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어미의 언어, 한국어
다른 언어와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성
한국어는 조사와 어미가 중요한 언어이다. 한국어에서 조사와 어미의 존재가 영어나 중국어 등의 다른 언어와 구별되는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간혹 문장을 쓰다 보면 조사를 넣어야 할지, 빼야 할지 고민이 될 때가 많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조사가 고유한 뜻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영어나 한문처럼 조사를 빼면 문장이 더 깔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공부하고 나면 조사를 제대로 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사를 생략하고 싶으면 조사를 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써야 할 조사를 쓰지 않으면 의미가 잘못 전달되거나 혼동을 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조사의 기능과 용도를 정확히 알고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내용에 가장 맞는 조사를 가려서 써야 한다. 조지훈의 「낙화」, 김춘수의 「꽃」, 김소월의 「산유화」, 황금찬의 「촛불」, 김남주의 「자유」, 기형도의 「빈집」 등의 시를 감상하며 조사의 올바른 사용법을 공부한다.
반면 어미는 단어의 일부이므로 쓰고 안 쓰고 하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미의 형태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어미를 선택하는 데 고민이 많다. 특히 한국어는 서법과 높임법 그리고 시제가 모두 어미를 통해서 구현되므로 어미의 형태가 매우 중요하다. 어미가 비록 어간의 뒤에 붙어서 꼬리라는 이름으로 쓰이지만, 몸통이 하지 못하는 문법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보면 몸통보다 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어미가 어떤 서법에 쓰이고, 그 어미에 높임법과 시제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미 공부는 윤동주의 「새로운 길」, 문태준의 「이제 오느냐」, 김소월의 「님의 노래」, 심훈의 「너에게 무엇을 주랴」, 양주동의 「산길」, 신달자의 「여자의 사막」, 도종환의 「만들 수만 있다면」, 김수향의 「꿈」 등과 함께한다.
시에서 조사가 중요한 것은 문장의 뼈대를 세우는 대목, 체언을 이리저리 부리는 장수와 같다
『시로 국어 공부』 개괄편인 문법편에서 조사가 문장의 뼈대를 세우는 대목 같은 구실을 하고, 체언을 이리저리 부리는 장수와 같다고 말했다. 시에서도 조사는 가끔 단어의 이미지나 문장의 분위기를 바꿔 시인의 본심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조사를 쓰지 않고 그런 이미지 일탈을 도모하려면 복잡한 장치가 필요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사를 적절하게 쓴 시에는 무언가 특별함이 묻어난다. 이는 반대로 조사를 아무렇게나 쓰게 되면 시의 깊이가 감소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먼저 두 가지 조사의 기능에 대해 얘기한다. 자리 기능과 의미 부가 기능이 그것이다. 조사의 자리 기능은 체언이 문장에서 어떤 성분으로 자리를 잡을지 결정해주는 격조사를 말한다. 의미 부가 기능은 체언의 자리를 지정해 주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화자의 심리적 태도를 나타내는 부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격조사는 체언을 문장에서 주어, 서술어, 목적어, 보어, 관형어, 부사어, 독립어가 되도록 만드는 조사이다. 주어가 되게 하는 주격조사는 ‘가/이’, 서술어가 되게 하는 서술격조사 ‘다/이다’, 보어가 되게 하는 보격조사 ’가/이’, 목적어가 되게 하는 목적격조사 ‘를/을’, 관형어가 되게 하는 관형격조사 ‘의’, 부사어가 되게 하는 부사격조사 ‘에, 에게, 에서, 로/으로’가 있다. 이 격조사들이 지니는 특징과 역할 등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시를 통해 하나하나 확인해나가고 있다. 특히 주격조사는 현장감과 사실감을 지닌다. 조지훈의 「낙화」 일부분을 보면 시인이 ‘꽃이, 별이, 산이’라는 주격조사를 씀으로써 사실감을 더욱 살렸음을 알 수 있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그리고 격조사 이외의 모든 조사는 보조사이다. 보어는 서술어를 보완하는 말로서, 보어를 요구하는 서술어에는 동사 ‘되다’와 형용사 ‘아니다’가 있다. ‘그가 시인이 되었다. 돈이 정의가 아니다.’라는 예문을 참조해보자. 이처럼 조사의 중요성과 기능, 쓰임 등을 일목요연하게 꼼꼼히 짚어주고 있다. 특히 한국어는 보조사의 언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조사가 광범위하게 쓰인다. ‘은/는’ ‘도’ 같은 보조사는 언어에서 약방의 감초 구실도 하지만 경기장의 치어리더 같은 기능도 한다. 없으면 허전하고 아쉽고 또 없으면 말이 좀 모나고 과격한 느낌이 든다. 시에 이런 보조사가 어떻게 쓰이는지 면밀히 볼 필요가 있다.
시에서 어미가 중요한 것은
국어는 서술어가 문장의 끝에 오는 언어, 어미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우스갯소리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어떤 어미를 쓰는지에 따라 문장의 뜻이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미는 특히 시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어는 서술어가 문장의 끝에 오는 언어로, 그 서술어가 어미로 끝나기 때문에 어떤 어미로 끝을 마무리하는가에 따라서 시의 각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가 자유시이면서도 운율이 느껴지고 낭송의 맛을 보이는 이유는 어미를 적절하게 활용하기 때문이다.
어미는 크게 연결어미, 종결어미, 전성어미, 선어말어미로 분류된다. 연결어미에는 대등적 연결어미, 종속적 연결어미, 보조적 연결어미가 있다. 대등적 연결어미는 대등한 두 절을 이어주는 어미로 ‘-고’, ‘-며/-으며’, ‘-나/-으나’ 등이 있다. 종속적 연결어미는 앞 문장을 뒤 문장에 종속적으로 이어주는 어미로 ‘-면’, ‘-니/-니까’, ‘-므로’ 등이 있다. 보조적 연결어미는 연결되는 두 용언 중에서 뒤 용언이 제 의미를 상실하고 앞 용언의 의미를 보조하는 기능을 하도록 만드는 연결어미이다. 여기에는 ‘-아/-어’ ‘-게’ ‘-지’ ‘-고’ 등이 있다. 이들 용법에 대한 차이를 김소월의 「나의 집」,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 황규관의 「집을 나간 아내에게」, 함석헌의 「산」 등의 시와 함께 설명한다.
그리고 문장을 마칠 때 쓰는 어미가 종결어미이다. 종결어미에 따라서 문장의 어미가 크게 달라진다. ‘여기가 거기다.’ ‘여기가 거기냐?’ ‘여기가 거기구나!’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으며, 그 차이를 서법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흔히 말하는 평서법, 의문법, 명령법, 청유법, 감탄법이 그것이다. 그리고 동사나 형용사를 명사, 관형사, 부사처럼 기능하게 만드는 관형사형 전성어미, 부사형 전성어미, 명사형 전성어미와 높임과 과거, 겸양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도 동사 활용표와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들 용법 공부 역시 양주동의 「산길」, 김설하의 「봄이 오는 소리」,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등의 시와 함께한다. 이처럼 한국어는 어미 사용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므로 어미를 사용하는 환경을 잘 알고 그에 맞고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 어미의 용법마다 제시되는 어미 활용표도 국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