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의도
갑골문과 금문의 대가인 시라카와 박사가 연구한 형상문자의 세계
이 책은 중국 갑골문과 금문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박사가 회갑을 맞은 해인 1970년 펴낸 첫 번째 저작물이다. 시라카와 박사는 이 책을 통해 한자는 주술적ㆍ종교적 의미를 형상화한 상형문자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고문자학 연구의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대 중국의 민속과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한자의 탄생 과정과 배경을 설명하는 이 책은 시라카와 박사의 독창적인 학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이 책의 첫구절은 『신약성경』의 「요한복음서」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태초에 말이 있었고, 그 말은 곧 신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어서 문자가 있었다. 문자는 하느님과 함께 있었으니 문자가 곧 하느님이다”라는 말로 원시 문자는 신의 말이며, 아울러 신과 함께 존재했던 말을 형태화하고 현재화하기 위해 탄생했음을 밝히고 있다.
시라카와 박사에 따르면 문자는 원래 신과 소통하고 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자 신의 대리인인 왕의 신성성과 권위의 확립을 돕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즉 샤먼의 우두머리이자 신의 대리인인 왕의 신성한 능력과 주술적인 능력을 훗날까지 전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한자를 창안했다는 것이다.
나뭇가지에 신에게 기원하는 글을 담아 걸다
한자의 성립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300~3400년 전의 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의 고대 국가인 은나라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갑골문은 대개 점을 친 내용인 복사卜辭를 기록하고 있다. 시라카와 박사는 이 복사가 고대 중국인의 주술의례를 형상화한 상형문자라고 주장한다. 시라카와 박사의 연구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ㅂ’의 발견이다. 이전까지 한자 口는 대개 ‘입 구’ 자로 해석되어 왔다. 후한 때 허신이 쓴 『설문해자』에도 告(고할 고)는 소가 입을 갖다 대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뜻으로 풀이되어 있다.
그런데 시라카와 박사는 口에는 ‘입 구’ 외에도 ‘ㅂ'의 의미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한자 ㅂ은 인간이 신에게 무엇인가를 기원하는 글을 담아놓은 그릇을 형상화한 상형문자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告 자는 인간이 신에게 무엇인가를 고하는 형태를 보여주는 상형문자로 풀이한다. 즉 告 자의 윗부분은 나뭇가지를 형상화한 것이고, 아래의 ㅂ은 그릇을 나타내기 때문에 나뭇가지에 신에게 기원하는 글을 담은 그릇을 걸어놓은 것을 뜻하는 글자라는 것이다.
시라카와 박사는 고대의 말처럼 고대의 문자에도 신들과 소통했던 신화 세계의 흔적이 남아있고, 그것이 한자가 주술적 종교적 의미를 가진 상형문자로 탄생한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한자의 기원을 살피는 것은 한자가 성립되었던 시대를 산 사람들의 생활 풍습과 사유체계를 경험하는 일이다. 이것은 한자가 원래 형성되었을 무렵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시라카와 박사는 이러한 갑골문과 금문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삼천수백 년 이전에 살았던 고대인의 사유와 민속과 역사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 책의 내용
중국 은나라의 민속과 주술, 종교를 토대로 발전한 형상문자
중국의 은나라 후반기에 사용된 갑골문과 금문은 대부분 점을 친 복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당시 점복의 내용은 현재처럼 일상생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로 국가의 운영이나 왕의 행동과 안위를 묻는 것들이다. 즉 국가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신과 조상에 대한 제사, 군사행동, 곡물의 수확과 수렵, 그리고 날씨와 재앙의 유무를 묻고 따지는 내용들이다. 제정일치를 이루었던 은나라의 왕들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의 역할과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의 수장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고대 중국의 민속과 주술, 종교에 해박한 시라카와 박사가 ㅂ의 발견을 토대로 종래의 한자 해석을 뒤집으며 한자는 주술의례의 형상화에 기원을 둔 문자이고, 또 해안 지역에서 번성했던 은나라의 고유 문자로 출발했음을 밝히고 있다.
제1장 상형문자의 논리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탄생한 한자의 시대적 배경과 상형문자의 특성을 설명한다. 즉 한자는 주술의례의 형상화를 통해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고, 또 인간의 원망을 신에게 호소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자가 사물의 형태를 본뜬 상향문자이지만 관념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형식어 등은 음이나 형태를 빌린 가차문자로 이루어졌음을 설명한다.
제2장 신화와 주술
고대 중국의 신화와 주술, 그리고 의례풍습을 전하는 갑골문에 등장하는 한자의 원래 의미를 설명한다. ?(바람 풍), 聖(성인 성), 蔑(업신여길 멸), 京(서울 경), 邊(가 변) 등 한자의 상형문자로서의 조형원리와 본래 의미를 설명하면서 당시의 민속 풍습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이 가운데 중국에서 인격이 최고로 완성된 상태를 의미하는 聖 자는 귀(耳)와 입(口) 그리고 사람(人)이 서 있는 모습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시라카와 박사는 口를 신에게 전하는 축사祝辭를 담는 그릇을 형상화한 ㅂ으로 본다. 즉 聖은 신에게 기도하고,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제3장 은 왕조의 구조
한자의 고향인 은나라의 왕들은 신을 받드는 선택된 사람으로 무당의 우두머리인 무축왕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은 왕조가 현실 권력의 실체였지만 가뭄과 홍수에 관련된 제사를 주관한 사제의 역할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왕조의 신과 조상에게 바치는 제사 체계와 군사, 그리고 지배구조와 관련된 호칭들의 유래와 본래 의미를 설명한다. 事(일 사)와 使(부릴 사)는 원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고, 使는 제사의 심부름꾼을 뜻하고, 事에도 제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學(배울 학)은 원래 군사행동과 관련이 깊은 글자로 군대가 진군하거나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의식을 베풀거나 전쟁으로 죽은 장군들의 제사도 學에서 지낸 것으로 갑골문에 등장한다.
제4장 질서의 원리
은나라 왕조의 질서 원리는 신화와 제사 체계였다. 신의 직계 자손임을 자처한 은 왕조는 신에 대한 제사를 통해 왕권의 정통성을 유지했고, 또 신의 심판과 법의 지배를 통해 국가의 질서를 유지했다.
중국 고대에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고한다(告)’고 했는데 이는 신에게 무엇인가 호소한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씨족 내부의 재판은 조상신의 신령 앞에 행해졌고, 씨족 외부와 관련된 사건을 재판했던 장소는 사직이나 신성한 나무 아래였다. 재판은 獄(옥 옥)이라고 했는데 재물로 바친 개로 부정을 씻고 신에게 맹세한다는 의미다. 坐(앉을 좌)는 사직에서 받드는 토신을 가운데 놓고 당사자가 마주앉은 형태의 글자다. 고대의 형벌로는 머리를 베는 참수형, 허리를 베어 죽이는 요참형, 두 다리를 수레에 묶어 찢어 죽이는 차열형 등 잔인한 형벌들이 많았다.
제5장 사회와 생활
전쟁과 평화, 가요와 무악, 의술과 경제에 관련된 한자의 기원을 밝히며 고대 중국의 신과 관련된 민속과 사회생활을 보여준다. 고대의 군대는 신의 뜻에 따라 행동했는데 군대를 이끌고 다른 도성을 공격하는 것을 正이라고 했고, 갑골문 복사나 금문에서는 관리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정복한 땅에서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政(다스릴 정)이라 하고, 이 직무를 맡은 사람을 正이라고 했다.
주술 능력이 담겨 있는 말을 가장 잘 나타내는 형식은 바로 노래였다. 노래라는 뜻의 歌는 哥(노래 가)에 훗날 欠(하품 흠)이 덧붙여져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그리고 歌를 주술 노래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제사나 의례에서 불렀던 노래는 말이 지닌 주술의 능력을 최고로 높여 신과 소통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제6장 사람의 일생
고대인의 출생과 혼례의식, 문신 풍습, 가족 윤리와 장례의식에 관한 한자의 기원에 대해 얘기한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産(낳을 산)이라고 했는데 본래 글자는 위에 文(무늬 문)이 붙어 있다. 文은 이마에 새겨진 문신을 형상화한 글자이고,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신이 깃들어 있다는 표시로 이마에 먹물로 x자 문신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父(아비 부)는 도끼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인데 이것은 가부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형상이다. 母(어미 모)는 젖을 드러낸 여자의 모습이다. 이 두 글자의 형상은 고대인에게 가족 윤리의 기본은 권위와 자애였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고대인들은 사람의 탄생은 육체에 영혼이 들어오는 것이었고, 죽음은 그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것이었다. 이런 사생관이 생사일여 사상으로 정립되었다. 哀(슬플 애)는 衣 가운데 ㅂ,신에게 무언가를 기원하는 글을 넣은 축고기)을 집어넣은 형상이다. 죽은 사람의 옷에 ㅂ을 놓는 것은 영혼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식이었다. 哭(울 곡)은 축고기를 여러 개 널어놓고 개를 제물로 바친 모습을 본뜬 글자다. 고대인들은 조상신에게 제사를 정성껏 모신 것은 조상의 영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