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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의 윤리

주체와 타자, 그리고 정의의 환대에 대하여

김애령 | 봄날의박씨 | 2020년 04월 2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480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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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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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0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72g | 145*210*20mm
ISBN13 9791190351164
ISBN10 119035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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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204~205

출판사 리뷰

『듣기의 윤리: 주체와 타자 그리고 정의의 환대에 대하여』 지은이 인터뷰

1. 이 책 『듣기의 윤리』에서는 ‘타자와의 관계’라는 문제에 관한 철학적인 논의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 책을 일종의 ‘자전적’인 책이라고 이야기하고 계신데요. 어떤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쓰게 되셨는지, 선생님의 삶의 궤적과 책의 내용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의 박사논문 주제는 은유와 이야기, 그리고 해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데리다나 리쾨르 같은 많은 철학자들, 서사 정체성, 텍스트와 해석에 관한 철학적 이론들이 담긴 논문을 들고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성매매집결지와 그 안에서 살아온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추상적 철학이론으로 다루었던 문제의식들이 구체적인 삶과 경험을 이해하는 데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경험과 삶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언어를, 이야기를 돌려줄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자기 삶을 의미화하고 사회적 주체로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 책에 담긴 긴 철학적 도정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과 학계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논문을 발표하는 일이 오랫동안 내게는 두 세계처럼 서로 떨어져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의 만남을 학술적 논문과 연결하지 않았고(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철학 논문은 현장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직접’ 다루지 않았으니까요. 전혀 다른, 서로 간섭하지 않는 두 영역을 오가는 것 같았던, 그래서 자유롭기도 했고 무책임하기도 했던,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영역이 서서히 만나고 교차하면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이 책이 걸어온 길입니다. 철학 연구는 잠정적이더라도 어떤 ‘결론’으로 매듭지어져야 하지만, 현장에서의 경험과 고민은 늘 그 매듭이 불충분하다고, 그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떠밀었습니다. 계속 새로운 물음으로 연결되는 사유의 과정이 이 책에 담긴 생각을 따라왔고, 그래서 이 책을 ‘자전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2. 책에서 이야기하는 주체의 불투명성과 취약성, 이야기의 재현 불가능성과 전달 불가능성 등, 타자와 소통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계시는데요. 이렇게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타자와의 소통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자신도 이 물음을 계속 되풀이 합니다. 왜 그리해야 하는가? 해석학이라는 철학 분야에서 나를 몰아가는 첫번째 추동력은, 언어가 오가는 모든 장소에는 소통과 이해의 어려움과 불가능성 못지않게 기대치 않았던 성공과 가능성이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투명하고 그래서 재론의 여지가 없는 확고한 이해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말로 표현된 것보다 더 많이 이해하고, 보는 것보다 더 많이 느끼며, 주어진 것보다 더 깊이 다가갑니다. 그 성취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늘 한결같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실제로 이 세계 안에서 그 오해와 이해, 그 불가능성과 가능성, 의미의 부족함과 과잉 사이를 오가며 타인과 함께 머물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상호이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자 하는가?’라는 당연하고 단순한 질문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살짝 인용한다면,) 우리 인간은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지구를 떠나 우주로 날아가거나, 불멸을 꿈꾸거나, 생각하고 느끼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등)을 하려고 노력하는 기이한 종이지만, 만일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를 묻게 될 것입니다. 더 나은, 더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고자 한다면, 그렇게 우리 스스로가 더 나은 존재자가 되고자 한다면, 이런 노력을 계속하게 되지 않을까요?

3. 말을 할 수 없는 존재들, 그 말이 들리지 않는 존재들을 ‘타자’, ‘서발턴’, ‘이방인’, ‘소수자’ 등의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각각의 개념들이 담고 있는 함의들에 어떤 차이가 있고, 실천으로 나아가는 데 어떤 시사점을 갖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타자’, ‘서발턴’, ‘이방인’, ‘소수자’ 같은 개념들을 우리는 섞어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각각의 개념들은 각기 다른 문제를 가리킵니다. 스피박이 분석했던 ‘서발턴’의 문제가 데리다가 다루는 ‘이방인’의 문제와 같지 않고, 그것이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했던 ‘소수자/소수성’과 완전히 겹쳐지지 않습니다.

또 ‘타자’는 더 일반적인 개념이지만, 가장 철학적인 개념이기도 합니다. 스피박은 ‘서발턴’을 사회적 패권이 없는, 비가시화된, 낙인 찍힌, 주변화된 집단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합니다. 스피박이 던진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이미 중층결정된 언어의 권력 안에서 이들의 존재에 귀 기울이는 일에 주목합니다. 한편 데리다가 ‘이방인에 대한 환대’를 말할 때, 그는 지구화 시대, 이방인 혐오가 만연한 세계의 이주민과 난민들을 생각합니다. 폭력과 테러, 경제적·정치적 이유로 경계를 넘는 이주민들, 난민들, 미등록 노동자들, 그들과 존엄한 관계를 맺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데리다가 다루는 절대적 환대의 윤리적 이념은, 이들과 마주한 우리들(쫓기듯 경쟁 속에 살면서 각자의 생존이 지상의 목표가 된), 평등과 공정성을 ‘몫’을 나누는 문제로 이해하는 우리,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을 멈춰 세우려는 물음입니다. 그리고 ‘소수자’라는 개념이 있지요. 실재하지도 않는 다수성의 표준 밖에서, 우리 모두는 교차하는 정체성의 목록들 안에 소수성의 표식을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서발턴, 이방인, 소수자는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우리에게 각기 다른 물음으로 다가옵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개념은 결코 고정된 본질 규정이 아니라는 것, 각기 다른 표준화와 경계 짓기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차적 경계 짓기 사이에서 어떤 개인은 더 취약해지고 더 주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어느 만큼은 소수자이며 서발턴이자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못지않게, 이 ‘차이’, 이 분명한 고통의 격차를 예민하게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타자 이해의 불가능성을 넘어서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적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계시는데요. 이 책을 읽는 오늘날의 독자들이 어떤 생각과 자세로 타자와 만나고 실천에 나서기를 바라십니까?

어떤 것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것이었다기보다, 오히려 이 책에 담긴 고민 자체가 그런 귀결로 나아가게 된 것 같습니다. 타자와의 관계의 윤리가 선의나 호의, 깊은 성찰과 의무감 같은 것에서 출발하고 또 거기 머물러야 한다면, 그건 개인들에게 너무나 큰 짐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정말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면,’ 우리에게는 어떤 선택이 필요하고, 거기에서 어떤 작은 실천이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확고하고 선명한 의식과 전망, 같은 뜻과 의지, 동질성이 아니라, 각각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부정의에 대해 우리 각자가 어떤 문제를 느끼고 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부분적으로, 유연하게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데리다나 아이리스 매리언 영에게서, 그리고 도나 해러웨이에게서 나는 그런 꿈을 보여 주는 아름다운 언어를 만나곤 합니다. 내가 발견했던 그것을 조금이나마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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