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 아저씨 따라 조선 구경하기를 읽고
경남남해초등학교6-* 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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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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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YES24 어린이 독후감 대회
하멜 아저씨 따라 조선 구경하기를 읽고
남해초 6학년 4반
김 서 연
12살 소년 데니스 호버첸은 하멜 아저씨와 그 외 모든 사람을 합쳐 6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본 나가사키로 배를 타고 가고 있었다. 항해는 순조로웠다. 그 다음날도 계속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폭풍우라니,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끔찍하리라 생각되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분주해졌다. 정신 없이 물도 퍼냈지만 소용없었다. . 결국 배는 부서지고, 하멜아저씨와 데니스를 포함한 36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은 퀠파트 섬. 즉,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그래도 난, 그것이 다행이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비록 일본은 가지 못했지만 살아 남았고, 그 넓은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것보다는 제주도에라도 도착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돛을 이용해서 천막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일을 지내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러면서 목사를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때 제주도에 있던 우리나라 목사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그 네덜란드 상인들이 본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였을까 궁금했기에 얼른 책을 넘겨보았다. 그 목사는 이원진 목사였는데, 제법 좋은 사람 같았다, 임금님께 보낸 편지의 답을 기다리면서 모두들 초조해 했으나 이원진 목사가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임금은 그들이 네덜란드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일본에 가는 것 역시. 나는 어렴풋이 생각 해 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얼마나 싸워댔던가. 그리하여 하멜과 그 일원은, 제주도에 머물렀는데 그러면서 목사가 바뀌었다. 이원진 목사의 3년 임기가 끝났 던 것이었다. 새 목사는 별로 좋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임금님의 편지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여 볼기를 맞기도 했다,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이 그렇게 남을 못되게 구는 줄은 몰랐었다. 적어도 그 때 그 사람들이. 약간은 실망이 되었다. 임금님께서는 서울로 올라오라 하셨고 갔으나, 돌아가라고 하거나 그런 말은 물론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나날을 보냈다. 사람들의 눈길이 동물원의 동물 보듯이 하멜과 그 일행을 보았다. 나를 그런 식으로 봤다면 기분 상해서 그 자리에 있기조차 싫었을 텐데. 그런데 나라에 흉년이 들었고 많을 쌀을 한 고을에서 모두 주기에는 힘들었다. 그러했기에 여럿이 나뉘어졌다.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우리나라도 제법 넓은데. 하멜 일행은 나뉘어져 일부는 전라도로 가게되었는데, 거기서 좋은 사령관도 만나고 나쁜 사령관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한해 한해가 지나갔다. 아마 그들은 집이 몹시 그리울 것이고 그들의 나라가 그리웠을 것이다. 그러했기에 그들은 탈출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작은 배를 사서 그 곳에 식량과 여러 가지를 챙겼다. 그리고 드디어 탈출의 날이 다가왔다. 그렇게 준비를 했으니 이번에는 성공하리라 생각했다. 비록 배는 작았지만. 그들은 일본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성공했다.
그들은 드디어 일본으로 가게 되었고 그러면서 네덜란드로 돌아갈 지도 몰랐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랬다. 자기 땅을 밟지 못한 것이 너무도 오래되었으니까. 비록 나가사키는 아니었지만 일본 땅을 밟게 된 그들은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그것이 천황에게 들려지게 되었고 1년 만에 일본 역시 빠져 나와 네덜란드,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한국에 지내면서 같이 다닌 36명중에서도 몇 명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돌림병도 있었고 감옥에 간 자도 있었음으로. 하지만 다시 그들은 땅을 밟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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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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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YES24 어린이 독후감 대회
<독서감상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
(하멜 아저씨 따라 조선 구경하기를 읽고)
남해초 6학년 4반
김 슬기
방학 때쯤일까, 선생님께서 건내주신 책에는 '하멜 아저씨 따라 조선 구경하기'란 책이 있었다. 표지를 보아 하니, 그 사람은 네덜란드 사람들이었나 보다. 네덜란드에서 본 조선은 어떠했을지 궁금했다.
12살 소년 데니스 호버첸은 하멜 아저씨와 그 외 모든 사람을 합쳐 6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본 나가사키로 배를 타고 가고 있었다. 항해는 순조로웠다. 그 다음날도 계속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폭풍우라니,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끔찍하리라 생각되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분주해졌다. 정신 없이 물도 퍼냈지만 소용없었다. 만약 내가 거기 있었다면 나 역시 물을 퍼고 있었겠지. 결국 배는 부서지고, 하멜아저씨와 데니스를 포함한 36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그 곳에서 죽은 사람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렇게 그들은 퀠파트 섬. 즉,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그래도 난, 그것이 다행이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비록 일본은 가지 못했지만 살아 남았고, 그 넓은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것보다는 제주도에라도 도착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돛을 이용해서 천막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일을 지내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러면서 목사를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때 제주도에 있던 우리나라 목사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그 네덜란드 상인들이 본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였을까 궁금했기에 얼른 책을 넘겨보았다. 그 목사는 이원진 목사였는데, 제법 좋은 사람 같았다, 임금님께 보낸 편지의 답을 기다리면서 모두들 초조해 했으나 이원진 목사가 위로해 주었다, 정말이지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임금은 그들이 네덜란드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일본에 가는 것 역시. 나는 어렴풋이 생각 해 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얼마나 싸워댔던가. 그리하여 하멜과 그 일원은, 제주도에 머물렀는데 그러면서 목사가 바뀌었다. 이원진 목사의 3년 임기가 끝났 던 것이었다. 새 목사는 별로 좋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긴, 세상엔 정말 좋은 사람도 있지만 그와 반대인 사람도 있지 않는가.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임금님의 편지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여 볼기를 맞기도 했다,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이 그렇게 남을 못되게 구는 줄은 몰랐었다. 적어도 그 때 그 사람들이. 약간은 실망이 되었다. 임금님께서는 서울로 올라오라 하셨고 갔으나, 돌아가라고 하거나 그런 말은 물론 하지 않았다. 단지 여기서 지낼 때 살집과 먹을 것 등을 대어 준다고 했을 뿐. 우리나라 사람들이 굳이 네덜란드인을 돌려보내지 않으려는 점이 왜 그런지 궁금했지만 적당히 생각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나날을 보냈다. 사람들의 눈길이 동물원의 동물 보듯이 하멜과 그 일행을 보았다. 나를 그런 식으로 봤다면 기분 상해서 그 자리에 있기조차 싫었을 텐데. 그런데 나라에 흉년이 들었고 많을 쌀을 한 고을에서 모두 주기에는 힘들었다. 그러했기에 여럿이 나뉘어졌다.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우리나라도 제법 넓은데. 하멜 일행은 나뉘어져 일부는 전라도로 가게되었는데, 거기서 좋은 사령관도 만나고 나쁜 사령관도 만나게 되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만약에 사람들이 날 노예처럼 부려먹는다면 참지 못해 주저앉고 말았을 지 모른다.
그렇게 한해 한해가 지나갔다. 아마 그들은 집이 몹시 그리울 것이고 그들의 나라가 그리웠을 것이다. 그러했기에 그들은 탈출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작은 배를 사서 그 곳에 식량과 여러 가지를 챙겼다. 그리고 드디어 탈출의 날이 다가왔다. 그렇게 준비를 했으니 이번에는 성공하리라 생각했다. 비록 배는 작았지만. 그들은 일본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성공했다.
그들은 드디어 일본으로 가게 되었고 그러면서 네덜란드로 돌아갈 지도 몰랐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랬다. 자기 땅을 밟지 못한 것이 너무도 오래되었으니까. 비록 나가사키는 아니었지만 일본 땅을 밟게 된 그들은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그것이 천황에게 들려지게 되었고 1년 만에 일본 역시 빠져 나와 네덜란드,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한국에 지내면서 같이 다닌 36명중에서도 몇 명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돌림병도 있었고 감옥에 간 자도 있었음으로. 하지만 다시 그들은 땅을 밟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종 당한지 13년이나 지났고 하멜이 쓴 한국 표류기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치의 월급 밖에 받지 못했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들은 13∼14년간 고생 끝에 돌아온 것인데……. 하지만 하멜이 쓴 한국 표류기는 제법 인기가 많았고 그들은 15년치의 월급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항해자임으로 더욱 더 힘든 바닷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알게되고,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극복해 나갔음으로 잘 해나갈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한 것이 제법 있었다. 지금 네덜란드 사람들은 지금 한국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만약에 그때 그 네덜란드 사람들을 만났으면 어떻게 됐을 지도 궁금했다. 어찌됐든,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네덜란드의 땅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 한국의 땅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김슬기 학생의 담임선생님입니다. 곰 같이 열심히 하는 우리 슬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