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그대가 아테네를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의 머리는 진흙창이다.
만일 그대가 그것을 보고 매혹당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멍청이다.
만일 그대가 아쉬움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면 당신의 머리는 쇳덩어리다.
한국사학자의 눈으로 본 그리스
“그 나이에 배낭여행?”이라는 우려를 한 귀로 흘려들은 채 “무책策이 상책上策”을 외치며 혈혈단신 훌쩍 인천공항을 떠난 쉰여섯 한국사학자의 우왕좌왕 좌충우돌 그리스 여행기. 그를 이끈 건 세 명의 그리스인이었고, 그가 만난 건 2,000년의 세월에도 빛바래지 않은 ‘현재의 역사’였다.
그가 경험한 그리스는 여행책자 속 정보와도 달랐고, 사람들이 누누이 읊조리던 ‘아름다운 신화의 땅’도 아니었다. 그리스에서 이 초로의 학자는 그리스가 아닌 터키를 만나고, 에게 해를 깨닫고, 유럽 문명을 조망한다. 그리고 지난 40년간 배운 역사 지식이 잘못되었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한탄과 자책도 잠시. 이내 호기심 많고 부지런한 한국사학도가 되어 쟁쟁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와 고구려 치성을 비교하고, 아르테미스 신화에서 단군 웅녀 설화를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만난 사람의 국적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민박집 여주인 한국인 ‘흑진주’, 유명 귀족 가문의 일본 여성 슈꼬, 열차 자리를 잡아준 그리스의 ‘알 파치노’, 이스탄불 지하철에서 손을 내밀어준 대만인 기요개, 터키 농가의 네 청년들…….
그리고 우리의 열혈 ‘청년’ 학자는 인천공항으로 돌아온다. 다시 가리라 기약하며.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리며 “그리스”를 입고 달고 살던 그는 “진한 코발트빛” 북한강을 보고서야 이 여행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는다.
“그랬다. 이미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에게 해의 색을 머금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단한 화강암 속에 모든 형상이 숨어 있듯이. 그러나 나는 알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다. 나의 것을 돌아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쳤다.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억새 틈새로 비치는 북한강의 물빛과 바윗돌을 보며, 이 땅의 돌과 물을 다시 느껴 보리라 다짐했다.”
‘그리스’라는 클리셰
왜 사람들은 그렇게 그리스에 가고 싶어 할까?
“나의 그리스 여행은 일정표를 짜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우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역시 신화 이야기와 역사책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막상 여행 계획을 짜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 볼 만한 음식점과 숙소를 정리해 놓은 여행서는, 지역 사정을 이해하는 데에는 유용했지만 깊이 있는 설명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또 각종 기행문들은 ‘신들도 부러워하는~’ 등의 수식어를 동원한 감상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무식이 서러워
힌국사를 전공한 사람이 왜 그렇게 그리스에 푹 빠져 있는 겁니까?
“사실 사연은 아주 간단하다. 괜한 욕심을 부려 강의 주제를 ‘세계의 역사와 문화유산’으로 부풀려 놓고 보니 조금 막막했다. 서양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무지를 덜 생각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온 후 모르는 게 더 많아졌다. 나만의 세계 여행을 계획했다가 고대 세계 문명이라도 일별하는 것으로 욕심을 줄이기로 했다. 이집트, 터키, 그리스를 며칠씩 다녀오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리스 여행 계획에서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책을 뒤지다 보니 어느 한 곳도 빼놓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평소에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음악 가운데 ‘조르바의 춤’을 즐겨 들었던 나는, 이 무렵 새삼스럽게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2박 3일짜리 그리스 여행은 넌센스
그리스를 한 달간이나 여행할 필요가?
“정확히 23박 24일이다. 왕복 비행 시간을 빼고 현지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20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리스에는 3,100개여 개의 섬이 있고, 지역에 따라 독자성이 강하다. 그러니 2박 3일 혹은 4박 5일 정도로 아테네와 주변 지역, 산토리니 섬 등을 둘러보고 그리스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그 수려한 경관에만 취하다가는 고대 문화와 그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비교 본능 발동
한국사학자의 눈에 비친 그리스.
“폐허가 된 아크로폴리스를 보자니 우리나라에서 폐찰을 답사할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익산 미륵사지, 경주 감은사지, 강릉 굴산사지 등 우리나라의 폐찰은 가히 세계적이다.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보다 규모도 훨씬 더 크고, 남아 있는 조형물도 더 세계적이다.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솔직히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대리석 조형물은 화강암으로 조성된 우리네 조형물보다 못해 보였다. 코린트 양식이 화려해 보이고 인물의 얼굴 부조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화강암으로 빚은 우리 승려들의 사리 부도, 비석 머릿돌에 새겨진 이수?首의 용 모양에 견주기는 어렵다. 아무렴.”
“처녀신인 아르테미스는 수렵의 여신이면서 결혼과 산욕, 다산의 여신이기도 하다. 이 아르테미스 제의에는 해마다 열리는 예제와 4년마다 열리는 대제가 있었는데, 제례의 주역인 소녀들은 ‘아르크토이’, 즉 ‘곰’이라고 불렸다. 곰이 처녀가 된 단군설화의 웅녀를 연상시키는 신화이다.”
신화의 나라?
“그리스가 이처럼 일찍 훌륭한 방어 시설을 갖추게 된 데에는 그만 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고대 그리스는 하루도 전쟁 없는 날이 없을 정도로 정정政情이 불안했다. 도시국가들의 패권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새로운 식민도시 건설을 위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신화의 도시’라는 아름다운 문구로 분장되는 이곳이 실은 전쟁과 생존의 처절한 현장이었다는 사실에서 새삼 문화의 이면에 버티고 있는 역사의 냉정함을 느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신전과 거주지를 만들어야 했던 그리스 사람들, 그들의 고된 삼을 생각하며 파르테논 신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유럽 문명의 원류?
“흔히 고대 그리스를 유럽 문명의 직계로 이해하는데, 사실 그리스는 유럽과는 다른 문화적 배경, 구체적으로는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기독교와 가톨릭을 바탕으로 한 ‘만들어진 유럽’과는 분명 역사적 경험이 다른 것이다. 유럽은 시리아어에서 다시 아랍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배우면서 그리스 문명을 처음 만났다. 이렇게 알게 된 그리스 문화를 꿰어 맞추는 과정을 거쳐 그리스는 유럽 문명의 원류가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에는 그리스가 없고, 유럽은 그리스의 적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
“그때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잘생긴 그리스 남자가 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처음에는 사양했으나, 정중한 태도에 못 이기는 척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그런지 리바이스 블루진으로 차려입은 그 남자가 알 파치노처럼 보였다. 이 남자가 나에게 대한민국 정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길래, 가끔 실망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는 그리스 정부에 언제나 실망한다고 했다.”
터키 사람들
“이 운전사보다 더한 터키인이 있었으니, 군인이라고 밝힌 젊은 터키 사내는 내가 오토가르에서 베르가마행 버스를 탈 때까지 옆에서 지켜 주었다. 심지어 유료 화장실 비용인 0.75리라를 대신 지불해 주기까지 했다. 너무 친절해서 나중에는 오히려 경계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는 내가 탄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배웅을 해 주었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도대체 터키인들은 왜 이리 친절하지?”
유스호스텔, 그곳의 젊은이들
“이라크 파병 후 휴가를 얻어 세계 여행에 나섰다는 이 장교와 함께 로비에서 징병제와 모병제, 학력 높은 부하 다스리기, 좋은 군인 되기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장교와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한두 명씩 여행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코넬 대학 출신이라는 미국인 크리스, 이름을 묻지 않은 일본인 대학생 3명, 한국에 15년 살았고 한국인 부인과 두 자녀와 행당동에 산다는 무역상 파키스탄인……. 일본인 학생들은 루마니아를 거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고 하고, 파키스탄인은 자기 딸들이 우리나라에서 사립 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자랑한다. 놀라운 일이다. 어디를 가든 유스호스텔에서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을 실컫 만날 수 있다. 이들과 함께 땅콩을 안주 삼아 라키에 취하였다. 그렇게 터키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갔다.”
여행 고수가 알려준 ‘팁’
“이 정도 바가지는 여행을 하면서 자주 경험한다. 처음에는 불평도 많이 했지만, 그러면 나만 손해다. 불쾌한 기분이 들어 여행을 망치기 십상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한 여행 고수가 바가지를 썼다 싶으면 바가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문화 체험비로 여기라고 충고해줬다. 그러게, 정말 나만의 특이한 체험이라고 여기니 마음이 편해졌다.”
북한강에서
“나를 그리스로 이끈 세 ‘악마’의 유혹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왜 나를 그리스로 유혹한 것일까? 그리스 여행을 통해 나 자신의 소중함을, 주변의 가치를 느끼라고 준엄히 충고하는 것 같았다. 북한강에서, 화강암에서 자신을 발견하라는 질책이었다. 델포이의 신탁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