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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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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박연준·장석주 에세이

박연준, 장석주 | 난다 | 2015년 12월 24일 리뷰 총점8.3 정보 더 보기/감추기
내용
4점
편집/디자인
4.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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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5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328g | 138*210*20mm
ISBN13 9788954638999
ISBN10 8954638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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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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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2명)

파주에 살며 시와 산문을 쓴다. 시, 사랑, 발레, 건강한 ‘여자 어른’이 되는 일에 관심이 많다. 2019년 5월 『아무튼, 비건』을 읽은 후 비건을 지향하는 인간이 되었다. 일단 시작하면 꾸준히 한다. 사랑하면 믿는다. 분방하고 충동적이지만 (이상하게도) 수련과 수양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무지몽매해서 늘 실연에 실패한다. 무언가를 사랑해서 까맣게 타는 것이 좋다.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 파주에 살며 시와 산문을 쓴다. 시, 사랑, 발레, 건강한 ‘여자 어른’이 되는 일에 관심이 많다. 2019년 5월 『아무튼, 비건』을 읽은 후 비건을 지향하는 인간이 되었다. 일단 시작하면 꾸준히 한다. 사랑하면 믿는다. 분방하고 충동적이지만 (이상하게도) 수련과 수양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무지몽매해서 늘 실연에 실패한다. 무언가를 사랑해서 까맣게 타는 것이 좋다.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과 산문집 『소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인사 대신 읽어보오』,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모월모일』, 동화 『정말인데 모른대요』를 펴냈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비평가·독서광이다. 1955년 1월 8일(음력), 충남 논산에서 출생한다. 나이 스무 살이던 1975년 [월간문학]신인상에 시가 당선하고, 스물넷이 되던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문학평론이 입상하면서 등단절차를 마친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청하’출판사를 직접 경영하는 동안 15년간을 출판 편집발행인으로 일한다.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학교, 명지전...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비평가·독서광이다. 1955년 1월 8일(음력), 충남 논산에서 출생한다. 나이 스무 살이던 1975년 [월간문학]신인상에 시가 당선하고, 스물넷이 되던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문학평론이 입상하면서 등단절차를 마친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청하’출판사를 직접 경영하는 동안 15년간을 출판 편집발행인으로 일한다.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학교, 명지전문대에서 강의를 하고, 국악방송에서 3년여 동안 [문화사랑방], [행복한 문학] 등의 진행자로도 활동한다. 2000년 여름에 서른여섯 해 동안의 서울생활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적한 시골에 집을 짓고 전업작가의 삶을 꾸리고 있다. 한 잡지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소장한 책만 2만 3,000여 권에 달하는 독서광 장석주는 대한민국 독서광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쓴다고 해서 안으로만 침잠하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다.

스무 살에 시인으로 등단한 후 15년을 출판기획자로 살았지만 더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자 업을 접고 문학비평가와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다. 급변하는 세상과 거리를 둠으로써 보다 잘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성에 있는 호숫가 옆 ‘수졸재’에 2만 권의 책을 모셔두고 닷새는 서울에 기거하며 방송 진행과 원고 집필에 몰두하고, 주말이면 안식을 취하는 그는 다양성의 시대에 만개하기 시작한 ‘마이너리티’들의 롤모델이다.”

저서로는 『몽해항로』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일요일과 나쁜 날씨』, 『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이상과 모던뽀이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일요일의 인문학』,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고독의 권유』, 『철학자의 사물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시간의 호젓한 만에서』,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공저) 등이 있다. 애지문학상, 질마재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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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221

출판사 리뷰

자기감정을 아는 것,
사랑은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지금 나는 순해졌습니다.
지독함이 스스로 옷을 벗을 때까지,
사랑했거든요. -박연준

이제 망설임을 떨치고 용기를 냅니다.
사랑이라고 해도 좋아요.
어떤 사이프러스 나무도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당신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거기에 서 있으면 됩니다. -장석주

걸어본다 일곱번째 이야기는 시드니를 향해 있습니다. 누군가는 걸어본 곳이고 또 누군가는 처음 걷는 곳이라는 시드니. 이 책을 집어든 분들 가운데 시드니를 경험해보신 분들 또한 꽤 많으시겠지요. 더불어 발을 디뎌보지 못한 분들도 꽤 많을 테고요.『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는 시드니를 경험한 한 남자와 시드니를 경험하지 못한 한 여자가 한국을 떠나 처음으로 외지에서 함께 걸어본 기록을 한데 모은 책입니다. 여자와 남자라는 차이점, 둘 다 시인이라는 공통점을 껴안은 채 그들은 시드니에 사는 한 지인이 빌려준 집에서 한 달을 살아보게 됩니다. 연애와 결혼의 차이는 아마도 그 ‘살이’에 있을 텐데요, 한 집에서 한 ‘살이’를 함께하면서 그들은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른가, 그럼에도 그 차이를 ‘사랑’이라는 것이 어떻게 극복하게 해주는가, 낱낱이 기록을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렇듯 한 권의 책으로 그 결과물이자 증거물을 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는 글이 만들어낸 결혼, 책이 거행시켜준 결혼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 소박한 잔치의 두 주인공을 이쯤에서 소개해보려 합니다. 짐작들 하셨겠지만, 남자이자 신랑은 장석주 시인이고 여자이자 신부는 박연준 시인입니다. 많이들 놀라셨겠죠. 아니면 그런가보다 고개들 끄덕이시려나요.

기실 저는 그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팽팽하게 요요가 되었던 한 사람입니다. 이 책을 기획한 편집자이기 이전에 살아생전에 박연준 시인의 언니로 평생을 살아주겠노라 약속을 했던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두번째 시집이던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또한 제 손으로 만들어주었던 참이었습니다. 죽음 직전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딸을 처제라 잘못 부른 아버지와 그런 부친의 마지막을 지켜봤던 연준의 공생을 제가 감히 알 것 같다고 잘난 척을 하며 지었던 제목이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그 인연은 박연준 시인과의 돈독함이 컸어요. 글에 대해서라면 재능이 뛰어난 시인, 누구든 속이지 못하는 솔직함을 타고난 시인, 그럼에도 제 가장 은밀한 연애만은 오래도록 숨겨왔던 시인. 그런 박연준 시인이 언니라고 지칭되는 제게 연애를 한다고 했습니다. 누구냐, 그 이름은. 끝까지 박연준 시인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힌트는 한 가지, 나이가 좀 많은 문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 입에서 장석주, 라는 이름이 튀어나갔습니다. 어떤 촉이 제게 귓속말을 하여 제 입이 방정을 떨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가 아닐까, 했던 어렴풋함이 사실로 드러나던 차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 주측에 대한 놀라움을 가슴의 콩닥거림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결혼식 없이 살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식’이라는 형식이 주는 민망함과 어색함, 그리고 불편함을 저도 모르지 않아 그러라고 했습니다. 다만 주위에서 그래도 밥 한 끼는 먹어야 하지 않겠냐는 조언들로 고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문득 스쳐간 것이 ‘책’이라는 물성의 힘이었습니다. 그래, 책으로 공표를 하자, 책으로 모두에게 알리고 책으로 모두에게 축하를 받자!

우리들의 비밀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평생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던 놀라운 감각의 소유자, 절대로 늙을 줄을 모르는 채 타고난 섬세함에 그 빗질을 매일같이 반복하는 장석주 시인도 흔쾌히 동참해주었습니다. 지금 와 그들에게 말하건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임을 잘 압니다. 책이라는 것은, 저자의 이름이라는 것은, 분서갱유를 아무리 목숨 걸고 한다고 해도 절대로 없어질 수 없는, 사라지기 힘든 존재임을 너무도 잘 아는 까닭입니다. 한때 한국 출판계에 놀라운 한 획을 그었던 출판사 ‘청하의 수장이었던 장석주 시인이 왜 그 사실을 몰랐겠습니까. 이는 남녀관계에서뿐 아니라 글쟁이로서의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다짐과 의지임을 잘 알아먹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서교동에 살림집을 차렸지만 그들은 시드니를 걸어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그 재미가 훨씬 기대가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그것도 외진 시골 마을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던져진 형국이 되었으니 말이죠. 성실한 그들이 꼼꼼하게 기록한 시드니에서의 일상을 가장 먼저 훔쳐본 사람으로서 그 첫 감정을 토로하자면 온수의 여자와 냉수의 남자가 만났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선 여자와 감성보다는 이성이 앞선 남자가 합쳐져 채워진 욕조 속의 물 온도는 정말이지 목욕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온도를 이루기에 충분했습니다. 몸을 목까지 푹 담그기에 적합한 온도의 따뜻함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기억나지 않는 양수에서의 떠 있음이 비유될까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노곤한 잠이 밀려왔고 자고 일어났을 때의 상쾌함이 일었습니다. 사랑이 일으킨 기적 가운데 하나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남녀의 사랑, 남녀의 연애, 남녀의 결혼을 다룬 책은 세상에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읽고 나면 그뿐, 내 사랑의 실천에 도움을 준 책은 정작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논리적으로야 백날 이해의 폭 안에서 맞는 말만 골라 한다지만, 실전에서 대입해볼 만한 자신감으로 덤벼든 책은 없었으니까요. 사랑하는 두 남녀, 그래서 결혼에 이른 두 남녀의 이야기가 전제되어 있긴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어는 ‘사랑’이 아닙니다. ‘결혼’ 또한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이 책이 주는 보다 큰 미덕은 바로 ‘이해’에 있지 않나 합니다. 이해하지 않으면 상대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상대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진심을 쏟아낼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은 오랜 시간 한 남녀가 서로 눈을 맞추기 위해 팽팽하게 시소를 탔던 그 불안함이 치유되어가는 과정의 일부를 소개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의 힘은 믿어보자는 다짐의 책이기는 합니다.

결혼식을 대신하는 책. 사례를 찾아보니 그런 일은 지금껏 한 번도 행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서로 반대되는 기질을 가진 남녀이기에, 무엇보다 시를 쓰는 시인들이기에, 신부는 1980년생, 신랑은 1955년생이라는 나이의 차이라는 세월의 더께를 이겨낸 그들이기에 이러한 귀여운 퍼포먼스도 용인이 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의 출간을 말미암아 두 사람의 결혼식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습니다. 매년 이들 부부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서로가 함께임을 축하하는 술 한 잔을 서로에게 권하겠지요.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책을 읽어주심으로 정말이지 축하해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작가의 말

우리는 ‘새벽의 나무 둘’처럼


“네 이름을 발음하는 내 입술에 몇 개의 별들이 얼음처럼 부서진다.”

오래전 이렇게 시작하는 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첫 문장을 지금까지 외우고 있네요.
설렘과 두려움 속에서 당신 입술 위 내 이름을,
부서지는 몇 개의 별들을 상상해보았습니다.

먼 곳에서 나를 향해, 별들이 걸어오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녁이 되자 슬퍼졌습니다.
무릎을 꿇고 ‘얼음을 주세요’란 제목으로 시를 썼지요.
그 시로 시인이 될 줄은 몰랐지만 시를 쓰던 순간,
파랗게 내가 곤두선 불꽃이 된 기분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자기감정을 아는 것,
사랑은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지금 나는 순해졌습니다.
지독함이 스스로 옷을 벗을 때까지,
사랑했거든요.

우리는 새벽의 나무 둘처럼
행복합니다.
잉걸불 속으로 걸어가는 한 쌍의 단도처럼
용감합니다.

그때 별들이 왜 하필 이쪽으로 걸어왔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이 책은 우리의 결혼 선언을 대신할 것입니다.
각자의 글이 빵과 소스 같기를,
그렇게 어우러져 읽히기를 바랍니다.

책의 처음과 끝에 김민정 시인이 있습니다.
그녀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시드니에서 만났던 분들,
어머니와 남동생 태준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나보다 먼저 생각하게 되는 사람,
나의 JJ에게도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천천히 오래 걸어요, 우리!

- 2015년 12월, 서교동에서
박연준

‘1인분의 고독’에서 ‘2인분의 고독’으로

1인분의 고독

당신이 보인 뜻밖의 사적인 관심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관례적 방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당신의 ‘사랑한다’는 고백에 놀랐어요. 그리고 기뻤습니다.

잎을 가득 피워낸 종려나무, 바다에 내리는 비, 그리고 당신. 그것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의 목록이에요. 기름진 경작지 같은 당신의 황금빛 몸, 물방울처럼 눈부시게 튕겨오르는 당신의 젊은 사유, 서늘한 눈빛을 상상만 해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사랑이라니! 와디를 아시는지요. 사막의 강, 우기 때 물이 흐른 흔적만 남아 있는 메마른 강. 난 그런 와디나 다름없어요. 누구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인색하고 협량한 마음의 와디. 당신이 흐르는 강물이 되어 이 협량한 마음의 와디를 가득 채우고 흐르길 오랫동안 꿈꾸었지요. 당신의 강물로 내 죽은 뿌리를 적시고, 마침내 잎과 꽃을 피워내고 열매 맺기를 꿈꾸었지요.

아아, 하지만 나는 그걸 흔쾌히 수락할 수 없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과실을 깨물어 그 넘치는 과즙의 열락을 맛보고 싶은 욕망이 없는 건 아니에요. 몇 날 며칠의 괴로운 숙고 끝에 당신의 사랑을 거절하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부디 거절의 말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미 낡은 시대의 사람이고, 그러니 당신이 몰고 오는 저 야생의수목이 뿜어내는 신선한 산소를 듬뿍 머금은 공기에 놀라 폐가 형편없이 쪼그라들지도 모르죠. 그러니 나를 가만 놔두세요.

더 정직하게 말하죠. 나는 오랫동안 혼자 잠들고, 혼자 잠 깨고, 혼자 걸어다니는 저 1인분의 고독에 내 피가 길들여졌다는 것이죠. 나는 어둠 속에서 1인분의 비밀과 1인분의 침묵으로 내 사유를 살찌워왔어요.

고갈과 메마름은 이미 생의 충분조건이죠. 난 사막의 모래에 묻혀 일체의 수분을 빼앗긴 채 말라가는 전갈이죠. 내 물병자리의 생은 이제 1인분의 고독과 1인분의 평화, 1인분의 자유를 나의 자연으로 받아들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거기에 서 있으면 됩니다.

어느 해 여름 우리는 바닷가에서 쏟아지는 유성우를 함께 바라봤지요. 그때 당신과 나의 거리,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유지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2인분의 고독
‘1인분의 고독’에 웅크려 있던 내 내면을 들여다보니,
거기 두려움이란 짐승이 불안한 눈동자를 하고 숨어 있더군요.
짐승의 눈에 겁이 잔뜩 들어 있어 가엾었어요.
‘1인분의 고독’을, 그 자유와 고요를 잃을까봐 두려웠던 것이지요.
이제 망설임을 떨치고 용기를 냅니다. 사랑이라고 해도 좋아요.
어떤 사이프러스 나무도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래서 ‘2인분의 고독’을 덥썩 받아 품습니다.
사랑이란 ‘2인분의 고독’을 뜨겁게, 늠름하게 받는 거예요.
생의 찬란한 순간들을 함께할 사랑하는 P와
이 멋진 책을 결혼 선물로 만들어준 김민정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 2015년 12월, 서교동에서
장석주

추천평

연준이 우리 연준이. 피를 나눈 것도 아닌데 내 동생이야, 건드리지 마, 누가 말도 못하고 누가 욕도 못하게 두 팔 벌려 막아서며 언니 노릇 해온 것이 벌써 10년 가까이 됩니다. 당연했어요. 예뻐하면 예뻐할 짓만 골라 한다더니 연준이가 딱 그랬습니다. 일단 연준이가 써대는 글이 원초이자 태초였어요. 그 누구도 쓰지 못하는 스타일의 상상력이 연준이를 휘감고 있음을 귀신같이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질투가 아니었어요. 대견함이었어요. 식물성의 원시림과 동물성의 아마존, 그 냉수와 온수를 넘나드는 데 주저함이 없어 그런지 나날이 연준이의 피부는 하얘져갔고 탱탱해져갔으며 그 흔한 나이듦의 헛발인 모공 하나 보이질 않았어요. 그랬어요. 그랬는데 어느 날 연준이가 검은 한복을 입고 머리에는 흰 핀을 꽂은 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저를 맞았어요. 그때 언니라는 제 입에서 철없이 툭 튀어나온 말이 뭔지 아세요? 이것도 소복의 일종이지? 너 근데 진짜 검은 한복 잘 어울린다, 야…… 위로의 방법을 잘 몰랐으니깐요. 죽음에 대해서는 천진무구가 딱 저였으니깐요. 그래요, 언니? 연준이는 대파 쪼개지듯 가늘게 웃었어요. 족히 백오십은 살아낸 여자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여유롭게 넘나드는 찰나에 지을 수 있는 웃음이었어요. 딸을 ‘처제’라고 잘못 부를 만큼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두고 보면서 연준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요 망할년, 요 다 아는 년, 요 안쓰러운 년, 년, 년, 그래왔는데 이제 더는 연준이를 ‘년’이라 하기에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네요. 결혼을 하면 흔히들 어른이라 하는데 글쎄 연준이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겠다잖아요. 대번에 단박에 한방에 그 신랑자리를 맞춰버린 건 으쓱해도 좋을 일, 그러나 좀 심술을 부려봐도 좋을 일, 어린 내 동생 아깝다고 3박 4일 지랄해대도 마땅할 일, 연준이의 신랑이자 나의 제부가 될 그를 보자마자 특유의 제 말법대로 말을 딱 깔았어요. 이제부터 장제부라 부를래요. 동생 남편더러 제부라고 하는 거 맞잖아요. 그날 이후 연준이는 제 남편 욕이라도 좀 할라치면 언니 장제부가요, 하면서 그의 순진함과 그의 순정함과 그의 사랑스러움을 낱낱이 고하고는 해요. 사랑하는구나, 아주 그냥 미치게들 사랑해 죽는구나. 닭살을 넘어 갓 튀긴 닭튀김처럼 바삭바삭 입천장을 까지게 만드는 독한 사랑의 현장을 목격한 기분이라지만 사실 저는 장제부를 잘 몰라요. 시인이자 저술가이자 한때 청하라는 이름의, 지금도 내가 헌책방에 가면 책 제목이 아니라 저자 이름이 아니라 검색어에 출판사 ‘청하’를 쳐서 일단 다 사들여버리는 책들의 주인이던 그는 알아요. 언제나 우와, 하고 감탄했던 그에게 에걔, 하고 내가 혀를 차는 날이 올 줄 그 누가 알았겠어요. 내리는 눈은 모두 희듯, 흰 눈은 애초에 하나이듯,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가 될 줄 이 둘도 알았겠냐고요. 음, 알았을까나요. 연준이 울리면 장제부는 나한테 혼날 거고요, 연준이 웃기면 장제부는 나한테 칭찬 받을 겁니다. 10년 동안 지독한 사랑으로 서로를 결박해온 두 사람의 인내에 박수를 보냅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김민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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