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시대, 근대화에서 생태화로 의제를 전환해야 한다.
현재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특징지어지는 ‘인류세’ 시대, 라투르의 표현을 빌리면 ‘새로운 기후 체제’는 이른바 ‘가이아의 복수’로 인한 인류 문명의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는 묵시록적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비극적 체제 전환의 표층적 원인은 서구에서 태동하여 지구화를 이룬 ‘화석 자본주의’임이 틀림없지만, 라투르가 보기에, 이 사태에 대한 심층적 원인은 ‘자연의 이분화’ 관념, 즉 세상을 인간 세계와 비인간 세계로 분할하는 관념에 기반을 둔 서양의 인간중심적인 근대적 세계상이다. 이렇듯 서구 근대화 모형이 자체적으로 붕괴하고 있는 이 국면에, 애초에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고 어디까지나 세계는 인간 행위자들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얽힌 행위자-네트워크라는 라투르의 생태(관계)적 통찰이 비근대적 세계상을 구성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네트워크의 군주』의 저자인 하먼은 포착한다. 라투르는 근대주의자가 아닌데, 그렇다고 전근대주의자도 아니고 탈근대주의자도 아니며, 차라리 비근대주의자다. 이 책은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세계 모형이 함축하는 생태적이고 혁신적인 형이상학적 체계를 탈인간중심적인 비근대주의적 관점에서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관계를 맺으면 서로 ‘번역’할 수밖에 없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서로 ‘부각’하는 ‘객체들의 민주주의’라는 라투르의 구상은 하나의 정합적이고 생태적인 세계상을 낳는다.
행위자-네트워크 모형은 ‘객체들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적 제1원리는 ‘비환원의 원리’로 “아무것도, 저절로, 무언가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환원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행위자 또는 객체는 자율적인 실재성을 갖추고 있기에 존재론적으로 평등한 ‘객체들의 민주주의’라는 세계상이 제시된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그렇듯, 모든 객체가 똑같이 강한 것은 아닌데, 객체의 강함은 ‘동맹’ 관계를 맺음으로써 향상된다. 여기서, 『네트워크의 군주』라는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마키아벨리가 즉시 연상되겠지만, 라투르가 마키아벨리주의자가 아닌 이유는 ‘동맹의 원리’를 인간의 권역을 넘어 비인간 행위자들을 포함하는 세계 전체로 확대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라투르는 인간 객체들과 비인간 객체들에 모두 같은 자격을 부여하면서 각각의 객체는 다른 객체들과 맺은 관계의 네트워크라고 주장함으로써 민주적이고 생태적인 세계관을 제시한다. 이것은, 나중에 라투르가 ‘좌익-우익’이라는 인간본위적인 근대적 정치 틀 대신에 ‘상익-하익’이라는 생태본위적인 정치 틀을 제시하면서 생태화를 지향하는 독자적인 정치철학을 전개하는 근거가 된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객체지향 철학은 관념론에 반대한다.
그레이엄 하먼은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현대 철학의 신흥 운동을 선도한 네 명의 철학자1) 중 한 사람이다. 각기 다른 세계상을 제시하는 이 철학자들을 함께 묶는 끈은 이들이 모두 세계는 인간의 마음과 관련하여 존재할 뿐이라는 관념론의 일종인 ‘상관주의’에 반대하는 실재론을 견지한다는 점이다. 특히, 하먼은 인간과 객체의 관계에서 인간에게 현시되는 ‘감각적 객체’와 별개로 존재하는 ‘실재적 객체’를 분리함으로써 객체의 실재성을 긍정한다. 다시 말해서, 지도는 영토가 아니고, 영토는 지도와 별개로 존재한다. 더욱이 하먼은 인간-객체의 관계 양상을 객체-객체의 관계 양상으로 확대하여 보편함으로써 객체지향 철학의 일반 원리를 제시한다. 이처럼 세계는 자율적인 실재성을 갖춘 객체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실재적 객체는 다른 객체들의 네트워크 또는 조립체라는 세계상을 레비 브라이언트가 객체지향 존재론(Object Oriented Ontology, OOO)으로 지칭한 이후에 하먼은 자신의 객체지향 철학을 OOO로 공표하게 된다. 그리하여 실재적 객체로서의 지구는 인간과 독립적인 감응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인간 활동에 의한 자극이 어떤 임계를 넘어서면 가까스로 유지된 생태(관계)적 균형이 무너지면서 제어할 수 없는 파국적인 상태로 전환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바로 인류세 시대에 객체지향 철학이 갖는 의의라고 여겨진다.
1) 레이 브라지에, 이에인 해밀턴 그랜트, 그레이엄 하먼, 퀑탱 메이야수.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명칭은 2007년 4월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연원한다. (참조 :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Speculative_realism)
- 각 장의 핵심 내용
이 책은 두 가지 작업을 한 권에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4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1부 「라투르의 형이상학」에서 하먼은, 부제목이 밝히는 대로 라투르의 초기 저작 네 권을 행위자-네트워크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읽어내면서 브뤼노 라투르를 ‘객체들의 민주주의’와 ‘세속적 기회원인론’을 표방하는 형이상학 철학자로 제시한다. 3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2부 「객체와 관계」에서 하먼은 자신의 ‘객체지향 철학’을 배경으로 삼고서 라투르의 관계주의적 철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모형을 경유하여 하먼 자신의 실재론적 형이상학을 소개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브뤼노 라투르를 형이상학 철학자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와 더불어 라투르를 경유하여 하먼의 객체지향 철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공히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1장 「비환원」에서는 『프랑스의 파스퇴르화』라는 저서에 별개의 부록으로 붙은 『비환원』이라는 소책자를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 철학적 원리를 제공하는 원천으로 읽어낸다. 여기서 라투르 형이상학의 네 가지 근본적인 개념, 즉 행위자와 비환원, 번역, 동맹이 종합적으로 논의된다. 요컨대, 세계는 행위자들의 긴 목록이고,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들의 네트워크이며, 게다가 각각의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로 환원될 수 없기에 객체들의 관계는 번역을 수반할 수밖에 없고 객체의 강함은 동맹의 구성에 의존한다는 점이 제시된다.
2장 「과학의 실천」에서는 『과학의 실천』이라는 저서에 담긴 철학적 함의가 블랙박스와 원격작용이라는 두 가지 형이상학적 개념을 통해서 분석된다. 여기서, 이 두 개념의 문자적 의미가 나타내는 대로, 행위자 또는 객체들은 모두 서로에게 외부적이고 자율적이라고 여기는 세계상, 즉 ‘객체들의 민주주의’로 특징지어지는 라투르의 존재론이 도출된다.
3장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라투르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이고 어쩌면 그의 가장 뛰어난 저작”인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를 근대성과 준객체라는 개념에 비추어 읽어낸다. “우리가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는 이유는 우리가 결코 인간과 세계를 정화하는 이분화를 실행한 적이 정말로 없기 때문이다”라는 라투르의 주장이 실재론적 통찰로 이어진다. 만약, ‘자연의 이분화’라는 근대적 이념을 받아들인다면, 근대 세계는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혼성물, 즉 준객체가 넘쳐나는 기묘한 세상일 것이다.
4장 「판도라의 희망」에서는 순환 준거라는 개념과 관계의 실재론이 다루어지고, 라투르와 소크라테스 사이의 유사성이 논의된다. 하먼의 독법에 따르면, “라투르의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는 플라톤의 분명한 반민주주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가 구현하는 것과 같은 유형의 유식한 무지를 옹호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5장 「라투르의 공헌」에서는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 함축하는 형이상학적 입장이 현대 철학에 기여한 공헌이 검토된다. 하먼이 보기에, 라투르는 서로 물러서 있는 객체들이 관계를 맺으려면 그 관계를 매개하는 매체로서 특정한 객체가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속적 기회원인론자’이고, 이른바 ‘대리적 인과관계’를 정초하는 철학자다.
6장 「의문들」과 7장 「객체지향 철학」에서 하먼은 라투르의 형이상학을 발판으로 삼으면서 라투르의 철저한 관계주의를 의문시하고 수정함으로써 자신의 객체지향 철학을 전개한다. 여기서 하먼은 라투르를 직접 비판하는 대신에 ‘과장법적 독법’을 통해서 라투르의 철학적 풍경에서 빠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검토한다. 마침내 하먼은, 세상은 ‘실재적 객체’와 ‘감각적 객체’, ‘실재적 성질’과 ‘감각적 성질’ 사이에 맺어지는 긴장 관계가 펼치는 파노라마라는 ‘네겹 객체’ 모형을 자신의 객체지향 철학으로 소개한다. 더욱이, 상관주의를 다룬 『유한성 이후』라는 책으로 유명한 퀑탱 메이야수의 견해를 라투르와 하먼 자신의 관점들과 관련지어 상세히 논의하는 부분뿐 아니라 철학적 글쓰기 스타일을 다룬 부분도 꽤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