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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5년 05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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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4쪽 | 425g | 130*205*30mm |
ISBN13 | 9788954636179 |
ISBN10 | 8954636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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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너는 거기 있었구나, 그대로.
서점에 가서 매대를 쭉 살펴보면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앤솔로지들이 있다. 각종 권위 있는 문학상 작품집만 해도 몇 권인지, 찾아서 읽고 싶다가도 1회부터 읽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챙겨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내게 이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은 특별하다. 내가 유일하게 1화부터 챙겨본 앤솔로지이기 때문이다. 김중혁의 재기발랄함과 김애란의 혁신, 손보미의 놀람과 김종옥의 탄생, 황정은의 변화를 이어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올해의 젊은작가는 이름조차 생소한 작가 정지돈이다. 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젊은 작가상이니까. 이제 앞으로의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사람들이니까.
5회 젊은 작가상이 주었던 충격이 너무 컸다. 그래서 그 이상을 뛰어넘는 작품집이 나올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물론 역시 기대 이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시 젊은작가상이구나.’하는 생각은 들었다. 작년의 5회 젊은 작가상 리뷰를 쓸 때의 테마는 ‘공백’이었다. 삶에 자리한 공백을 이야기하는 7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마음이 쓸쓸해지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 6회의 테마는 아마도 ‘그대로 있음’, 곧 ‘자연’이 아닐까 싶다. 인물과 서사들이 그 무엇도 특별하진 않다. 그리고 그 어떤 특별한 사건도 겪지 않는다. 혹은 특별한 사건을 겪는다 해도 그것은 ‘그저 지나가는 일’이다. 그래서 강렬한 임팩트는 없지만, 작품을 읽고 나면 하나 둘씩 잔상이 남아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안심하게 만든다. ‘아, 그래, 너희 거기 그대로 있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윤이형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평론가는 「루카」를 해석하며, 기왕 동성애 문학으로 써놨는데 특별하게 읽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오독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오독을 하고 싶다. 퀴어 문학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꽤 기대하며 읽어내려 간 윤이형의 작품은 노골적이지도, 이게 퀴어 서사임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그 속에서 상처를 입고, 다시 일어나는, 그저 ‘사랑’이야기를 쓰고 있다. 다만 이에 맞물리는 ‘루카’의 아버지 이야기가 그들의 근원적인 상처를 파헤쳐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만든다. 그들의 사랑은 그저 흘러간다. 그 점이 좋다. 동성애자이기에 그들의 사랑은 특이할까? 그저 그들은 사람으로 머물 뿐이다. ‘자연’스럽게 말이다.
손보미의 서사는 언제나 나를 당황하게 한다. 처음 그녀의 작품집 『그들에게 린디합을』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 다 똑같은 구도의 소설인데, 다 구별이 간다는 것. 그것이 손보미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성과다. 언제나 손보미의 이야기에는 중산층 부부의 이야기, 그들의 일상적인 세계로 파고드는 미세한 균열들을 날카롭게 포획된다. 그것은 이번 「임시교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두 다른 정서다. 이 작품 속 P부인이 가지는 일상성은 ‘임시’라는 단어 속에 묻혀 드러난다. 그녀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자신의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한 부부의 일상으로 들어간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한 부부의 일상 속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P부인의 일상성은 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삶의 한 조각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손보미가 놀라워 작품을 읽은 후에도 쉽게 다음 작품을 넘길 수 없었다.
백수린은 『폴링 인 폴』에서 받았던 충격이 너무 큰 작가였다. 신경숙, 조해진 이후로 이런 문체와 감성을 가진 작가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그렇기에 「여름의 정오」 역시 특별한 것 없음에도 가슴에 사무쳤다. 이방의 감성, 그 속에서 묻어나는 쓸쓸함의 정서, 심사위원들의 말처럼, 「여름의 정오」는 『폴링 인 폴』에 수록된 작품들의 감성을 그대로 가져왔다. 혹여나 자기복제를 의심받을 정도로. 하지만 분명 다르다. 그녀의 감성은 보다 확장되고 풍부해졌다. 마지막 작품이라 읽는 데 힘이 빠져있다고 생각했는데, 지쳐있는 독서를 백수린은 황홀경으로 이끌어주었다. 젊은 작가상에 처음 발을 들인 작가, 앞으로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최은미의 서사는 눈앞에 그림이 펼쳐지듯, 문장 하나하나가 이미지화 되는 점이 독특했다. 특별할 것 없는 서사, 일상적인 이웃들의 이야기를 일상적이지 않은 인물들 사이로 녹여 작품을 구축해낸다. ‘누가 죽었을까?’로 시작해 ‘누가 죽었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구나’로 끝나는 이 작품은 그렇게 허를 찌른다. 이장욱과 김금희의 작품은 모두 특이하지만 어쩐지 들어본 것 같고, 주위에도 있을 법한 인물인 ‘정귀보’와 ‘조중균’의 서사이다. 서사를 읽다보면 인물의 내력과 행동이 특이하게 느껴지다가도 곰곰이 곱씹어보면 언제 어느 서사에선가 마주쳤던 것 같은, 혹은 내 주변에서 얼핏 들어본 적 있었던 것 같은 인물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인물의 이야기에 힘이 실리고, 주제의식이 가미되며 이 작품들은 훌륭한 서사로 탄생한다.
마지막으로 정지돈의 이야기를 덧붙이려 한다. 나는 분명 살아오면서 많은 작품을 읽어왔다.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나름대로는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읽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지돈의 작품을 읽은 후, 나는 무너졌다. 내 한계를 여실히 체감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텍스트에 풀어놓은 것들은 많은데, 내가 독자로서 그를 온전히 해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체된 서사, 나열되는 건축사와 현대사, 그 속에서 나는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마치 손보미의 「과학자의 사랑」을 처음 읽었던 순간의 백배의 어려움이었달까. 혁신적이고 곳곳에 배어있는 유머 코드 역시 괄목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 내게는 버거운 작품이다. 「건축이냐 혁명이냐」이라는 질문에 답하자면 나는 ‘혁명이다’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내가 정지돈의 서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내공을 키워야 할 듯 싶다.
특별한 서사는 없었다. 어딘가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일들이었다.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인물들의 이야기였다. ‘혁신’과 ‘파격’ 대신 ‘안정’과 ‘자연’이 남아있었다. 그것이 내가 젊은작가상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짠 것도 아닐텐데, 어쩜 이렇게 매 해 작품집에서는 하나의 테마가 읽힐 수 있을까. 이 시대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가장 젊은 작가들이 고민하고 있는 테제가 그만큼 공동의 것이라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작품을 이렇게 행복한 가격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내년 7회 역시 기대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정지돈을 꼭 다시 보고 싶다. 그 때는 말할 것이다. 나 그대의 작품에서 분명 무엇인가를 느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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