 스며들어 바닥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보수공사를 요청하는 집주인에게 르코르뷔지에는 “현관에 방명록을 가져다 놓으면 유명 인사의 서명으로 가득 찰 것이라는 엉뚱한 답장을 보냈다.” [p. 163]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때로는 힘든 일일 수가 있다. 나에게 설계를 맡긴 이상 당신도 완강하게 살아 내겠다는 각오를 해주기 바란다.”1)는 말을 하면서 “자연의 그 냉혹함까지 받아들이고 일상생활의 멋으로 알고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함2)”으로 버텨야 하는 ‘스미요시 나가야[住吉の長屋]’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1941~ ]의 이야기는 뭔가 의미심장하다. 르코르뷔지에와 안도 다다오라는 콘크리트의 장인끼리 통하는 그 무엇인가가 그렇게 행동하게 한 것일까
행복의 건축에서 시적인 건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에 “아파트는 더 이상 사회 실천 운동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이 되었다.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도시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고, 거리에는 난민이 넘쳐났다.” [pp. 192~194]
때문에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르코르뷔지에는 1952년 1,600명 가량이 함께 살 수 있는 거대한 아파트인 ‘위니테 다비타시옹’을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마르세유의 언덕 위에 선보일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아파트는 이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건축물이 되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품처럼.
위니테 다비타시옹
출처: 정성갑, "르 코르뷔지에가 남긴 17개의 건축유산", <LUXURY> 2017년 1월호(http://luxury.designhouse.co.kr/in_magazine/sub.html?at=view&info_id=76320)
결과적으로 “건축의 모더니즘은 인민을 위해 시작되었(지만), 건축가들의 휴머니즘은 도시의 모습을 비슷하게 만들었다.” [p. 201]
우표에 그려진 롱샹성당
출처: <르코르뷔지에>, p. 214
‘위니테 다비타이옹’이라는 현대적인 의미의 아파트를 통해 직선적이고 기하학적이며 합리적인 건축을 보여주는 듯한 르코르뷔지에는 불과 몇 년 만에 예술적 감수성이 드러나는, 조화로운 형태를 중시하는 작품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55년 완공된 롱샹성당이다. 1960년에 세운 ‘라투레트 수도원’은 숭고한 느낌을 주는 르코르뷔지에의 또 다른 걸작이다.
라 투레트 수도원
출처: 정성갑, "르 코르뷔지에가 남긴 17개의 건축유산", <LUXURY> 2017년 1월호(http://luxury.designhouse.co.kr/in_magazine/sub.html?at=view&info_id=76320)
르코르뷔지에의 합리주의적인 전기의 건축과 시(詩)를 닮은 감성적인 후기의 건축은 인간의 모순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합리주의적 건축가와 감성적인 건축가 모두에게 비난을 받을 것 같기도 한데, 실제로는 양쪽 모두에게 찬사를 받는다고 하니 기분이 묘하다. 아마도 이런 측면 때문에 ‘현대건축의 아버지’라는 상징성 못지 않게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뜨거운 것이 아닐까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arte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 이 책에는 사진이 없어서 20.09.06. <LUXURY> 2017년 1월호에 실린 '빌라 사보아', '유니테 다비타시옹', '라투레트 수도원'의 사진을 추가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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