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전편을 완벽하게 해독한 국내 최초의 완역본.
난중일기 최고 전문가가 연구 성과를 모두 반영한 완결판.
새로운 일기 36일치와 금토패문 및 문헌고증 내용 수록.
《국가기록유산》 난중일기 원문의 오타까지 모두 수정 반영
교감완역 난중일기 교과서(중고교) 수록(2011-2017) 총 18종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생한 7년 동안 참전하면서 직접 보고 들은 체험 사실들을 《난중일기》에 적었다. 최고 지휘관으로서 남긴 이러한 기록은 세계 역사상 그 어디에도 유례를 찾아 볼 수가 없다. 그의 업적만큼이나 위대한 《난중일기》가 드디어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친필 초고본《난중일기》는 전편이 알아보기 어려운 초서로 작성되어 있어 후대의 판본에 문제점이 매우 많았다. 조선 정조(正祖) 19년(1795)에 이를 정자로 해독하여 《이충무공전서》의 《난중일기》가 나오게 되었지만, 그 원문에 상당한 누락과 오독이 있게 되었다. 그 후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다시 해독하여 《난중일기초》가 나왔는데, 이는 전서본보다 진전된 작업이었으나 해독상의 문제점이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초서와 고전 전문가인 노승석 소장이 2004년 친필 초고본 《난중일기》전편을 해독하였고, 2005년 전서본과 《난중일기초》의 오류를 교감(校勘)하여 《난중일기》완역본(동아일보사)을 간행하였다. 그후 2007년 《충무공유사》를 해독하여 난중일기 초록내용이 들어있는 〈일기초(日記抄)〉에서 새로운 일기 32일치를 발굴하였다. 여기에는 이순신의 개인적인 감정은 물론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이〈일기초〉내용으로 초고본과 이본(異本)의 오류를 바로잡고 정본화된 원문을 새롭게 만들어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를 토대로 2010년 교감완역본(민음사)을 간행하였다. 2013년 이순신이 《삼국지연의》에서 인용한 글귀를 《난중일기》에서 처음으로 찾아냈는데, 바로 국가는 어려운 때일수록 항상 인재가 필요하고 전쟁대비를 위해 국방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이순신은 이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일기에 적어 둔 것이다. 또한 벽초(碧初) 홍명희(洪明熹)의 아들 홍기문(洪起文)이 1955년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난중일기》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는 최초 한글번역본으로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1968년 이은상이 최초로 난중일기를 번역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2014년 이러한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증보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출간하였다. 2015년 고상안의 《태촌집》에 들어있는 〈충무공난중일기〉9일 중 새로운 3일 치를 찾아 원문에 합본하여《종합교감 난중일기 정본》(원문책자)를 간행하였다. 최근에는 약포(藥圃) 정탁(鄭琢)의 《임진기록》에서 이순신이 1594년 3월 10일에 작성한 장계 초본 1편〈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장계초(三道水軍統制使李舜臣狀啓草)〉을 찾아 명나라 담종인의 금토패문을 발굴했다. 이는 기존에 번역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다. 또한 한효순의 《월탄연보(月灘年譜)》에서 이순신이 무술년(1598) 2월 고금도해전을 치를 당시 조선수군의 배 40척이 나오게 된 근거를 찾았다.
특히 이번에 간행한 《교감완역 난중일기》에는 2005년 국가기록유산(문화재청) 사이트에 올려진 원문상의 오타를 바로잡은 내용도 이미 수록하여 반영하였고, 새로운 난중일기 원문책자인 《교감원문 난중일기》를 별도로 간행했다.(2017, 여해) 이 원문 책자와 함께 번역서를 비교하면 읽는다면 보다 더 의미 있는 난중일기 독서가 될 것이다. 또한 기존의 활자본 판독본과 수많은 번역서들의 오류가 어떤 건지도 확인이 될 것이다. 기존의 증보판과 다르게 개정판에 새롭게 반영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순신의 휘하 배흥립(裵興立 1546~1608)의 문집인 《동포기행록(東圃紀行錄)》〈잡록〉의 《난중일기》에서 초록한 일기 6일치를 찾아 배흥립과 관련한 1일치를 반영했다. 지금까지 다른 이본 중에서 새로 발굴한 일기는 이를 포함하여 모두 36일치이다. 초고본에서 새로 해독한 내용도 있다. 또한 《충무공유사》의 〈일기초〉를 〈무술일기〉일부내용이나마 국내 최초로 소개하고 해독한 사람이 설의식과 이은상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밝혔다. 그 외 문헌고증을 통해 명칭을 새로 밝힌 내용이 있다. 예로 유성룡(柳成龍)이 이순신에게 보내준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의 책에 대해 새롭게 밝혔다. 예로 정유년 8월 11자의 양산항(梁山杭)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인물인데, 기존에는 양산원(梁山沅)으로 잘못되어 있었다. 갑오년 7월 28일자의 사벽(沙壁)을 고증했는데, 사벽은 모래에 말린 말똥을 섞어 반죽하여 바른 벽이다. 용어에 관하여 새로 밝힌 내용들도 다수이며 인명과 지명, 용어 등을 새롭게 교감한 사례는 20여 건이고 새로 보완한 내용은 각주로 처리했는데 기존보다 300여 개가 늘었다. 부록에는 명나라 담종인의 금토패문과 한효순의 《월탄연보(月灘年譜)》원문 및 번역문을 수록했다. 또한 이번에는 《난중일기》해독 과정에서 다루어진 주요 교감 내용들을 정리한 교감기(校勘記)와 교감사항을 일목요연하게 목록화하여 정리한 교감대조표를 수록하였다.
특히 교감한 한 사례로서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간행한 《난중일기초》의 병신년 9월 14일자에 “女眞卄”, “女眞?”이라는 글귀가 있었는데, 여진(女眞) 다음의 글자는 각각 “스물입(卄)”, “서른삽(?)”자이다. 이 두 글자는 모두 오독한 글자이기 때문에 이대로 해석하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난중일기》에는 인명 뒤에 숫자를 적은 예가 전혀 없고, “스물입(卄)”, “서른삽(?)”자로 보이는 이 두 글자는 교감한 결과 모두 공(共)자를 변형된 형태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이미 고전관련 학계에 보고되어 인정받았다. 《난중일기》에는 공(共)자가 72회 나오는데, 인명 뒤에 共자를 적은 예가 종종 보인다. 그러함에도 후대의 번역서에는 간혹 일본인이 해독한 “스물입(卄)”, “서른삽(?)”자를 근거하여 숫자로 오역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주로 초서나 고전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가의 책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모두 반영하여 간행한 개정판 《교감완역 난중일기》는 학술적인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특히 《난중일기》에 나오는 미상의 명칭들에 대해 각 지방의 읍지와 지리지 등의 문헌으로 철저한 고증을 하였다. 여기에는 새로 발굴한 내용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난중일기》원문은 직역하되 알기 쉽게 표현하였고, 오류를 바로잡은 완벽한 원문내용에 용어에 대한 문헌고증까지 더하여 《난중일기》의 미상 오독을 모두 교감한 내용 200여건을 모두 반영하였다. 이 책이 나온 이후에 나온 대부분의 난중일기 책들은 이 발굴 내용의 영향을 받은 것이 현실인데, 이러한 점에서 개정판《교감완역 난중일기》은 국내최고의 번역서라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