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올해 해보고 싶은 일로 서로 같은 책 읽고 이야기하는 독서모임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나도 그런 모임을 내내 갈구했기에! 작심삼일이 될 지 언정 한번 해보자 하고 시작한 독서모임. 친구가 선정한 책 후보군 세 권 중에 배명훈 『미래과거시제』가 있었는데 선정 이유로 ‘1월이 되니 SF소설이 땡김!’ 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나도 SF가 너무 땡기는 것이여 ㅋㅋㅋㅋ 그래서 이 책으로 땅땅땅.
몇 년 전만 해도 SF라는 장르를 딱히 즐기지 않았던 터라 배명훈 작가를 몰랐었는데 북튜버 ‘겨울서점’에서 종종 언급이 되어 알게 된 작가이다. (사실 언급 정도만 된 게 아니라 아예 배명훈 작가님을 찬양하는 영상이 대놓고 하나 올라온 것도 있다. 덕후의 찐웃음포텐ㅋㅋ)
코로나 시기에 출간됐던 SF 앤솔로지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에 수록됐던 배명훈 작가의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를 엄청 재미나게 읽었고, 이어서 『안녕, 인공존재!』도 읽었는데 <엄마의 설명력>, <크레인 크레인>, <매뉴얼>, <누군가를 만났어>도 정말정말정말 흥미롭게 읽었던 경험이 있어서 독서모임 첫 책으로 산뜻하게 시작하기 좋을 것 같았다.
1. <수요곡선의 수호자>
해저도시건축 감리를 하는 유희가 수요곡선의 수호자 마사로를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AI로 형상화한 것 같음ㅋㅋ 다른 많은 AI들이 생산을 해댈 때 그 공급량을 조절해주는 역할로 만든 게 마사로다. 근데 재밌는 설정은 마사로가 그냥 소비만 해서는 안되고 소비를 하면서 진심으로 행복하고 만족감을 느껴야 되는 거임. 하 그런거라면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어차피 돈도 정부에서 지원하는 건데!! ㅋㅋㅋ 그리고 결국 ‘덕질은 나의 힘, 덕질만이 살길이다’인 것인가ㅋㅋㅋㅋ 나 마사로 할래 ㅜ 나 시켜줘 나 ㅜ
2.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처음 몇 문장을 읽다가 어? 하고 다음 문장을 더 읽고서 책 읽기를 멈췄던 기억이 난다. 책 편집 과정에서 오탈자 수정이 안된 줄 알았는데 파열음과 쌍자음을 쓰지 않는 실험적인 소설이었다. 2020년 이후로 크고 작은 감염병을 여러 번 겪은 후 전반적인 생활양식뿐 아니라 언어도 크게 변화한 미래 세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비말이 튀는 파열음과 쌍자음이 사라진 세상이라니.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말하지 못하고 ‘가다르시스를 느겼다’라고 말하며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를 ‘동족아여 주시옵소서’라고 말하는 세상에서는 감정 표현도 절제되려나. 이 소설 후기에는 2113년 표기법으로 작성된 후기들도 있고 온라인 북토크 당시에 ‘ㅋㅋㅋㅋㅋ’를 ‘ㄱㄱㄱㄱ’로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신박해!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로도 번역이 되었다고 하는데 외국어로는 2113년 표기법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하다.
3. <미래과거시제>
타임오프 로맨스의 정석인 듯한 느낌. 이걸 미래과거시제라는 언어학과 결부시킨 게 신박하긴 했으나 다른 단편에 비하면 임팩트가 적다고 느꼈다. 활자보다 영상 콘텐츠로 제작되면 더 볼거리가 많을 것 같다. 시간여행을 온 남자가 하는 공연 이런 것도 보여줄 수 있고 겁나 잘생기고 신비로운 남주 얼굴도 볼 수 있고? ㅋㅋㅋㅋ 이 정도면 (연기 잘하는) 차은우나 송강 정도 되야… ^^(?)
4. <접히는 신들>
작가가 이집트 신들의 꼿꼿한 자세를 보면서 이들이라면 아주 먼 곳에서 온 외계인일 수도 있다고 상상했다고 한다. 이동 거리가 멀면 멀 수록 이동수단의 공간은 좁아질 수 밖에 없다는 그 생각이 이렇게 들으면 당연한데 듣기 전에는 굳이 못 했던 것 같다. 그리고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차원을 넘나들며 변신하는 설정은 예전부터도 많았는데 변신 전후보다는 변신을 했던 흔적(평평한 종이나 벽에 접혀지며 생겼던 수많은 선들)에 초점을 맞춘게 흥미로웠지. 또 공간이 부족하면 욕망도 사라진다는 게 너무너무너무 공감 가서 대갈 박고 울고 싶었음 ㅜㅜ
5. <인류의 대변자>
여기서 나오는 외계인들도 접혀서 지구(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오는데 <접히는 신들>에서 이미 맛본 설정이라 익숙하게 받아들임 ㅋㅋ 우주선이 도심 한복판에 날라와도 수능날 영어듣기 시험을 걱정하는 건 미래에도 똑같구나^_ㅠ
6. <임시 조종사>
‘(아니리)’로 시작하는 판소리 형식의 매우 실험적인 SF소설. 판소리 형식이니 만큼 잘 읽히지 않거나 뜻을 잘 모르겠는 한자어도 많이 나온다. ‘아니리/진양조/중모리/자진모리’라고 써있는 것에 따라서 읽으면서 나도 판소리 형식으로 읽게 된다. 근데 정말 판소리처럼 장단이 있어서 묵독을 할 때도 리듬감 있게 읽히는데, 한 작품을 내내 그 텐션으로 읽으려니까 좀 힘이 달리고 스토리 디테일을 놓치기 쉬웠던 게 아쉽다. 근데 작가노트 보니까 전반적인 스토리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고 해서 위안을 얻었다ㅋㅋ 하여간 진짜 작가님도 대단하긴 대단함 ㅋㅋㅋㅋ
내용 중에서 제일 웃겼던 게 ‘크로스 트위스트(cross twist) 홀 스티치(whole stitch) 하프 스티치(half stitch)’하고 각주로 『기초부터 차근차근 보빈레이스』 참고 했다고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모닝 쓰리 이브닝 포(morning three evening four),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웬 전략인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소 텐 마우스에 노 워드(ten mouthes no word)라.’ ㅋㅋㅋㅋㅋ
7. <홈, 어웨이>
스포츠 경기에서 홈/어웨이(원정)할 때 그 홈, 어웨이.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의심 들고 길을 헤맬 때 홈 팬들처럼 열렬한 응원과 지지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할 것 같긴 한데 아주 인상적인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다.
8. <절반의 존재>
비행기 사고로 몸의 절반을 잃은 후 나머지 절반은 기계로 대체된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몸의 절반을 잃고 절반을 기계로 대체했으나 어쨌든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 이까지만 들었을 때 신체를 세로로 이등분해서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거나, 가로로 이등분해서 하체를 잃은 경우를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상체를 잃고 두 다리를 살려서 기계와 결합한 경우였다.
인간의 신체에서 자아라고 할 수 있는 곳을 꼽자면 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마음’으로 상징 되는 심장 정도. 그것도 아니라면 피부나 표정을 만드는 근육…? 근데 지하임에게는 뇌도, 심장, 피부도 모두 기계인데, 다리만 인간의 다리인데 존재의 본질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근데 또 여기서 한번 더 비틀어서 달리기를 했던 사람의 다리라면.?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하게 하는 이야기라서 이 단편집 중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9. <알람이 울리면>
슬프고 아름다운 소설. 시계방향 반시계 방향… 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말에 다다른다. 이야기를 꼬고 비트는 것 없이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친절한 소설이다. 오랜 시간 동면하는 시간 동안 소중한 사람의 부고를 알려주는 장치라. 실제로 냉동인간이 존재하는 세상이니까 이런 부가적인 의무도 슬슬 생각해야할 시기가 온 것일까.
오늘 아침 출근 전에 친구와 만나서 조찬(북)클럽 1회차를 했다. 뭐 한 20분 정도나 이야기 하고 수다나 떨다가 출근하지 않을까 했는데 약 1시간 가량을 이야기했던 알찬 시간이었다. 독서모임 처음 해보는데, 단편마다 하나씩 자유롭게 넘나들며 집고 넘어가면서 하니까 이야기할 주제도 많고 너무 느슨하거나 딥하지 않아서 딱 깔끔하고 좋았다. 특히 사이보그의 장애 등급 판정 이런 건 난 생각도 못했는데, 이런게 북클럽 하는 재미구나를 느꼈다. 구 조찬클럽 신 화개장터 형성 이후에 최고의 아웃풋(아마 처음으로 생산적이었던ㅋㅋㅋㅋ)을 한 날이었다. 꿀잼! 과연 몇회차까지 할 것인가!!! 나는 일단 3회차까지만이라도 해보고싶음! ㅋㅋㅋㅋ
다음 2회차는 김금희 『대온실 수리 보고서』 로 정했다. 한달 후에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