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얼굴, 20세기 거대과학이 낳은 사회적 논쟁
지난 세기 과학은 인류에게 빛과 그림자를 함께 드리웠다. 현대 과학기술은 생활의 편의를 제공하고 질병을 퇴치하는 등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우주개발과 생명공학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그러나 한편으로 과학기술이 전쟁에 이용됨으로써 인간을 살상하는가 하면 생태계를 파괴해 인간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기도 한다. 현대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주목해온 소장 과학기술사회학(STS) 연구자 김명진이 쓴 『야누스의 과학』은 20세기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중요한 과학기술―핵과학, 컴퓨터, 인터넷, 우주개발, 생명공학 등―의 발전 과정을 정리하고, 그것이 사회나 시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것임을 강조한다. 또한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제들―지구온난화, 원자폭탄, 유전자 변이, 환경호르몬 등―을 고찰하면서 이 문제들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둘러싼 치열한 사회적 논쟁들이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과학은 위기에 대해 해답을 마련할 수 있는가
20세기 과학활동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 국가나 기업의 재정 지원을 통해 관련 종사자의 수, 비용의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양적으로 팽창했다. 그로 인해 대형기기를 중심으로 수백, 수천 명의 전문 연구자와 엔지니어가 참여하여 하나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거대과학(Big Science)이 탄생했다. 과학기술의 어두운 면이 부각되기 전까지 과학은 대중에게 혜택과 희망, 무한한 낙관을 심어주었으나, 점차 과학과 연관된 사회적 논쟁들이 치열해지면서 과학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다수에게 무차별적으로 피해를 미치는 엄청난 파괴력과 환경오염 등의 전지구적 부작용, 새로운 기술이 가져온 윤리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자체가 내포한 위험성을 전문가들조차 예견할 수 없는 과학기술의 불확실성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필연적으로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요청한다. 과학기술의 개발과 소비, 규제의 전 과정에 일반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위험 요소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냉전, 자본이 낳은 20세기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
20세기 과학기술이 그처럼 급격하고 눈부시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로부터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이후의 냉전이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 계기로 각국 정부와 군대의 과학기술 개발 지원이 본격화되었고 국가간의 경쟁이 심화되었다. 국가가 과학기술 지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은 과학이 주는 유용성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켰으며,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은 안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수소폭탄을 개발해 군비 경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일반대중들은 전쟁과 파괴를 경험하면서 점차 과학기술이 지닌 위험성을 깨닫게 되었고, 이를 안전하고 평화적으로 조절,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또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또한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정치화된 과학기술의 한계
전쟁과 냉전은 순수한 자연적 ‘발견’의 영역으로 인식되어온 분야의 과학―우주개발과 천문학, 지구과학 등― 발전도 가져왔다. 미사일과 로켓의 군사적 유용성이 확인되자 이는 한편으로 우주비행과 개발에 대한 꿈을 실현시켰다. 핵개발에서 미국에 뒤진 소련은 우주개발에 뛰어들면서 냉전기의 세력 재편을 시도했다. 이는 유용성을 넘어 체제 경쟁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 천문학의 발전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레이더 연구를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판구조론으로 대표되는 지구과학의 이론적 혁명 역시 냉전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질 현상과 지각 운동 등의 원인을 밝히는 판구조론이 군사 작전이나 자원 탐사에 긴요하게 활용된 것이다. 엄청난 비용과 규모, 첨단 장비를 기반으로 하는 이들 거대과학 분야는 냉전 해체 후 경제성과 유용성 면에서 그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환경문제를 둘러싼 논쟁들: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환경호르몬
인류는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해 자연을 개발하고 통제할 수 있었고, 나아가 자연물의 위력을 능가하는 인공적인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합성살충제는 20세기 내내 전 세계적으로 쓰였으며, 해충을 구제하고 이것이 매개하는 질병을 퇴치시켰다. 그러나 점차 합성살충제가 해충 외의 야생생물이나 사람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기에는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당시 정치권, 언론, 기업, 과학계 등은 이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이 책은 일반대중들에게 합성살충제의 위험성을 널리 알렸으며 나아가 현대 환경운동을 촉발시켰다. 이후 오존층 파괴 논쟁이나 지구온난화, 환경호르몬 문제가 대두되면서 환경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협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과학적 가설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면서 국제적 협력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디지털 컴퓨터의 등장과 네트워크 사회의 탄생
20세기 후반 컴퓨터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후 정보 혁명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군사적 필요성으로 생긴 초기 컴퓨터는 발전을 거듭했고, 1970년대 이후 퍼스널 컴퓨터(PC)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PC의 대중화에는 컴퓨터 애호가들의 취미 문화와 거대기업 IBM에 맞선 컴퓨터 해방운동가들의 저항 문화의 힘이 컸다. 1990년대 중반 PC와 PC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인터넷 활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인터넷은 개인들의 정보 접근과 의사소통, 여론 형성 등을 용이하게 만들었으며 기존 매체의 역할을 압도하는가 하면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 나아가 특정 사안이나 주장 등을 공유하는 가상공동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소비자 정보 수집과 전자 프라이버시 문제, 인터넷 접근도 차이가 야기한 인터넷 격차, 지적재산권 분쟁 등 인터넷의 확산이 가져온 문제점과 쟁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멋진 신세계? 생명공학의 빛과 어둠
생명공학은 질병 치료와 생명 연장, 엄청난 부가가치 창출이 예견되면서 21세기 첨단 과학기술의 총아로 떠올랐다. 1950년대 중반 DNA의 구조가 밝혀진 후 이질적 종(種) 사이의 DNA를 조합하여 새로운 DNA를 만들어내는 DNA 재조합 기법이 고안되었다. 이 기법은 인간에게 유용한 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반면 새로운 병원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왔다. 나아가 과학자들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신 노릇’을 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논란과 유전자변형(GM) 식품을 둘러싼 안전성 논란도 뜨겁다. 이밖에도 복제 기술이 고안되어 동물 복제가 성공을 거두면서 이 기술이 의료적 목적이 아닌 우생학적으로 악용될 소지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