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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ide Bowie: The Mick Ronson Story 믹 론슨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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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ide Bowie: The Mick Ronson Story 믹 론슨 다큐멘터리

Jon Brewer 감독/Mick Ronson, Ian Hunter, Joe Elliott, Roger Taylor 출연 외 9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 2018년 08월 21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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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ide Bowie: The Mick Ronson Story 믹 론슨 다큐멘터리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08월 21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제품소개

디스크

Disc
  • 01 Mike Garson: Ronno
  • 02 The Who: Hadden Hall
  • 03 The Rats: The Gardener
  • 04 David Bowie: The Man Who Sold The World
  • 05 Various Artists: Hunky Dory
  • 06 David Bowie: Ziggy Stardust
  • 07 Herman Bender: Moonage Daydream (Video)
  • 08 Mott The Hoople: All The Young Dudes
  • 09 Pierre Arvay: New York
  • 10 Mike Garson: Make Sure They Find Cleveland
  • 11 David Bowie: Aladdin Slane
  • 12 David Bowie: The Beginning Of The End
  • 13 David Bowie: Pin Ups
  • 14 Alan Darby: The Next Bowie
  • 15 Walter Warren: From Paycheck To Paycheck
  • 16 Andy Quinn: Heroes
  • 17 David Bowie: For Old Times' Sake
  • 18 Mike Garson: Electricity
  • 19 Angie Bowie: I'm Gonna Kill The Lights
  • 20 Bob Harris: Singing For Bowie
  • 21 Cherry Vanilla: The Naked Girl On The Bed
  • 22 Cherry Vanilla: Slaughter On 10th Avenue
  • 23 Dana Gillespie: Ronno Produced My Album
  • 24 David Stopps: Tony Defries And The Fifty Pence
  • 25 David Stopps: Lou Reed And The Stray Dog
  • 26 Earl Slick: The Weird Audition
  • 27 Glen Matlock: Mick And The Pink Loafers
  • 28 Glen Matlock: Mick And The Dustbin
  • 29 Ian Hunter: Top Of The Pops
  • 30 Joe Elliott: The First Time I Met Mick
  • 31 Jon Brewer: All Dressed Up
  • 32 Kevin Cann: Mott The Hoople Were Dangerous
  • 33 Kevin Cann: Ronno And The Rats
  • 34 Laurence Myers: The Governor
  • 35 Lisa Ronson: Guns 'n Roses Know My Dad
  • 36 Maggi Ronson: The All Girls School
  • 37 Mark Nevin: Mick Meets Morrissey
  • 38 Mick Ronson: The Van Broke Down
  • 39 Mike Garson: Changes Variations
  • 40 Rick Wakeman: Wasps Farting
  • 41 Rick Wakeman: Lime Green PVC Trousers
  • 42 Rick Wakeman: The Brothel
  • 43 Rick Wakeman: The Mellotron
  • 44 Tony Visconti: The Beginnings Of Glam Rock
  • 45 Various Artists: Menu: Beside Bowie

감독/출연진 소개 (14명)

록 기타리스트 록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 싱어송라이터
출연 : Mike Garson (마이크 가슨,Michael David Garson)
팝/락/재즈 피아니스트 팝/락/재즈 피아니스트
반란과 오페라... ...자태를 드러내는 록 이념 그룹 후는 흔히 비틀스, 롤링 스톤스와 더불어 ‘록 르네상스’를 주도한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공)을 3분한 밴드로 평가된다. 록과 록의 역사를 다룬 백과사전의 전설들 코너에, 비평가들의 글에 그들이 빠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록분야를 벗어나면 후라는 이름은 당장 소외된다. 롤링 스톤스와 비틀스는 알아도 그들은 잘 모른다. 행여 이름은 인지하고 있더라도 금방... 반란과 오페라... ...자태를 드러내는 록 이념 그룹 후는 흔히 비틀스, 롤링 스톤스와 더불어 ‘록 르네상스’를 주도한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공)을 3분한 밴드로 평가된다. 록과 록의 역사를 다룬 백과사전의 전설들 코너에, 비평가들의 글에 그들이 빠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록분야를 벗어나면 후라는 이름은 당장 소외된다. 롤링 스톤스와 비틀스는 알아도 그들은 잘 모른다. 행여 이름은 인지하고 있더라도 금방 떠오르는 노래가 없다.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구미에서도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정은 비슷하다. 국내에서는 과거 라이선스 시절 후의 앨범 출발은 앞선 두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롤링 스톤스의 히트곡집 음반은 소개되었지만 후는 그나마 그것도 없었다(하기야 히트 곡이 거의 없긴 했지만). 설사 판을 찍어 봤자 잘 팔리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노래에는 우리 정서가 원하는 선율이 없었다. 따라서 후의 곡이 팝의 일상성을 획득하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일반 대중과는 달리 그들이 평자를 비롯한 록관계자들로부터 받는 사랑은 편애라 해도 별로 과장된 말이 아니다. 1965년 데뷔작 < 후가 나의 세대를 노래한다(The Who Sings My Generation) >에서부터 1975년 < 후 바이 넘버스(The Who By Numbers) >에까지 그 사이에 발표한 대부분의 앨범들이 수작으로 거론될 정도다. 특히 1969년 < 토미(Tommy) >와 1971년작인 < 후의 다음(Who’s Next) >은 예외 없이 비평가 선정 명반으로 뽑히고 있다. 후가 록역사에서 전설의 자리를 틀어쥐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세 가지 사실이 바로 비평가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며 음악 팬들이 기억해야 할 상식이기도 하다. 첫째 후는 1960년대 중반 영국의 과격한 청춘문화 이른바 모드(Mod)와 함께 등장했고 그것을 강도 높게 반영했다. 모드는 본래 패션 운동으로 저임금의 단조롭고 지루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영국 중산층 이하의 젊은 노동자들이 TV와 고급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서 유혹적으로 선전되는 값비싼 것들을 향유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소외감을 독특한 복장에 의한 욕구불만의 발산으로 해소하려 한 것이었다. 오토바이와 로큰롤을 가까이 한 ‘로커(rocker)’와 함께 청춘문화를 주도했으나(비틀스는 로커에 속한다) 모드는 하층민적인 로커와 달리 잘 입고, 정규 직업을 유지하고, ‘스쿠터’를 타며 약물을 즐기는 도시적 패턴을 취했다. 후의 멤버들은 1964년 프리랜서 피트 미든(Pete Meadon)의 권유에 따라 ‘하이 넘버스’(The High Numbers)라는 이름 아래 모드의 세계에 입문한다. 그러나 그들의 표현한 모드 정서는 분노와 청춘 세대의 공격성이었고 무정부주의적인 것이었다. 후의 기둥인 기타 리스트 피트 타운센드(Pete Townshend)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삶에 있어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영국의 모드 운동이었다. 그것은 젊은이들의 운동이었고 히피 무브먼트보다 규모가 컸다. 그것은 군대, 강력하고 거친 틴에이저들의 군대였다. 모드가 되기 위해서는 짧은 머리에 스마트한 복장, 좋은 구두와 셔츠를 살 돈이 있어야 했고 미친놈처럼 춤출 수 있어야 했다. 항상 약에 취해 있어야 하고 램프로 뒤덮인 스쿠터를 가져야 했다.” 후로 그룹명을 바꾼 그들은 1965년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현실을 신랄히 비난하는 모드족의 성가를 만들어 냈다. 그것이 ‘나의 세대(My generation)’였다. ‘사람들은 우리를 억누르려 한다. 단지 우리가 그들이 보기에 몹시 추워 보이는 곳을 돌아다닌다는 이유 때문에. 늙기 전에 죽고 싶다.’ 늙기 전에 죽고 싶다(Hope I die before I get old). 이 한마디가 초창기 후의 이미지 전부를 말해준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은 록역사상 최초로 과격한 어조를 동원해 청춘과 기성 세대와의 분리를 획책한 것이었다. 그만큼 이 충격적 선언은 한편으로 ‘늙기 전에 죽지 못한’ 그들을 막판까지 끈질기게 괴롭혔다. 하지만 데뷔시 그들이 펼친 모드 운동은 그들을 단숨에 살찌울 정도로 인상적인 것이었다. 역시 모드 세대의 찬가인 ‘어쨌든 어찌해서든 어디에서든(Anyway anyhow anywhere)’도 타운센드에 따르면 ‘반 중년, 반 상층 계급 그리고 젊어서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한 의미의 노래’였다. ‘애들이 옳다(The kids are alright)’ ‘난 설명할 수 없어(I can’t explain)’과 함께 이러한 노래들은 어느 노래보다 먼저 ‘청춘의 반란’으로 일컬어지는 록의 규범을 확립한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연주나 무대 제스처에 있어서도 록의 규범을 제시했다. 이것이 후가 갖는 두 번째 의미이다. 공연장에서 후는 영락없는 네 명의 ‘폭도’들이었다. 드러머 키스 문(Keith Moon)은 부수어대듯 드럼을 쳤고(후 사운드의 상징이다) 피트 타운센드는 펄쩍펄쩍 뛰면서 풍차를 돌리듯 팔을 휘두르며 기타 스트링을 가로질렀으며 싱어 로저 달트리(Roger Daltry)는 마음껏 외치며 청중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나마 베이스 주자 존 엔트위슬(John Entwistle)은 의연한 모습을 유지했지만 그것은 결코 기성 세대나 엘리트의 품위와는 상관이 없었다. 멤버들의 외모도 ‘불량 서클’ 아이들을 무색케했다. 피트 타운센드는 한 마리 독수리였고 키스 문은 무정부주의자 같았으며 로저 달트리는 테러리스트의 인상 그것이었다. 언제나 비(非)스페셜리스트였던 존 엔트위슬도 잘해 봤자 폭도의 ‘보급계’같았을 뿐 큰 차이는 없었다. 도무지 폴 매카트니의 세련된 매너와 믹 재거의 섹스 어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록의 ‘하위문화’적 특질과 정확히 맞물리는 요소였다. 그들은 록이었기에 도리어 ‘특혜’를 받았고 그에 따른 모범생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들은 또 록의 슬로건인 ‘제한된 공간에서의 파괴’를 증명한 존재들이었다. 무심결에 야간업소 공연에서 낮은 천장으로 인해 기타 목을 부러뜨린 것에 착안, 그들은 이후 콘서트 때마다 악기를 부수어 버리는 파괴 연출을 일상화했다. 실상 영화제작자로 나중 후의 관리자가 된 키트 램버트(Kit Lambert)와 크리스 스탬프(Chris Stamp)의 제안에 따라 이루어진 이러한 행위는 모드와 더불어 그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후의 멤버들은 공연 뒤 머문 호텔마다 그 시설물을 부수는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의 음악이 조용할 리 없다. 후의 사운드는 소음으로 정의되며 애초부터 발라드와는 인연을 맺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앰프 사용을 극대화했다. 일례로 밥 딜런과 함께 공연한 와이트 섬(Isle of Wight) 페스티벌에서는 그때까지 영국에서 가장 커다란 사운드 시스템을 동원해 사상 최고의 출력을 내뿜었다. 그때 스피커 중 하나는 청중들에게 “15야드 안으로 진입하지 말라”는 경고딱지가 붙어 있었다. 1976년 5월에 있었던 미국 찰튼 애드레틱 풋볼 클럽 콘서트는 록 그룹에 의한 ‘가장 시끄러운 공연’으로(무려 1백 20데시벨!) 기네스북에 기록되기도 했다. 그들은 소음 발산을 통해 하드 록 생성의 기틀을 마련했다. 하드 록 또는 헤비메탈 계보도의 맨 위에는 후가 있다. 역시 메탈의 산파 역할을 한 지미 헨드릭스도 타운센드가 나서서 공식무대 데뷔를 주선했고 지미의 죽음과 실연 때문에 좌절한 에릭 클랩튼의 재기를 도와준 사람도 타운센드였다. 그의 그룹 후는 또 하나의 공적인 록과 팝의 역사에 깊이 새겼다. 그들을 기억해야 할 세 번째 이유이기도 한 그것은 바로 그들이 록사상 최초로 ‘록 오페라’를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1969년에 만들어 낸 < 토미 >는 타운센드의 탁월한 음악 감각과 정신적 동경이 합쳐진 것이었고 모험적 시도를 넘어 음악 예술의 측면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평가받은 작품이었다. 그것은 무대와 음반 세계에 갇혀진 록의 ‘비상’을 뜻하는 신기원이기도 했다. 이제 록은 못할 것이 없어졌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던 오페라를 록이 꾸려 냈다는 것은 록의 무한한 잠재력을 웅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60년대의 록이 사회성 뿐 아니라 ‘예술성’에도 적극 손짓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토미 >는 실로 비틀스의 <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 밴 모리슨의 < 천체 주간(Astral Weeks) >과 함께 록이 더 이상 순간의 흥분이 아닌, 영구 불변의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뽐냈다. 토미는 충격으로 인해 보지도 듣지도 말할 줄도 모르는 아이가 된다. 마음속의 장벽 때문에 자아를 찾지 못하는 토미는 핀볼의 마법사가 되어 대중의 우상으로 떠오른다. 이후 그는 어머니의 호소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사랑의 마음이 생겨나 마침내 새로운 사람이 되는데 성공한다. 대강 이러한 줄거리인 < 토미 >의 메시지는 ‘독립’과 ‘자유’였다. 거창한 듯 하지만 결국은 후가 추구해 온 모드와 무대 위의 폭발이라는 주제와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타운센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는 10대의 반란이라는 순간에 지속되는 ‘대결’과 ‘도피’ 사이의 역동성에 대한 은유이다. 그것은 또한 로큰롤의 주제이기도 하다. 10대 때는 자신을 결코 책임지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대결하든 도피하든, 클래시(Clash)의 말로 하면 머물든 나아가든 간에(Should I stay or should I go) 틴에이저 시절에 가장 중요한 순간은 당신이 홀로 서 있는 것을 깨달을 때이다.” < 토미 >가 의미하는 것과 관계없이 그것은 오페라라는 이름만으로도 록의 찬란한 영광으로 남아있다. 오페라 실연으로, 앨범으로 또 1975년 켄 러셀(Ken Russel)의 영화로, 1979년 웨스트 엔드 연극으로, 이어서 1990년대에는 브로드웨이 작품으로 다채롭게 해석되면서 하나의 전설로 상승했지만 최후의 영예는 역시 후의 록이었다. < 뉴욕 타임스 >지는 < 토미 >를 두고 “수미상관은 물론 거창한 어휘인 오페라라고 하기에는 충분한 순환 테마를 가지고 있다”면서 “우수한 곡들로 가득차 있고 우아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긴 형태 록(long form rock)의 경이”라고 극찬해 마지않았다. 사실 < 토미 >를 최초의 록오페라라고 규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미니이긴 하지만 타운센드가 1967년 < 후 셀 아웃(Who Sell Out) >의 ‘라엘(Rael)’로 시도한 바 있고 킹크스(Kinks) 그룹의 송사이클 걸작 앨범 < 아더(Arthur) >도 1969년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팀 라이스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록 뮤지컬 <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도 1969년이라는 동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세월은 ‘최초’라는 타이틀마저 < 토미 >에게 안겨 주었다. < 토미 >의 영광은 엄청난 부담으로 타운센드를 짓누르지만 그는 언제나 보여 온 ‘시대적 추세’와 ‘록 본연의 폭발’의 절충적 감각을 또 한차례 유감없이 발휘해 1972년 걸작 앨범 < 후의 다음 >을 발표, 위세 행진을 계속한다. 1970년대 중후반의 대대적인 공연 성공은 한층 후의 무게를 늘려 놓았다. 롤링 스톤스와 함께 ‘록의 공룡’으로 펑크 진영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이러한 대중적 성공과 ‘젊어서 죽기를 거부한’ 자세는 1978년 < 후 아 유(Who Are You) >의 도도함과 거만으로 나타나기도 했다(이 점에서 록의 가장 큰 적은 나이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하지만 그들의 적은 외부의 펑크 세력이 아니라 내부의 드러머 키스 문의 돌연사였다. 그의 죽음은 ‘존 보냄의 사망과 레드 제플린의 관계’처럼 그룹의 총체적 위기로 다가왔다. 후의 멤버들은 해산을 선언한 제플린과는 달리 전 페이시스(Faces) 드러머 케니 존스(Kenny Jones)를 영입하여 중단 없는 전진을 다짐하지만 활력의 소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1983년 해산하고 만다. 후의 멤버들은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 1989년 캐나다 토론토 공연차 다시 모이지만 그때 후의 이름은 어느덧 역사가 되어 있었다. 온갖 모순과 교묘한 절충 속에서도 후는 끊임없이 내적 긴장, 진지한 야망, 모험욕을 통해 1960년대 록이 확립한 반란, 파괴 그리고 모험의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실천했다. 후를 해부하는 것은 실로 록의 호흡과 함께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베이비 붐 세대의 가슴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록의 부활이 기대되는 근래 우리 대중 음악의 변화 조짐을 감안할 때 ‘록의 위대한 개척자’인 후의 재조명이 한층 요구된다. 과정 없이 결과만을 바라는 우리에게는 1960년대 서구 록의 뜨거운 피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출연 : David Bowie (데이비드 보위)
무차별 변신으로 일관해온 록의 순례자 1947년 영국 런던의 브릭스턴 태생인 데이비드 보위는 애청곡이 많은 뮤지션은 아니다. 이름도 꽤 알려졌고 차트 활동도 부진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감에 맞는 음악을 하지 않았던 탓인지 인기곡 하나 남겨 놓지 못했다. 그러나 영미 록 역사에서, 특히 1970년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로 기록된다. 이른바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1969년 미국에서... 무차별 변신으로 일관해온 록의 순례자 1947년 영국 런던의 브릭스턴 태생인 데이비드 보위는 애청곡이 많은 뮤지션은 아니다. 이름도 꽤 알려졌고 차트 활동도 부진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감에 맞는 음악을 하지 않았던 탓인지 인기곡 하나 남겨 놓지 못했다. 그러나 영미 록 역사에서, 특히 1970년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로 기록된다. 이른바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1969년 미국에서 아폴로 11호가 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에 맞춰 공상 과학(SF)의 환상을 실은 ‘우주의 괴짜(Space oddity)’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는 불세출의 걸작 앨범 < 지기 스타더스트와 화성에서 온 거미들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Spiders From Mars) >을 통해 남녀 일체의 파격을 선보이며 진보적인 록 뮤지션으로 떠올랐다. 그는 스스로 동성이자 초월자인 ‘지기’로 분해 무대의 시각적 충격을 강조했으며 현상을 거부하는 반란을 일상화했다. 흔히 ‘자극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70년대와 맞물린 이러한 퍼스낼리티 설정은 즉각 록의 새로운 규범으로 확립되었다. 그것이 ‘글램 록’ 또는 ‘글리터 록’이란 것이었다. 그는 가수가 노래하는 사람, 무대가 노래하는 장소라는 등식과 관념을 넘어섰다. 화려하고 원색적인 화장에 반짝거리는 의상을 하고 나와 무대에서 노래할 뿐만 아니라 ‘연기’를 했다. 그것은 자극적인 퍼포먼스였다. 그는 1972년 “지금 충격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극단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팬들이 지기의 이미지를 오용하여 반사회적인 폭력을 일삼게 되자 곧바로 지기의 탈을 벗어버렸다. 이 시점부터 그는 어느 것 하나에 정착하는 법이 없었다. ‘다이아몬드의 개(Diamond dogs)’로 예언자가 되는 듯 하더니 ‘로우(Low)’에서는 은둔자로 변신했으며 나중에는 ‘야윈 백인공작(Thin white duke)’으로 탈바꿈했다. 음악도 이곳 저곳을 넘나들었다. 하드한 기타록을 하다가 소울 음악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전자 음악도 했고 심지어 디스코 댄스 음악 세계에 빠지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볼 때 그는 새로운 것에 과감히 가슴을 열어 끊임없는 혁신을 이룩한 음악인이었다. 데카당적인 틀은 유지했지만 그 속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예술적 보헤미안’임을 의도적으로 나타냈다. 하지만 ‘한 우물 파기’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은 그를 ‘뿌리 없는 실험 병자’로 ‘음악적 곡예사’로 배격했다. 그가 펼쳐 놓은 무수한 장르의 파편들과 끝없는 변신의 행적을 보면 카멜레온이요, 기회주의자였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과연 이같은 무차별 변신을 두둔해야 하는가. 그러나 록계에서는 그의 음악이 언제나 예측 불허였으며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30년간 록계에 몸담으면서 오로지 실험 정신으로 일관해 온 순례자로 떠받드는 것이다. 그는 1993년 AP통신과의 회견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난 내가 한 것을 동료들과 비교할 때 나를 모험적인 작가로 생각한다. 난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체질적으로 싫다. 그래서 악평이 나오기도 한다... 난 스튜디오에 들어가 머릿속에 담은 구체화된 아이디어가 내 자신을 놀라게 하는지를 본다. 밖에서 누군가 그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 테지만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곡을 쓴다.” 그의 곡예는 대중의 기호를 쫓은 상술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성을 자극하는 것, 바로 그 점에 봉사했다. 즉 ‘예술적 동기’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형상화해 온 셈이다. 이처럼 록예술에 집착한, 그리고 진보적인 뮤지션의 음악은 대중의 폭넓은 사랑과는 대부분 무관하다. 음악적으로 볼 때도 곡조나 편곡에 있어서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빌보드 차트 1위곡을 두 곡이나 보유하고 있다. 예술의 개가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가 때로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다는 반증이다. 때문에 1위곡들인 ‘명성(Fame)’이나 ‘춤을 춥시다(Let’s dance)’는 그다지 호평을 받는 편이 아니다. 특히 디스코 리듬에 전자 댄스 음악적 요소가 전면화된 ‘춤을 춥시다’는 노골적으로 상업성을 겨냥, 보위의 골수 팬들을 실망시켰다. 1977년 < 로우 >앨범 발표 당시 “되도록 이 앨범이 팔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말을 했던 그를 전제할 때 그것은 명백한 일탈이었다. 그는 ‘춤을 춥시다’의 성공이 너무 거대했던지 이후 그 그림자에 가려 주류에서 급격히 멀어졌다. 줄기차게 앨범을 내놓았지만 상업적 성과도 내리막길을 달렸고 평자들의 호의도 식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그 자신도 그때의 성공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1995년 < 뉴욕 타임스 >지에 “‘춤을 춥시다’로 빅히트를 한 것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난 대중적인 인기를 누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가 풍선껌 포장지와 같은 처지에 서게 된 느낌이었다.” 라고 술회했다(가끔 목격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서구 록스타들은 반성도 참 잘한다!). 그는 이때 2년만에 이색적인 앨범 < 아웃사이드(Outside) >와 함께 컴백했다. 이색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한편의 심리적인 추리소설을 사운드트랙화 했기 때문이다. ‘나단 애들러의 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앨범은 기괴한 10대 소년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사립 탐정과 그 주변 용의자들에 관해 노래하고 있다. 이 ‘예술적 추리 사건’의 진상은 1999년 발매될 마지막 앨범에서 규명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번 < 아웃사이드 >앨범은 시리즈의 첫편인 셈이다. 데이비드 보위는 이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한 때 명콤비였던 걸출한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다시 손을 잡았다. 그것은 1980년대의 부끄러운 상업적 성공을 기억에서 지우려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비상업적’인 과거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한 의지의 산물이라고나 할까? 즉흥성이 중시된 연주나 몽환적 부유(浮遊)의 분위기가 그것을 설명해 준다. 마치 ‘안 팔려도 그만’이라는 당당함이 배어 있는 음반이다. 그는 인기의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자세를 되찾음으로써 ‘영원한 로커’임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록이란 게 원래 그런 음악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또는 한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삶을 매듭지으려 했다. 그러나 고비 때마다 지인(知人)의 도움을 받으며 재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들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 어떤 벽을 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8년 동안의 모트 더 후플 이력이다. 때문에 그들 앞에는 항상 ''비운의 그룹''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그들은 밥 딜런의 냉소적 록, 헤비메탈, 글램 록을 넘나...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또는 한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삶을 매듭지으려 했다. 그러나 고비 때마다 지인(知人)의 도움을 받으며 재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들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 어떤 벽을 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8년 동안의 모트 더 후플 이력이다. 때문에 그들 앞에는 항상 ''비운의 그룹''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그들은 밥 딜런의 냉소적 록, 헤비메탈, 글램 록을 넘나들며 진취적인 사운드를 펼쳐냈지만, 언제나 뒷전이었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도움을 받아 잠깐의 행복을 누린 것이 전부였다. 믹 랄프스(Mick Ralphs, 기타), 버든 앨런(Verden Allen, 키보드), 오버런드 와츠(Overend Watts, 베이스), 데일 "버핀" 그리핀(Dale "Buffin" Griffin, 드럼) 등의 네 명은 고향인 잉글랜드의 히어포드(Hereford)에서 1968년 사일런스(Silence)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1년 뒤인 1969년 초반 보컬리스트 스탄 티펜스(Stan Tippens)를 영입한 그들은 < 아일랜드(Island) > 레코드사와 협력관계를 맺었다. 얼마 뒤 티펜스를 퇴출시키고 클럽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가수 이안 헌터(Ian Hunter)를 맞아들인 그들은 윌라드 마누스(Willard Manus)의 소설에서 착안하여 그룹명을 모트 더 후플로 변경했다. 1969년에 발표된 그들의 셀프 타이틀 데뷔작은 밥 딜런의 영향이 짙게 베어있는 작품이었다. 이안 헌터의 시니컬한 목소리는 딜런의 그것이었으며, 곡의 진행 패턴도 유사하였다. 비록 레이블의 반대로 금지됐지만, 1집의 원제가 < Talking Bear Mountain Picnic Massacre Disaster Dylan Blues >라는 사실은 안다면 그들과 딜런과의 관계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헌터는 나선형의 긴 머리와 어두운 얼굴 색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으면서 글램의 징후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데뷔 음반의 상업적 실패가 1970년 < Mad Shadows >, 1971년 < Wildlife >, < Brain Capers > 등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그들은 밴드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모트 더 후플의 와해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 데이비드 보위는 그들의 다음 앨범에 곡을 제공하고 프로듀서를 맡아주겠다며 멤버들에게 용기를 줬다(보위는 모트 더 후플의 열려한 팬이라고 한다). 드라마틱한 스토리 끝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1972년 앨범 < All The Young Dudes >이였다. 보위가 작곡한 ''All the young dudes''는 영국 차트 3위에 오르는 놀라운 성적을 일궈내면서 그들을 무명의 그늘에서 탈출시켰다. 보위의 향기가 자극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이 곡은 동성애자에 대한 노래로 글램 록 시대의 찬가로 불려지고 있다. 헤비 록과 글램 록의 사운드로 새 단장한 그들은 1973년 < Mott >와 1974년 < Hoople >로 또 한번의 인기 행진을 이뤄냈다. 수록곡 ''All the way from memphis''(10위), ''Roll away the stone''(8위)이 스매시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들은 글램 록의 선두 주자 중 하나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1972년 말 버든 앨런의 탈퇴, 1973년 믹 랄프스의 배드 컴퍼니(Bad Company) 조직 등으로 인해 모트 앤 후플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고, 급기야 프론트 맨 이안 헌터마저도 보위의 사이드맨 믹 론슨(Mick Ronson)과 함께 듀오 활동을 위해 1974년 팀을 떠나갔다. 남은 멤버들은 라인업을 재정비하고 몇 장의 음반을 발표했지만, 스스로의 길을 알고 1976년 마침표를 찍었다. 억세게 운이 없는 그룹의 멋있는 피날레였다.
출연 : Dana Gillespie (다나 길레스피)
출연 : Tony Visconti (토니 비스콘티)
미국 음반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이다. 그는 무디 블루스, 티렉스, 신 리지, 스파크스, 크리스틴 영, 모리세이, 데이비드 보위를 포함한 다양한 류의 저명한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한 바 있다. 특히 데이비드 보위의 경우 〈Space Oddity〉와 〈Reality〉를 포함한 다수의 앨범을 제작했다. 그가 가장 최근 출간한 서적으로는 『The Autobiography: Bowie, Bolan and the Brookly... 미국 음반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이다. 그는 무디 블루스, 티렉스, 신 리지, 스파크스, 크리스틴 영, 모리세이, 데이비드 보위를 포함한 다양한 류의 저명한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한 바 있다. 특히 데이비드 보위의 경우 〈Space Oddity〉와 〈Reality〉를 포함한 다수의 앨범을 제작했다. 그가 가장 최근 출간한 서적으로는 『The Autobiography: Bowie, Bolan and the Brooklyn Bo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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