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기만 한 글쓰기? -
‘대통령 연설’이라는 최고의 글쓰기 전략에서 배우자
서류 작성을 위해 한글 프로그램의 하얀 창을 띄워놓고 고쳤다 쓰기를 수십 번 반복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심 끝에 써서 낸 문서로 퇴짜를 맞고 난 뒤, 무엇이 문제인지 그 원인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 거기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서류에 쓴 토씨 하나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일을 그르치게 만들기라도 하면 더욱 난감해진다. 과연 어떻게 써야 상대를 설득하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저자는 대통령의 연설문을 통해서 상대의 마음을 얻는 글쓰기 방법을 제시한다. 대통령은 연설문을 통해 자신의 뜻을 국민에게 전하고 국가를 통치한다. 연설문이란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과 국가를 설득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글이다. 예컨대, 대통령의 취임식은 앞으로 5년 동안 어떻게 국가를 운영할지 국민을 설득하는 첫 번째 자리다. 취임사에는 대통령의 철학, 정책, 비전을 담되 국민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쉽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취임사는 발표 한 달 전부터 교수, 소설가 등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준비위원회를 구성해서 가장 명확하게 뜻과 방향을 제시하도록 구조와 단어들을 쌓는다. 그야말로 ‘현존하는 가장 전략적인 글쓰기 방법으로 쓰인 글’이다.
저자는 취임사를 비롯하여 대일외교의 뜻을 담는 ‘3.1절 기념사’, 남북관계의 방향을 담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연설’ 등 연설문을 예로 들어, 글을 쓸 때는 무엇을 파악해야 하고 어떤 방법으로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노무현 대통령의‘카피’vs 김대중 대통령의 ‘비유’
글의 목적,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가 무엇이든 글을 받는 상대방은 단시간 안에 글의 목적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첫줄부터 횡설수설하는 글, 복잡한 글은 가차 없이 탈락되거나 부정적인 회신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인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벽에 부딪힌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참을성이 없다. 애매한 것을 싫어하고,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 지면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떤 글이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가?
대통령은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만 명에 이르는 청중을 상대로 연설을 한다. 발표되는 장소나 전달되는 매체까지 고려하면 장황한 글, 긴 글은 곧바로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두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는 데에 자신만의 방식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늘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하는 한 단어, 한 문장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 다소 과격한 글이지만, 사람들은 인사 청탁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그 의지를 단 한마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법을 주로 썼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전진하다.” “햇볕정책” 등 머릿속으로 곧바로 그려지는 비유를 통해 쉽게 이해하도록 표현했다. 저자는 이밖에도 핵심 메시지를 쓰는 법, 글의 기조를 잡는 법, 서술, 표현법과 퇴고의 방법 등 각 꼭지마다 두 대통령이 주로 사용했던 글의 기법들을 밝힘으로써 독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글쓰기 방법을 찾아가도록 안내한다.
청와대의 뒷이야기, ‘고스트 라이터’ 연설비서관의 세계
저자는 연설비서관이었기에 볼 수 있었던 청와대 안의 속사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글쓰기 비법들을 술을 먹고 연설문을 쓰는 바람에 광복절 경축사의 꼬랑지가 잘린 사연, 대통령의 글을 받아 적기 위해 화장실에서 기어 나온 사연 등 비하인드 스토리 함께 부담 없이 다룬다. 또한 고(故) 김선일 씨 피랍사건, 대연정 제안, 2차 남북정상 회담 당시 북에서 쓴 대(對)국민 보고연설, 이라크 파병 때 쓴 연설에 관한 일화들에서는 연설비서관으로서 느끼는 중압감이 얼마나 큰지도 엿볼 수 있다. ‘자신’을 버리고 ‘대통령’의 아바타가 되어 그 사람의 논리 전개 방식과 고유의 표현 방식, 어투나 호흡, 즐겨 쓰는 농담까지 철저하게 따라야 하는 연설비서관으로서의 고충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이 갖는 의미이다. 일반인은 잘 알 수 없었던 연설비서관이라는 자리, 청와대의 ‘고스트라이터’가 어떤 역할을 했고 무엇을 남겼는지 처음으로 조명한다.
‘글쓰기’로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철저히 ‘을’ 되라!
‘디테일한 커뮤니케이션’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다. 저자는 이런 때일수록 글을 먼저 쓰는 쪽에서 철저히 ‘을’이라는 인식을 갖추라고 말한다. 여기서 ‘을’이란 단순히 내가 비즈니스 약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글이란 것은 그 글을 봐 주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하고 제대로 이해시킬 책임은 쓰는 사람에게 있다. 아무리 잘 쓴 글이라도 상대방이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쓸모없는 글, 죽은 글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철저히 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두 대통령 또한 연설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만큼은 국민 앞에 자신이 을이란 마음으로 연단 위에 섰다. 같은 주제로 여러 버전의 글을 쓰고 그중에서 국민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표현 방법, 국민이 가장 쉽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단어로 만들어진 연설문을 골라 국민 앞에 섰다.
결국 지금 자신이 말하려는 메시지가 상대방이 관심 가질 만한 내용인지 나의 표현 방법이 상대방이 이해하기에 편한지 끊임없이 의식할 때, 글로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