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할린까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난’이상엽이 만난 오늘의 러시아 풍경과 사람들
고르바초프를 등장시킨 최근의 루이뷔통 광고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사회주의 국가 소련의 해체를 이끈 고르바초프가 베를린 장벽 옆을 지나가는 차 뒷좌석에 앉아 루이뷔통 가방을 옆에 두고 약간은 불편한 시선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사진. 광고 사진 하단에는 ‘여행은 세상을 발견하기 위해 떠나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떠나는 것일까 - 베를린 장벽, 회담 후 돌아오는 길’이라는 문안이 적혀 있다. 광고에 역사성의 이미지를 덧입힌 루이뷔통의 아이디어가 놀랍지만, 놀라움보다 아이러니를 느낄 이 땅의 ‘소비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386세대이리라. 이렇게 20세기의 최대 사건과 그 이미지가 소비되는 방식에 의심과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가운데,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작가인 이상엽이 있다.
이상엽의 세 번째 단독 저작인 『레닌이 있는 풍경』을 펼치면 ‘지독히 쓸쓸한 풍경을 연출하면서’ 서 있는 레닌이 등장한다. 러시아의 서쪽 끝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쪽 끝 사할린까지 다양한 장소에 다양한 포즈로, 그러나 공통적으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레닌의 이미지. 이상엽은 묻는다. “그의 이상이 러시아 인민을 배반했더라도 인민은 그를 배신하지 않은 것 같다. 20세기 인류의 가장 원대한 실험이었던 사회주의가 붕괴하던 때 러시아 전역에 있던 스탈린은 사라졌다. 그는 레닌의 과오까지도 모두 안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레닌은 남았다. 이렇듯 도시 곳곳에 무관심으로 방치되었어도 그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정말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레닌이 있는 풍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형편은 어떠한가?
『레닌이 있는 풍경』은 섬세하고 비판적인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중국과 베트남, 실크로드 등 지구화시대의 급변하는 공간과 삶의 풍경을 질감이 다른 사진과 글에 담아온 열정적인 포토저널리스트 이상엽의 러시아 기행기이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 역사는 과거를 되풀이하고 있다. 민족간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고,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주의는 극에 달하고 있다. 그나마 보존되어 오던 다양성은 이제 세계화라는 이름의 공습을 받아 멸종돼가고 있다. 언어도, 문화도, 정신도 모두 말이다.” 광포한 맥도날드식 세계화의 질주에 근심어린 진저리를 치며 긴 여행을 떠난 그는 사회주의로부터 자본주의로의 급속한 변전, 소수민족과 상인, 농촌과 도시, 전통과 현대, 예술과 광고, 풍경과 흔적 등 갖가지 모습들이 섞여 공존하는 러시아의 오늘을 가까이에서 살피고 질문을 던진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와 예카테린부르크, 우랄산맥을 넘어 서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 이르쿠츠크를 지나 극동의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9,938킬로미터, 여기에서 사할린까지 이어지는 1만 킬로미터가 넘는 먼 길 위에서 이상엽은 지난 80년 동안 세계를 분할 지배했던 소비에트 강국이 사회주의 몰락 이후 변모하는 풍경을 살펴본다. 그것은 한국산 핸드폰과 대형 TV, 자동차가 휩쓸고 있는 전지구적인 시장이기도 하고, 재빠르게 자본주의 전도사로 변신해 어설픈 사기꾼 흉내를 내는 세태이기도 하고, 아직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며 크렘린 앞에서 눈물 어린 데모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복고이기도 하며, 희망 없이 군대를 찾는 청년들의 암담한 선택이기도 하며, 광활한 시베리아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가는 민족들의 남루함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그들 뒤에 서서 녹슬어가는 수많은 레닌 동상들의 쓸쓸한 풍경으로 카메라에 담긴다.
이 긴 행적을 따라다닌 키워드는 레닌으로 대별되는 ‘혁명의 추억’이고, 그 정념은 ‘추억의(을) 혁명’이며, 여행의 방법론은 ‘단면(풍경)에 대한 성찰과 텍스트 읽기’, 표현은 ‘이방인(한국인)의 눈으로 본 강렬한 다큐 포토 에세이’로 엮어졌다.
■ 기차여, 인터내셔널가를 불러다오! 러시아 혁명 90주년, 사회주의의 추억과 푸틴의 러시아를 찾아가다
2007년 11월, 세계 첫 사회주의 혁명인 레닌의 10월 혁명 90주년을 누가 기억하는가. 최근 러시아에서는 공산혁명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고, 그 재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한다. 혁명 90주년 기념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31%는 러시아가 혁명 이후 경제사회발전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고, 26%는 러시아가 새로운 역사를 이룩하였다고 응답했다. 혁명이 국가발전의 걸림돌이었다는 평가는 16%, 국가적 재앙이었다는 생각은 15%에 그쳤다. 공산혁명이 세계 최강국으로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했다는 자부심이 남아 있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 또한 공산주의 시대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년 전부터 혁명 기념일인 11월 7일 대신 1612년 러시아가 폴란드로부터 독립한 11월 4일을 국경일로 정했지만, 지방정부나 공산당은 여전히 자체적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모스크바 시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대항한 소련군의 출정행진을 재현했으며, 수천 명이 ‘사회주의 혁명이여 영원하라’는 플래카드와 레닌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했다.
이는 옛 소련이 누렸던 초강대국의 위상에 대한 향수와 자신감의 표현인 듯하다. 에너지자원 수출을 통해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부활한 러시아는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국제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서방과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고, 푸틴을 국부(國父)로 만들자는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루즈벨트’, ‘러시아의 드골’이라 불리는 푸틴 대통령도 강대국 ‘통합러시아’를 지향하자며 독자적인 러시아문명 건설, 경쟁력 갖춘 경제 확립, 국방력 강화, 중앙집중제의 중요성과 국가의 통합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러시아 혁명에 대한 향수는 개인을 억압하는 국가주의의 재발에 더 가까운 듯하다. 혁명 기념일에 전국적으로 수만 명의 극우주의자들이 유색인종 추방과 슬라브족 통합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는 기사도, 이미 퇴색된 혁명의 의미를 씁쓸히 되씹게 할 뿐이다.
'386세대 다큐멘터리 사진가’라는 정체성을 지닌 이상엽에게 러시아는 ‘가본 적 없는 추억의 나라’이다. 그러나 마침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돌아본 러시아에서, 청년 시절 저자가 머릿속에 그렸던 ‘최초이자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의 흔적은 이미 희미해진 터다.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삶의 비루함과 엄정함에 대한 곤란과 근심이다. 이른바 87년 체제라 불리는 민주화 20년을 주도한 386은 윗세대에게는 의심의 대상이자 아랫세대에게는 불신의 이름이 되어버린 듯하다. 이상적인 사회주의 혁명의 지도자에서 ‘박제’가 되어 국가 파시즘의 추억으로 소비되는 레닌의 이미지는 어슴푸레 ‘지금 여기의 진보’의 처지와 겹쳐진다. 무능력과 반목과 욕망의 동의어가 되어버린 동세대를 연민하는 지은이의 시선은 ‘추억의 진보’ 혹은 ‘기억의 발효’. ‘삶과 역사 지층의 재발견’을 찾는다.
지은이는 러시아 곳곳에 남아 있는 레닌의 동상들, 그 아래 펼쳐지는 새로운 러시아의 삶의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끝나버린 한 시대와 자신의 기억을 돌이킨다. 혁명가들을 추모하는 마르스 광장의 꺼지지 않는 불꽃 앞에서 자신 안의 환멸을 태워버리길 바라며 인터내셔널을 ‘청승맞게’ 흥얼거리기도 하고, 취재여행 동안에만은 자유로울 수 있었던 불면증의 갑작스런 습격에 백야의 거리를 헤매기도 하며, 바이칼에서 사진을 통해 사회운동에 힘쓰다 요절한 후배의 환영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빛바랜 과거의 혁명에 매달리지도, 권태롭지만 평온한 현재의 삶에 자족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저자는 시베리아의 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루는 생생한 풍경에서 주목한다. 동양과 서양의 피가 섞여 독특한 아름다움을 빚어낸 시베리아인들. ‘고향’에 집착하는 대신 새로운 터전에서 온전한 삶을 일구어낸 사할린 카레이츠들. 스스로를 조선인도 러시아인도 아닌 ‘극동인’으로 호명하는 혼혈 3, 4세들. 자본주의와 국가주의의 급물살이 밀어닥치는 러시아이지만, 이 새로운 세대는 ‘역사의 비극’으로부터 고유의 정체성을 찾아내어 극동 전체의 미래를 추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한가운데가 끊어진 채 역사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는 경의선에서 출발했던 지은이의 여정은 ‘혼융’과 ‘삶의 공감각’이라는 희망을 전하며 마무리된다.
■ 여행자의 로망 시베리아 횡단특급, ‘마음의 좌표를 찾는’여행의 본 의미에 육박하는 새로운 ‘다큐 포토 에세이’
“언어와 사진은 그 둘 중 한 가지로만 소통할 때보다 함께 소통할 때 훨씬 파워풀해질 수 있다” _다큐멘터리 사진가 윌리엄 앨버트 애러드
사진과 관련된 수많은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진 자체가 주제는 아니지만 여행서들 중에는 사진 촬영이나 촬영지를 이야기하는 베스트셀러들도 많다. 이상엽은 정작 늘어난 것과 비례해 좋은 사진들이 책을 채우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단지 보기 좋은 사진, 감성적인 사진, 만만해 보이는 사진이 책에 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사진과 관련한 단행본 시장에 아마추어가 넘쳐난다는 점 때문입니다. 누리꾼에게 인기를 끈 글과 사진을 모아 단시간에 출판한다거나, 유명 아마추어 사이트에서 사진을 골라 뽑아 적당히 글을 붙인 것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레닌이 있는 풍경』은 활자 중심의 책이나 사진만 가득한 사진집 보다는 둘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보기 좋고 읽을 만한 ‘포토 에세이’, 더 나아가 ‘여행서도 아닌 본격 인문학서도 아니지만’ 낯선 풍경의 속살과 인문사회적인 주제를 곰곰 사색하는 ‘사진 르포’에 가까운 실험적인 책이다. 때로 이 책에 거칠거나 생경한 풍경이 등장하는 까닭은 이상엽이 말하는 대로 ‘단지 아름다운 것, 보기 좋은 것은 사진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레닌이 있는 풍경』은 이른바 서점에서 비소설로 분류되는 사진이 들어간 여행기, 또는 인문서로 분류되는 사회 문화 기행기와 다른 기획 감각을 꾀했다. 바로 ‘사색(思索이자 寫索) 기행’이다. ‘생각과 풍경을 담아내는 다큐 포토 에세이’가 그것이다. 대상을 깐깐히 읽는 텍스트성과 스타일을 갖춘 수준 높은 사진, 여기에 교양이 깃든 성찰적 에세이가 함께 하고, ‘관광’이 아닌 길을 찾는 ‘여행’의 본디 의미를 꿈꾸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독서 정보를 곁들였다. 이 책이 담아낸 ‘사색이 있는 풍경’ 속으로 눈과 마음이 동하는 독자들의 횡단이 빈번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