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데이, 이제 죽음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직감의 광고쟁이 단 소메르달 & 연륜의 수사관 플레밍 토르프
아나 그루에는 《유다의 키스》를 통해 전작 《이름 없는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 현실의 구석구석에 대한 날카롭고도 따스한 시선을 탁월한 명품 미스터리로 직조해내는 이야기꾼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름 없는 여자들》에서 친구의 사건 수사를 어깨너머로 참견하며 자신의 호기심과 적성을 살릴 기회를 포착했던 단 소메르달은 《유다의 키스》에서 생애 처음 단독으로 사건 수사를 위임받아 활약한다. 단이 사립탐정으로서 뒤쫓는 결혼 사기꾼의 정체가 수면 위로 드러날수록, 플레밍이 붙잡고 있던 의문의 살인사건도 차차 실마리가 풀리게 되지만, 두 사건의 믿을 수 없는 연결고리들은 사건 해결에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동시에 두 친구의 갈등을 점점 첨예하게 만든다. 아나 그루에는 이 독특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를 경쾌한 위트와 세심한 통찰로 조합해낸다. 개성과 매력 넘치는 주요인물과 범인들은 물론, 잠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까지도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생함을 부여한 《유다의 키스》는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이어지는 긴박감과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그리고 그 단단한 리얼리즘의 힘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정통추리물의 문법에 충실하면서 피나 폭력, 어두움과 비관주의와 거리가 먼 또 다른 세계관을 그려 보이는 코지미스터리의 진수가 이 작품 안에 담겼다.
“아나 그루에의 미스터리는 탄탄한 구조에 극도로 우아하기까지 하다.”
_《디 벨트Die Welt》
“오늘부터 2주만 시간을 줘!”
대머리 탐정, 단 소메르달이 추적하는 첫 사건
덴마크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피오르 해안에 자리한 소도시 크리스티안순, 그곳에서 IT 부서 대학생 인턴사원이 구형 컴퓨터 모니터에 머리가 깔린 채 발레슬레브 지역의 자기 집 헛간에서 피투성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건을 담당한 수사과장 플레밍 토르프는 좀처럼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한편 에게비에르그 기숙학교에서 십대 학생들의 최고 인기 교사인 53세의 우르술라는 29세의 약혼자 야콥이 그녀의 로또 당첨금을 챙겨 사라지자 충격에 빠지고, 우르술라의 애제자인 라우라는 아버지인 단 소메르달에게 이 사기꾼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아빠는 반쯤은 경찰이잖아요!’ 단짝 친구 플레밍 토르프의 수사를 어깨너머로 참견만 하다가 드디어 생애 최초로 단독 사건을 맡은 단. 본업인 광고 카피라이터로서 바쁜 일과를 이어가면서도 본격 사립탐정의 일을 앞두고 잔뜩 흥분해 있지만, 모든 것을 철저하게 전문적으로 준비하고 위장했던 이 야콥이란 사기꾼의 정체는 좀처럼 가닥을 잡을 수 없다. 오리무중의 상황에 처한 단에게 배우자인 정신과 의사 마리아네는 중장년 싱글이 많이 찾는 데이트 파트너 주선 사이트를 조사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 그 여자들이 손가락을 덴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다른 남자를 찾는 걸 완전히 포기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어, 안 그래?” 그녀는 목캔디를 하나 더 상자에서 꺼냈다. “내가 아는 싱글 여성들이 얼마나 많이 그런 파트너 주선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지 당신이 알게 되면 이해할걸.” _본문에서
“이 남자를 찾습니다.나이 29세, 키 194센티미터, 금발에 파란 눈. 피부는 흰 편이고 어깨에 문신 있음.”
단이 설마 하며 데이트 파트너 주선 사이트에 ‘이 남자를 찾습니다’ 광고를 게재하자, 온갖 피드백이 이어진다. ‘이런 데에 자기 프로필을 올려 짝을 찾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고?’ 모든 여성들이 한결같이 사랑하고 귀여워했다는 이 사기꾼은 예상대로 다양한 이름으로 자신을 바꾸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대체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는 알고 있었다. 큰돈은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야콥 헤우를린으로 살았던 삶은 지나갔다. 그리고 그 직전, 불치병으로 죽는 날만 기다리던 요아킴 헤인센이란 존재와도 이별을 고했다. 제이는 선베드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 안에 있던, 빌려온 두 정체성을 몸에서 마음에서 뽑아내자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 몸과 마음이 모두 해이해져 지난주 내내 자고 먹고 수영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럴 만하지 않았는가? 연이어 큰 작업을 두 개나 끝냈으니 말이다. 캐스 몫을 떼어주고도 순 수입이 1,200만 크로네나 됐다. 그는 꽤 높은 연봉이라고 생각하며 흡족해했다. […] 제이는 이런 고도로 특화된 분야에 수년간 몸담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액수가 큰 돈은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_본문에서
수사관 플레밍은 좀체 풀리지 않는 발레슬레브 살인사건에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자, 단이 수사를 맡았다는 사기꾼 야콥의 지문을 조사 의뢰하고 뜻밖에도 이 인물이 자신이 수사 중인 살인사건과 관련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플레밍과 단이 서로의 수사 정보를 공유하며 함께 단서를 맞춰보기 시작하자 두 사건 모두 서서히 실마리가 풀려가게 된다. 그러나 몇십 년을 그랬듯 이번에도 자신이 더 뛰어남을 입증하려는 단을 잘 구슬리지 못하면 수사를 망칠지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 플레밍은 남모를 고뇌에 빠져든다. 단과 결혼하기 전에 플레밍의 여자친구이기도 했던 마리아네는 그에게 속삭인다.
“플레밍은 그를 배제시킬 수 없어. 만약 그럴 기미를 보이면 단은 플레밍 등 뒤에서 뭔가 위험천만한 일을 감행할 테니까.”
“왜 그렇게 생각해?”
“[…] 단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가 플레밍보다 더 뛰어나고 더 강하다는 것을 입증하려 들 거라는 건 확실해. […] 이 사건이 둘 사이의 경쟁인 것 같은 느낌을 단이 갖게 되면 안 된다는 거야.”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와 수돗물 트는 소리가 들렸다. 마리아네는 목소리를 더 낮추고 더 빠르게 말했다. “단이 엉뚱한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와 일을 나눠서 맡는 게 좋겠지. 단과 의논을 해봐.”
수돗물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단을 같은 편으로 만들어, 플레밍. 안 그러면 일을 망칠 거야.” _본문에서
결혼 사기꾼과 발레슬레브 살인사건을 연결하는 사이비종교집단의 사연, 15년 전 한 가족을 둘러싼 비극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드디어 범인을 눈앞에 두게 된 단. 이제 범인의 향방만큼이나 단의 선택지가 무엇이 될지도 사건 해결의 결정적 변수로 떠오르는데…….
“아저씨 생각에……. 이게 이성적인 행동이라고 보세요?”
“당연히 아니지! 그렇지만 올바른 행동이라는 확신은 들어.” 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