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쓸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
거칠고 무딘 개구리 언어에 지친 이들을 위한 글쓰기 처방전!
“당신은 개구리다!”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는 이런 도발적인 선언으로 시작된다.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개구리의 개굴거림과 다를 바 없는 무의미한 말과 글이었다는 선언.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부모, 형제, 선배와 선생님 모두 개구리였다는 사실. 이 책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는 이렇게 개구리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어떻게 실질적이고 생생한, ‘의미 있는’ 언어를 구사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서이다.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작가이자, 2006년부터 꾸준히 ‘남산 강학원’(구 ‘수유+너머 남산’)과 ‘아트앤스터디’ 등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소설가 이만교는, 이 책에서 오늘날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이 장르 불문하고 부딪히게 되는 난관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중요한 조언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2009년 출간된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의 연속편이자 심화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이만교의 첫 번째 글쓰기 책으로, 출간 이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가 글을 쓰기 위한 마음가짐과 태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책은 좀 더 실전적인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상투적이고 거친 일상어로 사유하기를 멈추는 데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감정과 느낌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문장으로 옮기기, 그리고 ‘문장 → 단락 → 단락장 → 장르’의 과정을 통해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까지, 글쓰기의 모든 과정에서 습작생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와 오류들을 다양한 예문을 통해 짚어 주는 한편으로, 어떤 글쓰기가 좋은 글쓰기인지, 얼마나 습작을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와 같이 글을 쓰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만한 문제들에 답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글을 쓰는 ‘기술’을 갈고 닦는 일이 아니라, 글을 쓰는 일은 곧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유하고, 그렇게 사유한 데 따라서 행동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많은 개구리의 언어에 물들어 있고, 그런 거칠고 상투적인 언어로 사유하고 행동한다. 저자는 우리의 인생을 고달프게 하는 많은 문제들이 바로 여기에서 생겨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겪는 경험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언어화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크게 말하거나(“나라 돌아가는 꼴이 엉망이다!”), 너무 상투적으로 말한다(“나는 가난해서 불행했다”). 그리고 그런 언어에 따라서 너무 크거나 상투적인 걱정으로 일생을 보내기 일쑤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서술하기 위한 글쓰기 공부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것, 글쓰기와 삶을 사는 일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개구리 언어에서 벗어나기-어떻게 쓰지 않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사유와 삶을 피폐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개구리 언어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개구리 언어의 일상성과 상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낯설게 하기’(ostranenie)가 필요하다. ‘낯설게 하기’는 일상의 자동화된 인식을 배제하고, ‘사물에 대한 감각을 알려진 대로가 아닌 지각된 대로’ 인식하려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습관적·관용적·상투적 표현을 배제하고 지각된 그대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 따라서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낯설게 하기’는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지각된 그대로 표현하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거칠게 청킹하지 말 것”과 “거칠게 생각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 거칠게 청킹하지 마라
개구리 언어의 가장 큰 특징은 대상의 많은 측면들을 뭉뚱그려 일컫는다는 데 있다. 호랑나비를 보든, 배추흰나비를 보든, 산제비나비를 보든 모두 ‘나비’라고 말하는 식이다. 단어뿐만이 아니다. 경험을 표현하는 문장 또한 이렇게 뭉뚱그리는 것이 가능하다. 가령, 마을버스가 조금 늦는 것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교통정책은 엉망이야”라고 말하는 식이다. 저자는 이런 개구리 언어의 극복을 ‘추상의 사다리’와 ‘청킹’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시도한다. 추상의 사다리는 하나의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그보다 상위의 개념과 하위의 개념을 각각 위아래로 배치한 도표를 말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추상성이 높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구체적이 된다. 또한 하위로 내려갈수록 하나의 일반명사로 대상을 지칭하기가 어려워지는데, 이런 경우에는 적절한 수식을 통해서 대상의 구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때, 상위개념으로 올라가는 것을 ‘청킹 업’, 하위개념으로 내려가는 것을 ‘청킹 다운’, 그리고 같은 레벨의 단어로 교체하는 것은 ‘청킹 체인지’라고 한다. ‘청킹 업’은 사건 하나하나에 얽매이지 않고 사건의 의미를 보다 일반화하고 요약하는 것으로, 애매하고 복잡한 구체성을 하나로 통찰하게 해준다. 가령 운동장에 모여 있는 사람의 이름을 일일이 말할 것 없이, “지각생들이 모여 있습니다”, “운동부 학생들이 모여 있습니다”처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청킹 다운’은 구체적인 직시와 발견을 가능하게 한다. 사건이나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허황되게 확대하지 않고 분명하게 인지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개구리들은 청킹 업이나 다운이 자유롭지 않고 한 번에 너무 많은 단계를 오르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너무 거칠거나 조밀하기 때문에, 사건 자체보다 커다란 문제로 확대되거나 잡다한 문제들 속에서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험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고, 그것을 언어로 잘 옮기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는 섬세하고 자유로운 청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거칠게 생각하지 마라
청킹 업과 다운이 자유롭게 이루어지지 못할 때, 우리는 통념의 수준에서 생각하고 말하게 된다. 통념적인 일상언어에서는 쉽고 강하게 의사전달을 하기 위해서 거칠게 과장하여 청킹 업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시간 단위를 말할 때에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장하거나 거칠게 뭉뚱그려 사용하기 일쑤다. 어떤 사람이 두세 번 약속에 늦으면 그 사람은 ‘언제나’ 약속에 늦는 사람이고, 학창시절 한두 번 겪은 경험을 학창시절 ‘내내’ 겪은 경험인 듯 말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통념이 이렇게 ‘거시 시간을 하나로 뭉뚱그려 놓은 과장된 진리’라고 말한다. 일생을 단위로 자신의 삶을 회고하다 보면, 자신의 모든 과거를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심지어 몇 가지 단순한 논리로 자신의 삶을 도식화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이 모든 과정을 ‘나’라는 하나의 주어 속으로 주워 담아 버림으로써 ‘단일한 주체로서의 나’를 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생을 단위로 ‘단일한 나’를 구성하는 것이야말로 통념적인 수준에 빠져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니체의 말처럼, 자아는 단선적이거나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주체 복합체로서의 영혼”이며, “인간 속에는 바닷속 동물처럼 많은 정신들이 거주”하면서 “자아라고 하는 정신을 얻으려고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린시절의 ‘나’는 해마다, 철마다, 때마다 달랐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고, 당장 한 달 전의 나와 오늘의 나도 전혀 다른 고민의 장 속에 들어와 있는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시간의 단위를 더 세분화하여 더 구체적으로 지각하고 언어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생을 뭉뚱그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 단위로, 사건 단위로, 나아가 매순간 떠오르는 생각의 단위까지 구체화시킬 때에야 통념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과 경험을 직시하는 독창적인 사유와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쓸 것인가?
통념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났다면, 이제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고 파악하고 표현할 것인가? 저자는 ‘초점화, 문제화, 언어화’를 그 방법으로 제시한다.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고(초점화), 어떤 문제설정 속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대상은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며(문제화),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 역시 무한에 가까운 조합과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언어화)이다. 인간의 감각이 매우 풍요롭고, 관심의 초점화 방식이 무한하다면, 게다가 문제설정 방식이 다양하고, 대상을 규정하는 언어화의 방법 역시 무한하다면, 인간의 생각 역시 무한히 자유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만, 글쓰기를 통해 실재(reality)를 표현할 수 있다.
저자는 수년간의 글쓰기 강좌 경험을 토대로, 역동적이고 구체적인 ‘실재’를 구성하기까지 습작생들이 어떤 실수를 범하고 극복하면서 발전해 가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우선, 초보 습작생들의 경우, 대부분 ‘일상적이고 통념적인 리얼리티’를 반복한다. 부적절한 어휘를 사용하거나, 과장된 관용구나 상투적 표현을 사용하거나, 비경제적인 중언부언하는 문장을 구사하거나, 비속어나 유행어 혹은 불필요한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하지만 1~2년의 습작기간을 거치면서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표현들은 많이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곧바로 역동적이고 구체적인 글쓰기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닌데, 또 다른 문제들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문제들에 ‘주관적 리얼리티’와 ‘모범적 리얼리티’라는 이름을 붙인다. ‘주관적 리얼리티’란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선입견, 착각, 몰이해, 분열, 편집, 강박 등에 사로잡혀 글을 쓰는 것을 말하고, ‘모범적 리얼리티’란 일상적 리얼리티와 주관적 리얼리티에서는 벗어났지만, 아무런 독창성이나 개성이 없어 어떠한 촉발도 일으키지 않는 ‘범생이’의 글쓰기를 말한다. 수도 없는 습작과 합평을 거친 후에야 이런 실수들을 바로잡고, 대상을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언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창조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으며, 중층성과 역동성이 있는 깊은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7장 ‘어떻게 쓸까’는 ‘개구리의 언어’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전적인 글쓰기의 지침을 제공한다. 문장들을 모아 단락을 구성하고, 단락을 모아 단락장을 구성하고, 단락장을 한 편의 글로 완성하는 과정을 실제 사례들을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글쓰기의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끊임없는 습작의 중요성이다. 스무 번의 망상 중에 하나만이 문장으로 옮길 만하고, 스무 개의 문장을 쓰면 그 중 한두 개만이 쓸 만하다는 것. 따라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습작과 합평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읽기와 쓰기의 공부는 끝이 없지만, 저자는 그래서 힘든 것이 아니라 행복한 것이라고 말한다. 읽을 만한 책은 넘쳐나고, 자신의 글쓰기 공부는 언제나 자신의 욕심에 비해 부족해서 때때로 많이 지치고 힘들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는 그 순간이 바로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알게 되는 초발심의 순간이자, 운명을 바꾸어 나가는 첫걸음의 순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