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감정, 여성이라는 존재
비비언 고닉은 뉴욕 브롱크스의 유대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노동자 계층, 천태만상의 삶이 복작거리며 펼쳐지는 대도시의 한구석에서 어린 고닉은 자기를 알아가고 만들어간다. 막 세계를 가늠하려는 여자아이의 가슴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세상을 다채롭게 물들이던 각양각색의 이웃 여자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서 단란한 가정과 부부의 사랑, 세상살이의 지혜와 생활의 강단을 뽐내던 어머니, 범접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른 한쪽에서 고닉을 끌어당기던 이웃 여자 네티─이들이 고닉을 구성한 유년기의 조건이었다. “그 다세대주택에서 여섯 살 때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살았다. 스무 채의 빌라가 있는 4층 건물이었고 내가 기억하는 건 오직 여자들만 있었다는 점이다. (…) 나라는 여자애는 그들 한가운데서 자라고 그들의 이미지 안에서 만들어진 존재였다.”(7)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고닉과 강렬한 애착으로 엮인 어머니가 있었다.
이것이 엄마가 처한 삶의 조건이었다. 여기 이 부엌에서 당신이 누구인지 잘 안다는 것. 또한 이 부엌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지리멸렬해한다는 것. 이 부엌에서 엄마는 누구나 존경하고 감탄할 정도로 훌륭히 기능한다. 이 부엌에서 당신이 하는 일을 혐오스러워한다. 어쩌면 나중에 당신 입으로 말한 “여자로 산다는 것의 공허함”에 대해 분노를 키우고 있다. 그러다가도 골목에서 벌어지는 세상만사를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명랑하고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다. 아침에는 수동적이고, 오후에는 반항적이던 엄마는 매일 새로 만들어졌다가 매일 풀어져버리는 사람이었다.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재료를 굶주린 사람처럼 붙들고 스스로 창조한 세계에 애정을 보이다가도 일순간 어쩔 수 없이 이 생활로 끌려온 부역자처럼 느끼곤 했다. 어떻게 그처럼 처절하게 분열된 삶에 당신의 모든 감정을 쏟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니 나라고 무슨 수로 엄마의 감정에 감정을 쏟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26)
일상은 문득문득 올라오는 자기 상실의 감각을 뒤로하고, 삶의 주인이 되는 기쁨까지 외면해가며 가사에 복무하고 가족에 헌신하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꾸려졌다. 넉넉하진 못해도 이웃의 부러움을 살 만큼 단란하고 번듯해 보였던 가족의 삶은 그러나 가부장의 죽음과 함께 수렁으로 빠진다. 평생 가지고 누려본 거라곤 남편의 사랑뿐이라고 믿었던 어머니는 그를 여의고 오로지 혼자서 이 비련의 중심이 되기로 작정한 듯 헤어날 수 없는 슬픔 안에 머문다. 그러나 바로 이 균열 안에서 고닉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마찬가지로 남편을 비명횡사로 떠나보낸 네티는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자기를 어렴풋이 감각하며 각성의 순간들을 맞이한다. 일하고 사랑하고,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 끊으며 자기를 알아가는 동안 고닉은 계속해서 두 여자를 생각한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대화가 교차되는 동안, 그 사이사이에 생겨난 여백들에서 삶은 재구성되고 고닉과 어머니의 관계도 그 모습을 바꿔가며 두 사람만의 진실에 다가선다.
『사나운 애착』이 처음 출간되었을 무렵에도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관한 책은 많았다. 그러나 이 책만큼 부모에 대한 경험과 감정을 직설적이고 가차 없이 표현해낸 책은 없었다. 가족 감정family feeling을 다룬 책들 가운데 가장 대담하고 심오한 작품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는 평가대로, 이 책은 고전으로 불린다.
“이 눈부신 책의 진정한 주제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독보적인 작가”(『네이션』)라는 찬사는 고닉과 그의 어머니가 처한 조건이나 모녀의 삶 자체에서 나온 게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어디에나 있는 엄마와 딸, 흔하디흔한 보통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작가는 사소할 수도 결정적일 수도 있는 순간들, 조금만 주의를 흐트려도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춰버리는 존재의 기미,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스스로도 내리지 못한 대답의 실마리들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증언하고 해석하며 그의 어머니 베스 고닉이라는 여자에게, 그 자신에게, 또 우리 각자의 자신들에게 성큼 다가선다. 작가의 말대로 두 사람은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 아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 바라보는 두 여자다.”(301)
자전적 글쓰기,
비비언 고닉의 전통
자기서사self-narrative는 고닉의 글쓰기에서 중요한 형식이다. 모녀관계, 우정과 사랑, 페미니즘, 대도시에 혼자 사는 여성, 읽기와 쓰기, 문학과 예술 등 주된 관심사는 대부분 작가 자신의 고유성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통해 개인화되고 정치화되었다. 『사나운 애착』뿐 아니라 고독한 뉴요커의 일상을 그린 『눈높이에 가까이Approaching Eye Level』와 베스트아메리칸에세이상을 수상한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보낸 편지Letter from Greenwich Village』 같은 에세이는 물론, 비평집 『사랑 소설의 종말The End of the Novel of Love』 등 장르를 불문한 많은 글에서 고닉은 자기서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회고록 작가로 널리 이름을 떨쳤지만, 특유의 자전적 글쓰기는 문학비평에서도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 톰 울프와 조앤 디디온을 필두로 한 작가들이 주관과 문학적 필치를 가미한 개인 저널리즘(뉴저널리즘)을 선보였다면, 고닉은 비평에서 ‘개인 비평’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사용한 일인칭 비평은 “버지니아 울프의 전통적 문학비평을 이으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서사의 고백이라는 현대적 욕구를 반영한다.”(『가디언』) 고닉이 개인적 경험을 통과해 비평에서 보여준 통찰은 당대 주류문학에 빠르게 흡수되었고 오늘날에는 명백한 관점으로 받아들여진다. 회고록의 ‘나’는 비평집에서의 ‘나’이기도 하고 기사와 칼럼, 전기 등 다른 많은 글의 ‘나’이기도 하다. 어떤 주제가 됐건, 고닉의 글에는 작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 길어 올린 ‘정신의 삶’이 담겨 있다.
도시 빈민가의 다세대주택, 잡다하고 별스러운 이웃들, 거리의 사람들, 가족사와 연애사, 기억과 내면의 풍경, 타오르는 슬픔과 깊은 어둠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무기력, 진정한 삶에 대한 야심과 생의 에너지…… 『사나운 애착』에서 보여주는 고닉의 자기서사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들로 펼쳐지지만 독자는 이것을 익숙하게 자기 것으로 환유할 수 있다. 작가의 통찰이 개인적인 것의 정치성을 문학성만큼이나 강력하게 활용하기 때문이다.
『사나운 애착』은 단지 모녀의 애증을 그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의 외부자인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비가시성이라는 형벌, 배제되고 외면되어야 하는 매일매일의 시련, 여성이 느끼는 불행의 본원…… 이 모든 것을 초월해 진정 자기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정신의 삶을 살아내겠다는 결심을 그린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을 교차시키는 과정에서 고닉은 그 복잡한 관계를 사랑과 자유, 일에서의 성취를 탐색할 구도로 활용한다. 서로 사납게 뒤얽힌 완전히 다른 두 인생, 그러나 그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경계에 선 삶일지라도, “반쯤 들어와 있고 반은 나가 있는”(319) 외부자일지라도 인생을 진정한 밀도로, 제대로 된 품질로 살아내고 싶다는 열망. 이 책이 가장도 해소도 없이 끝을 맺으며 드러내는 것은 그러한 의지일 것이다. 이 관계, 이 삶들이 작가에게 그만큼이나 진정한 것이어야 했기에 독자는 작품을 어쩔 수 없는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뉴욕타임스』 지난 50년간 최고의 회고록***
***『옵서버』 20세기 100대 논픽션***
“『사나운 애착』은 독보적인 탁월함, 절대적인 작품성으로 시대와 맥락과 장르라는 기준을 벗어난
저 높은 곳, 다시 말해 ‘시대를 초월한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
나는 고닉에게 ‘작가들의 작가’라는 칭호를 지우는 게 정말 싫다.
그러나 『사나운 애착』은 대가의 숨 막히는 업적으로서 그러한 칭호를 당당히 요구하는 작품이다.” _조너선 러섬, 소설가
“가장 영원하고도 가장 어려운 사랑에 관한 이야기.” _모나 심슨, 『뉴욕타임스 북리뷰』
“사전을 뒤져보면 이 책이 얼마나 좋은지 표현할 수많은 단어가 있을 것이다.
그 모든 단어를 거느릴 자격이 충분하다.” _『워싱턴포스트』
“고닉은 놀랍고 독보적인 예술가다. 이 걸작의 주제는 바로 작가 자신이다.” _웬디 김벨,『네이션』
“경이롭다. 삶의 그 모든 상처와 영광 하나하나를 열광적인 언어로 새겨냈다.” _『가디언』
“자기와 타자 안에 숨겨진 어렵고 기묘하고 화해가 불가능한 일면들, 고독과 적대감,
답답하고 복잡하고 끈질긴 모녀 관계를 똑바로 바라보며 묘파해낸다.
이 책은 언어를 찾아낸 예술가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유성과 독창성으로 무장한 채 완곡어법과 평범한 치유적 결말을 거부한다. 그를 키워낸 이 책 속의 여자들, 그들이야말로 자부심을 느껴 마땅하다.” _『뉴욕타임스』
“지독할 정도로 솔직하고 은밀하며 과감하다. 분명하고 독창적이고 빛나는 문체로
인간 보편의 내적·외적 공간을 자극하고 확장한다.” _『마더존스』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가슴을 울리는 회고록.” _『로스앤젤레스타임스』
“우리는 비비언 고닉─그의 대담함, 섬세한 정신, 유머, 인내와 결단력─과 사랑에 빠진다.” _『버팔로뉴스』
“비비언 고닉은 수많은 작품이 쏟아지는 치열한 장르인 자전적 에세이와 회고록 분야에서
대사大使와도 같은 존재다.” _에밀리 스토크스,『뉴욕타임스 북리뷰』
“무의미한 고백적 글쓰기가 난무하는 시대에,
고닉은 목적이 분명한 자전적 내러티브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가로 남아 있다.”
_이사벨라 비덴한, 『엔터테인먼트위클리』
“우리 시대의 문화적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 가장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작가.” _필립 로페이트
“고닉을 읽는다는 건 스릴 넘치고, 활력 있고, 도전적인 경험이다.” _바버라 피셔
비비언 고닉 선집
짝 없는 여자와 도시The Odd Woman and the City(근간)
환상은 거부할 수밖에 없고 갈등은 직면해야만 하는 여자가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존재해온 뉴욕이라는 궁극의 도시에서 자기를 상상한다. 세포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거부감과 동반자가 되고, 도시의 리듬과 변화무쌍한 우정을 탐험하며 완전한 혼자가 된다. 자기를 발견하고 타인과 연결된다는 것의 딜레마를 통찰한 이 책은 현대 페미니스트를 형성한 생각의 조각들을 그러모으며 대도시에서 펼쳐지는 우정과 사랑의 진화를 아름답게 포착한다.
끝나지 않은 일: 만성 재독서가의 노트Unfinished Business: Notes of a Chronic Re-Reader(근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다시 읽기를 시작한 게. 내가 무엇을 살아냈는지, 그리고 그것을 무엇으로 이해했는지 알아내려고 그렇게 책장을 넘기고 또 넘겼다.” 지난날 중요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며 기억은 재구성되고, 당연하던 것들은 질문이 되어 의미를 발굴해낸다. 만성 재독서가를 자처하는 고닉은 과거에 받아들일 수 있었던 딱 그만큼의 세계와 재회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자기를 알아간다는 일생의 사명을 완수해가는 기쁨을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