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이 ‘개혁과 개방’을 외친 지 30년,
세계 최대 소비 시장으로 성장한 중국
오전 8시, 정안사 근처 스타벅스에 도착해 출근 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마이클 코어스 구두를 신은 그녀는 리바이스 청바지 위에 멋스러운 자라 블라우스를 입고 토리버치 핸드백을 들고 있다. 그녀는 펜디 지갑에서 100위안짜리 지폐를 꺼내 33위안인 라테를 계산하고 빈자리에 가서 앉는다. 지난 주말 상하이 최대 번화가인 난징서로의 세포라 플래그십 매장에서 구입한 아이라이너를 바르고 GNC 비타민을 먹은 뒤, 15분 동안 이메일을 확인하고 위챗으로 문자를 보내며 타오바오에서 스커트를 구입한다. -「봉건제도 국가에서 세계 최대 명품 시장으로」 중에서.
이는 현재 상하이에 거주하며 홍보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28세 얀유의 일상 중 한 장면이다. 1990년 중반까지만 해도 당나귀 마차가 다녔던 중국 대부분의 도시는, 이제 얀유와 같은 사람들이 넘쳐 난다. 그들은 이제 개인 소유의 자동차를 운전하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며 길을 걷는다.
2015년 현재, 중국인은 세계를 바꾸고 있다. 상하이에서 내린 구매 결정이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삶과 생계에 영향을 미친다. 중국인은 기업이 상품을 디자인하고 구축하고 시장에 내놓고 판매하는 방법까지 바꾸고 있다. 전 세계 무역수지를 바꾸고, 브랜드를 만드는가 하면 없앤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오프라인 소매업과 전자상거래를 좌지우지한다. 그들의 쇼핑 습관과 태도, 선호 채널, 의사소통 패턴이 전 세계 상품의 계획 및 제조, 이동, 저장, 판매의 의미 자체를 바꾸고 있다. (본문 31쪽 중에서)
일례로 GM은 2013년 한 해 동안에만 중국에서 300만 대 이상의 자동차를 판매했으며 2016년에는 500만 대 이상 판매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현재 아우디의 가장 중요한 시장은 중국이고 포르쉐 역시 1년 안에 중국이 자사 최대 시장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덩샤오핑이 ‘개혁과 개방’을 슬로건으로 내건 지 30년, 시진핑이 ‘차이나 드림’을 외친 지 3년 만의 일이다. 중국 소비 시장과 소비자 전략에 관한 한 미국 안팎에서 최고 전문가로 알려진 마이클 자쿠어와 사비오 챈은 이 혁명과도 같은 중국의 ‘30년’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현상의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중국의 슈퍼 소비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구매하는가
20세기 후반 아메리칸 드림과 함께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슈퍼 소비자가 등장했다. 그들은 미국을 넘어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지금, 세계 두 번째 슈퍼 소비자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슈퍼 소비자가 등장했다. 그런데 그들은 미국의 슈퍼 소비자와는 상당히 다른 소비 규모와 소비 양상을 가지고 있다.
슈퍼 소비자가 등장한 21세기 초 중국의 인구 분포와 다양성은 1950년대 미국과 전혀 다르다. 게다가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의 경제 모델은 그 뿌리가 수천 년 전으로 뻗어 내려간다. 더불어 유교와 도교, 불교의 영향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철학적 풍경이 펼쳐진다. 정치, 사회, 자아의식에 대한 개념도 차이가 있다. (…)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즉 그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독특한 지침은 따로 있으며, 목적지는 같아 보여도 그곳으로 향하는 여정은 매우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이나 드림과 슈퍼 소비자의 탄생」 중에서
이 책은 ‘중국인이 서구화되었다’고 쉽사리 판단한 후 중국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의 실패 사례를 통해, 중국인에 대한 통찰이 시장 진출의 승패를 가른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또 백화점, 거리 매장부터 식료품점/슈퍼마켓, 대형 마트, 편의점, 우체국은 물론 라이프스타일 매장, 멀티브랜드 소매점까지 중국의 소비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물건을 사는지 짚어 본다. 그뿐 아니라 중국 밖으로 나가 소비 활동을 하는 중국의 글로벌 소비자들의 소비 규모와 양상도 살핀다. 실제로 전 세계 명품의 4분의 1 이상을 중국인이 소비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60퍼센트가 홍콩, 파리,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드니, 런던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얼어붙을 듯한 2014년 2월의 어느 저녁,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지만 명품 시계업체 투르노의 4층짜리 플래그십 매장에는 중국 소비자 8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 앞에서 투르노의 CEO인 이라 멜니츠키가 ‘중국의 설’을 축하했다. 연설이 끝나자 징과 타이코 드럼, 심벌즈로 이루어진 악단이 황금색과 붉은색 사자 모형을 쓰고 사자춤을 추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활기 넘쳤다. 중국인 고객 수백 명이 만다린어와 광둥어, 상하이어 등으로 새해 인사를 나누면서 쇼룸에 전시된 롤렉스, 파텍 필립, 카르티에의 최신 제품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이 광경이 펼쳐진 곳은 홍콩이나 중국이 아닌 뉴욕, 나이키와 샤넬, 크리스찬 디올의 플래그십 매장이 들어선 맨해튼 중심부였다. -「중국 밖으로 나온 중국의 슈퍼 소비자」 중에서
마이클과 사비오는 중국 시장의 소비 규모와 양상뿐 아니라, 중국 슈퍼 소비자의 소비 수준이 진화하고 있음을 인간의 발달 과정에 빗대어 설명했다.
유아기였던 1990년대 중국 소비자는 말 그대로 일일이 떠먹여 줘야 하는 존재였다. 1990년대 중반의 가처분소득은 고작해야 1년에 500~600달러에 불과했고, 소비자 신용대출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서양 매체에 폐쇄적이었던 탓에 정보에 접근할 길이 막혀 있던 소비자는 무턱대고 유행을 좇았다. (…) 2000년대가 되어 10대에 접어든 중국 소비자는 제품 구입 가능성과 선택지가 넓어졌고, 소비자는 점점 더 세련돼 갔다. 제품의 가격과 품질, 서비스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소비 호황을 거쳐 슈퍼 소비에 이르기까지」 중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중국의 소비자가 이제 청년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조금 성숙해졌지만 방향은 아직 뚜렷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청년이 으레 그렇듯 중국 소비자는 날개를 활짝 펴고 전 세계와 각 도시를 날아다니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10년, 중국의 슈퍼 소비자가 성년이 되고 중년에 접어드는 과정을 면밀히 뒤쫓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전략적으로도 중요하다.
세계적 소비 혁명의
수혜자가 될 것인가, 희생자가 될 것인가
세계 경제 시장에서 2000~2014년 최고의 승리자는 일찌감치 중국에 진출하여 손실을 감수하면서 시장을 배우고 투자하여 브랜드 인지도와 충성도를 높인 기업들이다. 이 책에서 마이클과 사비오는 “과거의 교훈을 바탕으로 중국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그들이 세계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여 그들의 방식으로 접근해야 중국 시장 진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세계적 소비 혁명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 적어도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중국 진출에 앞서 꼭 알아야 할 몇 가지를 짚어 준다.
그 무엇보다 철저한 사전 조사가 먼저다
테크노믹 아시아의 CEO 스티브 갠스터는 중국 시장 진출에 있어 ‘철저한 사전 조사’를 거듭 강조하며, “중국 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한 가지는 연구조사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쏟아붓고 문화와 역사에 초점을 맞춰 이상적인 시장 운영, 제품의 유형, 출시, 성장 전략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철저한 사전 조사의 여부로 중국 진출의 승패가 갈린 대표적인 사례로 피자헛과 도미노 피자의 ‘피자 대전’을 들 수 있다.
피자헛은 시장을 분석하고 외국 음식 및 식당에 대한 중국인의 태도, 식사 습관, 음식 선호도를 조사했으며 자사의 가치 제안을 어떻게 ‘중국화’ 할 것인지 연구했다. 그 결과, 피자헛은 1300개 이상의 지점을 거느리며 중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성공한 캐주얼 레스토랑 체인이 되었고 지금도 계속 성장 중이다.
반면 도미노는 철저한 사전조사를 거치지 않은 채 이미 구축된 사업 모델을 밀고 나왔고, 결국 비참히 실패했다. 도미노는 극심한 교통 체증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중국에서 피자를 30분 안에 배달할 수 있으리라 넘겨짚었다. 또 테이크아웃이란 개념이 생소한 중국에서 테이크아웃 서비스만을 고집했다. 그뿐 아니라 라지 사이즈 피자 한 판이 배달되면 친척과 친구들이 전부 달려들어 한 조각씩 떼어 갈 것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중국 가족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소비 호황을 거쳐 슈퍼 소비에 이르기까지」 중에서
중국 시장은 여러 시장의 집합체다
중국은 결코 하나의 시장이 아니다. 각 성별로 기후와 지리, 언어, 소득 수준, 경제와 문화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즉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은 유럽 시장에 진출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세계적 컨설팅 회사 맥킨지 앤드 컴퍼니는 매년 60개 도시, 6만 명 이상의 사람을 대상으로 인터뷰하고 조사하여 중국 인구의 대다수가 현재 ‘가치 소비자층’을 이루고 있음을 파악했다. 가치 소비자층은 연간 가처분소득이 6000~1만 6000달러에 이르는 가정으로, 이 정도면 기본 생활요건을 충족하기에 충분하다. 이에 비하면 연간 가처분소득이 1만 6000~3만 4000달러에 이르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인 ‘주 소비자층’은 약 1400만 가구로 소수에 불과해 전체 도시 인구의 6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가처분소득이 3만 4000달러 이상인 ‘부유 소비자층’은 그보다 더 규모가 작아서 총 426만 가구 정도로 전체 도시 인구의 2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로 따지면 1500만 명에 이른다.
또. 맥킨지는 중국을 22개의 도시 클러스터로 나누어 중국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대부분의 기업은 제품을 1급, 2급, 3급 도시에 맞게 나누어 중국에 진출하지만 맥킨지는 클러스터를 통해 중국에서의 성장을 관리하는 것이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고 계획의 우선순위를 매겨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에 따르면 총 611개에 달하는 도시는 2015년이면 중국 도시 GDP의 92퍼센트를, 전체 인구의 86퍼센트를 차지하고 이 중 6~7개의 연계도시를 겨냥한다면 중국의 각기 다른 급의 도시를 겨냥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보게 된다. (본문 222~224쪽 중에서)
중국이 단일 시장이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한 P&G는 ‘대도시에서는 900달러짜리 스마트폰을 판매할 수도 있지만 배후지에서는 3달러짜리 치약을 판매하여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루 2달러’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크게 성공을 거두었으며 중국 진출 모범 사례로 손꼽힌다.
P&G의 중국 내 핵심 사업은 샴푸 한 통에 기꺼이 10달러를 쓸 수 있는 조금 부유한 소비자를 겨냥하고 있지만, 경영진은 깊은 시골에 거주하는 슈퍼 소비자까지 내다보았다. 이들 소비자는 대체로 1년에 2000달러 미만을 벌지만 미용과 위생에 관해서는 나름의 욕구와 갈망을 갖고 있었다. P&G는 방대한 조사를 펼친 끝에 떠오르는 슈퍼 소비자의 욕구와 한계를 파악하고 팔릴 만한 제품과 가격대를 상정했다. 그 결과 브랜드 인지도와 충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소비 호황을 거쳐 슈퍼 소비에 이르기까지」 중에서
전자상거래와 소셜 미디어 활용을 극대화할 것
세계 3대 전자상거래 기업을 통해 거래되는 물품의 달러 가치를 연간 판매된 제품의 달러 가치로 환산해 보면 알리바바가 2480억 달러, 인터넷 종합 쇼핑몰 아마존이 1000억 달러,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가 760억 달러이다. 알리바바는 아마존의 2배, 이베이의 3배 이상을 벌어들였다. -「‘전자상거래’ 시장의 절대강자, 알리바바」 중에서
중국의 산업과 기술, 문화는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고 있다. 선진국 시장에서 5~7년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 중국에서는 1년 안에 벌어진다. 전자상거래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또 세계 그 어느 나라 사람보다 동료의 조언, 믿을 수 있는 친구와 가족의 추천을 바탕으로 구매 결정을 내리는 중국인에게 소셜 미디어는 가장 중요한 마케팅 채널일 수밖에 없다. 2014년 3월, 중국의 인기 있는 소셜 미디어이자 메시지 앱인 위챗을 활용해 1300만 달러에 달하는 2건의 부동산 거래를 체결함으로써 유명세를 얻은 엠마 하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에 어떻게 연락이 닿았든, 중국 고객과는 결국 어느 시점에 이르면 위챗을 사용하게 됩니다. 오늘날 중국인은 현금을 다량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현금으로 부동산을 대출 없이 구매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한번 당신을 믿으면 다른 고객들까지 모두 소개해 주려 할 겁니다. 이미 친구가 되었으니까요. 중국 고객은 한번 관계를 맺고 나면 다른 중개업자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반면 미국인은 나와 거래를 한 번 한 뒤에도 다른 중개업자를 계속해서 찾아다녀요.”
명품 시계 브랜드로 중국 본토와 중국 밖에서 소비 활동을 하는 중국의 슈퍼 소비자들을 상대로 성공을 거둔 투르노의 CEO 멜니츠키 역시 “매장 직원이 그러는데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 소비자와 다른 방식으로 쇼핑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그들은 제품 정보를 나누면서, 즉 제품을 사진으로 찍어 위챗 같은 매체를 통해 나누면서 쇼핑을 계속 하길 원한다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슈퍼 소비자는 최근 30년 사이, 그 크기뿐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급성장했고 앞으로 10년,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할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자쿠어와 사비오 챈은 책의 시작과 마무리에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이 현상의 수혜자인가, 희생자인가? 이 상황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