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징 1, 대한민국 지성사 최초의 프로젝트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도정일과 최재천의 대담집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기획된 지식 사회의 횡적 소통 프로젝트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은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 신문이나 잡지 등의 미디어에서 매개한 만남, 토론회?학술회의에서의 만남 등 많은 마주침의 가능성들이 있다. 그러나 미디어의 특징에 따라, 누가 어떻게 매개하는가에 따라, 주제의 지속적인 토론과 논의의 완결성,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표현되고 소통되는가? 하는 점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는 출판 미디어가 매개하여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는 최초의 사건’이다. 우리 시대의 화두를 가슴에 품고 두 세계가 넓고 깊게 만나는 것이 처음 있는 사건이라면, 그 결과를 다듬고 보충하고 정리하여 616쪽의 만만치 않은 두께의 책으로 펴내는 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 세계의 깊이 있는 만남은 세계의 지성사에서도 그 예가 매우 드문 문화적 사건이다. 물론 만남의 조건은 눈부신 과학 발전이었다. 우리는 과학과 생명공학의 성과가 만들어놓은 장(場)에서 인문학의 사유와 과학의 사유가 만나는 일, 인문학자의 삶과 자연과학자의 삶, 연구실 밖에서 사회문화적 실천이 부딪히는 과정을 조목조목 짚어낸 이야기를 담아냈다.
생물학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도 놀라운 연구 분야입니다. 현대 생물학과 그 연관 분야들은 그동안 인문학이 ‘인간’에 대해 말하고 생각해왔던 방식들에 일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인간 그림이 온통 바뀌어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학문으로서만 그런 게 아닙니다. 줄기세포, 복제인간, 맞춤아기, 유전자 지도, 성격 개조, 인간 개량 등 생물학 분야가 내놓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은 지금 당장 우리 눈앞에 놀라운 신세계의 도래를 알리고 있습니다. 먼 미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을 생물학이 이처럼 빨리 끌어다 우리의 ‘현재’ 속에 실현하게 될 줄이야, 인문학이 미처 몰랐던 일입니다. 그래서 생물학과 인문학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도정일, 〈초대의 글〉에서
특징 2 ‘생명복제’의 시대,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인간’에 관한 두 사람의 대담을 듣기 전에, 두 사람이 말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단어 속에 담겨 있는 인문학적 세계와 자연과학적 세계를 느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인간’이라고 말할 때, 이들은 어떤 대상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이며, 또 인간적인 삶,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이다. 인간에 관한 대담 속에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듣는 것 못지않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도정일 지금 생명공학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매혹하고 있어요. 죽지 않는 인간, 병에 걸리지 않는 인간, 원하는 대로 자기를 개량할 수 있는 인간, 천재 생산, 성격 개조 등등, 생명공학은 지금까지 인간이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자연적 한계를 일거에 제거할 수 있다는 기대와 환상을 뿌리고 있습니다. 신과 인간을 갈라놓는 결정적인 차이는 유한성과 불멸성입니다. 지금 생명공학은 인간이 불멸성의 문턱에 올라설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고 있습니다.
최재천 생명과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미래는 모든 사람이 최대수명인 120세까지 질병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120세 생일날까지 섹스도 하고 테니스도 하는 등 신나게 잘 살다가 생일잔치를 마치고 잘들 있게나 하고 아무 고통 없이 떠나는 거죠. 이런 세상이 한 사람의 생명과학자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인간의 최대수명이 120세를 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선택이 갈고 닦은 결과를 하루아침에 뒤집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특징 3, 두 세계의 지식의 만남, 그리고 생성되는 교양 ― 13개의 테마로 보는 새로운 지식 세계
이 책에는 유전자와 문화, 복제와 윤리, 창조와 진화, DNA와 영혼, 육체와 정신, 신화와 과학, 인간과 동물, 아름다움과 과학, 암컷과 수컷, 섹스?젠더?섹슈얼리티, 종교와 진화, 사회생물학과 정신분석학, 등 13개의 창을 마련했다. 우리는 이 13개의 창을 통해 두 세계(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지식과 역사, 그리고 갈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대담의 과정에서 나오는 두 세계와 연관된 수많은 이야기들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읽을거리를 던지고 있다.
여기에 볼거리가 하나 더 있다. 두 세계를 말하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생활과 경험 그리고 지식의 탐구, 사회적 실천 과정 속에 녹아 있는 인문학적 소양과 자연과학적 소양의 실체라 할 수 있는 즉 인문적?과학적 가치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적?과학적으로 사는 것인가를 알 수 있고, 그것에 대한 바탕으로 두 사람의 삶의 윤리(생태적 인간)가 나타나는 대목이다.
인문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세계를 본다는 것은 또한 그렇게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학문이기 이전에 삶이다. 소설책을 읽거나 개미를 관찰하기 이전에 우리는 그러한 세계를 살아간다. 인문학적 소양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과학적인 삶의 태도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대담에 들어가기 전 대담자들에게 물었다.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는 어떻게 사는가? 인문학자는 어떻게 인문학자가 되고 과학자는 어떻게 과학자가 되는가? 인간에 대해 말하기 전에 ‘당신’에 대해 말해 달라. 당신의 세계 속에서 당신은 어떻게 태어났고 성장했는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두터운 세계. 그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언급하면서, 미국이 세계를 너무 얇고 투명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다른 것, 심지어 대립-모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공존할 수 있도록 세계를 넉넉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 한 번 던진 물음, 즉 인문학적 소양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다. 두터운 세계를 위한 윤리학. 그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타인을 이해한다, 타자를 이해한다. 우리말로 하면 역지사지, 바꿔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건데, 기본적으로 타자를 긍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것은 내가 나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를 열어서 타인을 받아들이거나, 내가 나를 버리고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인문학적 삶의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내가 첫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이 ??가슴을 여는 사회??입니다.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울타리를 걷어치울 줄도 알아야 하죠. 그래야 타자가 들어오거나 자기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적 삶의 제1조예요.”
본문 31~31쪽, 〈신화를 품은 인문학자〉에서
그렇다고 그가 스스로를 대단한 운동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물론 숲이 망가지고 있는데 무슨 논문이냐며 숲을 먼저 살리자고 운동에 뛰어든 생태학자들을 존경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것을 자기 몫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 귀한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 쓰면서도 자신은 그저 소박한 존재일 뿐이란다. “저는 환경운동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생태학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해요. 잘 알지 못하면 보호한다는 것이 오히려 파괴하는 것이 되죠. 알아야 제대로 사랑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자연에 대해 점점 더 알게 되면 저절로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젊은 친구들을 20년 정도만 열심히 가르치면 그들이 우리 사회의 주인이 되었을 때 환경은 저절로 보호될 겁니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탓할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그게 그래도 빠르고 현실적일 것 같아요.”
본문 56~57쪽, 〈개미를 사랑한 생물학자〉에서
특징 4, 대담의 주요 쟁점을 일목요연하게 조망하다― 쟁점 찾아보기
이 책 뒤에는 대담의 주요 쟁점이나 주제 등을 일목요연하게 찾을 수 있도록 쟁점 찾아보기를 만들었다. 인문학, 인간,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 / 자연과학, 기술, 과학적인 것은 무엇인가 / 인문학과 생물학의 기본적인 대립 지점은 어디인가? / 인문학적 소양의 정체란 / 과학적 사고란 무엇인가? / 생명공학 기술은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 최재천의 인문학론 / 도정일의 생물학론 등 250여 개의 항목을 넣어 우리 시대 화두들과 두 세계의 지식이 어떻게 소통되고 있는가를 조망할 수 있게 했다.
특징 5, 지식 사회의 열린 소통, 휴머니스트의 대담집 시리즈 소개
지성들이 벌이는 감성 커뮤니케이션, 지식계의 횡적 소통을 매개하는 역할을 출판 미디어가 깊고 넓게 탐험하기 위해 기획된 휴머니스트의 대담(HIT, Human Interlogue Terminal) 시리즈는 2001년 11월 독자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동양철학자 이승환(고려대 철학과 교수)과 서양철학자 김용석(영산대 교양학부 교수)의 대담을 엮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는 출판사가 기획하여 발간한 최초의 본격 철학 대담집으로 우리 토론 문화에 큰 자극제가 되었다.
2003년에 발간된 두 번째 대담집 《오만과 편견》은 해방 이후 한국의 학자와 일본의 학자가 두 나라 학계의 주류 담론인 ‘민족’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대담이었다. 임지현(한양대 사학과 교수)과 사카이 나오키(코넬대 아시아연구과 교수)가 ‘민족주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3년 동안의 말과 글의 성과를 담아냈고, 국민국가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새로운 공간을 모색하는 만남으로 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