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찬란하고 순수한 10대의 성장과 자유 의지
“부모는 어릴 때 뿌리를 심어주어야 하고, 이 아이가 자라면 두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
―괴테
1995년, 독일 대학에 연구를 위해 가는 아버지를 따라 딸아이 역시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채 뮌헨 국제학교에서 수학하게 된다. 일 년간의 연구년이 끝나고 한국으로 귀국해야 할 때가 오자, 열다섯 어린 딸은 혼자라도 독일에 남아 교육 받겠다는 의사를 부모에게 밝힌다.
부모 모두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한국 교육 방식에 비관적이었고 그래서 더욱 아이의 선택이 대견스러웠더라도 아이를 혼자 두고 오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부모 품에 안겨 좀 더 어리광을 피우고 의지해도 좋을 나이였기에 발걸음이 떨어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본인의 말대로 “새가 자식을 품을 수 있을 때까지 품고 싶어 하는 어미의 본능을 극복하고” 날개를 달고 처음 나는 연습을 하는 새들처럼 몇 번이나 떨어지며 상처를 입더라도 힘겹게 반복하여 결국은 파란 창공을 향해 날갯짓하리라는 것을 믿고 딸의 선택을 존중하고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기회는 보이지 않아 잃어버리는 수도 있고, 주저하다 흘려보내는 수도 있고, 게을러서 놓치는 수도 있다. 이렇게 기회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본문19쪽) 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겁 없이 날다가 추락할까 봐 늘 노심초사하며 딸의 안부를 기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멀리 이국 하늘 아래 홀로 서기 시작한 딸에게 온갖 정성어린 마음의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사랑과 신뢰로 보듬는 엄마마음
“부모는 내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만큼만 가지려 해야 한다. 내 아이에게 주어진 그만큼이란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하고 행복해야 한다. 그 이상을 바라고 요구할 때는 아이가 잘못 가게 되어 있다.” (본문62쪽)
저자의 교육 방침은 아이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고 시종일관 아이를 사랑과 신뢰로 대하는 것이다. 아이가 현재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이 어떠한지, 어떤 식으로 행동하였고, 그에 대한 결과가 어떻게 나든 행동의 주체는 아이의 몫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모는 바른 생각과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치지 않고 격려하며 당부하고 훈계한다.
국제 학교를 다니며, 타문화 속에서 여러 나라의 아이들과 서툰 언어로 우정을 쌓고, 교육을 받는 데 어려움이 없을 리 없다. 그 어려움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진정 홀로 서는 연습을 하기 위한 하나하나의 발판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까지의 한국어 실력과 짧은 영어 실력으로 어려운 심리학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며, 힘들어하는 것도 지극히 정상이라고 아이를 다독이기도 하고, 학교 과제물을 빠트리고 가서 선생님께 주의를 받은 일은 아무리 숙제를 다 했다고 해도 미리미리 챙겨놓지 않은 잘못된 습관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라고 엄히 꾸중하기도 한다. 시험과 관련한 역사 과제물이나, 문학 과제물에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길고 긴 장문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지만, 저자는 누구보다 “결과보다는 혼자 시험을 치르고 있는 그 과정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중요한 사실”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언젠가 홀로 서야 할 딸을 위해, 너무 일찍 홀로 서는 연습을 하기 시작한 자식이 애틋하고 안타까워 먼 하늘 아래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독일행을 생각하다가도 마음을 굳게 다잡는다. 떨어져 있어 느끼는 그리움 자체도 다른 이들이 경험하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며 경험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 역시 하루하루 성장하는 아이를 통해 엄마로서 함께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이 배우고 가야 한다. 같이 깨어 있지 않고 자식만 깨울 수 없다.”(본문50쪽)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갯짓하기 시작한 딸을 위한 감사의 기도
“네게 주어진 특별한 삶의 기회에 대해 또다시 감사하면서”(본문253쪽)
매 편지 끝 “엄마가” 로 끝나는 인사처럼, 저자는 딸과 떨어져 지낸 매일 밤 서서히 한쪽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한 딸을 위해 서울 하늘 아래서 기도드렸다. 그 기도는 딸의 안녕을 위한 것으로 시작되어 자신들에게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한 감사 기도이기도 하다.
이 같은 감사의 마음은 저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경건한 마음으로 뒤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이러한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인생을 바로 사는 길이라고 감히 이를 수 있을 것 같구나.”(본문104쪽) “인생은 굽이굽이 사연과 이야깃거리를 탄생시키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란다.”(본문115쪽) 이처럼 엄마는 딸을 통해 먼저 인생의 진리에 한발 한발 다가섰던 것이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교육 받기를 원한 딸의 선택의 순간부터 어린 딸은 홀로 날갯짓을 준비했던 거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 날갯짓을 혼자하기에는 너무 연약하여 부러질 법도 했건만 딸아이는 훌륭히 3년 동안의 고등수업을 완수해 내고,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는 엄마와 딸의 신뢰 관계 외에도 몸소 체험하고 실현하는 현명하고 강한 엄마가 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 예로, 딸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 때문에, 그리고 현실적인 지원 문제로 딸이 있는 독일을 잠깐 방문했던 저자는 딸의 학교 개교기념일 축제에서 일본 학부형들이 “단합된 앞치마와 친절”로 국가를 홍보하는 데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을 보고, 급한 대로 한복을 차려 입고 빈대떡과 잡채를 판매하기도 했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는 자긍심을 느끼면서 그런 경험 또한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저자의 마음가짐은 어린 딸이 다른 문화와 가치관 안에서 혼란을 겪으며 어려움에 봉착하기보다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수긍하고 존중하여, 자신의 문화와 융화시키는 데에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를 비하하지도 말고, 과대하지도 말라.”는 엄마의 진심어린 당부가 어린 딸이 외국 땅에서 홀로 서는 데에 곧고 올바른 영향을 주었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돈도 명예도 심지어 자유까지도 잃어버릴 수가 있다. 그러나 지식, 사람의 머릿속에 든 지식만큼은 잃어버릴 수도, 세상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게 엄마의 신앙이다. 그래서 인간은 배워야 하며 그 배움을 위해 치르는 대가는 전혀 아까울 게 없다.”(본문178쪽)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이 사회에서 부모 자식 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은 불교의 108번뇌보다 더욱 다양하고 때로는 괴로울지도 모른다. 다만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당부하고 있는 저자의 말을 빌리는 것으로, 이 책을 접한 이들이 아이를 대하는 부모로서의 마음가짐에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잊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면, 저자는 이 편지글을 오랜 산고 끝에 조심스럽게 꺼내놓은 데에 무한한 감사를 드릴 것이다.
“아이를 이미 혼자 놔두기로 마음먹었을 때에는 부모로서 여러 가지를 각오해야 한다. 우선 아이가 혼자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고, 부모의 직접적인 손길 없이 얼마큼 외로울까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외로움으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용서해야 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용납되지 않는다면, 아이를 절대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담배를 피우는 건 인간이 못할 짓은 결코 아니다. 단지 얼마큼 빨리 시작하느냐가 논의의 관건일 뿐이다. 그것이 스무 살이건 열다섯 살이건 그렇게 큰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아니, 열다섯 살에 경험해서 그것이 왜 나쁜지 알았다면, 아마도 그는 이미 먼저 세상을 살아낸 깨달음의 삶일 수 있다. (중략) 아울러 남자가 할 수 있는 짓을 여자가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21세기 오늘의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반항심만 불러일으킬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머리에 물을 들였든지, 머리를 길렀든지, 바지를 길게 끌었든지, 바지에 구멍을 냈든지, 담배와 술을, 연애를 했든지…… 이것들을 크게 문제 삼는 부모라면 아이를 절대로 혼자 두지 말라고 이르고 싶다. 이는 부모가 다시 먼저 시대를 배우고 가야 한다. 이해하고 안아야 한다. 그저 보듬고 사랑해야 한다. 그것만이 아이를 돌아오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사랑으로 설득한 뒤 그래도 안 된다면 묵인해야 한다. 이미 아이는 넓고 열린 세상에 놓여 있다. 그리고 대신 아이는 자유를 배운다.”(본문58~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