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단 조작 사건, 그리고 40년 만의 무죄 판결
- 아버지들 나라에 대한 기록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공장 노동자, 병원 사무장을 거쳐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던 재일교포 강우규 씨는 1972년, 40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강우규 씨는 노후를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귀국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77년, ‘재일교포 실업인 간첩단’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강우규 씨를 포함한 11명이 연루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었다. 남산으로 연행된 그들은 갖은 고문과 협박으로 간첩이 되어갔다.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들은 모두 간첩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들은 법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재판장은 제1 피고인 강우규 씨에게 사형, 제2 피고인 김기오 씨에게 징역 12년, 제3 피고인 고재원 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제4 피고인 김추백 씨에게는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으나 1979년 5월에 만기 1년 3개월을 앞두고 교도소에서 쓰러져 형집행정지로 출소, 열흘 만에 사망하였다. 김성기, 강용규, 고원용, 이근만, 이오생, 김문규, 장봉일은 집행유예로 석방이 되었으나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의 굴레는 그들의 일상을 계속해서 옥죄었다. 김문규 씨는 고문 후유증을 심하게 겪다가 자살에 이르렀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오랜 기간, 지치지 않고 진실규명을 위한 싸움을 이어왔다. 그리고 2016년, 마침내 간첩단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40년 만에 드러난 진실이었다.
“고문과 협박에 못 이겨 죽지 않으려고 허위 진술했다는 30여 년 전의 피고인들의 절규를 우리 법원이 이제야 받아들이게 된 것에 대해서 피고인들에게 현재 사법부의 구성원인 저희들은 다시 한 번 반성의 말씀을 드립니다. 힘겹게 오랜 세월을 거쳐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보태어져서, 오늘의 판결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오늘의 판결이 고인들과 다른 피고인들의 상처를 모두 씻을 수 없을지라도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 2014년 12월 19일 재판장 소회 중에서
가장 평범한 이름들로 엮인 이야기, 『발부리 아래의 돌』에는 저도 모르게 간첩이 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한 열한 명의 아버지들의 이야기, 저자와 함께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해온 평범한 사람들의 10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버지들의 나라, 고단한 현대사 속에서 어느 아버지인들 그 시절의 올무를 피해갈 수 있었을까. 이제 아버지들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를 성찰하기 위함이며, 애도를 나누는 것은 희망을 키우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부고를 다시 쓴다
-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아버지들을 위한 비망록
“아버지는 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낯선 사람들에게 끌려갔고,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숨을 거두셨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십 대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난 후에야 아버지가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돌아가셨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사건 피해자들을 만났고, 관련 기록을 모았다.” -『발부리 아래의 돌』 김호정
『발부리 아래의 돌』의 저자 김호정은 ‘재일교포 실업인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고(故) 김추백 씨의 딸이다. 저자는 사진 속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넘긴 후에야 무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너무나 갈망해온 무죄라는 한 마디. 그러나 막상 손에 쥐고 보니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진실규명이나 무죄판결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마법이 아니었다. 과거를 돌이킬 수도 없고 깊은 상처를 회복시키지도 못했다.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생생한 현재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과거의 하나로 인식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자는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제주와 일본을 오가며 사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만났고, 만 장 이상의 수사기록과 재판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수많은 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이야기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의 이야기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아픔들과 손잡는 이야기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발부리 아래의 돌』을 썼다.
“이 책은 사부곡에 머물지 않는, 뒤늦게 쓰는 아버지들 한 분, 한 분의 부고장이다. 수신인은 여전히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니는 가해자와 그들의 무심한 이웃들이다.” -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그가 여기 살았다’
- 발부리 아래의 돌 프로젝트
“저는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이 걸림돌 때문에 발을 헛디디길 바랍니다. 그리고 잠시나마 그들의 삶을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 귄터 뎀니히(Gunter Demnig)
독일의 예술가 귄터 뎀니히는 나치에 의해 탄압받고 희생당한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았던 집 앞이나 실종된 장소에 희생자의 이름, 태어난 해, 사망일 혹은 추방일, 수용소 위치 등을 새겨 넣는 ‘발부리 아래의 돌 프로젝트(Stolperstein Project)’를 시작했다. 1997년 독일 쾰른에 놓인 첫 발부리 아래의 돌 이후 20년간 유럽 18개국에 5만 3,000여 개의 ‘걸림돌’이 놓이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돌을 찾고, 이 돌 위에서 희생자들을 위한 연주를 하는 예술가들이 생기면서 유럽 전역에 발부리 아래의 돌 프로젝트가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는 무덤조차 없는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과 어두운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려는 자세, 즉 사과와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발부리 아래의 돌』을 기획하고 출간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금기의 세월을 건너 40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아내긴 했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훼손된 삶에는 상흔이 남아 있다. 이 상흔을 직면하는 것, 아픈 현대사를 직시하는 것은 은폐에 맞서고, 말소에 저항하는 일이다. 과거사에 대한 책임은 범죄자나 학살자들의 몫만이 아니다. 희생된 이들을 내 이웃으로 기억하고, 과거의 고통에 맞닿아 있는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는 것. 그런 평범한 책임감들이 다른 미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한국판 ‘발부리 아래의 돌 프로젝트’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가 우리 발부리 아래에 놓은 ‘걸림돌’에 걸려 비틀거리기를, 잠시나마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우리 곁의 이웃으로 기억하기를….
“길모퉁이 세 번째 푸른 대문 집에서, 어린 딸의 머리를 땋아주고 꽃씨를 함께 거두던 아버지가 당신 곁의 한 이웃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