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중산층의 몰락,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실버푸어, 렌트푸어 등 신빈곤층의 증가, 가난의 대물림 현상, 고시원족, 생계형 절도의 증가, 전세대란, 임대주택 공급 감소……. 지금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가난한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정부는 2012년 10대 경제과제 중 하나로 신빈곤층 문제 해결을 꼽았다. 복지정책을 둘러싸고 여야의 논쟁은 끊이지 않고, 용산에서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보겠다며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걸까? 국민의 60%는 여전히 가난의 이유를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답했고,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안정망 없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노점상과 철거민은 늘어나고 있으며, 생존권을 위해 난생 처음 망루에 오르는 사람들도 증가했다. 지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이제까지 각 정부가 시행했던 정책들은 얼마나 효과를 거뒀는가? 그리고 대한민국은 언제쯤 가난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가?
이 책《가난의 시대》는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빈민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빈민의 범주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부터 빈민이 언제부터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으며, 정부에서는 어떠한 정책들을 시행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20년 넘게 빈민운동을 해온 저자 최인기는 이제까지 마주하고 투쟁했던 상황들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에서는 각 정부가 바뀔 때마다 빈민들의 상황은 어떻게 변했으며, 왜 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도 상도동과 용산에는 대책 없이 생계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언제까지 이러한 상황을 반복해야 하는가? 집과 일터가 불안한 사람들이여, 이 책을 펼치시라! 지금 대한민국은 가난공화국이다!
국민 6명당 1명이 빈민, 임금 노동자 중 49.4%가 비정규직
대한민국 빈곤문제, 얼마나 심각한가?
20년간 빈민운동을 해온 활동가의 생생한 현장보고서!
2012년 여수 엑스포를 앞두고 어김없이 노점상 단속이 시작됐다. 최근 발표된 박원순표 뉴타운 정책에서도 확인됐듯이, 연일 발표되는 개발정책에 맞서 사람들의 투쟁도 팽팽하다. 어디 이뿐인가. 비정규직은 600만 명, 청년실업자는 41만 명을 넘었고 철거지역의 청소년문제, 장애인 생계문제까지 어마어마한 가난이 대한민국을 잠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빈민은 대체 누구인가? 빈민의 범주를 어디로 잡아야 하는가? 기본적으로 "도시빈민은 노동할 능력과 노동할 의사가 있는 '경제활동인구'임에도 사회구조적으로 임금노동체계 외곽에 머물고 있는"(281쪽) 사람들을 말한다. 여기에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절대빈곤'과 중위임금의 절반밖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상대빈곤'으로 나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2000년대 들어 국민 6명당 1명이 빈민이며, 국민 중 15%는 상대빈곤층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도시빈민 문제가 농민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다.
저자 최인기는 20년간 이러한 현실과 직접 마주했다. 자신 역시 노동자였기에 그들이 겪을 몸과 마음의 상처를 모른 체하며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현실은 통계자료에서 발표되는 것보다 심각했고, 대책은 더욱 미미했다. 거리에서 투쟁하는 것만큼 기록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과 비판 없이 일시적인 대책과 보상을 얻는 것만으로는 가난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했다. 노점문제, 철거문제, 장애인 인권, 비정규직 문제, 주택정책 빈민문제와 빈민운동과 관련된 자료들을 꾸준히 찾아 모았고, 틈틈이 빈민의 심각성을 알리는 글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9년 용산참사가 일어났을 때는 주변의 권유로 거리에 나가는 대신 이 책의 바탕이 된 도시빈민들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기 위해서는 지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이 책의 시작이 일제강점기인 것도 지금의 도시빈민들이 그때의 형태에서 변형됐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노점상은 조선 시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철거문제 역시 1960년대의 무허가 판자촌 철거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고 할 수 있다. 2011년의 화재가 나서 74가구가 전소한 포이동은 1981년 사람들이 강제 이주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청계천 복원공사는 뉴타운 사업과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 사업으로 계속 이어졌다.
책을 쓰면서는 무엇보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경험하지 못한 사건들은 투쟁?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이야기를 듣고 당시 상황을 증명하는 자료들을 받았다. 광주대단지사건이나 노점상의 계급적 지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을 한 자리에 모아 정리할 수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빈민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의 상황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빈민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에 그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빈민문제를 다룬 그 어떤 책보다 생생하게 현장의 다양한 상황을 담은 것이다.
와우 아파트의 붕괴, 광주대단지사건, 상계동올림픽, 이재식 열사의 분신, 가락시장 현대화사업……
가난하기 때문에 싸워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도시빈민운동사'
그리고 잊혀진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치열한 기록!
이 책 곳곳에는 ‘도시빈민운동’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1부의 제목이기도 하고 본문 중간에 자연스럽게 쓰이지만 대중들에게 낯선 개념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도시빈민운동'은 집과 일터를 뺏긴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하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었고, 일정 부분 쟁취를 했더라도 활동가로 일하는 도시빈민들의 활동이 곧 도시빈민운동이다. 2009년 용산참사가 일어나자 발현됐던 수많은 행동들도 도시빈민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빈민운동 조직을 꾸리고 해체하기를 반복하면서 정부에 맞서 투쟁하고 쟁취한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도시빈민운동은 크게 철거민운동과 노점상운동으로 나뉘면서 전개됐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물결 속에서 크게 성장했다. 그 후에 사회 구조가 변하면서 장애인문제, 철거지역 청소년문제, 비정규직문제, 청년실업문제 등으로 층위가 점점 다양해졌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최대한 풍부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많이 알려진 광주대단지사건(1971)이나 무등산타잔 박흥숙 씨 사건(1977), 목동투쟁(1984), 상계동투쟁(1987) 등을 비롯해 수원 권선4지구투쟁(1996), 오산 수청동투쟁(2003), 인천향촌마을투쟁(2006)과 같이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지역문제로 그친 사건들의 과정을 자세하게 썼다. 또한 빈민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점상과 철거민에 대해서는 따로 한 장을 할애하기도 했다. 이 과정을 따라 가다보면 빈민이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으며, 그들을 위한 방패막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최근 진행 중인 가락시장 현대화사업의 문제, 복지담론 논쟁도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빈민열사로, 남은 가족은 명동 철거민으로?
대한민국은 언제 가난의 늪에서 벗어날 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가?
2011년, 결국 명동성당 맞은편과 (구)중앙극장 일대도 철거가 강행됐다. 노태우 정부 시기 분신자살을 했던 이재식 열사의 딸 이근혜 씨와 그녀의 남편 텐진 델렉 씨는 이 근처에서 네팔 음식 전문점 '포탈라'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권리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아버지는 빈민열사로, 남은 가족은 철거민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저자가 만난 대부분의 빈민들은 자식에게는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발버둥치지만 이미 철거지역의 청소년문제는 교육, 생활면에서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상황은 쉽게 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가?
빈민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다. 경제, 뉴타운, 취업, 기초생활보호, 최저임금 등이 늘 화두에 올랐고 수많은 정책들이 시행됐다. 1961년 '생활보호법', 1980년대 200만 호 주택공급, 등 IMF 이후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정책'을 비롯해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부터 양극화 해소를 주요 국정지표로 선정하는 등 계속해서 정책들이 나왔다.《가난의 시대》에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시행됐던 다양한 빈곤정책들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각 정부에서 내새웠던 것들이 실제로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도 평가했다. 특히 복지를 강조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어김없이 진행됐던 무대책 철거 현장들을 확인할 수 있다. 시행된 정책들은, 혜택을 입은 적은 사람은 적고 대부분은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상도동투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고양시 덕이동과부천시 원3동에도 천막 농성 중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오롯이 보여주면서 기존 정책들을 재검토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신빈곤층’ 단어 사용을 금하더니 복지예산까지 삭감했다. 또한 2011년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에게 급여 삭감 또는 수급 탈락을 통보하기도 했다.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에 있는 340만 명 중 103만 명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지원을 받지도 못한다.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정책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정권이 교체되면 무효화되거나 중단되는 경우가 다반수이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정책들이 많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저자는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과 저임금을 해결하지 않고는 빈곤문제가 사라지기 힘들다고 말한다. 쉽게 해결되지는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언제까지 가난의 늪에서 허덕여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