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 건진 최상의 것이다.”
내게 축구는 둥근 공을 통해 세계의 어디로든 가고 누구와도 만날 수 있는 자유이며,
스크린을 넘어 광막한 우주를 사유하는 감각적이며 지적인 욕망이다.
-본문에서
시집과 소설 출간을 무한정 미루게 할 정도로 시인 최영미의 축구앓이는 유명하고 또 지독했다. 그렇게 축구에 미쳐서 밤을 낮 삼아 지낸 지 10년. 축구 해설가를 능가하는 전문지식과 통찰력을 겸비한 그가 축구 경기에 빗대어 예측 불허의 삶을 읽는다. 2002년 월드컵부터 2011년 챔피언스리그까지, 이 책은 지난 10년간 시인 최영미를 사로잡아온 열정의 기록이다.
2년 만에 축구 에세이집으로 돌아온 시인 최영미
예민한 자의식이 세계와 대결하는 팽팽한 긴장을 솔직한 언어로 표현해온 시인 최영미는 에세이스트로서도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해온 빼어난 산문가다. 그가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이후 2년 만에 신작 산문집을 들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축구에 대한 그의 열렬한 사랑과 분석적 비평을 담은 축구 에세이집. 매번 ‘위험스런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그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스포츠 에세이라는 장르로 또다시 신선한 도전을 감행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시집과 소설 출간을 무한정 미루게 할 정도로 최영미 시인의 축구앓이는 유명하고 또 지독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시작된 축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십여 년이라는 기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가 있다. 국내에서 발행된 축구 관련서들을 훑고 그것도 모자라 영국에서 발행되는 『월드 사커World Soccer』를 구독하면서 축구 정보를 탐식한 것은 기본. 기회가 되면 게임의 규칙을 배우고, 자리가 만들어지면 축구를 화제로 삼고, 열 일 제쳐두고 경기를 관람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는 신문과 잡지 등에 축구에 관한 글을 본격적으로 발표하면서 축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철학을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대한축구협회로부터 한일 월드컵 공식보고서 편집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2005년에 출간된 시집 『돼지들에게』에는 ‘축구장에서 생각한 육체와 영혼’을 주제로 9편의 시를 발표했고, 2011년 초에는 『중앙일보』에 ‘시인 최영미의 유럽 축구 기행’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렇게 축구에 빠져 밤을 낮 삼아 보낸 지 십여 년. 축구 해설가 못지않은 전문지식과 통찰력을 갖춘 그가 축구 경기에 빗대어 예측 불허의 삶을 읽는다. “월드컵이 아니었다면” 좀 더 일찍 소설을 완성하고, 더 많은 시를 썼을 거라고 자책하는 그에게 축구는 “삶의 이유이자 덫”이기도 했다. 왜 그는 축구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물론 “재미있어서”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하다. “위선이 일상화된 사회”, “친교가 없고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사람에게 절대로 공을 넘겨주지 않는” 사회와 대조적으로 축구장 안에서 벌어지는 “육체의 언어는 구체적이며 솔직”하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곳으로부터만 공이 날아오는 한국 사회와 달리, 운동장에서 공은 어디서 날아올지 모른다. 예측 불가능성, 그것이 게임의 본질이다. 하여, 그를 지배해온 열정을 풀어낸 산문 27편에는 육체의 언어에 대한 환희의 기록뿐 아니라 불합리한 삶과 벌여온 치열한 고투의 기록까지 담겨 있다.
2002년 월드컵부터 2011년 챔피언스리그까지,
지난 10년간 시인 최영미를 사로잡았던 열정의 기록
이 책에는 일간지에 연재하면서 호평을 받았던 유럽 축구 기행, 지난 10년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온 월드컵 이야기와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K리그 관전기가 담겨 있다. 축구의 역사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경기 전체를 읽어내는 통찰력, 지적인 분석이 돋보이는 인물비평, 그리고 현장감 넘치는 취재기 등 축구 입문자부터 축구에 대해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에세이들이다.
규칙이나 룰이 아닌 역사와 철학을 통해 축구를 읽어내는 능력은 남다르며, 흥미롭다. 특히 그가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FC 바르셀로나의 역사는 카탈루냐의 비극과 겹쳐지면서 묘한 울림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일찌기 저자는 호나우지뉴 선수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해왔다. “어느 선수를 왜 좋아하는지, 딱 부러지게 분석할 능력”이 없다고 그는 겸손하게 말하지만,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선수 개개인의 역할을 정확히 간파해내는 글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내공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부 유럽 축구 기행
1부는 2011년 초 맨체스터-볼턴-바르셀로나-함부르크-보훔-로마를 잇는 여정을 통과하면서 저자가 만나고 보고 느낀 기록이다. 그는 유럽에서 박지성, 이청용, 손흥민, 백승호, 정대세 선수를 만나,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선수들 개개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포착해 전해준다. 이제껏 쮾기 힘들었던 선수들의 타지 적응 모습과 라이프스타일, 이상형에 이르기까지, 그가 발견해낸 것은 냉혹한 승부의 세계와 대조를 이루는 아름다운 청년들의 모습이다.
유럽 축구팬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은 2011년 챔피언스리그 관전기다. 아스널 홈구장에서 직접 관전한 아스널과 FC 바르셀로나의 16강전, 스페인과 카탈루냐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복하는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4강전, 맨유와 FC 바르셀로나의 세기의 결승전, 축구장 밖에서 벌어지는 감독들의 치열한 수사학 대결, 여성팬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외모와 언변, 축구 철학의 대결로 귀결되는 경기 내용까지, 축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수많은 매력이 서술된 부분이다.
2부 우리의 놀이터―K리그 관전기
저자가 K리그를 관전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식기 전부터다. 그러나 경기장 접근이 어려운 점, 열악한 시설, 실망스러운 경기 내용 등 유럽 축구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분위기의 K리그 관전기는 당시 한국 축구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동안 저자의 관심에서 멀어진 K리그를 다시 보게 된 것은 2010년 클럽월드컵 준결승전인 인터밀란과 성남의 경기부터다. 팬들의 관심 밖에서도 한국 축구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고 그 결과, 챔피언스리그 우승팀과 맞붙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듯,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없으면, 한국 축구는 변할 수 없다.” 2011년 한국 축구계를 발칵 뒤집은 K리그 승부 조작 사건이 바로 그 무관심의 증거일 것이다.
3부 월드컵의 추억
“미칠 수 있을 때 미치지 못하는 것도 불행한 일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3번의 월드컵에 대한 기록은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지구촌의 축제를 즐기는 저자만의 노하우를 기록한 글들이다. 각 나라 국가 대표팀의 스타일은 그 나라의 사회와 문화를 대변한다. 남미보다 유럽 선수들이 조직적인 팀플레이에 능하고, 이탈리아나 스페인 선수들의 골 세리모니는 그들의 성격만큼이나 화려하다. 네덜란드는 요란한 응원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경기에 지더라도 영국처럼 난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금전이나 지위에 대한 세속적인 욕망과는 다른 차원의 몰두. 어떤 물질적 보상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순간의 즐거움을 위하여 눈을 크게 뜨고 몸과 마음을 던지는 것. 과거를 지우고 미래를 잊고 지금 이 시간을 사는 것.” 저자는 그것이 바로 축구를 즐기는 진정한 자세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