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창으로 조선을 살핀다
한동안 젊은 세대가 사회를 냉소할 때 ‘헬 조선’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그만큼 젊은 세대에게 조선의 역사는 부정적으로 비친다. 그런데 과연 조선은 지옥에 비유할 만큼 후진적인 나라였을까? 한번쯤 이런 의문을 품어본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 나왔다.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는 1392년 건국부터 1910년 망국의 날까지 조선의 역사를 톺아보는 역사서이다. 조선이라는 국가의 생애 주기를 꿰는 통사 역사서는 기존에도 얼마든지 있었지만 이 책은 앞에 붙은 ‘세계사와 통하는’과 ‘매운맛’이라는 수식어가 유독 눈길을 끈다.
먼저 이 책은 세계사의 창을 통해 조선을 비교 고찰한다는 점에서 여타 역사서와 뚜렷이 구별된다.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오랫동안 가르쳤고 지구촌 80여 개 국가의 역사 문화 현장을 수시로 답사하며 세계사의 산 지식을 쌓아온 저자는 ‘자국의 역사만 아는 것은 자국의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조선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같은 시대 세계 여러 나라 상황과의 비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저자는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세기별로 조선을 살피면서 같은 시기 다른 나라들의 상황, 또는 시대가 다르더라도 세계사에 등장한 유사한 성격의 역사적 사건과 경험을 수시로 소환하여 조선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근거를 제시한다. 예를 들자면 고려 멸망과 조선 개국의 불씨를 당긴 요동 정벌과 위화도 회군이 타당한 일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저자는 요동 정벌이 일종의 선제 예방전쟁으로 볼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답한다.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선제 예방전쟁을 벌이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3국에 외교적으로 포위되자 오히려 선제공격으로 위기를 타개하려고 했죠. 20세기의 일본도 국력이 몇 배나 강한 미국을 상대로 선제공격을 펼쳤고요. 하지만 프로이센은 초반 우세에도 불구하고 수세에 몰렸고, 러시아의 여제가 급사하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망하고 말았을 겁니다. 일본도 초반 우세를 잡았지만 결국 패망했고요. 약소국의 예방전쟁은 무리수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_본문 30쪽
15세기의 선진국 조선은 왜 헬 조선이 되었나
그렇다면 이렇게 세계사의 창을 통해 살펴본 조선은 어떤 나라였나? ‘헬 조선’이라는 비난은 타당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헬 조선으로 요약되는 조선의 모습은 19세기의 상황이다. 건국 초기인 15세기의 조선은 뛰어난 시스템을 갖추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보다 문명 수준이 앞서 있었다.
지혜 : 그럼 이쯤에서 조선과 유럽을 한번 비교해보죠. 조선이 유럽보다 어느 정도 앞서 있다고 봐야 할까요?
김 선생 : 문종이 승하한 연도가 1452년입니다. 그런데 그 이듬해인 1453년을 유럽에서 중세가 마무리된 상징적인 연도로 거론하는 학자가 많습니다. 1453년은 고대 로마의 정통을 이어오던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했고,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백년전쟁이 끝난 해입니다. 즉 유럽은 이제야 근세 국민국가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도 1450년 즈음에 발명됩니다. 반면 조선은 진작 인쇄술을 갖추었고, 상당한 문화 수준을 갖고 있었습니다. ... 중략 ...
인권 의식에서는 비교도 안 됩니다. 조선의 장점으로 빼놓지 않아야 할 것 중에 장애인 배려가 있습니다. 조선은 장애인을 학대하면 가중 처벌했고, 고을 수령을 파직하기도 했습니다. 장애가 있는 부모를 모실 경우에는 부역을 면제해 줬습니다. 장애인의 관직 등용에 차별이 없었습니다. 동시대의 유럽은 장애인을 매우 가혹하게 대했습니다. _본문 75쪽
15세기 조선은 국가 운영 시스템, 기술과 문화 수준, 인권 의식과 민본 사상 등 소프트 파워가 유럽과 동아시아 대부분 국가에 비해 높은 나라였다. 물질적(하드 파워)으로도 태종에서 문종까지의 노력으로 조선 왕조는 막대한 곡물을 국가 재정으로 비축하여 당시 비축량은 인구 비율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같은 시기 유럽의 관리 채용이 주로 매관매직으로 이뤄진 데 비해 조선은 과거 시험을 통해 관료를 선발해 관리의 자질과 유능성이 높았으며 초기 문과 급제자 가운데 평민의 비율이 40~50%에 이를 만큼 기회가 열린 사회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렇게 뛰어났던 조선이 15세기의 절정을 지난 뒤 점차 내리막을 걷는다는 점이다.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는 본문 7장 구성인데, 각 장에는 연극의 막 구성처럼 발단-절정-위기-전환-전개-하강-결말 등의 부제가 붙어 있다. 보통의 연극이 발단, 전개를 거쳐 절정을 맞는다면 조선은 때 이른 절정 뒤 상당히 오랜 침체와 위기, 하강 국면을 겪은 셈이다.
건국 초 세계사에서 모범적 선진국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던 조선이 어떻게 해서 19세기 ‘헬 조선’의 치욕에 이르게 되었을까? 3장부터 저자는 그 내막과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날카로운 시각으로 진단해 나간다. 이 책 제목의 조선사 앞에 ‘매운맛’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과거에 벌어진 일을 시대순으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의 순한 맛이라면, 역사를 통해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성찰하고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역사의 매운맛”이라고 자평한다. 매운맛의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자. 17세기 말에 이르면 조선 사대부들은 크롬웰 때의 잉글랜드나 지금의 탈레반처럼 극단화된다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이제 사대부들은 나라보다는 소속 붕당을, 군주보다는 스승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환국에 따라 상대 붕당 서원을 강제 폐쇄하기도 했습니다. 자산서원은 다섯 차례나 훼손과 복원을 반복했습니다. 당파 싸움은 심해졌지만 양반 기득권을 지키는 데는 일치단결했습니다. 서원은 농민을 수탈했고 세금도 내지 않았습니다. 서원을 중심으로 문중 결속력이 강해졌습니다. 서얼과 딸에게는 상속이 배제되고 아들이 없으면 양자가 재산을 모두 챙겼습니다. 성차별이 심해졌고, 제례의식이 강화되었습니다. 중앙정부의 법령보다 양반의 이익을 보호하는 관습이 더 우선되었습니다. _본문 189쪽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애민사상이 무너지고 내부 개혁의 절체절명의 기회도 놓친 조선은 점차 백성과 유리된 지배층만의 국가,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진 나라로 전락한다.
민본주의 국가인 조선은 주모자에게는 잔혹했지만, 단순 가담자에게는 선처를 베풀곤 했습니다. 그런데 홍경래의 봉기 때는 포로가 된 2983명 중에 남자아이와 여자를 제외하고 성인 남성 1917명을 모두 처형했습니다. 조선의 가장 큰 장점인 애민사상이 무너졌습니다. _본문 243쪽
고종은 대한제국 수립 후에 철도 부설권, 금광 채굴권 등을 외국에 계속 넘기고, 그 일정 지분을 본인이 받았습니다. 고종이 넘긴 운산금광만 해도 당시 동양 최대의 금광으로 거기서 나온 누적 순익은 국가 부채의 몇 배였습니다. 그런 노다지를 헐값에 외국에 넘겨준 것입니다. 그리고 사치를 부렸고요. 그 빚 감당은 민중의 몫이었습니다. _본문 285쪽
경제, 기후, 과학기술이 역사에 미친 영향 탐색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가 다른 역사서와 구별되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경제, 기후, 과학기술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매우 중시한다는 점이다. 역사의 큰 흐름을 쉽게 일별하기 위해 세기별 국왕 중심의 정치사를 씨줄로 삼지만, 날줄에서는 정치사 못지않게 경제와 기후의 변화, 대기근과 전염병의 확산, 과학기술이 백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꼼꼼하게 탐색한다.
18세기 끝인 1799년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지요. 19세기 초에는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이 사상 최대 규모로 폭발합니다. 화산재가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덮었고, 그 후유증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조선은 순조 14년에서 16년에 걸쳐 무려 130만의 호구가 감소합니다. 호구가 감소하니 세금 수입이 줄어 재정은 부족했고, 탐관오리는 남은 백성을 더욱 쥐어짰습니다.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죠._ 본문 243~244쪽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출된 기술은 무엇이며 조선 역사에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왔는지도 살펴본다. 외부 세계와 유기적으로 얽힌 역사의 특성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감불甘佛은 까불이, 검동儉同은 검둥이의 한자표기로 생각되는데요. 실록에 딱 한 번 나오는 김감불과 김검동은 인류 역사를 엄청나게 바꿉니다. 이들은 은광석에서 획기적으로 은을 대량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합니다. 연산군은 기술을 시험해보고 사용을 지시하지요. 그런데 중종이 즉위하면서 연산군 때의 과다한 사치 풍조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은 생산을 중단합니다.
많이 생산하면 명나라의 은 요구가 늘어날 것을 감안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선의 은 생산이 중단된 틈을 타서 일본이 연은분리법을 알고 있는 기술자를 데려갑니다. 결국 일본의 은 생산이 폭증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 (중략) ... 이어 일본은 은광의 경제력과 조총을 바탕으로 조선을 침공하지요. 바로 임진전쟁입니다. 정리하면 연은분리법의 유출이 임진 전쟁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_본문 104~105쪽
제자와 주고받는 33가지 돌직구 질문과 대답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는 저자 김 선생과 제자 지혜가 조선사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채택했다. 지혜는 저자의 역사 수업을 함께한 여러 열성 제자들을 대표하는 캐릭터이다. 순수한 호기심과 젊은 시각으로 끊임없이 던진 학생들의 33가지 질문은 그대로 각 단원의 주제가 되면서 500년 조선의 빛과 그늘을 파헤치는 책의 뼈대를 이루었다.
지혜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결국 쿠데타 아니냐며 쿠데타로 개창한 왕조가 정통성이 있는지,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는 아닌지 따져 묻는다. 숱하게 많았던 조선 왕 암살 의혹이 진실일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호기심을 반짝거리기도 한다. 정규군이 하루도 못 싸우고 외국에 망했냐며 을사조약이 체결될 때 군인과 사대부들은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개탄하기도 한다.
위화도 회군을 당대의 시대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근대국가에서의 쿠데타나 사대주의와 동일선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설명을 해주면서 진땀을 빼는 한편 주관이 뚜렷한 제자의 모습에 흐뭇해하는 저자의 마음과 교실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이처럼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는 생동감 넘치는 실시간 대화를 통해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젊은 시각과 세계사의 격변을 체험한 기성세대인 저자의 풍부한 지식과 삶의 관조를 함께 읽는 즐거움도 제공한다.
가까운 우리 역사이지만 사실 그 심층을 잘 몰랐던 조선사를 한번쯤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 눈 맑은 제자들과 역사 마니아 선생님의 대화에 슬쩍 끼여 들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