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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7년 11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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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00쪽 | 542g | 148*210*30mm |
ISBN13 | 9788990429599 |
ISBN10 | 89904295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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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부족한 탓일까?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들을 갈망하다 못해 우리는 종종 불행해지곤 한다. 경제 정도를 따지는 데 있어서도 절대 아닌 상대적 기준에 따라 부유와 빈곤의 선이 그어지듯 나 자신의 삶을 평가할 때 가장 중시되는 것은 다름 아닌 타인의 삶이다. 모두가 A를 갖추었는데 나만 그것을 갖지 못했다면, 설령 A라는 것이 지금 당장 나에겐 별 다른 쓸모가 없는 품목이라 하여도 우리는 가져야만 할 것을 갖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시달리게 된다. 급기야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결코 건널 수 없을 강을 설정하여 타인을 차별하는 잣대로 활용하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모두가 색맹인 곳이 있다면 색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사회에서 과연 어찌 취급될까? 그런 섬이 있기나 할지, 솔직히 말하자면 단 한 번도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질 못했다. 이번에도 올리버 색스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러했겠지만 나 역시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을 통해 그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아직은 원시적인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듯해 보이는 자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높디 높은 빌딩들 사이를 거니는 삶에 익숙한 우리지만 가끔씩은 파괴되지 않은 아름다움으로의 회귀 본능을 느낀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섬은 자연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은 그리 아름답지가 못했다. 그 원인으로는 제국주의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신경학자의 책을 읽으면서 제국주의를 말하다니 조금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아직은 색맹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히 규명할 수 없다고는 한다. 하지만 외부인의 침입으로 인해 그 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모든 면에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풍요로워 보이는 서구식 식단은 그들에게 만성 비타민 A 결핍을 일으켰다. 그 곳의 많은 이들이 선조들의 잘못으로 인해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식의 믿음을 갖고 있으며, 색맹은 결코 최근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겪지 말았어야 할 이와 같은 변화가 색맹문제와 관련이 어느 정도는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선천성이라고 하는 마스쿤 그리고 변이가 너무도 다양해 원인 파악이 참으로 힘든 리티코-보딕(LYTICO-BODIG) 역시 마찬가지였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현대 의학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소철을 약재라고 믿는 것은 그들 자신이지만 그와 같은 믿음을 공고화시킨 것은 어쩌면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가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마음이 다소 무거워진다.
잘 죽는 것도 복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죽음의 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존엄성을 향한 존중이라는 말도 들려온다. 이 책에 등장한 이들은 서서히 죽어간다. 죽음 직전에는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겨우겨우 삶은 연장시켜나갈 뿐이다. 자신이 죽음을 향해 걷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우리 자신은 얼마나 무기력해질까? 이런 생각은 별로 유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더욱 불쾌한 사실은 그와 같은 걸음을 가능케 한 요인에 대해 우리가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가설들을 세워는 보지만, 가설은 가설일 뿐이다. 이 모든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스스로 해답을 품고 있음에도 쉽사리 가르쳐주지 않는 자연을 바라보며 나는 나란 존재의 더없이 작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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