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과학소설과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에 다가온 느낌은 뭔가 모호하다는 것과 그래서 그런지 흥미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중국 작가의 소설이다 보니 중국 문화와 언어 등이 많이 등장하게 되고 ? 어떤 면에서는 뭔가 낯익은 느낌이기도 했지만 ? 그런 분위기가 공상과학소설로 어떻게 연결될지 추측이 안되는 상황도 있었다. 뭔가 지루하게 전개되니 책 읽은 속도도 붙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 기억하건데 예원제가 에반스를 만나 지구의 삼체조직을 다지고 확장하는 부분 부터인 거 같은데, - 몰입하게 되는 느낌이었고, 순식간에 1부가를 끝냈다. 초반의 막연함은 순식간이 잊어버리고...
중국의 1960년대 대약진 운동과 중국 공산당의 체제경쟁에서 나온 듯한 외계문명에 대한 탐구, 그리고 한 뛰어난 과학자의 체제 부정과 인류 멸망을 추구하는 듯한 행동과 노력 등은 어떻게 보면 공상과학 소설과는 연결되지 않을 법한 주제들이라고 생각했다. 예원제가 외계 문명에 대한 갈구와 어쩌면 지구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는 결정에 중하게 기여한 것은 흥미롭게도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이다. 인류의 탐욕에 따라 따라온 지구 환경문제를 다룬 침묵의 봄이 예원제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예원제는 중국에서 만들어낸 홍안이라는 전파발신기(통신기)를 통하여 지구에서 4광년 떨어져 있는 삼체라는 외계 문명에게 지구로 와줄 것을 요구하고, 그런 상황을 전해 듣게된 에반스는 삼체 문명에게서 여러 가지 정보를 얻게되는데, 그것에 기여하는 것은 삼체문명이 지구로 보낸 단순히 양성자 두 개로 표현되는 지자이다. 삼체 문명은 4광년 거리에 있지만, 예원제의 요구로 지구로 향하는데 450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인류의 역사를 학습한 삼체인은 450년의 시간 후 지구인이 삼체문명을 초월한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결국 지구로 보낸 지자를 이용하여 지구 문명의 과학적 발전을 방해한다. 1부의 내용은 여기까지이다.
2편 암흑의 숲에서는 등장인물이 바뀐다. 스창이라는 인물이 왜 2편에서 연결되는 지는 아무래도 모르겠다. 조금은 무식해 보여도 상당히 전략적이며, 주변인에게 신뢰를 주며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신중한 인물이다. 그가 뭔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나, 1편에 이어 2편에서 등장하는 것이 특이하다. 주요 핵심인물은 뤄지와 장베이하이가 될 거 같다. 나머지는 주변인물이다. 시점은 삼체 침공이 지구에 알려진 시점에서 시작해 삼체 예상 도착시점 400년의 반인 200년이 지난시점까지의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핵심은 지구가 삼체의 침공에 대비해 창안한 개념인 면벽자 프로그램이며, 그에 따른 삼체 침공지지 단체인 ETO(지구삼체조직)가 면벽자에 대항하기 위한 조직한 파벽자의 대립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야기의 반을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런 면벽자 프로그램이 결국 삼체 침공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란 결론을 내린 지구는 면벽자 프로그램을 포기하고,-면벽자 3명의 대응방식은 결국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결론 난 것으로 보이며, 면벽자 뤄지의 방안은 실행은 되나 결론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 후 200여년이 지난시점 삼체 침공의 탐사정 격인 ‘물방울’이 지구함대와 조우해 200여년 삼체침공에 대응을 준비한 지구인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대사건이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지구함대와 지구가 보이는 무기력한 모습은 삼체 침공에 대한 대응을 포기하는 것 같이 보이고, 그 과정에서 마지막 면벽자 뤄지의 대응은 막상 경험해 봐야 어느정도 가늠할 수 없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뤄지와 함께 주요하게 다뤄지는 2편의 또 한명의 인물이 장베이하이인데, 그는 삼체 침공에 대항하기 위한 군인으로 그가 내린 결론은 삼체 침공에 대해 지구인은 대항하지 못할 것이란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른 인류 생존전략을 나름 준비하여 실천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너무나 큰 스포일이 될 수 있으므로 생략하고 책을 직접 경험해 보면 될 것이다.
면벽자 프로그램을 창안한 것은 삼체가 보낸 지자가 지구의 모든 것을 모니터링하여 삼체에 송신한다고 하더라도 겉과 속이 다른 지구인의 행동 패턴을 삼체인이 우려하고 있으며, 지구의 역사를 확인해 판단할 때 400여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 지구의 발전이 결국 삼체 침공을 대응해 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나름의 판단이 반영된 방안인 듯 하다. 저자가 사용하는 철학적이고 과학적 서술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또는 사실에 입각한 지식의 전달적 측면도 있는지 판단할 능력이 되지는 않지만, 1편의 느낌과는 뭔가 상당히 다르게 철학, 인식체계, 자연과학 등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 있는 작품구성이 느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뭔가 염세적이고, 암울한 인류의 생존 역사를 작품의 뼈대에 사실적으로 녹여내 결국 비극적인 멸망의 결론을 향해 서서히 진입해가는 모습일까?
“생존은 문명의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문명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되지만, 우주의 물질 총량은 불변한다.”
뤄지가 어느 순간 명백하게 생각해낸 이 두가지 명제가 삼체 2편의 복잡하고 긴 이야기를 압축한 핵심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뤄지가 면벽자로서 혹은 신의 반열에 오른 존재로서인지 삼체에게 대항하는 길지 않은 장면은 장황하지 않은 거 같은데, 곱씹을수록 충격적이다. 700여 페이지에 가까운 이 두꺼운 책에 심취해 결론에 다다르는 독자들이 과연 나와 같은 생각일까?
3편에서는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산산히 부서지는 경험을 혼란스럽게 하게된다. 기존의 수십, 수백, 수천이라는 시간적 개념이나 몇미터, 몇십미터, 수 킬로미터 등의 인간에게 익숙한 공간적 개념에 익숙한 독자라면 상상하기 쉽지 않은 시간과 공간의 확장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혼란스런 개념으로 적용되는 과학적 개념과 저자의 상상적 창안 개념 등이 혼재되면서 너무 확장되어 어떻게 생각하면 산만스럽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으나, 그 무한한 상상력과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소재들의 적용은 감탄스러움을 금할 수 없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분량도 2편보다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3편의 주역은 청신이라는 인물이다. 그녀가 경험하는 공간과 시간의 개념은 가히 신적이며, 그래서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초월하는 것으로 보인다. 평범한 인간이긴 하지만, 그녀를 지원하는 주변인들의 노력으로 달성되는 성과일 수도 있지만, 그녀가 갖은 천성이 또한 중요한 요소인 것도 같다.
“등대가 완성된 날, 바다 위를 환히 비추는 등대를 멀리서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지. 죽음이 바로 유일하게 영원히 불을 밝히고 있는 등대라는 걸. 어디로 항해하든 결국에는 그 등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야 해. 모든 건 언젠가는 사라지고, 사신만이 영생할 수 있어.”
윈텐밍이 청신을 포함한 지구인에게 동화의 형태로 알려준 삼체세계의 비밀에 대해서 파헤치는 과정에서 잭슨이라는 인물이 모스크스트라우멘(우리가 아주 잘알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프로토스 종족의 다크 아칸이 쓰는 마엘스토롬이라는 영어의 노르웨이어식 표현이다.)에 빠져드는 위험한 과정에서 냉정하게 내뱉는 말이다. 3부를 관통하는 내용이라 너무도 중요하게 다가왔다.
1편의 전개가 SF적 요소가 많이 느껴지지 않는 뭔가 사실적인 내용에 근거해서 상상력을 펼쳤던 내용이라고 생각했고, 2편은 그런 1편의 내용을 이어받아 결국 삼체위협의 상황을 묘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란 인과관계가 이해되는데, 3편은 1, 2편의 이야기를 뛰어넘는 무한함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3편에서는 삼체의 위협이라는 것이 문제조차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차원(dimension)의 변환이라는 개념은 그 위협도와 관련 없이 너무도 독창적이면서 흥미롭기도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런 차원의 변환을 이용하여 삼체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결국 그런 차원의 변환을 통하여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의 운명이 결정나 버리니 말이다.
“물방울에서 뛰쳐나온 작은 물고기가 다른 물방울로 뛰어 들어가 한들거리는 수초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작은 육지의 풀잎에서 굴러 떨어진 이슬 한 방울이 핑그르르 돌아 날아오르며 우주를 향해 한 가닥 투명한 햇빛을 반사했다.”
혹시 진화와 생명 탄생의 위대함을 묘사한 마지막 문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