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워도 살아 보겠습니다.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효봉, 고암, 경봉, 향곡, 성철 스님을 잇는한국불교 선종사(禪宗史)의 산증인충남 공주에 위치한 계룡산 제석골. 이곳은 성(聖)과 속(俗)의 경계가 확연하다. 화려한 간판 불이 경쟁하듯 번쩍이는 모텔촌을 지나 낮은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네온사인 불빛에 반사되어 더 어수선해진 마음은 순간 정리되고, 계곡물의 흐름마저 정지된 듯 고요가 찾아든다. 학림사(鶴林寺) 오등선원(五燈禪院)에 닿은 것이다.우리 시대 대표적인 선불장(選佛場)이자 용맹정진의 가풍으로 이름난 이곳에서 낮과 밤의 경계는 무너진다. 전국에서 찾아와 방부를 들인 수좌들의 화두 일념에는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마저도 소음에 불과하다. 이곳의 선장(禪杖)이 바로 학산 대원(鶴山 大元) 대종사(大宗師)이다. 대원 스님은 1956년 만 14세 어린 나이에 출가를 결심하고 스스로 절(상주 남장사)로 들어갔다. 당시 주지스님은 절에 사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열네 살 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어려워도 살아 보겠습니다.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그 다짐처럼 스님은 근현대의 격랑 속에서 꿋꿋이 공부를 완성해 나갔다. 그렇게 참선(參禪)에 정진해 온 이 시대의 진정한 대선사(大禪師)는 그동안 걸어온 세월의 흔적이 무색하게 세납 팔순의 나이에도 출가자, 재가자의 경계를 두지 않고 나란히 앉아 용맹정진해 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큰스님의 형형한 눈빛은 마주 앉은 이의 마음을 꿰뚫는 힘이 있다.“자기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놈은 너뿐이다!”한국 선종사에 남을 법거량의 기록치열한 구도의 길에 스님은 막힘이 없었다. 구박과 일갈, 불친절함으로 일관한 스승의 방편에도 지치지 않았다. 공부에 대한 오직 한 가지 염원으로 스님은 효봉, 동산, 고암, 경봉, 전강, 향곡, 성철, 구산, 월산 스님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선지식을 찾아가 문답을 주고받으며 수행을 점검받았다. 책 전반부에 서술된 대원 스님과 선지식의 법거량(法擧揚)의 일화를 통해 우린 구도에 대한 수행자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우리 선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사료이기도 하다. 이 책이 더 빛나는 이유는 스승과 제자의 문답으로 단박에 드러나는 깨침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께서 물으시길,“그럼 너는 오매일여를 어떻게 정의 내리겠는가?”“오매일여는 만들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스스로 오매일여가 되어 있는 것을 깨달음만이 영원한 오매일여라 말할 수 있습니다.”“그럼 네가 오매일여에 대해 한마디 일러 보아라.”“푸른 하늘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푸르른데, 진흙 속에서 해와 달은 항상 뜨고 있습니다.”이렇게 대답하니 성철 스님께서 흔쾌히 손을 잡으시면서 기뻐하셨다.“그나마 오매일여와 씨름하고 자기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놈은 너뿐이다!”(-성철 스님과의 문답 중에서)“아무리 해도 잘 안 됩니다.”“그러면 잣나무에 올라가게. 꼭대기에 손을 잡을 수 없는 끝까지 올라가!”“끝까지 올라가서 어찌합니까?”“거기서 한 발 내딛고 나갔을 때, 그때를 당해서 어떤 것이 너의 본래면목이겠느냐?”(-고암 스님과의 문답 중에서)젊은 날 대원 스님의 모습에서 우린 수행자의 용맹함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이 법거량이 선사들의 할(喝)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전국의 선원을 다니며 선사들에게 자신의 공부를 점검받던 선불교의 전통이 지금은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의 수행기는 오늘의 불교계에 ‘의심과 분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오도, 그리고 깨달음 이후의 길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자 시절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스님의 별명은 대근기(大根機)였다. 어려운 수행을 끝낸 큰 수행자라는 뜻이다. 배고픔과 추위는 말할 것도 없고, 참기름 한 방울까지 간섭하는 스승의 훈계와 다그침은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스승의 행동 하나, 무심코 던지는 말의 행간에서 스님은 고심을 거듭하며 그 깊은 뜻을 헤아리려 했다. 스님은 모두 세 번의 오도(悟道, 깨우침)에 이른다. 깨우침에 대한 간절한 염원, 반드시 이루겠다는 절차탁마의 태도, 그리고 스승에 대한 믿음이 그 과정에 녹아 있다.5년여 공양주 생활을 군말 없이 해내던 스님의 일화이다. 50명 분의 밥을 가마솥에 앉히면 늘 밥이 눌었다. 밥이 눌면 스님이 먹을 밥은 없었다. 배가 고파 눌은밥을 주걱으로 긁어 먹으려고 하면 어느새 나타난 스승이 호통을 치며 몽둥이 세례를 퍼부었다. 밥을 태워 절집 재산을 없앴다는 명목이었다. 스님은 밥이 눋지 않게 해달라고 관세음보살님에게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 그 기도 소리를 노스님이 듣고는 밥이 눋지 않는 법을 알려주곤 이렇게 말했다. “다른 놈은 다 도망갔는데 너는 가지 않았구나.” 노스님은 스님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노스님이 일러준 대로 했더니 밥은 더이상 눋지 않았다. 이 이야기 속에는 바로 일념(一念)과 스승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대원 스님은 1986년 학림사를 창건하고 1995년 후학 양성을 위한 오등선원, 2001년에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오등시민선원을 열었다. 스님이 평생 보여준 치열한 구도의 길이 많은 이들의 감화를 불러와 이뤄진 일이다. 수좌들의 공부 점검은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가르침을 열어 준 스님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생활선(生活禪)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고(苦)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깨달음 이후의 삶은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가. 스님은 행(行)으로써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람이 맑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의 에너지 기운을 밖으로 드러낼 때 천하 만인이 다 좋아하게 됩니다.” 스님의 말처럼 모든 사람이 깨끗한 본성을 드러내도록 이끄는 것. 대원 스님의 공부의 시작과 끝이 아닐까.큰스님의 피땀 어린 수행대중을 위한 바른 이정표가 되다이 책은 지난 1997년부터 2020년까지 학림사 오등선원에서 펼친 법문은 물론, 제방의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설하신 수많은 법문 중 31꼭지를 선별하여 담았다.황금으로 만든 집에서 황금 침대에서 잠자고, 황금 쟁반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의식이 잘못된 사람이 일시적으로 좋은 환경에 산다고 해도 곧 퇴락하여 가난해져서 열악한 환경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르고 깨끗한 의식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과거에 동산(洞山) 스님께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습니다.“세간에서 무엇이 제일 괴로운가?” 하니 스님이 말하기를,“지옥이 제일 괴롭습니다.”동산 스님이 말씀하시기를,“그렇지 않느니라. 이 옷을 입은 인연으로써 대사(大事)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것이니라.”(-본문 중에서)올해로 세수 여든, 후학을 가르치는 일은 조금 내려놓아도 될 때이지만 스님이 주장자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망념(妄念)에 오염되어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삶을 사는’ 대중들 때문이다. 시대의 스승이자 수행자로서 짊어져야 할 운명이다.참으로 어렵고 혼탁한 시절, 그 속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이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우치도록 도와 대자유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큰스님의 원력은 푸른빛이 형형한 칼날 같다. 법석(法席) 위에서의 걸림 없는 법문 가운데 뿜어져 나오는 할은 자성(自性)을 캄캄하게 덮어버린 우리의 마음 앞뒤를 단박에 끊어내기 때문이다.本來淸淨眞自性(본래청정진자성)不假修證不費力(불가수증불비력)人人卽用直此心(인인즉용직차심)卽是如來慈悲行(즉시여래자비행)본래 청정해서 참 자성이기 때문에닦아 증득함을 빌리지 않고 힘을 소비할 것이 없다.사람 사람이 바로 이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쓰면곧 이것이 여래의 자비행이라고 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스님의 원력은 선사의 향기가 밴 법력(法力)으로 여문다. 스님은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고 다 갖추고’ 있지만 ‘병들고 어리석어 보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 칼날을 드리운다. 내 앞에 놓인 화두를 목숨 걸고 참구하여 타파해야 한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어깨 위로 내리꽂히는 죽비 같다.대원 큰스님의 첫 법어집이 출간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은 그 자체로 길을 헤매고 있는 대중을 위한 바른 이정표가 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지난한 길 위에 있는 우리들을 일구월심(日久月深)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려는 큰스님의 피땀 어린 가르침이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