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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7년 08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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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448쪽 | 562g | 135*195*30mm |
ISBN13 | 9788990982704 |
ISBN10 | 8990982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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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은 처음부터 범인과 살해 과정을 모두 밝히며 시작하는 소설이다. ‘누가, 왜, 어떻게 죽였을지’를 추적해가는 형사(혹은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의 입장에서 읽게 되는 여느 미스터리 소설과 달리 범인의 입장과 생각에 중점을 두어 ‘그가, 왜, 어떤 방식으로’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를 쫓아가며 읽게 된다. 이런 소설의 위험한 점은 범죄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이해의 영역을 허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 표지의 앞뒤로 강조되어 있는 유난스러운 사랑의 구절은 그래서 더 우려스럽게 다가왔었다. 살인자에게 낭만적인 서사를 주거나 변명거리를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려했던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었고, 어떤 면에서는 “백 퍼센트의 사랑, 백 퍼센트의 헌신”, “사랑에 인생 전부를 건 한 남자의 거대한 헌신의 이야기” 같은 문장이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에게 이 같은 감상을 남기기 위해 저자는 꽤 영리하게 판을 짠 것처럼 보이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주요 메시지를 대치시키는 구도가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설명하자면 “사람은 때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있는 것이(438p)”라는 문장에서 우리는 다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상기하게 되는데 이때 우리의 가치, 즉 우리가 받게 될 사랑은 한 사람을 ‘구원’한 경우에 한해 그 사람이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려는 만큼의 크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존재를 구원해냈으니 그것은 꽤 낭만적인 답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선한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순환 작용으로 영역을 벗어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범인이 바라는 대로 소설이 흘러가지 않다는 걸 증거로 볼 수 있다. 사랑은 위대하지만 스스로 살인을 저지르지는 못한다. “그 쓰임새를 결정하는 것은 톱니바퀴 자신(330p)”이라는 저자의 또 다른 메시지는 이런 식으로, 범죄 앞에 분명하게 선을 긋는 방식으로 등장하여 살인자가 사랑꾼으로 둔갑하여 길이길이 남으려는 시도를 차단한다. 이 지점이 나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이 별로였다는 말을 할 때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읽어봤냐는 질문을 들었었다. 여러 차례 추천을 받기도 했던 걸 보면 저자의 작품 중 꽤 수작인 건 분명한 듯하다. 너무 유명해서 싫다고 기피했던 시간들이 좀 아까워지기도 했으니 나도 딱히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추리소설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도 사실이고. 솔직히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내는 수수께끼보다 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이해하려는 시도 같은 데 관심이 더 많다. 우리가 무심히 놓치며 사는 인간의 외로움이나 무정함 같은 것에 대해 그는 정말 쉽게 읽히도록 쓰면서도 공감을 잘 이끌어낸다. 사회문제에 늘 촉각을 세우고 있는 점도 좋다.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주관에 너무 치우친 채 수사를 진행하는 형사라든지 수학 교육을 점점 의미 없게 만들고 있는 교육 현장, 스토킹에 시달려 경찰에 신고해도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여성의 어려움 등의 문제를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소설에서 이런 대목을 만나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게 된다. 정말 좋아하는 소설들에는 늘 이런 구간이 존재했던 것 같다. 멈춰, 그리고 생각하기, 나름의 답 내리기. 모르면 한번 검색만이라도 해보기.
의외로 좋았던 건 갈릴레오 탐정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탐정이 애칭까지 달고 등장을 하면 기대감이 식는다. 작가가 그에게 모든 능력치를 때려붓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주인공이라면 응당 좋은 아이템은 다 장착하고 나와야 마땅한데, 희한하게도 나는 작정하고 좋은 걸 다 주워 입고 나온 주인공에게는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뭔가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다. 이 소설에 나오는 탐정, 유가와 마나부는 심지어 천재 물리학자였다. (천재 물리학자와 천재 수학자의 두뇌 싸움이라는 카피가 띠지에 버젓이 쓰여 있지만 사실 이 문구는 나를 이 책으로부터 더 멀리 달아나게 했다. 물리, 수학과 나는 그런 사이다. 하지만 우려했던(?) 내용이 없어서 안심이었다.) 너는 또 얼마나 나댈 거지, 삐딱한 눈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별반 나대지를 않아서 당황했다. 가끔 주인공이 할 법한 죽여주는 제스처를 시전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공고히 하면서도 수상할 정도로 신중하고 은밀히 움직이고 진지하며 침착했다. 그가 캐내고 있는 사건의 전말이 자신의 유일한 호적수이자 존경하는 친구를 잃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걸 상기하면 그의 태도는 달리 읽힌다. 얼마나 상대를 존중하고 있는지, 그를 향한 그의 우정이 얼마나 진심인지가 절절히 느껴진다. 긴긴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는 탐정들은 대부분 이런 공통점을 가지는 것 같다. 머릿속으로 들어와 뛰어노는 줄 알았더니 돌아보면 마음을 파헤쳐놓고 달아나고 있다. 다음 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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