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목적은 공부를 잘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 계발에 있다
열정으로 지성으로 내 아이 마음을 사로잡을
엄마들의 대반란 교육 프로젝트
기회와 희망은 셀프로
삶은 얄궂게도 늘 그런 식이다.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떨어져 돌아가는 듯하다가도, 한순간 돌변한다. 그때는 종작없이 크레셴도로 치닫는 음악처럼 점점 고조되는 삶의 속도를 멈추거나 조절할 수 없다. 병에 걸리고, 시험에 떨어지고, 이별을 하고, 사고를 당하고, 감정의 면역력이 떨어져 자존감을 크게 상실하고······. 그런 급작스러운 수많은 삶의 변화들을 마주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감정은 절망에 가깝다. 그런데 열다섯 살의 저자는 그 절망 대신, 삶이 최악이 될 수 있는 그 절망의 순간 기회와 희망을 붙잡았다.
열다섯 살, 일찌감치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기회와 희망 없이 사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25년 남짓 지난 지금도 저자는 그 기회와 희망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결국 삶에 있어서 기회와 희망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매뉴얼대로 작동하는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랬다. 열다섯 살에 저자는 예원학교를 졸업한 뒤 현실에 떠밀리다시피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간절하게 원했던 예술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떨어졌다는 충격도 잠시, 저자는 정든 친구들과 가족들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이별의 통증을 감내해야만 했다. 낯선 나라, 낯선 곳. 낯선 학교와 낯선 친구들.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저자는 그 낯선 공간과 시간 사이를 흔들리며 흘러 다녔다. 마음을 추스르고 의욕을 북돋워 적응해야 하는 일은 참으로 막막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런 막막함마저 마음이 누리는 사치일 수밖에 없음을 절감한다. 절박했기 때문이다.
‘봉주르Bonjour’ (아침 인사)
‘앙팡Enfant’ (어린이)
프랑스어라고는 달랑 두 단어밖에 모른 채 혼자서 드골 공항행 비행기를 탔다. 그 후 6개월 어학연수를 마치고 파리 16구에 위치한 국립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외국인 학생을 위한 클래스에서 1년간 프랑스어로 모든 과목을 접해본 후 다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편입해 일반 프랑스 학생들과 똑같은 수업을 듣는다.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생기는 잦은 일들이 많았다. 날마다 전쟁이었다. 언어와의 전쟁이었으며, 문화와의 전쟁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고등학교 내내 끈질기게 이어졌다. 하루하루를 절박하고 열정적으로 뛰어다녔지만 저자는 꼴찌라는 타이틀을 비켜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마침내 프랑스의 수능인 ‘인간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 문제가 나오는 바칼로레아Baccalaureat에 합격해 법대에 입학한다. 생모르 국립 음악원 플루트 클래스를 수석으로도 졸업했다.
엄마라는 그 위대한 이름으로
저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시쳇말로 잘나가는 방송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클래식 전공을 살려 조성진이나 임윤찬처럼 음악가로 활동하지도 않는다. 유튜버도 아니다. 글을 전문으로 쓰는 작가도 물론 아니다. 그런데도 이 책《프랑스 교육처럼》이란 교육서를 썼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 때문이란다. 엄마라는 이름이 저자로 하여금 펜을 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저자는 틈만 나면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들(3세)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이나 운동장을 찾는다. 축구를 하기 위해서다. 남자아이라 그런지 뛰는 것을 무진장 좋아했다. 처음엔 아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해소하여 일찍 재울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아들은 엄마인 저자와는 목적이 달랐다. 일단 엄마와 함께 몸으로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다음으로는 아들 스스로가 몸을 움직이며 나름의 룰을 만들어 자존감을 키웠다. 그게 저자 눈에 잡혔던 것이다.
“하나 둘 셋 하면 뛰어!”
“여기에 서서 공 받아 엄마!”
“이쪽으로 공을 차!”
“빨리 뛰어!”
“천천히 걸어!”
세 살짜리 꼬마 대장은 규칙을 만들어 엄마인 저자에게 명령했고, 저자는 그 순간만큼은 아들에게 절대 복종했다. 그러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을 차는 아들이 스스로가 정한 룰에 맞춰 절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명령이란 것이 엄마에게 내린 명령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본인도 함께 지켜야 할 룰이었던 것이다. 하나 둘 셋에 뛰어야 했고, 엄마가 서 있는 곳으로 공을 차고 받아야 했으며, 뛰는 속도를 조절해야 했던 것이다. 엄마와 함께하며 속도를 맞춘다는 것에 자존감이 높아진 아들의 모습은 당당했다.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다. 몸이 시킨 걸 마음이 반응했는지 아니면 마음이 시킨 걸 몸이 반응했는지 모르지만, 아이는 공을 차고 운동을 즐기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키워갔다.
그런 아이를 지켜보던 저자에게 섬광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다. 프랑스에서의 학창 시절이었다. 고등학교에 첫 등교하던 날, 교문 앞 수십 명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그들 중에 선생님들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는 또 한 번 놀란다. 학생과 선생님이 담배 불을 댕겨주며 맞담배를 피울 줄이야! 더 놀라운 것은 학생들의 태도였단다. 맞담배를 필 정도로 스스럼없이 대하던 선생님을 교실에서는 너무나 진지하게 존중했던 것이다. 공公과 사私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태도에 저자는 문화적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고3이 끝나는 날까지 올림픽 출전 종목의 종목이란 죄다 운동을 해본 것 같은 체육 시간,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운동 경기 맞장을 뜨는가 하면 책 한 번 펼쳐보지 않고 수업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토론만 했던 철학 시간, 수업 중 욕설을 뱉은 학생을 징계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는 학교와 선생님의 방식, 20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대입제도, ‘언어 없이도 사고가 가능한가?’ 또는 ‘인간은 스스로에게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가?’와 같은 희한한 문제를 내는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 그런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이 있는 날이면 출제된 철학 시험 문제를 두고 온 국민이 함께 고민하는 문화,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하게 하는 것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으로 하는 클래식 음악 등.
아, 현실 교육!
물론 모든 것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갖게 마련이다. 세상에서 좋은 면밖에 없는 제도는 신의 솜씨로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지만 하필이면 아들과 함께 온몸으로 운동을 할 때 프랑스에서의 학창 시절이 오버랩된 것은 현재의 저자 가슴에 옹이처럼 박혀 있는 그 무언가 때문이었다. 아들의 현실 육아, 현실 교육! 실제로 저자는 아들의 교육 문제로 혼란스러웠다. 지하 동굴에 갇혀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한 처지였다. 빠져나올 통로를 찾으며 온몸의 촉수를 바짝 긴장했을 즈음, 저자는 공차기를 하며 신나게 뛰노는 아들에게서 실낱같이 가느다란 빛을 발견했던 것이고, 드디어 동굴을 빠져나왔다. 입시 제도를 떠나 미래 우리 아이들이 받을 교육의 근본적인 방향성까지 고민한 끝에 저자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감히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탈고했다.
상처를 입고 나서야,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무언가를 깨닫는 것이 삶이고 보면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체화한 부분이 많다. 자신의 아들에게 해 주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저자와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던, 지금은 저자처럼 엄마가 돼 있는 분들과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준비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엄마와 아이들이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바로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학습법을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로 요약해 놓았다. 간혹, 그 ‘실천 노트’라는 것이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않다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프랑스 교육처럼》을 모두 읽고 나면 큰 틀에서 맥락이 잡힐 것이다. 책을 덮는 순간, 저자가 말로 표현하지 않은 은밀하고 내밀한 마음까지 관통할 수 있을 것이다.
왜, 하필 프랑스 교육인가
프랑스 교육에도 분명 우리와 또 다른 고민거리와 문제가 존재한다. 아이들에게 완벽한 교육을 제공하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어느 나라든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교육을 위한 연구를 하고 개선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역할이다. 오랜 기간 축적되고 세팅된 한 나라의 교육 시스템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많은 리스크를 수반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그 변화가 학생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면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바뀔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교육의 목적을 ‘대학 입시’에서 ‘자기 계발’로 변화해 우리의 아이들이 배움의 기쁨을 느끼며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한다.
프랑스 교육처럼
친구들과의 경쟁은 서로의 성적 향상에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경쟁의 목적이 오로지 대학 입시로 전락해 버린 작금의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는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사회에 나아가 자신들의 길을 찾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며, 예체능도 깊이 있게 배워서 세상의 정답이 좋은 성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의 교육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랑스 교육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