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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행일 | 2013년 04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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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쪽수확인중 | 106*171mm |
ISBN13 | 9781476740553 |
ISBN10 | 1476740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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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위대한 개츠비 >가 모로 누웠다 . 몇 가지 다른 표지의 책이 이미 있음에도 다시 구입했다 . 지난 세 달 동안 네 번 정도 파편적으로 만났다 헤어졌던 이야기를 한 호흡으로 이어 읽기 위해서였다 . 이십대에는 개츠비가 그저 과거 연인에게 집착하는 스토커남으로 보였다 . 삼십대 후반에 만난 개츠비는 내 닉네임을 “신츠비 ”라고 할 정도로 흔들림 없는 신념과 자기몰입이 나쁘지 않았다 .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그처럼 단 하나의 꿈을 오래 지속할 집념과 끈기도 없는 사람이라는 자각에 부끄러워 호칭을 철회했다 .
흔히 고전 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책의 묘미는 이렇듯 물리지 않음에 있는 듯하다 . 예전과 똑같지 않은 ‘발견 ’이 있다 .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숨겨진 의미들이기도 하다 . 이런 이유로 한권의 문학은 평생친구로 곁에 남는다 . 다른 말을 자꾸 건네오니 계속 만나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
어느새 출판 백주년을 눈앞에 둔 <위대한 개츠비 >는 지극히 남성중심의 텍스트이다 . 소설에 등장하는 데이지 , 머틀 , 조던의 목소리는 거의 소거된 채 개츠비에 중점을 맞춘 닉의 회고가 거의 전부이다 . 온갖 차별이 만연하고 계층이 또렷했던 시대의 기록임을 감안하고 읽는데도 예전과 달리 불편한 부분들이 자꾸 발견됐다 . 있었는데 미처 알지 못하다 알게 되는 발견들이다 . 닉이 다른 연인들을 보며 혼자 상상하는 장면도 예전 같으면 있음직한 몽상으로 넘겼겠지만 일방적인 시선과 음탐이 다소 위험해보였다 . 안다 . 상상과 행동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
그밖에 자잘한 예로는 핀란드 가정부를 악마 같다고 , 구입한 개를 암컷 (bitch)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불렀다 . 상류층 여성 데이지는 돈 (사이렌 )의 목소리로 , 조던은 단단하고 오만한 몸으로 언급될 뿐 아니라 , 하류층 출신의 머틀은 특유의 육감적인 활력으로 묘사되었다 . 개츠비가 사회학적인 아버지로 인정한 댄 코디와 관련해서도 엘라 카이라는 기자는 꽃뱀에 가깝게 기술된다 . 여성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바뀌는 과도기인 만큼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사안들도 예민하게 읽혔다 .
2017 년 성탄절에 재회한 <위대한 개츠비 >는 이전과 달리 ‘닉 ’을 중심에 두고 전후맥락을 살피게 됐다 . 사실 이 테마는 가장 많이 분석되는 틀이기도 하다.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닉의 회고자 역할에 비중을 둔다 . 광란의 시대 혹은 흥청망청의 시대 혹은 재즈시대로 불리는 1920 년대 미국 도시의 삶을 겪은 닉의 정신상태는 온전할 수 없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 개봉 당시에는 소설을 감독의 시선에서 과감하게 편집 연출했다고 봤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 사건 발생 후 일이년 시간이 흐른 뒤 애써 기록한다는 점에서 닉의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화자를 넘어선다 . 상당수가 개츠비가 ‘도대체 왜 위대하냐 ?’며 제목에 반문한다 . 특히 한국 독자의 거부감이 엄청나다. 어떤 이는 대단하다 (대다나다 )면 또 모를까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가 과하다고 반박한다 . 물론 모든 소설의 시작과 끝이 중요한데 <위대한 개츠비 >는 특히 그러하다 . 소설 전체가 아니더라도 앞 뒤 몇 쪽만 읽어봐도 작가가 얼마나 공들여 시작과 끝을 닉의 손길로 완결시켰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
개츠비의 위대함에 수긍하지 못한 독자에게 <위대한 개츠비 >의 엄청나게 많은 영문 버전은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 이 소설은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까발리면서 동시에 부식되지 않게 진공포장 해둔다 . 너무나 미국적인 텍스트인 것이다. 이상은 그대로 두고 , 어디까지나 한 개인이나 그가 속한 무리의 한계임을 뼈대로 삼는다 . 이런 배경에도 닉의 입김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그는 자신과 개츠비를 비롯한 데이지 , 탐 , 조던을 서부 출신으로 규획한다 . 미국 건립의 근간이 된 청교도적이며 지적인 동부의 전통은 아예 건드리지 않는다 . 동부의 확고한 위치에 편입하려는 부나방의 날아듦으로 선을 긋는다 . 그런 점에서 소설의 주된 장소인 개츠비의 ‘집 ’과 관련된 사연도 눈여겨볼만하다 . 전통을 세우고자 (founding a family) 했던 전주인의 죽음은 개츠비의 꿈이 실패하고 그 끝이 쓸쓸할 것임을 일찌감치 예고한다 .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 이 소설은 닉을 가운데 두고 봐야지만 개츠비가 위대해지는 결론에 귀착한다 . 닉은 탐과 머틀 , 데이지와 개츠비의 불륜을 모두 지켜보는 관찰자이다 . 호기심 많은 작가의 시선을 반영하는 듯하다 . 누군가는 닉이 그 모든 것을 관망하고도, 심지어 차 사고를 일으킨 주범이 데이지임을 알면서도 함구한다며 비난한다 . 그가 내세우는 정직하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나는 이 소설이 개츠비의 죽음 발생 후 고향으로 돌아간 닉이 회상하는 글임을 강조하고 싶다 . 1 차 세계대전 참전 후 고향이 가뜩이나 작게 느껴지고 결혼 문제까지 덮치면서 닉은 아예 돌아가지 않을 생각으로 동부에 온다 .
데이지 , 탐 , 조던이 소설 앞부분에 언급된 인상비평 그대로 마지막까지 기술되는 반면 , 닉은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하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정직 ’임을 깨닫고 고향 집으로 돌아간다 . 부주의한 운전자에 빗대지는 사람과의 결혼을 앞둔 조던이나 아내 (또는 다른 여자 )나 자신을 위해 보석가게를 맴도는 탐 , 그리고 숨고 함구해버리는 데이지와 달리 , 다시 말해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그들의 이기심과 부주의한 태도와 달리 , 닉은 개츠비의 장례식을 앞장 서 치른 뒤 자신과 관련된 뒤처리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 소설이 개츠비와 탐의 외형적인 집 (house)의 대결로 긴장감을 조성하다가 닉이 고향 집 (home)으로 돌아감으로 종료되는 것에서 그가 적어도 양심적이고 성찰할 의지를 지닌 반듯한 (round) 인물임을 증명한다 .
But I wanted to leave things in order and not just trust that obliging and indifferent sea to sweep my refuse away. (255)
닉의 이러한 성찰은 상류층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의 비양심과 부도덕성을 고발한다 . 개츠비가 죽기 전 아침에 했던 말처럼 썩은 무리로부터 그의 가치를 발라낸다. 그가 어떤 노력으로 제이 개츠비가 될 수 있었는지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기꺼이 낭만적인 태도를 돋보이게 강조한다(영화 음악 중 [Young & Beautiful]이 이를 설명해준다). 이 소설을 여러 사람과 함께 읽으며 놀랐던 것은 상류층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른 사고의 뒤처리를 하지 않음에 우리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 개츠비의 데이지를 향한 집념은 의심하고 미숙하고 변태적이거나 답답해하면서도 그런 개츠비의 단 하나의 꿈이 머틀과의 불륜으로 변질 , 왜곡되는 것에는 별다른 감응이 없었다 . 아마도 개츠비와 머틀의 관계 , 즉 잘못된 정보를 닉은 바로잡고자 일종의 사명감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 제멋대로 부풀어지고 소모되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세 명의 죽음 가운데 하나의 진실을 건져내기 위해 버거운 회고를 감행한 게 아닌가 싶다 . 닉도 자신이 이 정도로 정직과 솔직함에 집착하는 결벽증적인 사람인지 몰랐을 것이다 . 이스트 에그 , 웨스트 에그 , 뉴욕을 오가며 여러 무리를 대하던 중 현란한 황금빛 시대를 관통하고 터득한 깨달음인 것이다 . 자기 앎(self-knowledge)이 있고 없고는 성장소설이나 성숙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
닉이 차 사고의 범인이 데이지임을 밝히지 않는 것은 그가 법의 심판자나 신의 대리자 [소설에서 에클버그의 눈 간판이나 올빼미 안경을 쓴 사나이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함]가 아님을 보여준다 . 소설은 법의 잣대나 성경 구절로 인물을 평가하지 않는다 . 애초에 닉은 소설의 의도와 저의를 밝힌다 . 닉의 아버지 말을 빌려 , 모든 사람을 자신과 같은 처지에 둔 채 단정 짓지 말라고 . 저마다 다른 사정이 있고 애초에 출발점이 다르다며 판단을 보류할 것을 당부한다 . 개츠비라는 사람이 당시 새로운 돈 (new money)의 출처가 그러했듯이 불법으로 돈을 번 범죄자 (bootlegger)라 해도 법이나 종교의 시선 (Eye)이 아닌 관점에서 그를 추적할 것을 제안하는 제스처이다 . 이것이 소설가의 임무이며 화자의 윤리인 것이다 . 탐이 호텔에서 개츠비를 사기꾼이나 듣보잡이 (Nobody from Nowhere)로 정체를 탈탈 털어도 수면 아래에 삼켜진 그의 아메리칸 드림 정신(자기창조와 역사 개척)이나 순정을 파악하도록 렌즈를 돌린다 .
그렇다해도 개츠비의 사랑은 순수하지 않다 . 데이지를 만나기 전 여러 여자를 겪었다 . 하지만 그의 현재는 오년 전 사랑 그 상태에, 그 자리에 머물러있다 . 데이지와의 재회 때 정지된 시계나 마지막에 물을 빼지 않은 수영장이 그의 시간과 삶의 중심축을 대변해준다 . 재회 이후 자신이 상상하고 품었던 꿈에 못 미치는 데이지의 실체를 깨닫는 통증이 수반되었을 테지만 그는 일말의 의심 없이 그녀를 밤새 지키며 기다린다 . 달빛 받은 핑크빛 수트로 , 백색 대리석 계단보다 빛나는 그이다 . 백퍼센트 금을 순금 (pure gold)이라고 하듯이 그런 점에서 그의 마음도 순정 (pure love)이 된다 . 물론 데이지와 탐이 결혼해 일군 시간을 “처음부터 없었다 (she never loved you.)”라고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고 미련 맞지만 인간의 가장 우매한/인간다운 점이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고 상실감에 젖는다는 점이다 . 처음 접한 상류층 여자로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던 (제복이라는 함정이 존재했지만 ) ‘흰색 ’의 데이지 , 그의 믿음 안에서 그녀에게로 열린 황금문은 다시 닫히지 않는다 . 어쩌면 삼십대 초반의 개츠비이기에 가능한 순정이고 낭만적인 감수성이다 .
가진 배경이나 부가 없어서 데이지를 잃었다고 생각한 개츠비는 군복보다 더 강렬한 외형물을 갖추고 데이지 앞에 컴백한다 . 데이지는 건너편에 뜬 초록불빛으로 , 네덜란드 선원이 신대륙 초원을 발견했을 당시 느꼈을 경이에 비유된다 . 흔히 말하는 변태와는 속성이 다른 것이 데이지도 개츠비와의 재회를 통해 불성실한 남편으로 인해 받았던 상처와 고통, 여성으로서의 수치심을 어느 정도 회복한다 . 인형의 집의 비싼 인형으로 감내해야 했던 수모와 수군거림으로부터 잠시 멀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
같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머틀과 개츠비의 신분상승 욕구를 불순하고 더러운 것으로 치부하면서 탐이나 데이지 , 조던의 행동은 상대적으로 덜 거론하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교적 가까운 것을 처벌하고 응징하려는 태도에 다시금 놀랐다 . 보통 혹은 그 이하의 삶에 속한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머틀과 개츠비를 우리 밖으로 밀어내고 , 심할 경우에는 우리 아래에 둘 때 (below us) 마음이 안 좋았다 . 상류층의 속물근성을 누구나의 성향으로 일반화하거나 축소 은폐하는 것 역시 상류층의 프리패스 (봐주기 )에 익숙해진 우리, 즉 피라미드식 욕망체계를 비추는 것 같아 당혹스러웠다 . 상류층의 무심함과 부주의로 인해 으깨지는 삶이 교통사고와 맞물려 주행된다 . 당신은, 당신의 차는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나요?
앞서 말했듯이 이번에는 <위대한 개츠비 >의 닉에 집중한 읽기였다 . 닉이 보여주는 상상력과 감정이입이 소설을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 같은 맥락에서 닉이 사진작가 맥키 씨의 볼에 묻은 얼룩을 닦거나 그의 침실에 있는 장면 역시 동성애적인 뉘앙스로 읽기보다는 그의 관찰자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 자신이 속한 안이 싫지만 그곳이 들려준 이야기에 혹한 나머지 선뜻 일어서지 못하는 그의 자세가 작가의 호기심 혹은 이제 막 서른을 맞이한 사람의 둘로 갈리는 심경(혼란)을 말해주는 듯하다 . 맥키 씨나 개츠비를 향한 닉의 태도를 남다른 호기심과 이해로 해석했다 . 그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다 . 그렇다고 나약한 사람도 아니다 . 내성적이지만 내면적인 제동장치 (interior brake)와 촉이 있어 사람을 가린다 . 조던이 마지막 대화에서 지적하듯 별 볼 일 없는 그에게서 ‘정직과 솔직함 ’은 은근한 자부심이 되어준다 .
<위대한 개츠비 >의 마지막 문구는 잇템 상품에 새겨질 정도로 유명하다 . [T]o-morrow: we will run faster, stretch out our arms further. 솔직히 소설을 대표하는 문구 앞에서 마음이 복잡해진다 . 개츠비의 시도는 실패한다 . 황금 모자를 쓰고 널을 뛰는 그 [녀 ]를 갖고 싶었던 그의 꿈은 좌절된다 . 그럼에도 내일이면 우리는 다시 헤엄칠 것이다 . 이전보다 팔을 더 뻗어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
소설의 결말을 온전히 품는다면 우리를 과거로 떠미는 물살에 계속해 저항하는 몸짓이 , 그 지난한 싸움과 애씀이 삶의 숭고한 자세이고 내려놓아선 안 될 가치가 된다 . 우리가 그 손 뻗음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뒤로 물러나 사라지게 되어 있다 . 그렇게 물살 속 거품으로 사라지고 잊힐 개츠비의 삶을 닉은 펜을 들어 노래한다 . ‘뭐가 위대하다는 거야 ?’에 맞서 꺼져버린 개츠비와 머틀과 윌슨의 생명을 불어넣는다 . 처음부터 죽은 자 , 아니 없던 자는 아니었노라고 . 무엇이 그들을 ‘죽음의 차 ’에 합승하게 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보라고 . 누구도 시킨 적 없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작업이 개츠비의 죽지 않는 ‘정신 ’(망각하지 않는 자세 )이 되어 다음 독자를 기다리는 중이다 . 왠지 책의 운명이 소설의 운명과 , 더 들어가 개츠비의 운명과도 닮은 듯하다 . 이 순간, 운명의 도미노에 우리는 어떤 패로 맞설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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