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의 원작 소설
소수 문화인 로리타와 폭주족이 등장하는 소설을 메이저급 영화로 만드는 것은 일본에서도 드문 일이다. 더구나 저자는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몰라도 문단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작가. 그 이유를 찾자면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과는 달리 이 소설이 매우 재미있고, 소외된 소녀들의 감동적인 성장소설이기 때문일 거라는 정도다. 자유분방하지만 귀여니류의 소설과는 달리 상당한 내공을 갖춘 이 소설은 일본 여고생들의 필독서로 인기를 얻고, 영화로 만들어져 뜻밖에 흥행에도 성공했다. 게다가 일본영화잡지 키네마 준보의 베스트 10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문화와 일본 특유의 상황을 다루고 있어 오해를 받을 소지가 많다. CF 감독 출신인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데뷔작답게 화려한 영상이 돋보이는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영화라고 칭찬받기도 하지만, 엽기적이고 유치한 영화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이런 오해는 원작《시모츠마 이야기》를 읽으면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과 더불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외로운 소녀들의 성장통 이야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예쁜 드레스를 입기 위해서라면 누구의 시선도 개의치 않는 탐미주의자 모모코, 현란하게 개조한 스쿠터를 타고 어이없는 특공복 패션을 선보이지만 얌전한(?) 폭주를 즐기는 이치고는 확실히 '별난 아이들'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내면은 사회와 가족의 문제로 소외되고 성장통을 겪고 있는 평범한 아이들이다. 아니,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불사하며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평범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이리 휘고 저리 휘며 그때그때 사회의 관습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기특한 소녀들이다. 이들은 입시에 대한 중압감이나 어른들이 강요하는 매몰찬 잣대에 휘둘리는, 이른바 사회가 바른 길의 노선을 걷고 있다고 믿는 아이들보다 오히려 더 건전하기까지 하다. 성장기의 혼돈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관을 올곧게 지키려는 그들은 별난 아이들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을 해주어야 할 우리의 아이들이다.
이 소설은 로리타 패션과 복고 폭주족이라는 특별한 마이너리티 문화를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가벼운 읽을거리가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두 소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겪는 고통과 서로 다른 상대에게서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성장 소설이다. 타케모토 노바라 특유의 감각적인 필치로 상반된 캐릭터의 두 소녀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우정을 키워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작가는 이들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어른들의 편협한 시선에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폭주족이 될 생각은 전혀 없고, 로리타 패션이 예쁘긴 하지만 뛰어들 엄두는 나지 않는 10대, 20대 여성들이《시모츠마 이야기》를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모모코와 이치고의 선택이 진부하게 계몽적이지 않고, 요즘 청소년들이 원하는 스타일 그대로 쿨한 것도 매력적이다.
오토메의 카리스마? 타케모토 노바라
‘불량공주 모모코’를 다룬 여러 매체의 기사에서 다양한 오류가 발견되는 것은《시모츠마 이야기》가 한국에는 일부 마니아층을 제외하고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오토메乙女 문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모모코가 모든 것을 걸다시피 추구하는 로리타는 오토메 문화의 하위 문화다. 오토메는 고결하고 깨끗한 아직 세상의 때를 타지 않은 처녀(소녀)라는 뜻이며, 소수 문화이긴 하지만 10대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본에서 소녀 문화는 요시야 노부코가 소녀 소설을 발표한 대정시대(1912~1926)에 이미 존재했으며, 화가 나카하라 쥰이치, 시인이자 화가였던 타케히사 유메지, 1950~70년대로 와서 나이토 르네까지 일본 예술사의 유명인사들이 오토메 카테고리에 포함된다.
하여튼 저자인 타케모토 노바라는 오토메 문화의 대부로 인정받는 작가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건담' 대신 '들장미 캔디'에 열광하고 오토메 문화에 심취하였고, 무명 시절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오토메에 대한 글들을 무가지에 발표하여 오토메 문화의 이론적 근거를 정립하고 대변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표현대로 하면 오토메의 카리스마라고 불린다.
타케모토 노바라는 2000년 소설《미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고, 다음해《미싱》에 수록된 단편《세계의 끝이라는 이름의 잡화점》이 영화화되었다.(《미싱》은 민음사에 의해 계약되었으나 아직 출판되지는 않고 있다.) 2002년《시모츠마 이야기-양키 소녀와 로리타 소녀》를 발표하여 대중적인 작가로 인정받았고, 2003년에는《에밀리》를 발표하여 제16회 미시마 유키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의 오토메들
일본의 오토메, 로리타 문화는 국내에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물론 소설속의 모모코처럼 드레스를 입고 일상생활을 하는 여성은 드물다고 봐야겠지만 로리타로서의 모습을 꿈꾸는 소녀들은 증가하고 있다고 추측된다.
수입되면서 ‘불량공주 모모코’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일본에서는 영화 제목도 ‘시모츠마 이야기’다. 네이버에서 ‘시모츠마 이야기’를 검색해보면 이미 상당수의 10대와 20대 네티즌들이 이 영화를 내려 받아 감상했고, 상당한 호감을 느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유치하고 엽기적이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의견은 대부분 남성으로부터 나왔다는 것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