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과 현재,
두 장의 사진으로 반세기를 기록하다
이 책의 모태는 『경향신문』의 연재물 「반세기, 기록의 기억」이다. 이 칼럼은 50년 전과 후를 보여주는 두 장의 사진과 세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쓴 반세기 동안의 변화에 관한 글을 담고 있다. 칼럼을 기획한 건 2015년 결성되어 ‘카피레프트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토종 콘텐츠 무상 공유 단체’ 셀수스협동조합이다(카피레프트는 저작권을 뜻하는 카피라이트의 반대 개념을 말한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71년, 그러니까 반세기 전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시대상을 사진으로 기록한 조성봉이라는 사진가가 있다. 그는 당시 찍은 귀한 사진들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셀수스에 기증했다. 셀수스를 결성한 김찬휘·김형진, 그리고 그들의 친구이자 셀수스에 가장 많은 사진을 기증한 후원자인 정치영은 옛 사진에 나오는 장소들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변화상을 글로 써서 칼럼에 실었다. 그 사이, 칼럼에 들어갈 장소의 현재 사진을 찍기 위해 셀수스의 조합원들은 옛 사진과 동일한 장소에 가서 동일한 구도로 장소의 모습을 촬영했다. 이리하여 50년 전과 후를 보여주는 익숙한 듯 낯선 두 장의 사진과 그 변화에 관한 글이 2022년 1월부터 매주 금요일이면 『경향신문』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다. 50년 동안 우리가 아는 그 장소는 과연 어떻게 변한 걸까?
변했다는 건,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어 알 수 있는 것
어떤 곳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와도 같아서, 50년 전 사진가가 선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오래된 고목이 단서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주변 어르신께 옛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물어 찾기도 했다. 과정이 이런 한, 사진으로 찾은 것은 장소와 그 장소의 시대적 배경, 역사적 의미뿐만이 아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장소에 관한 작고 평범한 기억들을 들려줬다. 옛 사진을 따라가며 사진을 찍는 조합원들, 글을 쓰는 필자들, 그리고 칼럼을 읽는 독자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떠올릴 것이다. ‘50년 후에 과연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피맛골에 내려온 남산의 토끼』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이 장소들을 기억할 귀중한, 어쩌면 유일한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많은 장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흐름에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나 터만 남아 있다. 비록 초라하게 남은 터라 할지라도 그때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름의 방식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건물은 높아지고 하늘은 좁아져서 50년 전 작가와 같은 앵글을 맞출 수 없어 아쉬웠다. 장소를 찾을 때는 먼저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확인한 후 현장을 찾아 나섰다. 변하지 않은 산등선과 오래된 건물들, 그리고 토박이 어르신들의 추억담은 그 지역 장소를 찾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했다. 변했다는 건,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어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253쪽 「50년 전과 동일한 위치에서 사진 찍기」)
박물관 박제로 남은 피맛골
‘다이내믹 코리아’. 우리는 어찌나 새로운 걸 좋아하고 빠르게 결정하는지, 옛 성곽을 새롭게(?) 복원하기 위해 먼저 시민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건물들을 순식간에 부숴버린다. 그 장소와 함께 간직해 온 기억들은 동시에 갈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한다.
발전하는 도시의 기능을 수용하고 편리하게 수행하기 위해,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산 가치의 향상을 위해 도시가 허물어지고 다시 만들어지기를 반복한다. 터를 완전히 없애고 빌딩을 올려 그 안에 피맛골이라는 이름의 식당가를 재현해 놓은 지금의 피맛골에서 도시재생의 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집은 새로 지을 수도 있지만, 고쳐 쓸 수도 있는 것이다. (250쪽 「소회(所懷)」)
서울 성동구 마장동과 남산1호터널을 잇는 청계고가도로는 1969년에 개통되어 도심 속 자동차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청계천 복원 공사가 이뤄지면서 30여 년 만에 철거되었다. 종로에 있던 피맛골은 조선 시대 하급 관리와 평민들이 말과 가마가 오가는 대로를 피해 이곳으로 다니면서 국밥집이나 주점이 들어선 활기 넘치는 골목이었지만, 재개발되어 지금은 거대한 빌딩 숲으로 변했다. 피맛골에 있던 맛집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피맛골에 있던 물건들은 박물관으로 가 박제되었다. 피맛골 자리에 지은 식당가 통로에 ‘피맛골’이라는 간판만 덩그러니 남은 채. 이제 피맛골을 회상할 수 있는 단서는 당시의 피맛골을 기록한 사진,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뿐이다. 골목의 평범한 풍경들, 거리를 메우는 문화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사람들을 정신적인 면에서 기둥처럼 지탱해 주고 있다. 기분 좋게 불어온 바람처럼, 언제 어디선가 들려와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우리 주변 장소에 관한 가벼운 이야기들조차 우리가 간직한 훌륭한 사회 유산이다. 기둥처럼 당연하게 서 있어도, 바람처럼 만져지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익숙하고도 낯선 곳곳의 이야기
한때는 산 정상에 올라 “야호”라고 외치는 것이 보는 사람도 기분 좋은 풍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이한테 소음이어서, 또 야생동물을 놀랠 수 있어서 “야호”는 금지행위다. 산에서 음주와 흡연은 물론이고 불을 피우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50년 전 산중 취사는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버너를 켜서 취사를 하고자 하는 전투적 의지로 산을 올랐는가 싶을 정도다. 위압적인 모습으로 경복궁 앞을 막고 있던 건물 역시 사라졌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청사로 지어진 중앙청은 1995년 광복절 전까지도 서울 한복판에 버티고 서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중앙청에 가려지지 않은 경복궁을 볼 수 있다. 두 장의 사진을 비교하면서, 새롭게 복원된 웅장한 광화문과 거기서 이어지는 높다란 담장,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의 중문인 흥례문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금의 그 시원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우리 민족이 깨끗이 품고 있던 이상을 이 오래된 장소가 하늘처럼 떠받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새삼 생각하게 된다.
사라진 나무 한 그루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
이 책은 우리가 사랑하는 장소에 쌓인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지역 부호의 거대한 궁궐 같은 모습으로 변모한 오죽헌은 1971년 사진 속에서만 하더라도 반가의 아담한 별채였다. 각기 다른 모양의 돌을 쌓아 만든 멀쩡했던 담장과 대문 앞에서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주던 사진 속 나무는 지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흙길은 보도블록으로 덮였고, 그곳에는 ‘율곡선생유적정화기념비’가 세워졌다. 조선 시대 부산 일대를 관할하던 동래도호부 관아의 누문(樓門)이던 망미루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만든 관광지인 금강공원 입구로 옮겨졌다가, 2014년에서야 수안동의 동래부 동헌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어 인근의 어정쩡한 위치로 옮겨진 망미루는 지금 좁은 골목길과 마주하고 있다. 기능을 잃은 옹색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힘든 삶 잠시 잊게 하는
우리 곁의 아름다운 공간들
이 책은 수백, 수천 가지의 이야기가 퇴적된 장소들의 역사를 되새기며 기록한다.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여 전 민족이 궐기한 3·1운동이 처음 시작된 장소인 탑골공원.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던, 그날 오후의 독립선언서 낭독의 메아리를 탑골공원은 품고 있다. 서울 조계사는 도시 한복판에서 자동차 경적과 매연 공기에 둘러싸여 있는 절이지만 교복 차림의 학생들도 하굣길에 들를 수 있는 동네 절 같은 분위기를 지닌 친근하고 편안한 장소다. 조계사 앞마당의 회화나무는 벌써 400살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수원 축만제는 1799년인 조선 시대 정조 23년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관개시설로 만들어진 아담한 저수지인데, 50년 전과 사진을 비교해 보면 나무가 울창해진 것 말고는 큰 변화가 없다. 호수 한가운데에 준설토를 쌓아 조성한 인공섬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고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르자 오리, 기러기 등이 찾아오기 시작해, 이제는 겨울 철새 민물가마우지의 도래지가 되었다 한다.
누군가 50년 후 미래에 같은 공간에서
그 피사체를 찍어 공유한다면
셀수스의 조합원들은 발품을 팔아 옛 사진 속 장소들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것을 무상으로 공유한다.
사진 등의 콘텐츠는 순전히 내 것이 없다. 앞서간 사람들의 유산에 내 노력이 살짝 얹어져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콘텐츠는 모두의 것이다. 콘텐츠를 무상 공유하자는 ‘카피레프트 운동’은 이념이 아니다. 내 휴대폰에서 잠자고 있는 사진이 누군가에는 필요한 자료가 될 수 있기에 돈 받지 말고 서로 주고받자는, 일종의 에너지 절약, 자연보호 운동이다. 카피라이트(Copyright)에 반대하는 카피레프트(Copyleft)는 저작권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저작권은 보호받아 마땅하지만 ‘독점’ 대신 ‘공유’로 사회발전을 이루려는 카피레프트 운동은 ‘돈이 없는 사람도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13쪽 「들어가며」)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어 나눌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저작권이란 세련된 현대적 개념 역시 낡은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을 50년 전에 상상할 수 있던 사람이 있었을까? 지금은 다소 허황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들도 만약 50년 후라면? 반세기가 지나 이 책을 다시 꺼내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김찬휘 · 김형진 · 정치영
세 사람은 1981년 봄 서울 정동에 있던 배재고등학교 1학년 9반 교실에서 처음 만났다. 덕수궁 돌담길을 누비며 고교 3년 동안 늘 붙어 다닌 셋은 그 후 40여 년 동안 꽤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한결같은 우정은 여전한 채로 말이다. 강남구에서 20여 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며 일타강사로 활약한 김찬휘는 지금 녹색당 대표로 활동하며 기후 위기 대응과 생태적 전환을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 김형진은 30여 년 동안 KBS PD로 어린이프로그램 등을 연출했고, 현재는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정치영은 과거의 경관과 지리적 상황을 복원하는 역사지리학자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로 일하고 있다.
각기 다른 일을 하며 살던 세 사람은 셀수스협동조합을 계기로 다시 의기투합했다. 셀수스협동조합은 지난 2015년 김형진·김찬휘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카피레프트 운동단체다. 카피레프트는 저작권을 뜻하는 카피라이트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콘텐츠를 무상으로 공유하자는 운동을 말한다. 정치영은 지금까지 셀수스협동조합에 가장 많은 사진을 기증한 후원자다.
셀수스협동조합은 이 책의 모태가 된 『경향신문』 「반세기, 기록의 기억」 칼럼을 기획했는데, 그리하여 세 사람은 2022년 1월부터 이 칼럼을 공동 연재하기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경향신문』에는 한국의 의미 깊은 장소들이 지닌 낯설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옛 사진과, 그리고 그 사진의 구도를 재현하여 찍은 현재의 사진과 함께 실린다. 사진은 물론 셀수스협동조합 담당이다.
연재를 시작하며 셋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만날 때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살면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공유’하자”라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