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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명곡 모음집 (Ministry of Sound: Anthems 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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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R&B 명곡 모음집 (Ministry of Sound: Anthems R&B)

[ 3CD / 디지팩 ]
Montell Jordan, Bobby Brown, Bell Biv Devoe, Shanice, Sounds Of Blackness 노래 외 27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Ministry Of Sound / Ministry Of Sound | 2022년 09월 02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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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명곡 모음집 (Ministry of Sound: Anthems R&B)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22년 09월 02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디스크

Disc1
  • 01 Montell Jordan - This Is How We Do It
  • 02 Bobby Brown - Every Little Step
  • 03 Heavy D & The Boyz Feat. Aaron Hall - Now That We Found Love
  • 04 Bell Biv Devoe - Poison
  • 05 Johnny Gill - Rub You The Right Way
  • 06 Ralph Tresvant - Sensitivity
  • 07 Shanice - I Love Your Smile
  • 08 Sounds Of Blackness - I'm Going All The Way
  • 09 Salt 'n' Pepa Feat. En Vogue - Whatta Man
  • 10 En Vogue - My Lovin' (you're Never Gonna Get It)
  • 11 Wreckx-N-Effect ? Rump Shaker
  • 12 Adina Howard - Freak Like Me
  • 13 Guy - Do Me Right
  • 14 Tony! Toni! Tone! - It Never Rains (in Southern California)
  • 15 Warren G Feat. Nate Dogg - Regulate
  • 16 Ll Cool J. - Doin' It
  • 17 Shai - If I Ever Fall In Love
  • 18 Whitehead Bros. - Your Love Is A 187
  • 19 Soul For Real - Candy Rain
  • 20 Jodeci - Freek 'n You
Disc2
  • 01 Blackstreet Feat. Dr. Dre - No Diggity
  • 02 Coolio Feat. L.v. - Gangsta's Paradise
  • 03 Mark Morrison - Return Of The Mack
  • 04 Mary J. Blige - Family Affair
  • 05 Brandy & Monica - The Boy Is Mine
  • 06 Boyz Ii Men - I'll Make Love To You
  • 07 K-Ci & Jojo ? All My Life
  • 08 Brian Mcknight - Anytime
  • 09 Dru Hill - These Are The Times
  • 10 Ll Cool J. Feat. Boyz Ii Men - Hey Lover
  • 11 Guy - Dancin'
  • 12 Case Feat. Foxy Brown - Touch Me Tease Me
  • 13 Sisqo - Thong Song
  • 14 Mya - Case Of The Ex
  • 15 Aaliyah - Try Again
  • 16 Christina Milian - Dip It Low
  • 17 Damage - Love Ii Love
  • 18 Beverley Knight - Flavour Of The Old School
  • 19 Mis-Teeq - Scandalous
  • 20 Omar - There's Nothing Like This
Disc3
  • 01 Nelly Feat. Kelly Rowland - Dilemma
  • 02 Ashanti - Foolish
  • 03 Dru Hill - How Deep Is Your Love
  • 04 Blackstreet - Don't Leave Me
  • 05 Chante Moore - Straight Up
  • 06 Fergie - Glamorous
  • 07 Taio Cruz - I Just Wanna Know
  • 08 Bobby - Slow Down
  • 09 Nelly Furtado - Say It Right
  • 10 Robin Thicke - Lost Without U
  • 11 Ja Rule Feat. Ashanti - Always On Time
  • 12 Ne-Yo - Closer
  • 13 Tinchy Stryder Feat. Taio Cruz - Take Me Back
  • 14 Timbaland - The Way I Are
  • 15 Fatman Scoop Feat. The Crooklyn Clan - Be Faithful
  • 16 Rihanna Feat. Jay-Z - Umbrella
  • 17 The Pussycat Dolls Feat. Busta Rhymes - Don't Cha
  • 18 Eve Feat. Gwen Stefani - Let Me Blow Your Mind
  • 19 Black Eyed Peas - Meet Me Halfway
  • 20 Mr Hudson Feat. Kanye West - Supernova

아티스트 소개 (32명)

노래 : Montell Jordan (먼텔 조던,Montell Du'Sean Barnett)
힙합 소울, R&B 가수 힙합 소울, R&B 가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메가톤급 인기를 자랑했던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을 진두지휘했던 제작자 모리스 스타(Maurice Starr)가 NKOTB 이전인 1980년대 중반에 먼저 가동시킨 팀이 바로 다섯 명의 흑인 미소년으로 구성된 그룹 뉴 에디션(New Edition)이었다. 이 보컬그룹에서 앙증맞은 랩을 하며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 현재 휘트니 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메가톤급 인기를 자랑했던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을 진두지휘했던 제작자 모리스 스타(Maurice Starr)가 NKOTB 이전인 1980년대 중반에 먼저 가동시킨 팀이 바로 다섯 명의 흑인 미소년으로 구성된 그룹 뉴 에디션(New Edition)이었다. 이 보컬그룹에서 앙증맞은 랩을 하며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 현재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남편인 바비 브라운(Bobby Brown)이다. 뉴 에디션을 나와 1987년부터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 그는 도시적인 감성이 배어 있는 세련되고 깔끔한 어반(urban) 스타일과 흑인 특유의 리듬이 살아있는 댄스 팝, 그리고 힙합 리듬을 융합한 스타일인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으로 우뚝 섰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 당시 세련된 흑인음악의 대명사가 바로 그였다. 1969년 생인 브라운은 1987년에 선보인 데뷔 음반 < King Of Stage >를 공개했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다. 싱글 ‘Girlfriend’(57위) 만이 차트 중위권을 서성이다가 퇴출을 당했다. 하지만 첫 작품의 실패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소포모어 앨범을 성공의 옷을 갈아 입혔다. 1988년에 발표한 두 번째 LP < Don’t be cruel >부터는 1990년대 흑인음악계를 좌지우지한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함께 공동으로 음반을 제작하면서 진정한 아티스트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첫 싱글이면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것과는 동명이곡인 ‘Don’t be cruel’(8위)을 시발점으로 싱글 차트 정상의 고지를 점령한 펑크(funk) 트랙 ‘My prerogative’, 발라드 넘버 ‘Roni(3위)’와 ‘Rock wit’cha(7위), 그리고 당시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토끼춤’을 유행시킨 뮤직 비디오로 유명한 ‘Every little step(3위)’ 까지 모두 5곡이 톱10에 입성하면서 단번에 흑인음악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그의 노래들이 차트를 난타하고있던 때에 탁월한 비주얼을 무기 삼아 1989년의 영화 < 고스트버스터스 Ⅱ >에 카메오로 출연도 하는 동시에 주제가 ‘On our own’을 2위까지 랭크시키면서 슈퍼스타덤을 공고히 했다. 1990년에는 국내에서 조지 벤슨의 오리지널이었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12위)’를 커버해 특히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하와이 출신의 틴 아이돌 스타 글렌 메데이로스(Glenn Medeiros)와 함께 댄스곡 ‘She ain’t worth it’을 취입해 다시 한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수복했다. 1992년 7월 18일에 흑인 디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결혼해 특급커플로 화제를 독점했고 그 시점에 결혼자축앨범인 3집 < Bobby >를 공개해 ‘Humpin’ around(3위)’, ‘Good enough(7위)’, ‘Get away(14위)’, ‘That’s the way love is(57위)’, 그리고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행복에 함께 부른 ‘Something in common(32위)’까지 모두 5곡으로 차트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 무렵 국내 최고인기였던 이승철의 ‘방황’(파란 넥타이 줄무늬 팬티...)이 ‘Humpin’ around’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우리나라에서 한층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음악적인 재능을 더 개발하지 못하고 마약과 주색에 탐닉했고, 급기야 1997년에 발표된 < Forever >는 처녀작 이후 처음으로 상업적인 좌절을 맞았다(음악 하는 사람의 사생활은 어떤 형태든 음악에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휴스턴과의 불화설까지 겹치면서 이중의 마음 고생을 겪어야 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 뚜렷한 음악 활동은 포착되지 않고 있으며 휘트니 휴스턴이 마약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에 대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바비 브라운의 노래에는 다른 가수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피끓는 혈기와 파워가 넘친다. ‘My prerogative’와 ‘Humpin’ around’의 매력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루브함과 흥겨움에 숨겨진 패기와 박력, 그것이 바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바비 브라운 댄스 팝만의 진정성이다. 전성기 시절에 보여준 재기의 부활을 기대한다.
노래 : Sounds Of Blackness (사운즈 오브 블랙니스)
90년대의 ‘펑키 디바’ 엔 보그는 화려한 외모만큼이나 최신식의 음악스타일로 각광받으며 ‘제2의 걸 그룹 붐’을 이끌었다. 슈프림스(Supremes)로 대표되는 ‘1세대’ 걸 그룹이 주로 백인취향의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노래를 불렀다면 이들은 그 전통도 계승했지만 거기에 힙합과 R&B, 록 비트, 펑키한 리듬이라는 신경향을 추가했다. 여기에 고급스런 보컬 하모니와 코러스가 덧붙여져 완성된 ‘엔 보그 스타일’은 ‘뉴... 90년대의 ‘펑키 디바’ 엔 보그는 화려한 외모만큼이나 최신식의 음악스타일로 각광받으며 ‘제2의 걸 그룹 붐’을 이끌었다. 슈프림스(Supremes)로 대표되는 ‘1세대’ 걸 그룹이 주로 백인취향의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노래를 불렀다면 이들은 그 전통도 계승했지만 거기에 힙합과 R&B, 록 비트, 펑키한 리듬이라는 신경향을 추가했다. 여기에 고급스런 보컬 하모니와 코러스가 덧붙여져 완성된 ‘엔 보그 스타일’은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이라는 장르를 낳기도 했다. ‘유행 창조’라는 걸 그룹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준 이들은 TLC, 올 세인츠 등 이후 등장할 일련의 여성그룹들에게 지대한 영감과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60년대의 1세대 걸 그룹들이 그렇듯 엔 보그도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그룹이다. 슈프림스에게 베리 고디(Berry Gordy)라는 제작자가 있었다면 엔 보그에게는 덴질 포스터(Denzil Foster), 토마스 매켈로이(Thomas McElroy) 콤비 제작자가 있었다. 이들은 1988년 오디션을 통해 돈 로빈슨(Dawn Robinson), 신디 헤론(Cindy Herron), 맥신 존스(Maxine Jones), 테리 엘리스(Terry Ellis)를 발굴해 엔 보그를 구성했다. 그 프로듀서들은 도시적이면서 고급스럽고 섹시한 이들의 매력을 더욱 정교하게 가공해서 하나의 이미지로 완성시켰다 . ‘In Fashion’이란 뜻을 지닌 그룹이름처럼 미모와 가창력을 겸비한 이 4인조는 1990년 데뷔앨범 < Born To Sing >을 내놓으며 최첨단 유행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옛것과 새것을 조화시킨 이들의 퓨전음악은 슈프림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신세대의 까다로운 입맛을 놓치지 않았다. 수록곡 ‘Hold on’은 가스펠과 힙합 리듬이 가미된 곡으로 팝 차트 2위에 오르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그밖에 ‘Time goes on’, ‘Lies’ 등이 R&B 차트를 석권했으며, 이듬해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R&B 그룹’ 부문을 수상함으로써 이들의 ‘신 감각’이 공인되었다. 2년 뒤 발표된 두 번째 앨범 < Funky Divas >는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전작보다 훨씬 많은 찬사를 받았다. 펑키 사운드를 바탕으로 힙합, 팝, 소울, 록까지 소화해낸 이 앨범은 음악적으로도 크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My lovin''(you never gonna get it)’, 펑크(funk)의 대부 조지 클린턴이 코러스로 참여한 ‘Free your mind’, 시카고 소울의 거장 커티스 메이필드의 곡을 리메이크한 ‘Giving him something he can’ 같은 곡들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2집의 성공 이후 잠시간 영화출연과 모델활동을 하기도 했던 엔 보그는 여성 트리오 솔트 앤 페파의 히트곡 ‘Whatta man’의 코러스를 맡아 불렀으며, 영화 < 셋 잇 오프(Set It Off) >에 삽입되었던 발라드 ‘Don''t let go(love)’를 녹음했다. 이 과정에서 멤버 돈 로빈슨이 솔로 활동을 이유로 탈퇴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3인조가 된 엔 보그는 이후 1997년 거의 5년만에 정규앨범 < Ev3 >를 발표했다. 베이비페이스, 데이비드 포스터, 다이안 워렌 등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3집은 멤버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련되고 성숙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1999년에는 베스트 앨범 < The Best of En Vogue >이 출시되었고, 이듬해 이젠 깊이와 연륜이 느껴지는 네 번째 걸작 < Masterpiece Theater >가 공개되었다.
워렌 지는 미국 서부 갱스터(gangsta) 랩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닥터 드레의 이복 동생이기도 한 그는 닥터 드레, 스눕 독을 도와 ‘지 펑크(G-Funk)’라는 혁신적인 랩 스타일을 완성시켰으며, 지 펑크 시대를 열게 한 일등공신이다. 1992년 닥터 드레의 기념비적 앨범 < The Chronic >과 함께 탄생한 지 펑크는 느릿느릿한 래핑에 부드러운 그루브와 신서사이저, 둔중한 베이스 연주... 워렌 지는 미국 서부 갱스터(gangsta) 랩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닥터 드레의 이복 동생이기도 한 그는 닥터 드레, 스눕 독을 도와 ‘지 펑크(G-Funk)’라는 혁신적인 랩 스타일을 완성시켰으며, 지 펑크 시대를 열게 한 일등공신이다. 1992년 닥터 드레의 기념비적 앨범 < The Chronic >과 함께 탄생한 지 펑크는 느릿느릿한 래핑에 부드러운 그루브와 신서사이저, 둔중한 베이스 연주를 특징으로 한 랩 스타일. 조지 클린턴의 팔러먼트와 펑카델릭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지 펑크는 90년대 내내 랩 진영에서 물결쳤다. 그러한 지 펑크 군단의 창단멤버 격인 워렌 지(Warren Griffin III)는 닥터 드레의 앨범 < The Chronic >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닥터 드레에게 스눕 독을 소개시켜줘서 스눕 독을 먼저 데뷔시켰다. 얼마 후 워렌 지 역시 자신의 데뷔작을 내놓았고, 계속해서 래퍼와 프로듀서로서 수준급의 앨범을 발표하며 모범적인 음악활동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1971년 11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롱 비치에서 태어난 워렌 지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소유했던 재즈, 소울, 펑크 음반들을 들으며 자랐다. 그가 랩을 시작한 건 10대 중반. 친구였던 네이트 독, 스눕 독과 함께 그는 213이란 랩 그룹을 조직해 < V.I.P. >레코드 가게 등 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그 셋은 모두 감방에 가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감옥 안에서 음악 을 직업으로 삼기로 정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워렌 지는 스눕 독과 닥터 드레의 역사적 만남을 성사시킨다. 이로써 이 세 명의 래퍼는 지 펑크 탄생의 산 증인이자 창시자가 된다. 닥터 드레와 스눕 독의 데뷔 앨범에 곡을 써서 주목받게 된 워렌 지는 이후에도 미스터 그림의 ‘Indo smoke’, 투팍(2Pac)의 ‘Definition of a thug’ 같은 곡을 쓰고 프로듀스했다. 남의 앨범만 도와주던 그는 1994년에야 겨우 자신의 데뷔앨범 < Regulate...G Funk Era >를 발표했다. 시종일관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전하는 이 앨범에서는 ‘Regulate’와 ‘This DJ’가 크게 히트했다. 앨범은 4백만 장이 팔리는 대성공을 거뒀고, 워렌 지는 이듬해 < 그래미 >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3년 뒤 1997년에는 두 번째 앨범 < Take A Look Over Your Shoulder >을 발표했지만 신선도가 떨어진다 하여 그리 점수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밥 말리의 명곡이며 에릭 클랩튼의 곡으로도 널리 알려진 ‘I shot the sheriff’가 그나마 그의 존재를 유지시켰다. 소포모어 징크스를 앓던 워렌 지는 1999년 3집 < I Want It All >으로 돌아왔다. < 지 펑크 뮤직 >였던 자신의 레이블 이름을 < 지 펑크 밀레니엄 2000 >으로 개명한 후 발표한 그 앨범은 그의 모든 재능을 유감 없이 보여준 작품이었다. 톱 텐 히트를 기록한 ‘I want it all’을 비롯해, 베스트 프렌드 스눕 독이 우정출연한 ‘You never know’, 네이트 독과 커럽트, RBX가 피처링한 ‘Gangsta love’ 등에서 보여주는 멜로딕한 진행과 나른한 래핑, 진한 그루브, 감미로운 하모니는 다른 이들과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워렌 지만이 할 수 있는 고급의 능력이었으며, 그는 그 앨범으로 전작의 실패를 가뿐히 만회했다. 비록 워낙 거물인 닥터 드레와 스눕 독 때문에 다소 빛이 가린 듯한 느낌이지만, 워렌 지는 갱스터 랩계에서 아니 미국 힙합 진영을 모두를 포함해서도 결코 간과해선 안 될 대표급 뮤지션이다. 래퍼이자 프로듀서, 또 음반사 대표로 활동중인 그는 갱스터 래퍼 중에서는 드물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노래 : Blackstreet (블랙스트리트)
어번(Urban) 즉, 도회지 풍의 세련된 소울 음악에 힙합을 섞어 보다 리드믹한 사운드를 창출해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이란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테디 라일리(Teddy Riley)는 두고두고 기억될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후반에 활동을 했던 보컬그룹 가이(Guy)를 통해서 바로 이 뉴 잭 스윙의 전파에 골몰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가이의 데뷔앨범은 R&B 사운드의 혁명을 가져왔다는 평을 ... 어번(Urban) 즉, 도회지 풍의 세련된 소울 음악에 힙합을 섞어 보다 리드믹한 사운드를 창출해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이란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테디 라일리(Teddy Riley)는 두고두고 기억될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후반에 활동을 했던 보컬그룹 가이(Guy)를 통해서 바로 이 뉴 잭 스윙의 전파에 골몰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가이의 데뷔앨범은 R&B 사운드의 혁명을 가져왔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1991년 짧은 그룹생활을 마감하고 유명 흑인 아티스트들의 음반 프로듀서로 변신한다. 디제이 제지 제프 앤 더 프레시 프린스(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 헤비 디 앤 더 보이즈(Heavy D & the Boyz),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 키스 스웨트(Keith Sweat), 바비 브라운(Bobby Brown)등이 그의 귀를 거친 대표적인 아티스트들이고 심지어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도 퀸시 존스(Quincy Jones)와의 결별 후 그를 프로듀서로 선택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 당당한 주류 음악으로 인정받은 뉴 잭 스윙은 지금 소개하는 블랙스트리트(Blackstreet)에 의해 그 완성을 보게 된다. 테디가 백업 싱어 출신의 천시 "블랙" 하니발(Chauncey "Black" Hannibal)과 데이빗 홀리스터(David Hollister) 그리고 기타, 베이스, 키보드를 연주하는 숨은 재주꾼 리바이 리틀(Levi Little)과 함께 4인조 보컬그룹을 결성하고 데뷔작 을 발매한 것은 1994년의 일이었다. 앨범엔 가이 시절의 음악과 차별화를 시도한 흔적이 묻어나는데 우선 곡의 적재적소에 사용한 샘플링은 테디의 뛰어난 감각이 엿보인다. 마치 샘플링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는 듯 앨범 전체에 무수한 샘플링 테크닉을 사용하였고 그 대표적인 곡이 펑크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클린턴의 ‘Atomic dog’를 샘플링한 ‘Booti call’이었다. 또한 마치 로저(Roger)의 1988년도 히트곡 ‘I want to be your man’을 연상시키는 데뷔 싱글 ‘Before i let you go‘는 블랙 스트리트의 이름을 만방에 알리는 리는 데뷔 히트곡이 됐다. 앨범도 순조롭게 100만장 고지를 넘어섰다. 휴지기 동안 데이비드과 리바이가 그룹을 떠나고 이들의 빈자리는 에릭 윌리암스(Eric Williams)와 마크 미들턴(Mark Middleton)으로 채워져 새로운 진용을 갖추게 된다. 1996년 두 번째 앨범이자 이들의 역작이라 일컬어지는 을 발표, 커다란 반응을 야기한다. 앨범차트 3위로 데뷔하여 4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갔고 첫 싱글로 일대 센세이션을 몰고 온 ‘No diggity’(4주간 1위)는 닥터 드레(Dr. Dre)와 퀸 펜(Queen Pen)의 래핑이 가미된 힙합 비트가 두드러진 곡으로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고전 ‘Grandmas hand’가 절묘하게 샘플링 되어 있다. 국내에서도 그들의 존재가치를 드높여준 곡으로 40회 그래미상 최우수 R&B 그룹상을 수상하는 상복도 누리게 된다. 드바지(DeBarge)의 명곡 ‘A dream’을 샘플링한 ‘Dont leave me’와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또 하나의 드바지의 곡 ‘Time will reveal’을 자신들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The lord is real(Time will reveal)‘에선 웅장한 하모니를 들려주었다. 그 외에 ’Never gonna let you go‘, ’I cant get you(out of my mind)‘, ’I wanna be your man‘등 앨범 후반부엔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보컬 하모니를 강조한 곡들로 채색되어 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자유자재로 사운드를 요리하는 테디의 능력은 그의 경력에 화려함을 더했고 결과는 앨범의 성공으로 나타난 것이다. 기본적인 리듬은 펑크지만 힙합 사운드를 전혀 배제하지는 않은 채 부드러운 멜로디 보컬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전작보다 더 친숙해진 사운드가 보다 대중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한번의 멤버 교체가 있고 나서 1999년 3집 앨범 를 발매하였는데 즉시 앨범차트 9위로 데뷔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더욱 대중적이고 안정적인 사운드를 추구했던 테디의 영향으로 기존의 사운드에서 진일보한 음악을 기대했던 팬들에겐 실망스러웠던 앨범이었다. 보컬과 코러스, 나레이션이 뒤섞인 앨범 타이틀 Finally를 비롯하여 자넷(Janet)과 자 룰(Ja Rule)이 합세한 첫 싱글 ‘Girlfriend/Boyfriend’, 제2의 ‘No diggity’를 염두에 두고 만든 듯한 ‘Yo love’, 남성과 여성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흐름에 전체적인 분위기를 차분히 이끄는 섹스폰 연주가 매력적인 ‘Drama’,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하모니카 연주가 빛을 더하는 ‘In a rush’, 슬로우 풍의 웅장한 ‘Im sorry’, 마야(Mya)가 통통 튀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Take me there’의 리믹스 버전까지 앨범은 전작에 비해 한층 대중적인 요소들을 도처에 깔아놓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정체성을 상실한 실패작으로 끝나고 만다. 어쨌건 90년대 솔 음악의 방향성을 제시해준 블랙스트리트는 3집을 끝으로 현재는 활동이 중단된 상태고 해체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테디는 가이의 새 앨범으로 다시 활동의 불을 지폈고 팬들은 여전히 그에게 혁신적인 사운드를 기대하고 있다.
노래 : Mary J. Blige (메리 제이 블라이즈)
‘힙합 소울의 여왕’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는 지금까지 발표한 다섯 장의 음반들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탄탄히 구축해나간 실력파 여성 R&B싱어이다. 1990년대 초반 R&B 계열에 혜성같이 등장한 그녀는 타고난 가창력을 등에 업고 단숨에 흑인음악 신(Scene)에서 촉망받는 여성가수로 거듭나며 성공적인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71년 1월 11일 ‘랩 / 힙합의 메카’ 뉴욕의 브롱스에... ‘힙합 소울의 여왕’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는 지금까지 발표한 다섯 장의 음반들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탄탄히 구축해나간 실력파 여성 R&B싱어이다. 1990년대 초반 R&B 계열에 혜성같이 등장한 그녀는 타고난 가창력을 등에 업고 단숨에 흑인음악 신(Scene)에서 촉망받는 여성가수로 거듭나며 성공적인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71년 1월 11일 ‘랩 / 힙합의 메카’ 뉴욕의 브롱스에서 태어난 메리 제이 블라이즈는 어린 시절부터 글래디스 나이트(Gladys knight), 알 그린(Al Green) 등의 소울을 즐겨들으며 풍부한 감성을 키워갔다. 이런 덕분에 지금까지도 그녀는 고음역이나 현란한 기교 위주가 아닌 ‘영혼으로 노래하는 싱어’라는 평가를 받게됐다. 그녀는 자신이 존경했던 아니타 베이커(Anita Baker)의 곡 ‘Caught up’을 가라오케 장비로 불러서 녹음한 데모 테이프가 레코드의 사장이던 안드레 헤렐(Andre Harrell)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하는 결정적인 기회를 얻었다. 헤렐은 그녀의 보이스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결국 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션 “퍼피” 콤스(Sean “Puffy” Combs), 일명 피 디디(P Diddy)는 그녀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곧바로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1992년 그녀의 데뷔작 이 발표되었을 때 비평계와 음악팬들은 파워풀한 가창력을 겸비한 걸출한 소울 싱어의 탄생에 한바탕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보이스를 맘껏 자랑하며 소울과 R&B가 절묘하게 결합된 음악으로 그녀는 금새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나 샤카 칸(Chaka Khan)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촉망받았다. 무려 300만장의 음반판매고를 기록한 그녀의 데뷔작품은 앨범차트 6위까지 순항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Real love’(7위), ‘Sweet thing’(28위), ‘You remind me’(29위), ‘Love no limit’(44위), ‘Reminisce’(57위) 같은 다수의 싱글 곡을 배출했다. 이듬해 같은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들과 함께 (1993)에 참여한 후 다시금 피 디디와 작업한 소포모어 음반 (1994년)는 앨범차트 7위까지 기록했고 힙합과 소울을 성공적으로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행진을 이어나갔다. 흑인들의 슬픔과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을 담은 곡들을 수록한 두 번째 음반은 싱글 ‘I’m goin’ down’(22위), You bring me joy(57위) 등이 히트했고, 비록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이듬해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R&B 앨범’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두 장의 음반으로 게토 흑인여성의 진솔한 삶과 생각들을 생생하게 표현해낸 그녀는 결국 ‘힙합 소울의 여왕’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자연스레 얻게되었다. 프로듀스를 맡았던 피 디디가 명성을 드높이게 된 계기가 된 시점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그 후 잠깐의 시간동안 그녀는 베이비페이스(Babyface)가 총 프로듀스를 맡은 영화 의 사운드트랙 수록곡이었던 ‘Not gon’ cry’(2위)를 빅 히트시키기도 했다. 2집의 녹음기간 동안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기도 한 그녀는 자신을 지원해준 서지 나이트(Suge Knight)의 레이블과 계약하고 세 번째 정규음반 작업에 들어갔다. 1997년에 발매된 3집 는 지미 잼(Jimmy Jam) & 테리 루이스(Terry Lewis) 작곡콤비와 더불어 베이비페이스, 알 켈리(R. Kelly), 로드니 저킨스(Rodney Jerkins) 같은 실력파 뮤지션들과 함께 했다. 음반은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에 등극했고 ‘Everything’(24위), ‘I can love you’(28위) 같은 준(準)히트 싱글을 배출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예전작품에 비해 보다 진부한 소울 사운드이다”라면서 다소 못마땅해 했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녀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이듬해인 1998년에 라이브 음반 (21위)를 발표한 뒤 그녀는 흑인 게토정신을 보다 더 공고히 한 4집 (1999년)를 발표했다. 음반은 ‘All that I can say’(44위)의 히트와 더불어 앨범 차트 2위까지 올랐으며 전작에 비해 그녀만의 스타일을 좀더 풍부하고 우아하게 담아내 한층 세련되고 깊이를 더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엘튼 존(Elton John)과 버니 토핀(Bernie Taupin),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아레사 프랭클린,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로렌 힐(Lauryn Hill), 베이비페이스 등 장르를 초월한 여러 뮤지션들과의 신선한 교류 중에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은 음악을 들려줘 다시 한번 1990년대 최고의 ‘소울 퀸’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2001년에 발매된 5집 는 그녀가 이전에 발표했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음악적인 면에서 보다 많이 관여했으며 작곡까지 손을 대는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음반은 앨범차트 2위까지 기록했고, ‘Family affair’(1위), ‘No more drama’(15위) 같은 빅히트 싱글을 양산해냈다. 같은 해 모음집 를 발표해 스티비 원더의 ‘Overjoyed’를 커버해 수록했고, 이듬해에는 (76위)를 발표해 ‘Rainy dayz’(12위)를 히트시켰다. 지난해 그래미상에서는 무려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노래 : Boyz II Men (보이즈 투 맨)
19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랩(Rap) 음악의 열풍은 한편으로 기존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소울 음악에 대한 향수라는 역풍(逆風)을 몰고 왔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등장한 4명의 흑인 청년들로 구성된 보컬 그룹 보이즈 투 멘(BoyzⅡMen)은 수려한 보컬 하모니를 무기로, 무너진 소울 음악의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로 단번에 R&B계의 주류로 일대 신분이 상승, 1990년대 R&B 최강자로 떠올... 19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랩(Rap) 음악의 열풍은 한편으로 기존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소울 음악에 대한 향수라는 역풍(逆風)을 몰고 왔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등장한 4명의 흑인 청년들로 구성된 보컬 그룹 보이즈 투 멘(BoyzⅡMen)은 수려한 보컬 하모니를 무기로, 무너진 소울 음악의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로 단번에 R&B계의 주류로 일대 신분이 상승, 1990년대 R&B 최강자로 떠올랐다. 흑인 음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모타운(Motown) 레코드사가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소위 확실하게 밀 카드가 없어 부진의 늪에 빠졌으나 필라델피아 고교 동창생인 나산 모리스 (Nathan Morris), 마이클 맥커리(Michael Mccary), 숀 스톡맨(Shawn Stockman), 와냐 모리스(Wanya Morris) 이들 4명의 데뷔앨범은 90년대 모타운 사운드의 부활을 예고했으며 모타운 사의 중흥을 1990년대까지 이어가는 가교 역할을 해냈다. 이들의 우상이기도 했던 뉴 에디션(New Edition) 출신의 마이클 비빈스(Michael Bivins)에 의해 발탁, 정식 데뷔를 하게 된 보이즈 투 멘은 1991년 달라스 오스틴(Dallas Austin)과 트로이 테일러(Troy Taylor)가 공동 프로듀서한 데뷔앨범 < Cooleyhighharmarmony >로 대중들 앞에 첫 선을 보였다. 순식간에 차트 3위를 기록하며 플래티넘 고지를 점령한 첫 싱글 ’Motownphilly’는 모타운 사와 보이즈 투 멘 자신들을 홍보하는 내용(모타운+필라델피아의 신조어를 제목으로 따옴)에다 뉴 잭 스윙 형식을 취한 현대적 두 왑 곡으로 그들의 은인 마이클 비빈스가 제작에 참여하고 랩을 담당했다. 이 곡이 아카펠라의 맛 보여주기를 시도했다면 두번째 싱글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는 아카펠라의 진수를 보여준 곡이었다. 그들의 주무기인 환상적인 보컬 하모니를 들려준 이 곡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Black or white’에 밀려서 2위에 수주간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들의 음악 색깔을 여과 없이 드러낸 명곡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 곡의 영향으로 보컬 그룹들은 가창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너나 할 것 없이 아카펠라 곡을 앨범에 수록하는 붐이 일어날 정도였다. 앨범에선 이외에도 고급스런 R&B 스타일을 선보인 ’Uhh ahh’(이상 3곡의 싱글은 차례로 R&B차트 정상에 올랐다.)와 맨하탄스(Manhattans)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Please don’t go’ (9위)등이 인기를 얻었고, 앨범도 최고 순위 2위까지 오르며 9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간 엄청난 히트작이 되었다. 각종 시상식에서 R&B 부문의 상들을 휩쓸며 아직 10대의 티를 벗지 못한 4명의 소년들을 R&B계의 가장 주목할 신성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의 활동에서 데뷔작의 성공은 시작에 불과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992년 그들은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첫 인연을 맺고 에디 머피(Eddie Murphy) 주연의 영화 < 부메랑 >의 사운드트랙 수록곡이자 역작인 ’End of the road’를 부르게 된다. 다분히 보이즈 투 멘을 위해 만들어진 곡임을 증명하듯 4명의 멤버는 자신들의 파트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또한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Don’t be cruel/Hound dog’으로 기록한 11주의 기록을 훌쩍 넘어서 13주간 싱글차트 정상을 지키는 신기원을 이룩한다. 그래미상 2연패와 플래티넘 획득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같은 해 또 하나의 사운드트랙 < 더 잭슨스: 아메리칸 드림 >에 다시 아카펠라 곡을 선사한다. 파이브 새틴스(Five Satins)의 1956년도 오리지널을 리메이크한 전통적인 두 왑 스타일의 ’In the still of the nite(I’ll remember)’로, 이 곡 역시 팝 차트 3위, R&B차트 4위에 오르며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1993년 발매된 캐롤 앨범 < Christmas Interpretations >은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가 제작에 참여하고 함께 입을 맞춘 ’Let It snow’(19위)로 인기를 모았으며 이듬해 대망의 2집 앨범 < Ⅱ >를 내놓게 되는데 이들에겐 소모포어 징크스는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차트 1위로 데뷔하여 5주간 그 자리를 지켰고 미국에서만 1200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렸다. 모타운 레코드사에 안겨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베이비페이스가 만들고 프로듀서한 첫 싱글 I’ll make love to you’는 빠른 속도로 차트 정상을 점령하더니 14주간이나 머물러 자신들이 세운 기록을 불과 1년만에 갱신한 대선배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타이를 이루었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곡을 차트 1위에서 끌어내린 곡이 두 번째 싱글 ’On bended knee’였다는 점이다. 비틀즈와 엘비스만이 가지고 있는 이런 기록을 20대 초반의 흑인 청년들이 손쉽게 이루어낸 사실에 팝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지미 잼 & 테리 루이스가 프로듀서한 ’On bended knee’는 아름다운 화음과 세련된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으로 1위 자리를 2번에 걸쳐 오르며 총 6주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그외에도 ’Thank you’(21위), 매끄럽기 그지없는 ’Water runs dry’(2위), ’Vibin’(56위)등이 차례로 차트에 올라 인기를 얻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앨범에는 팝계의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참여했다. 앞서 언급한 베이비페이스와 지미 잼 & 테리 루이스, 데뷔 앨범을 함께한 달라스 오스틴, 트로이 테일러, 브라이언 맥나이트, 엘 에이 레이드, 토니 리치등 모두가 쟁쟁한 일급 프로듀서들이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보이즈 투 멘은 다시 한번 1995년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함께 한 ’One sweet day’로 인기 정점에 오른다. 당대 최고의 여가수와 최고의 보컬그룹의 만남을 대중들은 16주간 차트 정상이라는 신기록으로 환호했으며 판매고는 200만장을 훌쩍 넘어섰다. 같은 해에 보컬 그룹으로 드물게 리믹스 < The Remix Collection >앨범에 도전했는데 이 앨범엔 브랜디(Brandy)와 와냐의 듀엣곡 ’Brokenhearted’(9위), 엘 엘 쿨 제이(L.L. Cool J)와 함께한 플래티넘 싱글 ’Hey lover’(2위)등이 기존의 히트곡들의 리믹스 버전과 함께 수록되어 있었고 신곡 ’I remember’(46위)도 선전을 했었다. 이후 2년 동안을 필라델피아 교외에 묻혀 앨범 제작에 몰두했고 97년 3집 < Evolution >을 들고 나타났지만 이들의 새 앨범은 기대만큼 큰 화제를 얻지는 못했다. 그 단적인 면이 앨범 판매고에서 나타나 신작은 반짝 인기에 그치며 200만장을 넘기는 것도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지미 잼 & 테리 루이스의 ’4 Seasons of loneliness’와 베이비페이스의 ’A song for mama’를 적극 밀었지만 첫 싱글은 차트 1위에 1주간 머무르는데 그쳤고, 두번째 싱글은 영화에 삽입하면서 홍보전략을 폈지만 7위까지 오르는 그들로선 평범한 히트를 기록하고 말았다.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퍼프 대디(Puff Daddy)를 프로듀서로 초빙한 수고로움도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결과만 초래했다. 1998년에는 다이안 워렌이 만든 < 이집트의 왕자 > 사운드트랙의 수록곡 ’I will get there’(32위)로 차트에 다시 등장했고, 데뷔 이후 모타운 레코드의 달러박스로 큰 몫을 차지했던 이들은 이듬해 레코드사의 인수 합병으로 인해 유니버살(Universal) 레코드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대망의 2000년을 맞이하여 멤버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네번째 앨범 < Nathan Michael Shawn Wanya >를 발매하기에 이른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그 동안의 앨범 작업마다 참여했던 유명 프로듀서들의 이름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멤버 자신들이 직접 곡을 쓰고 프로듀서 했기에 자신들의 색깔을 제대로 냈고 진정한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났다는 평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처음 시도하는 빠른 라틴 비트의 ’Beautiful women’, ’Good guy’로 시대의 흐름을 읽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고, 마치 테크노를 듣는 듯 신선한 ’Bounce, shake, move, swing’, 포크 송처럼 부드러운 ’Do you remember’, 특기인 아카펠라를 가미한 두 왑 ’I do’등 전체적으로 수작으로 손꼽을 만한 앨범이었다. 하지만 앨범 홍보가 미비했고 3집에서 시작된 대중들의 피로감 때문에 이미 많은 팬들이 등을 돌린 탓도 있었다. 결국 2001년 베스트 앨범 < Legacy: The Greatest Hits >를 끝으로 아리스타(Arista) 레코드로 새롭게 둥지를 틀었고 절치부심 새 음반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10대에 데뷔하여 현재 30대 초반이 된 이들이 10년 동안 팝과 R&B계에 끼친 영향력은 그들 이후 많은 보컬그룹들이 생겨났다는 점과 더불어 이런 보컬 그룹들의 음악적 실력을 비교하는 잣대가 되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많은 곡들이 차트에 올랐다가 빠르게 사라져 갔지만 유독 이들의 노래들만은 오랫동안 머물며 사랑을 받았다는 것도 이들의 존재가치를 확실히 웅변하는 대목이다.
노래 : Brian Mcknight (브라이언 맥나잇)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는 근래 득세하고있는 R&B 음악의 새로운 변용(變容)이라 할 ‘어번(Urban)’스타일의 방향성에 있어 핵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보이즈 투 멘 등 정통 R&B 가수들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이들과 다소간 차별되어있고, 창법 또한 어번의 지향인 ‘어울림’에 중심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가 등장하면서 R&B의 흐름도 변화해 머라이어 캐리도...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는 근래 득세하고있는 R&B 음악의 새로운 변용(變容)이라 할 ‘어번(Urban)’스타일의 방향성에 있어 핵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보이즈 투 멘 등 정통 R&B 가수들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이들과 다소간 차별되어있고, 창법 또한 어번의 지향인 ‘어울림’에 중심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가 등장하면서 R&B의 흐름도 변화해 머라이어 캐리도 절제의 미를 표현해 내기 시작했으며, 재닛 잭슨(Janet Jackson), 어셔(Usher), 알리야(Aaliyah)등 근자의 R&B 스타들도 이런 흐름을 추수하고있는 실정이다. 말하자면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R&B 음악의 대안을 제시해 준 ‘얼터너티브 뮤지션’인 셈이다. 1969년 6월 5일 뉴욕주 버팔로(Buffalo)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7살이었던 1987년에 친형 클라우드(Claude McKnight)가 속해 있던 ‘CCM 아카펠라의 대명사’인 그룹 테이크 식스(Take 6)에 참여하며 CCM 뮤지션으로서 팝 무대에 발을 들여 놓는다. 하지만 이듬해 교칙을 어겨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고초를 겪게 되고, 곧 그룹 활동을 접는다.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음악에의 전념’이었다. 하지만 그는 CCM 음악을 권하는 형의 제의를 거절한다. 그의 가슴에는 이미 R&B의 거목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크게 자리해 있었기 때문이다. 작곡 작업에 몰두하는 10대의 어린 열정은 브라이언을 메이저 머큐리(Mercury) 레이블로 이끌었고, 마침내 1991년 데뷔 앨범 [Brian McKnight]을 선보인다. 앨범은 첫 싱글 ‘The way love goes’가 R&B차트 11위에 오르며 성공의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나머지 곡들은 상업적으로 큰 빛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1992년 TV 프로그램 [베벌리힐스의 아이들](Beverly Hills 90210)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비운의 미스 아메리카’ 출신의 바네사 윌리엄스(Vanessa Williams)와 호흡을 고른 ‘Love is’가 팝 차트 3위라는 스매시 히트를 치면서 데뷔앨범 역시 재조명되었고, 지금은 그의 대표작이자 ‘R&B 발라드의 클래식’이 된 ‘One last cry’가 뒤늦게 분발, 차트 13위에 오른다. 이 곡은 지금도 국내 라디오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1995년 [I Remember You]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해 ‘On the down low’가 고작 73위의 성적을 거두는 데 그쳤고, 주목할 만한 히트곡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하지만 비평적 점수는 전작을 넘어섰고, 이후 그는 단순한 보컬리스트가 아닌 작곡가, 편곡가, 프로듀서, 연주자 등 R&B 전천후 거물로 상승한다. 앨범에는 밴 모리슨(Van Morrison)의 명반 [Moondance]에 수록된 고전 ‘Crazy love’가 리메이크로 수록되어 관심을 끌었다. 1997년 NBA 올스타전에서 색소폰 주자 데이빗 샌본(David Sanborn)과 함께 국가를 연주할 정도의 지명도를 쌓은 그는 그 기세를 몰아 1997년 3집 앨범 [Anytime]을 발표, 힙합 뮤지션 퍼프 대디(Puff Dady)와 손을 잡으며 R&B 발라드와 힙합의 결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등 음악적으로 또 상업적으로 모두 성공했다. 여기서 퍼프 대디와 메이즈(Mase)가 래퍼로 참여한 ‘You should be mine(don’t waste your time)’은 Top10 진입의 성공을 거두었고, 브라이언은 이 앨범으로 1998년 소울 트레인 어워즈(Soul Train Awards)에서 ‘최우수 남자가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모타운(Motown)으로 옮겨 1998년 연말 크리스마스 앨범 [Bethlehem]을 발표한 뒤 브라이언은 이듬해 그의 최대 성과라 할 앨범 [Back At One]을 내놓는다. 감미로운 가사와 창법이 어우러진 싱글 ‘Back at one’은 차트 2위에 8주간이나 머무는 히트를 기록했고(당시 부동의 1위는 산타나의 ‘Smooth’) 머라이어 캐리와의 듀엣 곡 ’Whenever you call’이 동반 인기를 얻었다. 히트차트를 장식했어도 감감 무소식이었던 한국에서 그의 인기가 비등한 것도 이때였다. 이 앨범 홍보 차 내한하면서 쇼 케이스에서 보여준 탁월한 가창력이 입 소문으로 전해지면서 앨범 판매고도 수직 상승, 순식간에 10만장을 돌파했다. 2001년 다섯 번째 신작 앨범 [Superhero]는 그의 다양한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가스펠, R&B 발라드, 힙합 R&B는 물론 과감하게 록 사운드를 도입하였고, 엔싱크(Nsync)의 멤버 저스틴 팀벌레이크(Justin Timberlake)와 함께 달콤한 팝을 부르기까지 하였다. 가성으로 노래한 ’Love of my life’도 국내에서 인기를 누렸고, 저스틴과의 듀엣 곡 ‘My kind of girl’, 발라드 넘버인 ’Everything’, ’Still’ 등도 사랑을 받았다. 2001년 프로모션 투어의 일환으로 한국을 다시 찾아 쇼 케이스 무대에서 조규찬과의 듀엣 곡을 선사하여 한국 팬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대 성공을 거둔 [Superhero]는 2002년 2CD의 스페셜 앨범으로 발매되었으며, 조규찬과의 듀엣 곡 ’Thank you for saving my life’이 수록되었다.
볼티모어 출신의 드루 힐은 보이즈 투 맨(Boyz Ⅱ Men)과 조데시(Jodeci)의 뒤를 이어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남성 보컬 그룹이다. 흑인 특유의 깊은 맛을 내는 하모니와 소울, 펑크(Funk), 그리고 재즈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사운드는 보이즈 투 맨의 명성을 이어 가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뭔가를 찾고 있을 때 왔다. 보이즈 투 맨과 조데시의 성공 이후, 우리도 성공했다. 우리의 음악은 정... 볼티모어 출신의 드루 힐은 보이즈 투 맨(Boyz Ⅱ Men)과 조데시(Jodeci)의 뒤를 이어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남성 보컬 그룹이다. 흑인 특유의 깊은 맛을 내는 하모니와 소울, 펑크(Funk), 그리고 재즈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사운드는 보이즈 투 맨의 명성을 이어 가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뭔가를 찾고 있을 때 왔다. 보이즈 투 맨과 조데시의 성공 이후, 우리도 성공했다. 우리의 음악은 정말로 힙 합이 아니다. 원초적인 리듬 앤 블루스에 가깝다.”라는 멤버들의 코멘트에서 그들의 성공 비결과 음악관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고등학교 친구들인 마크 앤드류스 ‘시스코’(Mark Andrews ‘Sisqo’), 타미르 러핀 ‘노키오’(Tamir Ruffin ‘Nokio’), 래리 앤소니 주니어 ‘재즈’(Larry Anthony Jr. ‘Jazz’), 제임스 그린 ‘우디’(James Green ‘Woody’) 등 4인조로 결성된 드루 힐은 1995년 전 보이즈 투 맨의 매니저였던 < 아일랜드(Island) > 레코드사의 히리엄 힉스(Hiriam Hicks)에 의해 발탁되어 음악계에 등장했다. 1년 뒤인 1996년 내놓은 데뷔작 < Dru Hill >로 그들은 단숨에 리듬 앤 블루스계의 신성(新星)으로 떠올랐다. 우피 골드버그가 주연한 영화 < 에디(Eddie) >에 삽입되었던 첫 싱글 ‘Tell me’를 시작으로, ‘In my bed’, ‘Never make a promise’ 등이 연이어 리듬 앤 블루스 차트를 정복했고, ‘5 Steps’와 ‘April shower’ 등도 히트를 쳤다. 이에 힘입어 그들은 이듬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5개 부문, ‘소울 트레인’에서 2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는 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대부분의 노래들은 묵직한 음색의 시스코가 전면에 나서고 나머지 멤버들이 멋진 화음을 곁들이는 시스템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재즈의 팔세토, 노키오의 테너, 우디의 가스펠적인 창법은 단순히 양념 역할로만 끝나지 않고 곡 사이사이에서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전술한 히트곡들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 잘 알 수 있다. 바로 드루 힐만의 장점이다. 이미 고인이 된 영화 배우 이소룡의 1973년 고전 < Enter The Dragon(용쟁호투) >에서 제목을 따온 1998년 두 번째 앨범 < Enter The Dru >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업 비트 넘버 ‘How deep is your love’(싱글 차트 3위), 히트 메이커 베이비페이스(Babyface)가 만든 ‘These are the times’(21위) 등에서 각자의 개성을 가진 멤버들의 보컬 색이 형형색색 드러난다. 소포모어 음반 발표 얼마 후 우디가 탈퇴하자 나머지 멤버들은 트리오로 팀을 꾸려나간다고 발표했지만, 현재까지 소식이 뜸한 상태다. 오직 시스코만이 1999년 < Unleash The Dragon >, 그리고 올해 < Return Of Dragon >을 내놓고 활발한 솔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루빨리 드루 힐의 신보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노래 : Aaliyah (알리야,Aaliyah Dana Haughton)
2001년 8월 25일, 팝팬들은 쉽게 믿겨지지 않는 비보를 접했다. 앞날이 구만리 같던 흑인 음악의 기대주 알리야(Aaliyah)가 바하마 섬에서 새로이 발표된 3집 < Aaliyah >에 수록된 곡의 뮤직 비디오를 찍고 귀환하던 도중 비행기 사고로 조종사, 스탭진과 함께 세상을 떠난 것이다. 겨우 22살이었다. 알리야 허튼(Aaliyah Haughton)이 본명인 알리야는 1979년 1월 16일 뉴욕의 브룩클... 2001년 8월 25일, 팝팬들은 쉽게 믿겨지지 않는 비보를 접했다. 앞날이 구만리 같던 흑인 음악의 기대주 알리야(Aaliyah)가 바하마 섬에서 새로이 발표된 3집 < Aaliyah >에 수록된 곡의 뮤직 비디오를 찍고 귀환하던 도중 비행기 사고로 조종사, 스탭진과 함께 세상을 떠난 것이다. 겨우 22살이었다. 알리야 허튼(Aaliyah Haughton)이 본명인 알리야는 1979년 1월 16일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태어났지만 검은 음악의 메카인 모타운 레코드가 자리하고 있는 디트로이트에서 성장했다. 가수였던 어머니와 숙모였던 리듬 앤 블루스 싱어인 글래디스 나잇(Gladys Knight)과 함께 무대에 서는 등 어려서부터 연예계 체질에 적응하면서 음악적인 소양을 쌓은 알리야는 10대 초반에 알 켈리(R. Kelly)를 만나 1994년 데뷔 앨범을 발표하면서 프로 세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 15살이었다. 1980년대 후반, 도시 풍의 깔끔하고 세련된 흑임 음악을 일컫는‘어반(Urban)’이란 장르가 힙합 리듬, 랩, 그리고 샘플링 기법을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리듬 앤 블루스보다 펑키(funky)하고 그루브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흑인 음악을 추구하는 남성 가수들을 ‘뉴 잭 스윙’, 여성 가수들을 ‘뉴 질 스윙’이라 불렀다. 이 같은 음악을 창조한 스타일리스트는 1980년대 후반에 활동했던 흑인 남성 3인조 밴드 가이(Guy)를 거쳐 1990년대를 풍미한 4인조 보컬 그룹 블랙스트리트(Blackstreet)의 리더였던 테디 라일리(Teddy Riley)였으나, 곧 라이벌이 등장해 그의 독점에 제동을 걸었다. 그 인물이 바로 알 켈리였고 그가 심혈을 기울여 발굴한 가수가 상당한 미모를 소유한 고등학생 알리야였다. 1994년에 발표된 데뷔 앨범 <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 >에 수록된 13곡 중에서 소울 펑크(funk) 그룹 아이슬리 브라더스(Isley Brothers)의 원곡 ‘At your best (You are love)’를 제외한 12곡을 알 켈리가 작곡하고 음반을 제작하면서 시작된 이들의 인연은 필연적인 결혼으로 이어졌다. 당시 16살이었다. 뉴 질 스윙의 전형 ‘Back & Forth(4위)’와 아름다운 발라드 ‘At your best (You are love/6위)’, 그리고 자신만만한 앨범 타이틀곡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의 선전으로 하루아침에 흑인 음악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알리야의 성공은 남편이자 음악적 동지인 알 켈리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직 그것 때문에 알리야의 등장이 돋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15살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 음반에서 알리야의 가창력은 빛을 발한다. 특히‘At your best (You are love)’와 ‘No one knows how to love me quite like you do’에서의 노래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년이란 시간은 알리야에게 외적, 내적, 그리고 음악적으로 발효의 기간이었다. 1996년에 공개된 2집 < One In A Million >은 처녀작만큼 큰 히트 싱글은 없었지만 음반 전체적으로는 일취월장한 음반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아이슬리 브라더스의 원곡 ‘Choosey lover’와 마빈 게이(Marvin Gaye)의 1977년 1위 정복곡 ‘Got to give it up’을 리메이크해 2년 전에 비해 성숙한 음색으로 다시 나타난 알리야는 더 이상 10대의 이미지에 속박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때도 알리야는 17살의 10대였다. 그리곤 4년이 지난 2000년, 자신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와 그 사운드트랙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연걸과 함께 주연한 액션 영화 < 로미오 머스트 다이 >에서 여주인공 역도 맡고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4곡도 직접 취입하면서 여성판 윌 스미스(Will Smith -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의 랩퍼로 출발해 현재는 영화 배우로 맹활약하고 있는 흑인 남자 배우 겸 랩퍼)가 되고자 했지만 첫 출연작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그녀의 연기는 부자연스러웠고 호평도 받지 못했다. 두 번째 솔로 CD가 발표된 지 5년만인 2001년 여름, 음악 팬들은 그녀의 3번째이자 마지막 음반 < Aaliyah >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 음반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활동의 나래를 펴기 전에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생일 케이크에 22개의 촛불이 켜진 해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알리야의 데뷔 앨범 제목의 뜻은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당하거나 과대 평가 받기를 거부하면서 정정당당하고 공평하게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인정받길 원했다. 하지만 11살 때 처음으로 무대에 섰고, 15살 때 첫 음반 발표했으며 16살에 결혼했고, 그리고 22살에 세상을 떠난 그녀에게 나이는 더 이상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노래 : Nelly (넬리 (힙합 보컬, 랩))
< 새로운 랩 스타 넬리 > 백인 래퍼 에미넴에게 눌린 흑인 랩 진영이 넬리(Nelly)라는 새 얼굴로부터 주도권 탈환의 돌파구를 찾는다. 대중적 스타가 절실한 상황에서 유쾌한 랩을 구사하는 넬리는 실로 흑인 랩의 희망이다. 올 21살로 갓 데뷔한 신인에도 불구하고 그의 현재 히트퍼레이드는 찬란하다. 앨범은 순식간에 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R&B 힙합 차트는 이미 정복했으며... < 새로운 랩 스타 넬리 > 백인 래퍼 에미넴에게 눌린 흑인 랩 진영이 넬리(Nelly)라는 새 얼굴로부터 주도권 탈환의 돌파구를 찾는다. 대중적 스타가 절실한 상황에서 유쾌한 랩을 구사하는 넬리는 실로 흑인 랩의 희망이다. 올 21살로 갓 데뷔한 신인에도 불구하고 그의 현재 히트퍼레이드는 찬란하다. 앨범은 순식간에 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R&B 힙합 차트는 이미 정복했으며 최근 화제가 되고있는 매력적인 곡 ''Country grammar''은 팝 싱글로도 맹위를 떨쳐 막 톱10에 진입했다. 특히 이 곡의 ''다운다운 베이비, 붕붕 베이비''하는 부분은 마치 자장가처럼 귀에 잘 들어와 미국 전역에서 널리 애창되고 있다는 소식. 라디오와 뮤직비디오의 힘을 빌기 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히트한 자생적 스매시 히트곡은 ''Country grammar''밖에 없다는 말도 나온다. ''Ride with it'' 그리고 ''E.I.''와 같은 곡도 근래 하드코어 랩이 판치는 상황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재미와 친근함을 내뿜고있다. 하지만 넬리는 "갱스타 랩이 아닌 듯 하지만 그러나 분명 갱스타 랩이다. 팝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난 어려운 스타일도 하지 않는다"며 ''중도노선''을 확실히 하고 있다. 뉴욕이나 LA가 아닌 미국 남부 세인트루이스 출신이란 것도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스스로도 세인트루이스 사람임을 자랑스레 내세워 현재 몸담고 있는 그룹명도 세인트 루내틱(내년에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함)이며 앨범에는 ''St. Louie''란 제목의 곡도 수록되어있다. 언어 역시 세인트루이스 방언을 고집해 지방색을 강조한다. 그야말로 ''지역문화창달''의 선봉인 셈이다. 넬리가 과연 타이틀처럼 ''시골문법''으로 에미넴 파고를 넘을지 관심을 모은다.
노래 : Taio Cruz (타이오 크루즈)
노래 : Nelly Furtado (넬리 퍼타도,Nelly Kim Furtado)
현재 커다란 세(勢) 몰이에 주력중인 여성 싱어 송 라이터 군(郡)의 선두 주자인 넬리 퍼타도는 가히 인간 ’멜팅 포트(Melting Pot)’라 부를 만 하다. 각종 음악 소스들을 한데 버무리는 솜씨가 대단히 탁월하다는 뜻이다. 포르투갈의 피가 흐르는 캐나다 인이라는 태생적 배경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넬리 퍼타도는 어린 시절, 취미 생활로 기타와 우크렐레(ukulele)를 배우면서 음악... 현재 커다란 세(勢) 몰이에 주력중인 여성 싱어 송 라이터 군(郡)의 선두 주자인 넬리 퍼타도는 가히 인간 ’멜팅 포트(Melting Pot)’라 부를 만 하다. 각종 음악 소스들을 한데 버무리는 솜씨가 대단히 탁월하다는 뜻이다. 포르투갈의 피가 흐르는 캐나다 인이라는 태생적 배경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넬리 퍼타도는 어린 시절, 취미 생활로 기타와 우크렐레(ukulele)를 배우면서 음악적 토양을 다졌다. 동시에 팝, R&B, 브릿 팝, 힙합 등 장르를 불문하는 청취 경험을 통해 다양한 음 영양분을 섭취했다. 포르투갈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포르투갈의 전통음악인 파두와 브라질의 민요에도 항시 귀를 열어놓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토론토로 건너간 뒤, 넬리 퍼타도는 주경야독하며 본격적인 음악 인생을 닻을 올렸다. 힙합 듀오인 넬스타에 가입해 작곡가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추어나갔던 것도 이 즈음이었다. 이후, 펑크 팝(funk-pop) 밴드인 더 필로서퍼 킹즈(the Philosopher Kings)의 레이다망에 포착되면서 그녀의 뮤직 캐리어는 급격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넬리 퍼타도의 음 세계에 반한 그룹이 데모 제작을 도와주겠다고 제의했던 것.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2000년에 발매했던 데뷔 음반 로 이 준비된 스타는 단숨에 팝 팬들과 언론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앨범은 단숨에 플래티넘 고지를 정복했고 ’I’m like a bird’, ’Turn off the radio’ 등이 히트했다. 캐나다 최대의 음악 시상식인 는 2001년 무려 4개의 상을 그녀에게 몰아주었고 는 2002년 최우수 여성 팝 보컬 부문 트로피를 안기며 음악적 성과에 찬사를 보냈다.
새천년 들어 최근 몇 년 동안 니요(Ne-Yo)처럼 확고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대중을 사로잡은 스타는 극히 드물다. 특히, 리듬 앤 블루스 신에서 그만큼 성공한 싱어송라이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주류 흑인 음악을 주도하는 팀버랜드(Timbaland)나 패럴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윌아이앰(will.i.am) 같이 뛰어난 실력으로 다른 이의 음악을 빛내주는 뮤지션들을 간과할... 새천년 들어 최근 몇 년 동안 니요(Ne-Yo)처럼 확고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대중을 사로잡은 스타는 극히 드물다. 특히, 리듬 앤 블루스 신에서 그만큼 성공한 싱어송라이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주류 흑인 음악을 주도하는 팀버랜드(Timbaland)나 패럴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윌아이앰(will.i.am) 같이 뛰어난 실력으로 다른 이의 음악을 빛내주는 뮤지션들을 간과할 수는 없겠으나 정작 자신들은 가수로서의 환희를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던 걸 참작한다면 프로듀서와 보컬리스트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람은 웬만해서는 니요밖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쉐퍼 스미스(Shaffer Smith)가 본명인 그는 2003년 마커스 휴스턴(Marques Houston)의 ‘That girl’과 이듬해에는 크리스티나 밀리언(Christina Milian)의 두 번째 앨범 < It's About Time > 수록곡 중 ‘I'm sorry’, 2005년 9주 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지킨 마리오의 ‘Let me love you’를 통해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초창기 시절, 3인조 보이 밴드 영스타운(Youngstown)의 전담 작곡가로서 활동하던 때보다 더욱 걸출한 스타들과 호흡을 맞췄고, 더불어 굵직굵직한 행적을 완성하는 데에 무척 순조로웠다. 2006년 그는 데뷔작 < In My Own Words >를 발표함으로써 작곡가, 프로듀서의 역할을 넘어 가수 직함을 갖기에 이른다. ‘So sick’, ‘When you're mad’, ‘Sexy love’ 등을 연이어 히트시킨 이 앨범은 빌보드 R&B/힙합 앨범 차트 정상에 등극했고 전 세계적으로 2백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에 힘입어 그는 2007년 그래미 시상식 최우수 남성 R&B 보컬 부문의 후보에 올랐으며, 소울 트레인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R&B/소울 신인 아티스트 상을 받았다. 노르웨이 출신 프로듀싱 팀 스타게이트(Stargate)가 프로듀싱한 청아한 멜로디 루프를 앞세운 미디엄 템포의 곡들은 니요의 맑은 음색과 잘 어울렸고 그를 많은 사람에게 각인하는 양식이 되었다. 니요에게 소포모어 징크스란 없었다. 2007년 선보인 두 번째 앨범 < Because Of You >는 R&B/힙합 앨범 차트 1위로 데뷔, 발매 첫 주 만에 251,000장을 팔아치우며 그의 입지를 굳히는 작품으로 자리 매김 했다. 상업적인 성공과 함께 평단의 찬사도 동반된 본 작품은 ‘Because of you’를 시작으로 ‘Do you’, ‘Can we chill’, ‘Go on girl’까지 넷이나 되는 싱글을 뽑아냈고 2008년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컨템퍼러리 R&B 앨범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출시한 세 번째 앨범 < Year Of The Gentleman >은 식을 줄 모르는 그의 인기를 증명하는 작품이 되기에 이른다. 핫 댄스 뮤직/클럽 플레이 차트 1위, 싱글 차트 7위에 오른 ‘Closer’와 함께 R&B/힙합 싱글 차트 5위를 기록한 ‘Miss independent’의 히트로 이뤄낸 삼연타석 성공은 그를 메인스트림 리듬 앤 블루스의 신성(晨星)에서 흑인 음악의 아이콘이라는 새로운 칭호의 자리로 이동시켰다. 최근 제니퍼 허드슨(Jennifer Hudson)의 공식 데뷔 싱글 ‘Spotlight’를 스타게이트와 공동으로 작곡하고 푸시캣 돌스(Pussycat Dolls)의 신보 수록곡 중 ‘Happily never after’를 프로듀싱한 그는 시아라(Ciara)의 새 앨범 < Fantasy Ride >, 11월 출시 예정인 린지 로한(Lindsay Lohan)의 세 번째 앨범 < Spirit In The Dark > 등에 참여하며 프로듀서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미시 엘리엇과 오랜 파트너십으로 명성을 드날린 팀벌랜드(Timbaland)는 현재 가장 분주히 활동하고 있는 흑인음악 프로듀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팀벌랜드가 흑인음악 시장의 ’뉴 히트메이커’로 부상한 결정적인 이유는 미시 엘리엇의 데뷔 앨범 < Supa Dupa Fly >의 열풍 때문이다. 1997년 당시 팝 차트 3위, R&B 차트 1위에 오르며 어반 라디오를 강타한 이 음반의 상업적인 성공은 곧바로 미시 ... 미시 엘리엇과 오랜 파트너십으로 명성을 드날린 팀벌랜드(Timbaland)는 현재 가장 분주히 활동하고 있는 흑인음악 프로듀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팀벌랜드가 흑인음악 시장의 ’뉴 히트메이커’로 부상한 결정적인 이유는 미시 엘리엇의 데뷔 앨범 < Supa Dupa Fly >의 열풍 때문이다. 1997년 당시 팝 차트 3위, R&B 차트 1위에 오르며 어반 라디오를 강타한 이 음반의 상업적인 성공은 곧바로 미시 엘리엇을 힙합 여장부로 승천(陞遷)시켰고, 팀벌랜드를 일약 정상급 프로듀서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미시 엘리엇을 ’힙합의 대모’로 키워낸 그의 진가는 수많은 팝 아티스트들과 작업한 결과물을 통해 잘 엿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알리야, 지누와인, TLC, 와이클리프 진, 저스틴 팀버레이크, 알리샤 키스, 데스티니스 차일드, 브랜디, 릴 킴, 패볼러스 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Say my name’, 알리야의 ‘I care 4 U’.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Cry me a river’ 같은 일련의 곡들은 그의 손맛이 만들어낸 블랙 에너지가 세기말과 뉴 밀레니엄 시기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대번 웅변한다. 이는 최고의 황금 콤비임을 자랑하던 지미 잼 & 테리 루이스와 베이비페이스, LA 레이드, 댈러스 오스틴, 저메인 듀프리, 알 켈리, 테디 라일리 등이 주도하던 기존의 블랙뮤직 판도를 새로 쓴 다크호스의 등장이나 다름없었다. ‘랩 전문 프로듀서’라는 명함을 거머쥔 뒤로는 닥터 드레와 비교될 정도로 그의 비트 주조 감각은 탁월했다. 사람들은 그 후로 팀벌랜드가 누구누구와 작업하는지 관심을 모았고, 그의 차기 작품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팀벌랜드는 단지 프로듀싱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직접 음반을 내고 뮤지션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동료 Magoo와 힙합 듀오로 의기투합해 그간 데뷔작 < Welcome To Our World >(1997), 솔로작 < Tim’s Bio >(1998), 2집 < Indecent Proposal >(2001), 3집 < Under Construction, Pt. II >(2003) 등을 내놓고 음악적 과욕을 실험했다. 그 와중에 스타급 가수들과 거액의 몸값에 제휴했고, 제이 지, 나스, 스눕 독, 루다크리스 같은 랩 스타들과 콤비 플레이를 펼쳐 꾸준히 명성을 쏘아 올렸다. 1971년 생으로 본명이 팀 모슬리(Tim Mosley)인 팀벌랜드는 로드니 저킨스, 넵튠스, 스콧 스토치, 저스트 블레이즈, 카니예 웨스트와 함께 차세대 흑인음악 전문가로 21세기 트렌드 뮤직을 리드해가고 있다. 만약 미시 엘리엇과 팀벌랜드, 그 둘 중에 단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팝계의 찰떡궁합으로 광채를 발한 서로간의 창조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Discography 1997년 < Welcome to Our World > 1998년 < Tim’s Bio > 2001년 < Indecent Proposal > 2003년 < Under Construction, Pt. II > 2005/02 김정훈 (quincyjones@hanmail.net)
’뉴욕 힙합의 제왕’으로 불리는 제이 지(Jay-Z)는 21세기 힙합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이제껏 발표된 정규 앨범 8장 모두 플래티넘 레코드를 기록했고, 3집 < Vol. 2: Hard Knock Life >(1998) 이후로는 내놓는 음반마다 빌보드 앨범 차트 1위(5년 연속, 정규 앨범 5장)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차트 성적만 가지고 본다면 상업적인 폭발력은 최근 팝 스타... ’뉴욕 힙합의 제왕’으로 불리는 제이 지(Jay-Z)는 21세기 힙합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이제껏 발표된 정규 앨범 8장 모두 플래티넘 레코드를 기록했고, 3집 < Vol. 2: Hard Knock Life >(1998) 이후로는 내놓는 음반마다 빌보드 앨범 차트 1위(5년 연속, 정규 앨범 5장)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차트 성적만 가지고 본다면 상업적인 폭발력은 최근 팝 스타 가운데 제이 지가 단연 최고다. 해마다 한 장씩의 음반을 발표해 차트를 독식한 셈이다. 그 동안 제이 지와 함께 작업한 힙합 아티스트(프로듀서)의 리스트만 봐도 그의 현재 위상이 대번 파악된다.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와 에미넴을 비롯해 닥터 드레(Dr. Dre), 피 디디(P. Diddy), 팀벌랜드(Timbaland), 넵튠스(Neptunes), 큐 팁(Q-Tip), 스눕 독(Snoop Dogg), 자 룰(Ja Rule), 폭시 브라운(Foxy Brown), 릴 킴(Lil’ Kim) 등 가히 눈부실 정도다. 세기말과 2000년대를 관통한 그 무렵, 막강한 세력 확장을 통해 뉴욕 랩 씬을 정복하기에 이른 것이다. 제이 지는 래퍼 뿐 아니라 음악 외적인 요소에서도 ’영향력 1순위’를 자랑한다. 지금껏 라커펠라(Roc-A-Fella) 레이블과 의류 브랜드 라커웨어(Roc-A-Wear)의 대주주와 보드카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게다가 지난 5월 맨해튼에 스포츠 바(Bar) < 40/40 >를 오픈하며 사업 기반을 확장해나갔다. ’장사꾼’다운 치밀한 사업 추진력을 바탕으로 그는 단 기간 ’힙합 모굴’로 급성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이 지를 두고 랩 문화권의 거물로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숀 카터(Shawn Carter)가 본명인 제이 지는 1970년 생으로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다. 동부 랩의 메카로 유명한 브룩클린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점은 그가 뉴욕 힙합을 바라보는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쉽게 짐작이 간다. 갱스터 래퍼로 출발한 그의 랩 인생은 래퍼로서의 경력과 활동 영역을 넓혀가면서 보다 다양한 팝 스타들과의 작업으로도 이어진다. 결국에는 ’세기의 연인’ 비욘세(Beyonce)와의 약혼식으로 혈기 왕성한 뭇 남성들의 질투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는 10대가 되기 이전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방황하는 시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성장기 시절 빈민가의 허슬러로서의 거친 삶에 익숙해져 갔고, 그곳에서 자신에게 힘과 믿음이 되어준 랩에 빠져들었다. ’헝그리 정신’으로 오직 랩이 인생의 전부라 여겼던 그를 두고 주위의 이웃들이 ’제지(Jazzy)’라 불렀고, 그 닉네임은 제이 지를 대변해준 정신적 영혼과도 같았다. 천부적인 음악적 끼와 재능은 친구 데이먼 대시(Damon Dash), 카림 버크(Kareem Burke)와 레코드 회사 < 라커펠라 >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거기서 탄생된 첫 작품이 바로 데뷔 앨범 < Reasonable Doubt >이다. 1996년 발표 당시 매스컴으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일부 언론에서는 나스(Nas) 1집 < Illmatic >(1994)의 뒤를 잇는 데뷔 걸작으로 평하기도 했다. 이후 1집은 50주간 이상 차트에 남아 있었다. 1997년 2집 < In My Lifetime, Vol. 1 >(3위)을 통해 제이 지는 동부 힙합의 중심 인물로 부상했다. 절친한 동료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사망이 결정적이었다. 자전적 요소가 담긴 영화 < Streets Is Watching >(1998)에 참여해 그의 존재를 부각시켜 나갔고, 3집 < Vol. 2: Hard Knock Life >(1위)를 통해 이듬해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랩 앨범’ 부문을 수상하며 차츰 힙합 아티스트로서 명성을 획득해 나갔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속 래퍼들과 랩 파티를 이룬 1999년 4집 < Vol. 3: Life and Times of S. Carter >(1위), 2000년 5집 < Dynasty Roc la Familia >(1위) 같은 히트작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상업주의로 변질된 힙합 상품을 만든다”는 일부 혹평에 시달리기도 했다. 제이 지는 그러나 2001년 6집 < The Blueprint >(1위)를 발표하며 ’뉴욕 힙합의 제왕’이라는 수식어구와 찬사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6집은 그 해 영국의 < NME >지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 4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일부 매스컴(힙합 < 소지 >지 별 다섯 개 만점)에서도 6집을 ’힙합의 클래식’으로 평가하며 1집 < Reasonable Doubt >와 더불어 최고 작품으로 평가했다. 이후 제이 지는 라이브 앨범 < Unplugged >(2001)와 알 켈리와 합작품 < Best of Both Worlds >(2001)를 발표하지만 대중들의 호응은 예전처럼 뜨겁지는 않았다. 그래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함과 더불어 < The Blueprint >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2002년 7집 < The Blueprint? The Gift & the Curse >(1위)을 선보이며 비욘세와 듀엣 곡 ’03 Bonnie & clyde’(4위)를 히트시켰다. 최근에는 전작의 개정판인 8집 < Blueprint 2.1 >(2003)까지 선보이며 왕성한 활동을 꾸준히 지속했다. 제이 지는 1990년대 중반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사망으로 인한 ’뉴 히어로’의 갈망에 보답한 최상의 래퍼로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 부드러운 랩 톤과 매끄러운 라임, 멜로디 흐름을 잘 타는 그의 래핑이 그 누구보다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이젠 제이 지가 뉴욕 힙합을 평정한 사실을 두고 그 누구도 의심할 반론의 여지가 없다.
노래 : The Black Eyed Peas (블랙 아이드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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