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의사) 손석희(언론인) 심재명(영화인) 장강명(작가) 추천!
‘아프거나, 읽거나, 번역하거나’
침대가 세상의 전부였던 소년은
톨킨 번역가가 되고 서울대에 입학했다.
나태하지 않은 영혼을 가진 그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초등학교 졸업 후 7년 그리고 그 이후 1년
중증 A형 혈우병 환자는 피가 응고하도록 만드는 정상인자(8인자)가 유전적으로 없거나 많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혈우병 환자들은 대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정상 인자를 보충하는 강력한 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현묵은 세계적으로 그 사례를 찾아보기 매우 힘든 특이한 몸을 가지고 있다. 혈우병의 희망이라 불리는 고가의 약도 듣지 않았다. 소방호스로 물을 퍼붓듯 약을 써도 아주 미세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보통 사람들에겐 아무 일도 아닐 관절과 장기에 생기는 내출혈은 종종 현묵을 사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 그건 10대 아이가 견뎌 낼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이 아니었다. 현묵은 10대의 대부분을 침대가 세상의 전부인 채, 집과 응급실을 왕복하며 살았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끝으로 중, 고등학교를 단 하루도 다닐 수 없었다.
몸이 괜찮을 때 현묵은 엄마와 함께 도서관이나 서점에 갔다. 그곳에서 운명처럼 J. R. R. 톨킨을 만났다. 『반지의 제왕』에서 시작해 점점 톨킨 덕후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 와중에 톨킨 팬덤의 총본산이라고 할 인터넷 카페 ‘중간계로의 여행’에 가입해 톨키니스트로 성장하면서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톨킨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번역을 시작한다. 애초에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번역은 ‘중간계로의 여행’에서 공동 미션으로 제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가장 아팠던 시기인 2016년에서 2019년까지 현묵은 게시판에 번역을 묵묵히 쉼 없이 올렸다. 그가 반복적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병원에 입원하는 시기에는 번역 업데이트가 중단되었다가 다시 덜 아픈 상태가 되면 현묵의 새로운 번역이 올라오는 식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 번역 레이스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현묵은 혼자서 그 일을 계속 했다. 그 기간 동안 현묵이 번역 게시물을 올린 횟수는 100여회에 육박한다.
2018년 6월 현묵은 새로운 주치의를 만나게 된다.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한강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준범 교수가 그다. 그는 혈우병도 개인마다 다 다르다는 화두를 던지며 현묵에게 개인 맞춤 치료를 제안했다. 그리고 안전성이 최종 검증되지 않은 해외 신약의 국내 임상시험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2019년 6월 임상시험에 참여한 후 신약으로 계속 치료를 받았고 현묵은 후유증으로 인한 장애는 남았지만 이후 반복적인 출혈과 응급실 및 중환자실 입원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프지 않은 현묵은 ‘최강’이었다. 2020년 엄마의 제안으로 대학입시 준비를 시작하는 동시에 출판사와 톨킨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번역 계약을 맺고 번역에 매진해 번역 원고를 탈고한다. 고졸 검정고시를 패스한 후 현묵은 서울대학교 정시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2’에 지원한다. 서울대 입시전형에 제출할 추천서를 쓴 김준범 교수는 현묵에 대해 “본 추천인이 경험한 많은 인연을 통틀어 가장 위대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한 사례”라고 언급한다. 이전까지는 유례가 없었을 주치의가 추천서를 쓴 지원자 박현묵은 2021년 2월 서울대학교 인문학부에 합격했다. 2013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근 7년간 침실이 거의 세상의 전부였던 현묵의 이후 ‘1년’은 톨킨의 번역가가 된 동시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1년이었다.
내가 무엇을 못 했다면 그것은 나태함 때문이에요
현묵에 대해서 주치의 김준범 교수는 출생 후부터 계속된 내출혈로 매번 사망 직전 상태를 경험했으면서도 “어두움과 절망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매 순간 긍정의 힘으로 극한의 상황을 기적처럼 이겨냈”다는 것이다. 현묵이 겪었던 육체적인 고통은 매번 사망 직전 상태까지 가는 극한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루어진 현묵의 이런 성취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현묵은 “사춘기 시절 질풍노도는 늘 침대 위에서 끝났어요. 그렇다고 해도 아프다는 것으로 나를 정의하거나, 무엇을 못 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삼고 싶지 않아요. 내가 무엇을 못 했다면 그것은 나태함 때문이에요. 장애 때문이 아니죠. 나의 10대는 나태함에 아픔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는 상태였어요. 혈우병도 장애도 저의 주인은 아니었어요.” 저자 강인식 기자는 인터뷰를 하면서 이 말을 듣고 ‘정말 저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 걸까, 저 말은 진심일까’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묵은 ‘아무리 아파도 고통의 중간에 틈은 있었으므로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그 틈이 너무나 짧았지만 사실 그건 나태함만 제거하면 별문제가 아니었다고 현묵은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2015년 그 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극강의 내출혈이 양쪽 고관절과 장기를 공격해 의자에 앉아서 작업을 하기 어려운 때에도 현묵은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배 위에 올려놓고 거의 모든 일을 처리했다. 이 자세가 목에 부담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옆으로 누워서 하기도 했다. 노트북을 ㄱ자로 꺾어 옆으로 세우면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느리지만 무엇인가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거센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고통들 사이의 ‘틈’에서 현묵은 지속적으로 하나의 선을 이으며 톨킨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번역을 중단하지 않는다. 가장 아팠던 시기인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그저 재미있어서 번역에 도전했고 “아프거나, 읽거나, 번역하거나” 그렇게 한길을 갔다. 그에게 번역은 본질적인 삶의 목적이었다.
왜 톨킨이었고 왜 번역이었을까? “혈우병 환자의 수명이 일반인보다 크게 짧은 건 아니에요. 죽을 만큼 아플 때는 많아도 실제로 죽기는 쉽지 않죠. 이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죠. 그럼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파서 잠이 안 오니까 더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현묵은 아마도 어른이 되겠지만 그저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긴 싫었던 것은 아닐까. 번역이 본질적인 삶의 목적이 된 데에는, 10대 소년의 즐거운 덕질에서 비롯된 톨킨에 대한 탐구가 번역에 도전하는 것으로 이어진 데에는, 아프기만 한 어른이 아니라 무언가 자신의 가장 경쟁력 있는 그것으로 삶을 살아보려 한, 그 경쟁력 있는 것으로 어른의 삶을 살아보려 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소울메이트, ‘중간계로의 여행’이라는 학교, 아이돌, 임팩트
박현묵은 현재 우리 나이로 스물셋이 되었다. 그가 아직은 어린 나이로 이룩한 빛나는 성취는,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현묵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고 나아갔고 중단하지 않았던 순도 100%라 할 수 있을 삶에 대한 열정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터이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파괴할 임무를 받은 프로도 옆에 간달프, 아라고른, 레골라스, 김리, 갈라드리엘과 같은 조력자가 있었던 것처럼 현묵의 삶에도 수많은 조력자가 존재한다.
아프다고 초등학교를 다닐 기회를 빼앗지 않고 현묵에게 가장 즐거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 기회를 준 엄마는 긴 암흑의 터널 같던 시기 현묵의 옆에 언제나 함께 있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 같은 SF 영화를 좋아하던 아들에게 영화 대사를 번역해 볼 것을 권유하고 번역가의 싹을 틔워준다. 더불어 신약이 효과를 보이자 다시 현묵에게 대학교 입시에 도전할 것을 제안한다. 엄마는 아픈 현묵이 집에만 있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현묵의 몸이 괜찮을 때에는 계단이 있어서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라 할지라도 현묵을 이고 지고 함께 여행을 다녔고, 덕분에 현묵은 실제 세상을 여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현묵의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10대 소년에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은 랜선을 통해서 열렸다. 소년은 랜선을 통해서 세상의 학교와는 전혀 다르지만, 앞에서 길을 끌어주며 동기 부여를 해주는 선생님이 있고, 함께 관심사를 웃고 떠들며 얘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학교를 만난다. 바로 톨킨 팬덤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 ‘중간계로의 여행’이다. 현묵은 여기서 진정한 톨키니스트, 진정한 고수, 아이돌을 만나고 그들을 따라 진정한 톨키니스트로 성장한다. 그리고 이 고수들이 열어준 길에서 톨킨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번역을 시작하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한국에서 최초로 번역한 사람이 되는 성취를 이룬다.
이 책에서는 ‘임팩트’라는 단어를 여러 번 목도할 수 있다.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자신의 방과 침대에 갇혀 있던 현묵을 세상으로 나오게 했던 것은 주치의 김준범 교수와 현묵과 번역 계약을 맺은 아르테 출판사의 장현주 팀장이다. 김준범 교수는 신약 임상시험에 현묵이 지원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고질적인 내출혈 문제를 제어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현묵의 병과 장애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재활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그가 쓴 추천서는 현묵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묵 스스로 표현한 “김준범 임팩트”다. 톨킨의 저작을 번역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의 장현주 팀장은 현묵을 카페의 ‘부매니저님’으로 부름으로써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 본 적 없는 현묵을 최초로 공적으로 호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현묵을 ‘번역가’로, 현묵이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톨킨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한국에서 처음 번역하는 번역가가 되도록 이끌었다. 카페 게시판에 공동 미션으로 시작했지만 이미 거대한 탑을 쌓고 있었던 현묵의 아마추어 번역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알아보고 믿어준 사람이다. 이를 두고 저자가 ‘장현주 임팩트’라 표현한 것은 너무도 적절하다.
버킷 리스트, 박현묵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2019년 여름 신약을 만나고 5개월이 지난 뒤 현묵은 갇혀 있던 침대에서 거꾸로 세상으로 거슬러 나아갈 힘이 생겼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힘이 생긴 발로 바닥을 밀어 자신의 방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거실로, 그리고 거실에서 보행보조기로 옮겨 타고 옷이 흥건할 정도로 땀을 흘리면서도 혼자서 버텨 베란다에 나가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서서 창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홀로 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2021년 3월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 그해 6월 스물둘의 현묵은 생애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이어진 여름방학에 현묵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간다!”는 버킷 리스트를 잡았다.
첫 번째 버킷 리스트는 ‘만화 카페 가기’였고, 몇 차례의 사전답사까지 마친 뒤 휠체어를 타고 만화 카페에 입성해 직접 만화책을 고르고 손으로 종이책을 만지면서 책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네온사인이 넘실거리는 밤거리를 비지스의 노래 〈나이트 피버〉를 들으며 정처 없이 쏘다니는 것이었다. 네온사인이 있고 계단만 없다면 그곳은 〈나이트 피버〉로 흘러넘쳤다. 전동휠체어의 배터리가 다 닳도록 현묵은 목적지도 없이 그 속을 방황하듯 배회했다.
2022년 현재 현묵은 우리 나이로 스물셋의 청년이다. 그 청년은 이제 새로 얻게 된 자유를 더 확장하길 원한다. 현묵은 이제 자신이 낭송했던 로버트 블라이의 시처럼 “나 혼자만의 은밀함”을 즐기기 위해 인기척이 없는 눈 내리는 추운 밤 “차를 이리저리 몰며 시간을 좀 더 날”릴 수 있는 자유를 위해 운전면허를 땄다. 더 이상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되고, 엄마가 먼저 집으로 가도 되고, 저 앞의 미녀를 두고 집에 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 말이다. 청년 박현묵의 이야기는 여기서 일단락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아니 현묵 자신이 주인공인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박현묵 임팩트
현묵에게 “‘김준범 임팩트’가 삶 전반에 강력한 지각 변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장현주 임팩트’는 공적인 세계로의 데뷔 같은 것”이라고, 그리고 “기어코 현묵도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묵은 자신이 받은 작용(임팩트)을 상대에게 되돌려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박현묵과의 인터뷰는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어떤 태도의 문제’에 대해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었다고 말이다. 그것은 저자에게 하나의 임팩트였고 이를 ‘박현묵 임팩트’라고 표현한다.
또한 저자는 현묵의 스토리가 ‘장애인의 인간 승리’로 소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이 책은 박현묵이라는 난치병을 가진 한 10대 소년이 스물둘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언제든지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비극 속에서 그 비극의 무게에 함몰되지 않고 그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유연함을 잃지 않았던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공부란 본질적으로 어떤 행위인지, 어떤 태도를 통해 완성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니 둘 다일 것이다. 과연 이 책을 편 당신은 이 박현묵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부디 저자의 바람처럼, 현묵의 바람처럼 ‘장애인의 인간 승리’ 이야기 정도로 읽지 않기를. 현묵은 자신을 옭아맸던 모든 장애를 걷어내고 체급마저도 고려하지 않은 가장 경쟁력 있는 것으로 자신의 진가를 보여줬고 빛나는 성취를 이뤘으며 그 성취를 평가하는 데 ‘장애인’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은 필요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고귀한 용기를 얻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실물 그 자체로 육박하는, 감동을 넘어선 깨달음을 줄 것이다. 세상의 상투성을 벗어나 진실한 자신의 영혼과 열망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