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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0년 01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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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16쪽 | 322g | 133*198*15mm |
ISBN13 | 9788946421158 |
ISBN10 | 8946421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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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 2024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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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스스로 행복하라>를 읽고
[들어가며] 장마철 시골집 처마에 떨어지는 빗소리, 한겨울 어느 작은 산사에 내린 함박눈을 싸리비로 쓸어내는 소리. 아주 오래 전부터 이따금씩 일상과 삶이 팍팍하거나 무겁게 느껴질 때면 이런 소리와 함께 있는 풍경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요즘 세대는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처럼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연을 벗삼고 교사敎師로 청해 일생을 살아간 법정 스님의 글을 좋아한다. 학창시절 <무소유>를 처음 읽는 순간 가슴 한편이 쨍해져 하굣길에 동네 서점에 들러 문고판 한 권을 사서 밤늦게까지 읽었던 추억이 있다.
법정 스님은 난초를 돌보다가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무소유'의 삶을 추구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사람인지라 갖고 싶은 게 참 많다. 그러나 현실은 모두가 바라는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소유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어떻게 살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죽비 소리와도 같은 법정 스님의 책을 집어든다.
[책 속으로] 책꽂이에는 <무소유>, <산방한담>, <오두막 편지> 이렇게 세 권의 책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중 <산방한담>을 다시 펼쳐 보다가 서문의 맺음말에 시선이 멈췄다. '합장'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법정 스님이 말을 마치고 두 손을 모아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았다. 예전에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부분인데 세월이 흘러 다시 읽었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소소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출간된 <스스로 행복하라>는 '행복, 자연, 책, 나눔'이라는 네 가지 주제에 맞게 법정 스님의 글들을 묶은 책이라고 한다. 책의 차례를 보니 예전에 읽었던 글도 보이고, 처음 보는 글들도 제법 있었다. 주제별로 글들이 배치되었지만 책을 읽고나면 결국 네 가지 주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좋은 문장들이 많지만 그가운데 기억에 남고 인상깊었던 것들을 조심스럽게 건져 올려본다.
[책 속으로-행복]
웃음을 선사할 줄 모르는 정치는 향기 없는 꽃이나 마찬가지다. 웃어야 일이 풀리고 복이 온다. 정치는 정직하고 역량 있는 각료들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국민들의 삶에 활기와 여유를 보태 줄 웃음을 선사할 수 있어야 한다.(41~42쪽)
현대사회에서 시민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사회 정책을 통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범일지>에서 김구선생이 바라던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를 상상해본다. 구체적 방안을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양질의 문화적 컨텐츠가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활력과 긍정적 시너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틀림없다고 믿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56~57쪽)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도 비슷한 문장을 본 기억이 난다.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죽음도 반대편에서 점점 가까이 온다는 걸 알게 되면, 삶과 죽음은 결국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마치 강의실에서 출석을 부르는 것처럼, 혹은 병원 대기실에서 환자를 부르는 것처럼, 죽음이 우리를 부를 때, 과연 우리는 '네.'하고 씩씩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그 연습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책 속으로-자연]
상상력이란 일찍이 자신이 겪은 기억의 그림자일 것이며, 아직 실현되지 않은 희망 사항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좋은 상상력은 그 자체만으로 살아 있는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85쪽)
상상하는 힘은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을 열어주는 열쇠이자, 길동무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읽혀졌다.
훨훨 벗어 버린 나목裸木의 숲속을 거닐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아주 포근하고 따뜻하게 나무들의 체온이 다가선다. 잎을 무성하게 달고 있을 때는 그런 걸 느낄 수 없었는데,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들에서 도리어 따뜻함을 감촉할 수 있다.(92쪽)
무소유와 비움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나무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자연과 함께 자연스러운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추울 때는 군불을 많이 지피고 속옷을 껴입으면 되는데, 무더운 여름철에는 벗어 버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벗어도 땀은 흘려야 하고 물것은 더욱 좋아라 하며 달라붙는다.(98쪽)
이 문장을 읽으면서 연신 나와 겹쳐 보여서 공감이 되고 친밀감이 느껴졌다. 땀이 많은 체질이라 여름을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땀과 더위에 대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나도 늘 같은 논리로 "차라리 겨울에는 옷을 무한정 껴입으면 되지만, 여름은 속옷까지 벗어도 더워서 할 수만 있다면 피부까지 벗어버리고 싶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책 속으로-책]
바람을 마시고 사는 처마 끝의 풍경이 자기도 집 안으로 좀 들어갈 수 없느냐고 이따금 오들오들 떨면서 땡그랑거린다. 업이 달라 어떻게 해 줄 수는 없는 처지가 안타깝다. 하지만 땡그랑거리는 그 소리가 오두막의 주인에게는 적잖은 위로와 파적破寂이 된다. 바람이 없는 집 안에서는 풍경은 한시도 살아 있을 수가 없다.(137쪽)
바람에 흔들려 소리를 내는 풍경이 마치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이 표현한 문장이다. 고요하고 적막한 오두막에 비록 몸은 홀로 있지만 마음과 정신만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오두막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과 주위의 사물들 모두가 스님에게는 벗이자 중생이 아니었을까.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폐허가 되어 버린 원형 극장으로 고아 소녀인 모모를 찾아간다. 그들은 모든 것을 그 어린 소녀에게 털어놓는다. 소녀는 다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 줄뿐인데, 방황하는 사람들은 정착을, 나약한 사람들은 용기를, 불행한 사람과 억눌린 사람들은 신념과 기쁨을 느끼게 된다.(144쪽)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주인공 모모를 닮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태명도 '모모'로 지었을 정도다.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모모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모모>는 경청의 힘과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제 너는 내게서 무연한 남이 아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낯익은 식구다. 지금까지 너를 스무 번도 읽은 나는 이제 새삼스레 글자를 읽을 필요가 없어졌다. 책장을 훌훌 넘기기만 해도 네 세계를 넘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간에 씌어진 사연까지도, 여백에 스며 있는 목소리까지도 죄다 읽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147쪽)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큰 감동과 울림을 주는, 너무도 유명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법정 스님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바로 어린 왕자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책에서 존재하는 어린 왕자를 스님의 곁으로 소환하여 서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런데 둘은 어떤 언어로 대화를 나눌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연장과 악기를 함께 다룰 수 있는 손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손이 아닐까 싶다.(166~167쪽)
조르바가 물었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 해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낸 게 도대체 무엇이오?"(169쪽)
<희랍인(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었을 때 가졌던 조르바에 대한 이미지와 요즘 여러 책에서 언급되는 그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마흔의 서재>에서 장석주 작가는 조르바는 불행의 조건은 극소화하고 행복의 조건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노동과 여가의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살았던 조르바의 모습을 보면 요즘 유행하는 워라밸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시냇물 소리가 다시 살아난다. 다음은 정랑(뒷간)으로 가는 길을 치고 디딤돌이 얼어붙지 않도록 싸리비로 쓸어 낸다. 사람은 먹는 것만큼 또한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171쪽)
어느 겨울 쌓인 눈을 치우는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나온 문장이다. 모든 사람들은 생리적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김훈 작가의 <연필로 쓰기> 중 '밥과 똥'이라는 글이 불쑥 떠올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책 속으로-나눔]
이따금 고속 도로에서 관광버스와 장의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런 때 우리는 생과 사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177쪽)
최근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의 에티켓>,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등 죽음을 소재로 한 책들을 읽으면서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이 문장을 읽고 머리 한 편이 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고속도로, 관광버스, 장의차'라는 단어가 절묘하게 어우러짐과 동시에 머리 속에서 여러가지 상황이 연출되면서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죽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죽음이 없다면 사람은 또 얼마나 오만하고 방자하고 무도할 것인가. 죽음이 없다면 생 또한 없을 것이다. 죽음이 우리들의 생을 조명해 주기 때문에 보다 빛나고 값진 생을 가지려고 우리는 의지적인 노력을 기울인다.(178쪽)
죽음은 대개 어두운 이미지로 인식된다. 그런데 이 문장을 통해 죽음의 밝은 면을 알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조명이 우리 삶을 비춰준다는 표현이 무척 신선하고 인상적이다.
세월이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데 속지 마십시오. 세월은 가지도 오지도 않습니다. 철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 자체는 항상 존재합니다.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을 뿐입니다. 시간 속에 사는 우리들이 오고 가고 변해 가는 것입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시간 자체나 세월이 덧없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 속에 사는 우리들이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고 늘 한결같지 않고 변하기 때문에 덧없다는 것입니다.(208~209쪽)
'세상 모든 행위는 항상 변하므로 하나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에 대해 가장 잘 강독해주는 문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오며] 책을 읽고나서 다시 한번 문장과 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수십년 전에 쓰여진 글들이 지금 읽어도 전혀 고루하거나 헐겁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시원한 물 한모금을 마신 것처럼 마음과 정신을 깨워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행복하라>를 통해 법정 스님의 좋은 글은 물론이고, 나아가 법정 스님과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법정 스님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일상과 자연을 대하는 자세를 보며 그의 인간적 면모도 엿볼 수 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 이 물음에 대한 혜답慧答을 법정 스님은 이렇게 일깨워준다. "사람은 자기 몫의 삶을 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저마다의 그릇에 자기 삶을 채워 가며 살아야 한다. 이 때 남과 자신의 것을 비교해서는 안된다." 마흔을 앞두고 다시 읽는 법정 스님의 문장과 글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학창시절에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그 때는 보이지 않았거나 들리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미천한 삶의 경험과 더불어 조금은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법정 스님의 문장과 글을 함께 나누며, 고단하고 적적한 일상과 삶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서평단 리뷰어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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