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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영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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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영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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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섭 | 책미래 | 2016년 06월 09일 리뷰 총점8.9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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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년 06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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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45.21MB 파일/용량 안내
글자 수/페이지 수 약 9만자, 약 2.6만 단어, A4 약 57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ISBN13 979118513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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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저자 소개

저자 : 김동섭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나와 프랑스 Limoges 대학에서 석사, Paris 5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 이래 수원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에서 프랑스어학, 신화학, 문화학, 라틴어 등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까지 펴낸 책으로는 《신화의 이해》, 《언어를 통해 본 문화 이야기》, 《불어사》, 《서양 중세의 삶과 생활》, 《이름을 갖고 싶어》, 《베이비부머의 추억일기》 등이 있고, 「노르망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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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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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윌리엄 공의 영국 정복이 시작이었다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k***5 | 2016-04-10 | 신고

우연히 동네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영국의 왕실 문장에 쓰인 단어가 영어가 아니라 프랑스어인 것에서 출발한다. 왜 영국 왕실 문장에 프랑스어가 있을까.


영국 왕실 문장에 있는 'DIUE ET MON DROIT'는 '신과 나의 권리'라는 프랑스어라고 한다. 왼쪽의 사자는 잉글랜드의 상징, 오른쪽의 유니콘은 스코틀랜드의 상징이란다. 가운데 방패에서, 세 마리 사자는 잉글랜드, 붉은 사자는 스코틀랜드, 하프는 아일랜드(기네스맥주의 로고가 이 켈틱 하프다)를 나타낸단다. 붉은 사자은 창살에 갖혀있고 유니콘은 쇠사슬에 묶여있다. 스코틀랜드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싶은 잉글랜드의 바람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세계사 시간에 대략적인 서양의 역사를 배운다. 그것도 나름 흥미로웠다. '권리장전'이라는 새로운 단어도 들어봤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100년 전쟁만 언급했을 뿐 그 내막을 자세히 들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던 차에 나는 북유럽에 관심이 갔고 그들의 조상이 바이킹이었다는 것에 관심이 이어졌다. 바이킹이 영국을 정복했다는 것에 놀랐었다.


이 책을 보니, 바이킹은 영국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도 접근했었다. 그리고 바이킹의 수장 롤로는 프랑크 왕(샤를 3세)의 봉신(신하)이 되는 조건으로 '노르망디'라는 영토를 지배하게 된다(서기 911년). 그리고 그 롤로의 후손인 윌리엄은 1066년 영국(=잉글랜드)의 왕위를 요구한다. 이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알고 보니, 영국은 이미 엥글로족과 섹슨족이라는 이방인들에 의해 점령당하고, 토착세력인 켈트족은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로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바이킹들의 침략으로 왕조가 바뀌기도 했던 것 같다. 즉, 영국 왕족들은 바이킹의 피가 섞여 있었을 것이다. 1066년 후계자 없이 죽은 영국의 왕 에드워드의 어머니가 노르망디 출신이었다고 한다.


즉, 영국과 프랑스 등 이 당시 서유럽의 왕과 귀족들은 얼키고설킨 복잡한 혈연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의 왕족이나 귀족은 두 세 다리만 건너면 친척 관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당시는 국가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라 결혼에 따라서 지배하는 영토의 크기가 바뀌었을 것이다(신부가 지참금으로 다스리던 영토를 가져갔다고 한다). 윌리엄은 1066년 무력으로 영국을 굴복시키고 영국의 왕이 되었다. 이것이 영어가 프랑스어와 동거하게 되는 계기이다.


이제부터 윌리엄은 (조상인 롤로때부터 다스리던) 노르망디 뿐만 아니라 바다건너 영국까지 다스리게 되었다. 즉, 롤로가 프랑크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시절과는 달라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윌리엄을 포함한 그 후손은 일년에 두 번 프랑스에 가서 신하의 예를 보였다고 한다(한번 봉신은 영원한 봉신). 당시 영국 쪽에서는 굴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100년 전쟁의 도화선이 아니었을까?


하여튼, 이렇게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작으로 인하여 영국의 엥글로-색슨 왕조는 무너진다. 그런데 영국을 지배하게 된 윌리엄을 포함한 새로운 왕족은 (덴마크어는 이미 잊어버리고) 프랑스어만 썼다. 따라서 이제부터 영국의 상류층들은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다. 최소한 1066년부터 1399년까지 333년동안 프랑스어는 영국에서 상류층의 언어로 사용되며 영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알리에노르라는 여성이 눈에 띤다. 알리에노르는 프랑스의 아키텐 공작의 딸로 태어나 광활한 영지를 물려받는다. 그녀는 프랑스 왕족 루이 7세와 결혼했다가 파혼한다. 그리고 영국의 왕 헨리 2세와 결혼한다. 헨리 2세는 영국 뿐만 아니라 노르망디 공작령(어머니 마틸다), 앙주와 멘 백작령(조부인 앙주 백작 조프루아), 아키텐 공작령과 푸아투 백작령(왕비 알레에노르)도 다스리게 된다. 이것이 플랜태저넷 제국이라고 한다. 프랑스 왕이 다스리는 영토의 절반 이상이 헨리 2세가 다스리게 되었다. 결혼할 때 신부가 지참금으로 자신의 영지를 가져가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알리에노르의 아들 존왕은 노르망디를 프랑스의 왕 필립 2세에게 빼앗기고 만다(1204년).


그리고 존왕의 후손인 에드워드 3세는 (그의 머나먼 조상인 노르망디 공작이었던 윌리엄처럼) 1340년에 프랑스 왕위를 요구하며 100년 전쟁을 일으킨다(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전쟁은 많은 것들을 바뀌놓는다. 전쟁을 통하여 영국과 프랑스는 '국가'라는 개념이 생긴다. 특히, 영국의 지배층에서 영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다. 드디어 영국에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왕(헨리 4세)이 생기기 시작한다.


1066년부터 300년이 넘는 기간동안 프랑스어는 영국에서 영어 위에 군림했었다(지배당하는 건 백성이나 언어나 비슷하다). 윌리엄의 영국정복 이후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을테지만 영어만큼 변화를 많이 겪은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영어의 어휘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물론, 영어 고유어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프랑스어가 대체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예, lyft->air). 언어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같다. 혼혈을 통해 더 다양해지고 상처입고 의미가 변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추가되기도 한다. 영어가 지금처럼 세계공용어의 위치가 된 것은 100년 전쟁이 끝나고 영국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해양에 진출하고 식민지건설에서 프랑스에 승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당시 엘리자베스, 빅토리아 라는 여왕이 있었음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윌리엄의 영국정복 이후로 윌리엄의 자손들이 끊이지 않고 영국을 다스리고 있다고 한다(1066년 이후로 2016년 지금까지 950년동안). 그 전통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이 영국의 힘일 것이다. 어쩌면 100년 전쟁의 패배가 영국에게 '쓴 보약'이 된 것 같다. 100년 전쟁을 계기로 영국은 유럽대륙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해양에 진출하여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식민지 쟁탈전에서 프랑스를 꺾는다.


언어 그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지배자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노르망디의 공작 윌리엄이 덴마크어를 사용했다면, 그 당시 영국 상류층의 언어는 덴마크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프랑스에 동화되어 윌리엄은 프랑스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영국 상류층의 언어는 프랑스어가 되었고 영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00년 전쟁에 영국이 승리했다면, 윌리엄 공의 영국 정복으로 영어가 침략당한 것처럼, 프랑스어는 영어의 침략을 받았을 것이다.


100년 전쟁은 영국에게 일종의 전환점이었다. 그 전환점 이후로 지배층은 자신들이 있을 곳은 대륙이 아니라 이 곳 브리튼섬이라는 자각이 생겼고 프랑스어를 버리고 영어로 넘어온 것이다. 이 변화의 힘은 아마 영국 왕족의 머나먼 조상인 바이킹의 수장 롤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롤로는 프랑크 왕의 봉신이 되는 조건으로 노르망디라는 영지를 얻었다. 하나를 잃고 다른 하나를 얻은 것이다. 롤로는 현지화에 성공했고 번영했다(그들의 고유 언어를 버리면서까지). 롤로의 후손인 윌리엄은 노르망디 뿐만 아니라 영국(잉글랜드)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그의 후손은 프랑스의 절반이 넘는 영토를 다스리기도 했다. 하지만 100년 전쟁을 통해 프랑스에 있는 대부분의 영토를 잃었다. 그리고 바이킹의 후손답게 (유럽대륙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배를 타고 더 큰 땅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넓은 식민지를 건설하며 성공한다. 결국, 일개 바이킹의 수장인 롤로부터 시작한 이 가문은 노르만디를 넘어 영국을 넘어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책을 보며 왜 영어에는 같은 알파벳이 다른 소리가 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영어는 영국처럼 다른 언어의 침입을 많이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변화를 겪었고 왜곡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를 적절하게 잘 소화한 것 같다(바이킹의 수장 롤로 그리고 윌리엄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과 빅토리아 여왕처럼). 하나를 잃는 위기 속에는 또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숨어있다. 바이킹, 영어, 영국의 저력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왕은 누가뭐래도 바이킹의 후손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어를 사용한다. 영어도 바이킹도 서로를 닮았다. 이 둘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가진 것을 잃더라도 (기존의 틀을 깨서라도) 적응하고 살아남아 번창한다. 이것은 영국의 뒤를 이은 미국의 개척정신, 그리고 MS, 인텔, 구글, 애플, 테슬라, 세일 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윌리엄의 영국정복 이후로 대략 300년동안 프랑스어는 영국에서 왕족을 비롯한 상류층의 언어의 지위에 있었다. 이건 마치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주로 한글보다 한자를 사용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 당시 영국은 일반 대중은 영어를, 상류층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이중 언어 사회였다고 한다. 상류층에 진입하려면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을 것이다. 이건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사투리를 안쓰려고 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현대 영어에 교양어, 전문용어 중에 프랑스어에서 온 단어가 많다고 한다. 윌리엄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때문에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는 영국에 영향을 미쳤다. 재밌는 것은 현대 프랑스어에서 사라진 중세 프랑스 단어들이 영어에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영국 왕실 문장에 프랑스어가 남아 있는 이유는 아마 영국 왕실의 조상이 프랑스에서 건너왔음을 잊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영국 왕실의 조상이 프랑스의 영토를 다스렸었다는 것을 남기기 위함이 아닐까.


영국에서 세익스피어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알고 있다.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도 이건 과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세익스피어가 만든 신조어가 2000개나 된다고 한다. 이 신조어들은 현재 영어 관용구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세익스피어는 단순히 작가가 아니라 영어를 풍부하게 해준 언어의 마법사였던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인 '영국에 영어가 없었다'는 좀 이상하다. '영국 왕실에 영어가 없었던 적이 있다'는 맞는 문장이지만, 영국에 영어가 없던 적이 있었을까? 왕족과 상류층들은 프랑스어를 썼을지라도 일반 국민들은 영어를 버리지 않았다.


노르망디 공국의 문장은 두 마리 표범이고 영국 왕실의 문장은 세 마리 표범이다. 영국 왕실이 노르망디에서 왔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함일까? 아니면 프랑스의 영토인 노르망디에 대한 소유권을 암시하기 위한 양다리 전략일까?


100년 전쟁을 일으킨 에드워드 3세는 이 문장이 그려진 갑옷을 입고 전쟁에 참가했다고 한다. 이 새로운 문장으로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의 선조인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정복했으나, 그는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100년 전쟁을 통해 영국이 얻은 것도 있다. 그건 국가의 정체성 확립니다. 이후 영국은 프랑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해양국가로 발돋음하여 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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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왕실의 모토motto, 즉 제명(題銘)에 사용된 말들이 아무리 보아도 영어 같지는 않다. 하지만 기초 프랑스어 정도만 배운 사람이면 이 제명이 프랑스어로 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어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Dieu (God), et (and), mon (my), droit (right). 이 제명의 뜻은 '신과 나의 권리'인데, 영국 왕의 절대적인 권리를 천하에 알리고 있다.

 이 문장의 정면에는 파란 허리띠에 적힌 또 다른 단어들이 보이는데, 사자와 유니콘의 앞발에 가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단어들이 보인다고 해도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듯하다. 저 단어들도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인데, 그중에서도 중세 프랑스어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 새겨진 모토에 관한 설명은 이 책의 후반부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그럼, 이제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것이다. 전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의 왕실 문장에 왜 프랑스어가 사용되었을까? (21쪽)

-> 영국 왕실은 그들의 조상이 프랑스에서 건너왔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프랑스 영토(특히 노르망디)가 그들의 조상들의 땅이었다는 것도 지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9~11세기의 서유럽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배를 타고 출몰하는 바이킹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본래 '해안의 만(灣)에 출몰하던 사람들'을 의미하던 바이킹Viking은 스칸디나비아의 전설적인 해안 전사들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9세기의 프랑스, 엄밀히 말하면 서프랑크 왕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기 885년에는 덴마크에서 도래한 데인족 바이킹들이 센 강을 따라 올라와 수도 파리를 포위하기에 이른다. 이후, 서기 911년 프랑크 왕국의 새 왕인 샤를 3세(단순완)와 바이킹의 수장 롤로Rollo는 생클레르 쉬르 엡트Saint-Clair-sur-Epte 조약을 체결하고, 롤로는 프랑크 왕으로부터 네우스트리아(지금의 노르망디)를 봉토로 하사받고 신하로서 서약(hommage)을 한다. 그리고 봉토로 받은 지방은 '북방인의 땅'이란 이름의 노르망디로 불리게 된다. 노르망디란 명칭이 영어처럼 보이는 것은 스칸디나비아어와 영어의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22쪽)


 서양사를 배울 때 성문 헌법의 효시라는 대헌장은 라틴어로 Magna Carta라고 한다. 즉 이 헌장은 라틴어로 작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윌리엄이 영국의 왕이 되고 공포한 '윌리엄 법'도 역시 라틴어로 공포되었는데, 이 법이 영국에서 프랑스어로 번역된 것은 약 1세기가 지난 1150년 경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기간 중에 헌장이나 법률에 사용되던 라틴어를 프랑스어가 잠식한 것을 알 수 있다. (97쪽)


 그림의 원제는 <필립 4세에게 신하의 예를 드리는 에드워드 1시(Hommage d'Edouard 1er a Phipippe le Bel)>인데 오마주Hommage란 말은 지금처럼 유명 감독에게 바치는 경의의 표시가 아니라, 본래 중세의 봉신이 주군에게 바치는 충성의 서약을 의미했다. 윌리엄의 정복 이래 영국 왕은 프랑스 왕의 봉신이었으므로, 1년에 두 번, 즉 부활절과 성탄절에 파리에 가서 신하의 예를 갖춰야 했다. (108쪽)


아버지가 OO1세면 자식은 OO2세

조선의 군주 앞에 붙은 시호들은 생전에 왕이 어떤 업적을 이루었느냐에 따라 붙지만, 서양의 경우는 철저히 아버지의 이름에서 비롯된다 플랜테저넷의 시조 헨리 2세의 장남은 청년왕 헨리이고, 2남은 리처드, 4남은 존이었다. 즉, 장남은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2세는 에드워드 1세의 장남이 왕위를 물려받았음을 의미한다. 에드워드 3세도 마찬가지다. 에드워드 3세의 장남 흑태자도 '우드스톡의 에드워드'로 불리었다. 만약 그가 왕위를 계승했으면 에드워드 4세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흑태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요절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은 에드워드 4세가 되지 못하ㅗ 리처드 2세로 왕위에 오른다. (124쪽)


 이럴 경우, 한국 같으면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들이 절대로 시민들을 위해 나서지 않겠지만, 칼레 시민의 경우는 달랐다. 시에서 가장 부유한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가 스스로 나선 것이다. 그의 의생정신에 감동을 한 다른 유지들도 앞다투어 자원을 했다. (130쪽)


여왕은 평소에도 늘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라고 말을 했다. 그런 여왕에게 민중들은 환호를 보냈는데, 실제로 그녀는 1년에 두 번씩 민중들의 목소리를 직접 나가서 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선왕인 메리 여왕의 독선적인 공포 정치에 민중들이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실용적이고 중용을 지키는 군주였기 때문에 종교 문제로 나라가 분열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의 라틴어 좌우명인 video et taceo(나는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처럼 매우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여느 여인처럼 보석과 사치스런 옷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한다. (161쪽)

->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유능한 군주였던 것 같다. 참고로, 영국은 게르만족의 살리카법에 따라 왕위 계승자를 장남 뿐만 아니라 여자까지 확대적용시켰고, 프랑스는 오직 장남만 왕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는 여왕이 없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와 초서는 영어를 문학어로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초서는 수백 년 간의 프랑스 지배에서 영어를 독자적인 문학 언어로 독립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는 반면, 셰익스피어는 새로운 영어 어휘와 표현을 통해 '셰익스피어 영어'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이제 영어는 프랑스어에서 벗어난 단순한 표준어가 아니라, 위대한 문학의 매개어가 된 것이다. (164쪽)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1611년에 간행된 <흠정역 성서>(킹 제임스 성서)와 함께 영어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셰익스피어는 신조어의 대가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 사용된 단어는 약 2만 개인데, 그중 신조어가 약 2,000개에 달한다. 미국 작가 빌 브라이슨은 "가량 우리가 입만 열었다 하면 열 마디 가운데 한 마디는 신조어라고 생각해보라"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천재성을 한마디오 요약해 준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 낸 갖가지 표현은 오늘날 영어에서 관용어구로 자리를 잡았다. (164~165쪽)


인터넷에서 웹서핑을 할 때마다 성가신 것 중의 하나가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배너 광고이다. 악성 코드에 감염이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많이 열린다. 본래 banner란 말은 프랑스어 ban에서 유래한 말이다. 대륙의 봉건제도를 영국으로 가져간 정복왕 윌리엄은 전쟁을 할 경우, 대개 40일 동안 가신들을 소집했는데, 이때 사용한 포고령이 ban이다. 즉, ban이란 '가신 소집령'을 의미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포고', '공고'의 의미가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자주 공고되는 ban은 식상할 수 밖에 없다. 영어와 프랑스어 banal에 '지극히 평범한', '따분한'이란 의미가 생겨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배너 banner란 단어도 프랑스어 banniere에서 유래했는데 그 뜻은 왕들이나 높은 제후들이 사용하던 깃발을 의미했다. 제후들만 사용하던 배너를 이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7~198쪽)


<단어>

1) 필경: 먼저, 고대 영어가 노르망 방언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분야는 철자의 영역이다. 영어의 철자가 동계어인 독일어보다 어파가 다른 프랑스어와 유사하게 보이는 이유는 노르만 필경들이 영어의 철자를 프랑스 철자법에 따라 재편했기 때문이다. (65쪽)


<의문, 궁금>

1)  존 왕의 별명은 결지왕인데 프랑스어로는 Jean sans Terre, 영어명은 John Lackland이다. 부왕인 헨리 2세로부터 영지를 물려받지 못하여 붙은 별명인데, 훗날 플랜태저넷 왕조의 고향 노르망디를 프랑스의 필립 2세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실지왕'이라고도 불린다. 사실 존은 네 형제 중 막내라서 왕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하늘만 아는 법이다. 맏형인 청년왕 헨리가 일찍 죽고, 형인 사자심왕 리처드가 십자군 원정길에서 돌아오다 볼모로 잡혀 있던 수년간은 왕위가 공석이었으니 그에게는 왕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리처드가 어마어마한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나는 바람에 그의 야망은 물거품이 되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왕이라는 자리는 인간이 바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법이다. 형이 무모한 성격 탓에 세상을 떠나자 존은 왕이 되었다. (97쪽)

-> '형이 무모한 성격 탓에'이 아니라 '형의 무모한 성격 탓에'가 아닐까?

! 헨리 2세와 알리에노르 사이에 3명의 아들의 운명이 이럴 줄이야. 막내 존왕은 왕권을 크게 제약하고 자유민의 권리 보증을 명시한 대헌장<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고 만다.

2) 고대 로마에는 반역 노예들을 고문하는 형틀이 있었는데 Tripalium이라고 불렀다 이 말이 프랑스어 travail로 바뀌는데, 그 뜻도 '고통', '힘든 일'로 재탄생된다. 영어 trevel은 이렇 듯 '무적 힘든 일'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191)

-> '영어 trevel'이 아니라 '영어 travel'이 아닐까?

3) 영국 왕실의 문장에 등장하는 것이 '세 마리 사자'일까? '세 마리 표범'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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