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정과 망상』 상세한 소개
학계는 감정과 무관한 공간일까?
이 책은 “학계는 감정 문화가 부재한 공간인가”라는 질문과 대결한다. 현대 사회에서 학계 또는 대학사회에 대한 통념은, 훈련된 합리적 연구자들로 가득 차 있고, 중립적 시선을 추구하며, 이를 통해 뛰어난 학문적 연구성과를 창출해 내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박사과정생,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 50여 명을 인터뷰하여 분석한 학계의 모습은 다르다. 학계에는 자부심, 기쁨, 화, 수치심, 당황스러움, 혼란스러움, 웃음, 시기, 질투 등 다양한 감정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박사과정생들은 지도 교수의 ‘지배력 전시’에 분노와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학계에서는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생명줄”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기를 두려워한다.(박사과정생의 감정을 다룬 3장의 제목이 “박사과정생의 극심한 감정적 고충”이다.) 또 조교수 사회의 감정관리 전략으로 저자는 친하기 정치, 속이기 게임, 복화술 등 세 가지를 언급한다. 조교수는 ‘친하기 정치’를 통해 모든 이와 우호적으로 지내고자 노력하고, ‘속이기 게임’을 통해 마음속의 불안과 두려움을 숨기고 통제와 권위를 전시하고자 하며, ‘복화술’을 사용해 자부심 표현 금지라는 학계의 금기를 우회하면서 자신의 자부심을 유쾌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포장한다.
학계 구성원들은, 오늘날 어떤 사회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듯이 경쟁 속에서 온갖 불안함과 감정에 휩싸이지만 때로는 그것을 숨기고 때로는 전략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들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열정과 망상』이라는 제목의 의미
저자가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는 학계의 모습은 “불유쾌하고 독살스러운 직장”이다. 그러나 많은 학계 성원들이 학계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 이유를 학계에 여러 느낌이 공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분노, 실망감, 체념, 시기, 슬픔, 좌절감과 함께 연구와 협력에서 나오는 열정, 기쁨, 만족감 등이 있는 것이다.
학계 구성원들은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유머를 활용하고, 동료들과 유머를 공유하며 함께 웃는 순간을 즐거운 순간들로 묘사한다. 또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자유, 동료와의 교우, 학문적인 환경이 주는 영감 등이 학계 생활의 풍요로운 요소라고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열정과 망상』이라는 제목은 “여러 느낌의 공존”이라는 학계의 감정적 톤을 묘사하는 것이다.
증언자의 시대, 대학사회 내부의 증언모음집이 출간되다
바야흐로 증언자의 시대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는 윤지오, 김용장, 한서희 등이, 해외에서는 줄리언 어산지, 첼시 매닝, 에드워드 스노우든 등의 증언자, 내부고발자, 공익제보자의 용감한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이 책은 대학사회 내부의 증언 모음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책을 통해 학계 밖의 사람들은 학계 사람들이 어떻게,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생한 모습들과 갈등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증언자들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내부의 모습을 드러내준다. 김용장은 5.18 광주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폭로하였다. 윤지오와 한서희는 엘리트 권력층과 연예계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었다. 줄리언 어산지, 에드워드 스우든과 첼시 매닝은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들과 부패한 권력자들의 이면을 고발하였다. 이 책 『열정과 망상』은 학계에서 다양한 감정이 표현되는 여러 장면을 있는 그대로 우리 눈앞에 상연함으로써 학계가 감정과 느낌으로 흘러넘치는 곳임을 알려준다.
경쟁이 만들어내는 ‘열정과 망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
저자에 따르면 최근 전통적인 대학에서 대학의 “현대화” 요구가 급증했는데 그 과정의 “핵심어는 경쟁과 양이다.” 그런데 “모든 수위에서 나타나는 경쟁은 전 영역에서 경쟁적 투쟁을 증가시킨다.”(310~311쪽) 한국의 학계에서는 강사법 개정 후 “강화된 경쟁”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많은 시간강사들의 대량해고가 벌어지고 있다. 강화된 경쟁은 학계 구성원만의 조건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이후 오늘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래서 학계 구성원들이 사회,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 타인과 동료들, 그리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갖게 되는 부정적 감정들은 익숙하게 느껴진다. 박사과정생,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들이 개인적으로, 또 동료들과 협력하여 어려움을 이겨내려 애쓰는 모습은, 부단한 감정노동을 하도록 강요되는 인지자본주의에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책은 독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열정과 망상’으로 가득한 이 세계를 살아가고 변화시킬 방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열정과 망상』 각 장의 내용 소개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서론’은 책의 구성과 각 장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담고 있다.
2장 ‘이론과 실증자료’는 이 책이 활용한 이론 틀, 이 책이 참조한 자료와 연구 방법을 설명하고 있고, 도시와 지방의 연구 환경이라는 지역 차이가 이 책에서 갖는 의미를 고찰한다.
3장 ‘박사과정생의 극심한 감정적 고충’은 학계의 신입인 박사과정생들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감정적 어려움을 인터뷰를 통해 분석한다.
4장 ‘가시성의 질서’는 조교수에 관한 장인데, 조교수들이 인정과 경력 쌓기 싸움에서 ‘친하기 정치’, ‘속이기 게임’, ‘복화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5장 ‘동료평가의 양면’은 동료평가라는 학계의 주요한 관행을 둘러싸고 부교수와 정교수들의 감정 문화를 살펴본다. 동료평가의 잔인한 특징, 동료평가 때문에 생기는 모욕감, 불신, 시기 등과 그런 모든 감정을 동료들로부터 감추려는 노력 등이 그려진다.
6장 ‘웃음의 정치’는 학계에서 구성원들이 느끼는 부정적 감정들이 웃음과 유머로 상쇄되는 과정을 그린다. 물론 웃음과 유머 속에서도 경쟁이 살아있다.
7장 ‘구내식당’은 식사를 사회적 형태로 이해하는 게오르그 짐멜의 이론을 참조하여 점심식사 환경이 동료애와 연대감을 낳는 방식을 살펴본다.
8장 ‘학계의 사회적 유대’와 9장 ‘감정의 미시정치와 젠더’는 감정과 관련한 메타이론을 설명하는 장이다. 8장에서는 미국 사회학자 토마스 쉐프를 비롯한 이론가들을 참조하며,
9장에서는 미국 사회학자 캔디스 클락의 이론을 소개한다.
10장 ‘결론과 주장’은 책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고 책의 의의를 밝히는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