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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역사풍경

[ 양장 ]
위르겐 오스터함멜 저/박종일 | 한길사 | 2021년 10월 05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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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05일
판형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쪽수, 무게, 크기 820쪽 | 1,306g | 160*232*41mm
ISBN13 9788935665006
ISBN10 893566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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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2명)

오스터함멜은 1980년 독일에 있는 카셀대학에서 현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대학, 하겐대학, 콘스탄츠대학에서 가르쳤으며, 스위스의 ‘국제연구 대학원’(Graduate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연구소’(Netherlands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in the Humanities and Socia... 오스터함멜은 1980년 독일에 있는 카셀대학에서 현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대학, 하겐대학, 콘스탄츠대학에서 가르쳤으며, 스위스의 ‘국제연구 대학원’(Graduate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연구소’(Netherlands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in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런던에 있는 ‘독일 역사연구소 런던’(German Historical Institute London)에서 연구했다.

현재 독일 콘스탄츠대학의 명예교수이며 2010년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관련 상인 라이프니츠상을 수상했다. 또한 세계사 연구의 업적을 인정받아 2017년에는 사회과학 분야의 최고상인 토인비상, 2018년에는 발찬(Balzan)상을 받았다. 국내 출간된 저서로는 『식민주의: 식민주의의 역사를 다시 해부한다』(2006), 『글로벌화의 역사』(2013, 공저)가 있으며 이번에 한길사에서 총 세 권으로 출간하는 『대변혁: 19세기의 역사풍경』이 있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기업에서 30여 년간 일한 뒤 은퇴하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번역서로는 『벌거벗은 제국주의』(2008), 『중국통사 上, 下』(2009), 『다윈주의와 지적 설계론』(2009), 『생태혁명』(2010), 『라과디아』(2010), 『학살의 정치학』(2011), 『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2013), 『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2014), 『중국의 형상 1, 2』...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기업에서 30여 년간 일한 뒤 은퇴하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번역서로는 『벌거벗은 제국주의』(2008), 『중국통사 上, 下』(2009), 『다윈주의와 지적 설계론』(2009), 『생태혁명』(2010), 『라과디아』(2010), 『학살의 정치학』(2011), 『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2013), 『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2014), 『중국의 형상 1, 2』(2016)가 있으며, 한길사에서 펴낸 위르겐 오스터함멜의 『대변혁: 19세기의 역사풍경』(전 3권)과 이언 커쇼의 『역사를 바꾼 권력자들: 인물로 읽는 20세기 유럽정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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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36

출판사 리뷰

19세기가 개인적인 추억의 지평 너머로 사라지는 사건이 2000년대에 일어났다. 1835년에 청년 과학자였던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처음 만났던 바다거북이 해리엇(Harriet)이 2006년 6월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동물원에서 수명을 다하고 죽었다. 2007년 11월에는 타이타닉호 재난의 마지막 생존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12년 4월 14일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강보에 싸인 아기였다.

2008년 5월에는 독일의 마지막 제1차 세계대전 참전병사도 이승을 떠났다. 이제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 가운데 1900년 여름 중국의 의화단운동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없고, 1899-1902년에 남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보어전쟁이나 1901년 1월에 잇달아 세상을 떠난 주세페 베르디와 빅토리아 여왕의 장엄한 장례식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19세기에 관한 추억은 미디어가 전해주는 소식, 읽어야 알 수 있는 흔적이 되었다. 물론 19세기 이전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19세기는 그전 세기와는 확연하게 다른 지위를 획득했다. 인류는 19세기가 되어서야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는 기억이 체계화된 시대고 자기관찰로 승화된 시대다.”(72쪽)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방식과 생각 등은 모두 19세기에 등장―박물관, 국가기록보관소, 영화, 사진, 이데올로기―했고, 오늘날 누리는 찬란한 과학기술 문명도 19세기에 시작되다.

『대변혁: 19세기의 역사풍경』개괄

위르겐 오스터함멜(Jurgen Osterhammel, 1952- )은 『대변혁: 19세기의 역사풍경』에서 세계사의 한 세기를 ‘완벽’하게 다룬 것처럼 가장하지 않는다. 오스터함멜은 서론에서 19세의 중점 연대를 통해 이 책을 서술했음을 밝힌다. 중점 연대는 대략 19세기 60년대에서 80년대 사이를 가리킨다. 이 시기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여러 가지 혁신과 발명이 나타났고 개별적?독립적으로 진행되던 역사과정이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32쪽)했기 때문이다.

제1부 근경(近景)

제1부 ‘근경’에서는 19세기의 기억, 시간, 공간을 설명한다. 그중 제1장인 「기억과 자기관찰」은 제도로서의 문서보관소, 도서관, 박물관, 전시회, 백과전서 그리고 탐사보도와 여행기, 지도제작, 신문, 사진의 보급과 확산을 살펴본다.

다음으로 오스터함멜은 시공간의 관념을 탐구한다. 빅토리아시대에 형성된 현대라는 시간관념이 인간의 생활과 세계 각지의 문화와 충돌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과학과 민족국가라는 개념을 기초로 19세기의 공간관념이 지구 전체로 확장해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새로운 관념을 사용하여 공간의 거리를 측정하고 공간을 민족, 영토, 제국, 해양, 소유권 등으로 분할하는 과정과 마지막으로 이런 관념들이 새로운 권력체계 아래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지 분석한다.

제2부 전경(全景)

제2부 ‘전경’에서는 인구이동, 생활수준, 도시생활이란 주제를 통해 다시 한번 세계를 하나의 전체로 파악한다. 여기서 19세기에 나타난 생활수준의 질적 변화, 질병, 자연재해, 기아, 빈곤, 소비문화의 세계화 등이 상호 연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징벌과 유배지, 인종청소, 자본주의, 노예무역의 변형을 언급한다.

오스터함멜은 19세기의 도시를 조명하면서 전 세계에서 도시와 전통의 충돌과 통합, 항구도시의 흥기,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 도시의 지하 공간, 도시의 상징과 미학의 문제를 분석한다. 또한 북아메리카의 서부개척, 유럽인들의 사하라사막 이남지역 개발, 빅토리아시대의 자연정복 관념이 생태환경을 약탈한 현상을 분석하면서 프런티어란 관념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제국주의와 민족, 국제주의와 강대국 체제, 혁명과 국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등의 문제를 탐색한다.

제3부 주제

제3부 ‘주제’에서는 경제, 문화, 기술, 사회적 이슈에 주목한다. 에너지와 공업화, 자본주의, 다양한 노동형태와 노동의 의미변화, 새로운 작업장의 출현, 노동자 해방운동의 대두, 고용관계의 불균형을 다루고 뒤이어 교통과 통신의 네트워크, 사회등급제도의 발전, 지식의 변화, 문명 관념의 형성과 배제, 종교의 세속화와 제국의 관계, 종교내부의 개혁운동 등의 주제를 다룬다.

오스터함멜의 세계사와 19세기 유럽
빅토리아 시대의 ‘진보’관념에서 벗어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없이 많이 출간된 세계사 저작들과는 달리 오스터함멜의 저작 『대변혁: 19세기의 역사풍경』은 빅토리아시대의 ‘진보’ 관념을 벗어났다.

그동안 세계사 서술은 ‘현대화’ ‘진보’ ‘대국의 흥망성쇠’ ‘민족의 부흥’ 등의 관념을 주로 다뤘다. 이러한 분석의 틀은 사실은 19세기 유럽의 민족국가를 기반으로 한 ‘진보’ 관념에서 나왔다. 이는 문명, 계급, 국가 또는 민족을 빠짐없이 유기체로 보았고 세계사는 이러한 상상 속의 유기체 사이의 상호경쟁, 상호충돌의 역사가 되어왔다. 자원과 패권을 둘러싼 민족과 국가의 경쟁을 제외한 개인의 경험은 다루지 않았다.

빅토리아시대의 진보 관념은 당시에 유행하던 다윈주의(Darwinism)와 결합하면서 20세기까지도 줄곧 영향을 미친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를 낳았다. 그러므로 19세기의 세계사를 서술한다고 했을 때 누구든 쉽게 민족과 제국이 전 세계에서 자원, 영토, 패권의 쟁탈전을 벌이는 “사회적 다윈주의의 역사”를 쓰려 했겠지만 오스터함멜은 그런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오스터함멜은 오히려 역사 속의 평범한 인물들과 그들의 일상생활을 주목하고 구체적인 개인이 어떻게 질병에 대처했는지, 어디서 책을 보았는지, 오페라를 보기 위해 어느 극장을 갔는지, 어떻게 배를 타고 여행했는지를 묘사했다. 바로 이러한 일상생활과 문화적 경험을 통해 『대변혁: 19세기의 역사풍경』은 19세기 전체에 관한 역사, 민족과 제국의 상호경쟁에 함몰되지 않은 역사, ‘중요하지 않거나’ ‘낙후한’ 민족이 생략되지 않은 역사를 기술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스터함멜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이전의 ‘계몽주의자’다. 그의 시선은 역사 속의 생생한 개인을 떠난 적이 없다”(2394쪽).

19세기와 유럽

오스터함멜의 『대변혁: 19세기의 역사풍경』은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과 영국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베일리, 에릭 홉스봄과 비교된다. 하지만 오스터함멜이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그가 동방의 역사(특히 중국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했기 때문에 유럽 중심론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또한, 오스터함멜은 특정 시대와 사회에 대한 선입견을 의도적으로 멀리 했다.

원칙적으로 분석방법에 있어서는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났다고 해도 이 책은 상당 부분 유럽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오스터함멜도 “모든 세기 가운데 특히 19세기는 유럽중심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서술할 수 없다”(36쪽)고 밝힌다. 19세기만큼 유럽의 세기였던 세기는 없기 때문이다.

유럽은 나머지 대륙을 삼중으로 위협했다.
첫째, 유럽은 세력을 갖고 있었다. 그 세력은 대부분 잔인함과 폭력으로 표출되었다.
둘째, 유럽은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그 영향력을 자본주의라는 통로를 통해 전파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셋째, 유럽은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 사례를 갖고 있었다. 그 사례의 힘은 대부분의 희생자들조차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런 복합적 우위는 유럽이 확장을 시작하던 근대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이든, 스페인이든, 네덜란드이든, 영국이든 대략 1760년 이전에는 그들의 세력을 세상의 먼 곳까지 확산시키는 데 있어서 19세기의 영국과 프랑스만큼 강력한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지 못했다. 19세기사는 유럽에서, 유럽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앞의 18세기나 그 뒤의 20세기도 이런 양상을 보여주지 못했고 더 앞선 세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일찍이 유럽이 이처럼 폭발적인 혁신과 주도권?정복력과 교만함?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유럽인가?’

이 질문을 두고 계몽시대부터 막스 베버(Max Weber)를 시작으로 수많은 역사학자가 답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오스터함멜은 『대변혁: 19세기의 역사풍경』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질문은 이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학계에서는 ‘유럽의 특수한 길’을 기조로 한 세계근대사를 썼지만, 오늘날 역사가들은 유럽의 오만을 회피하려 노력하고 있고 보편화와 상대화를 통해 ‘특수한 길’이란 독침을 제거하려 한다는 것이다.

오스터함멜은 최근 비교역사학자들 사이에서 근대 초기의 유럽과 세계의 다른 지역 사이의 사회적?경제적 차이가 앞 세대 학자들이 생각해왔던 것만큼 그렇게 극적이지 않았다는 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이런 맥락에서 19세기는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19세기의 성격

오스터함멜은 “이 책의 내용을 몇 줄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도 없고 대체로 정확하게 서술한 그 시대의 주요한 발전추세의 핵심 개념?공업화, 도시화, 민족국가의 형성, 식민주의, 세계화 개념?을 반복한다고 해서 우리의 지식이 쌓이지도 않는다”(2367쪽)라고 말하면서, 19세기를 톺아볼 수 있는 다섯 가지 시각을 제시한다.

1) 생산효율이 ‘비대칭적으로 상승한’ 시대

첫째, 공업화다. 주요 특징은 고도의 분업노동, 공장방식의 생산조직, 석탄을 동력으로 하는 기계의 사용이었다. 특히 공업화의 발전은 지역별 편차가 심했는데, 대륙 간 편차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 내부에서도 차이가 심했다.
둘째, 모든 대륙의 프런티어에 개척된 새로운 토지에서 생산효율이 폭발했다. 프런티어 개발은 공업화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지만 미국의 중서부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카자흐스탄에서 버마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륙의 프런티어에 토지가 개척되었다.

프런티어 지역의 생산품은 현지 소비자를 위해서만 생산되지 않았다. 대륙을 넘나드는 상업유통 영역에 진입했다. “공업기술의 화신인 증기선과 철도가 운수부문에 도입됨으로써 운송비용이 빠르게 하락했고 이에 따라 밀, 쌀, 면화, 커피 등 전통적인 프런티어 상품의 무역이 확장되기 시작했다”(2036쪽).

셋째, 군사영역이다. 19세기에는 개별 병사의 살상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병기 기술의 혁신 이외에도 군사조직을 운용할 수 있는 지식과 전략전술의 발전도 군사적 효율이 증가하게 된 독특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 밖에도 국가자원을 군사영역에 집중하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강했던 시기다.

넷째, 국가기관이 민중을 체계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행정적 규제는 증가했고 지방 행정기관의 직권범위는 확대되었다. 인구 조사를 철저히 하면서 부동산 보유를 파악하고 납세능력의 등급을 나눴다. 징세는 보다 공정해졌지만 규칙적으로 행해졌고 세목(稅目)은 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세기에는 지방통치의 새로운 기법이 등장했다. 그 바탕 위에서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 의무교육, 복지국가 정책이 시행되었다. “국가는 새로운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변하기 시작했으나 반드시 괴물이 될 필요는 없었다”(2037쪽).

2) 유동성의 증가

첫째, 19세기에는 인구 이동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19세기처럼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시베리아와 만주 지역으로의 대규모 이동은 없었다. 1870-1930년 사이에 일어났던 인구 이동의 강도는 그 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그 시대가 특히 주목받는 전 지구적 특징이었다.

상품의 유통도 새로운 수준에 올랐다. 비단, 향료, 차, 설탕, 담배 등 사치품 교역이 식량과 공산품 원료 교역으로 대체되었다. 생산량 증가를 크게 초월하는 세계무역 확대를 나타내는 수치가 이런 상황을 설명해준다.
둘째, 증기선과 철도 등 기술혁신이 모든 형태의 이동 속도를 높여놓았다. 속도의 증가가 시대의 특징이라는 얘기는 전혀 새로울 게 없지만 그것은 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셋째, 마지막으로 이제 유동성은 사회 기반시설에 의존하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철도망의 건설, 세계적 해운회사의 등장, 지구 전체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건설은 기술의 응용과 조직의 안정화 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동생활은 조직화된 사회생활의 새로운 차원, 즉 좁은 범위에서 일상을 유지하던 리듬과는 전혀 다른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작업장 근처에 살지 않아도 되었다. ‘출퇴근’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이 추세는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세계화’를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가속화되고 공간적으로 확장된 자원의 유통이라고 정의한다면 이때 비로소 ‘세계화’가 시작되었다.

3) 상호관계 강화의 비대칭성

19세기에 들어와 관념, 특히 문화의 유동성이 더 높아졌다. 대륙과 인종 간에 사상과 예술을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생긴 현상이다.

1900년 무렵 서방의 대형 도서관은 아시아의 전통을 알 수 있는 기본 문헌의 번역본을 독자들에게 제공했다. 한편으로는 유럽의 몇몇 학문분야의 교과서와 철학, 법률, 경제이론 책이 일본어, 중국어, 터키어로 번역되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일부 교육받은 동방의 문화엘리트들은 서방의 관념과 사상을 직접 체험했다.

이를 통해 19세기에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하나는 외부지향형이 양적으로 늘어난 것이었다. 세계 인구의 절대다수가 다른 국가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모호한 개념만 갖고 있을 때 문화엘리트들은 유례없는 관심을 가지고 외부세계를 관찰했다.

다른 하나는 문화의 ‘교류’가 비대칭화되어 일종의 ‘표준’이 생긴 것이다. 문화적 표본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서방이 ‘표준 문화’로 등장했다. 그러나 ‘표준 문화’는 유럽국가 전부를 가리키지 않았다. 미국도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독자적인 문명의 모형으로서 인정받았다. 1870년 또는 1880년 무렵의 중국, 일본, 멕시코 또는 이집트의 입장에서 보자면 ‘서방’은 우선 영국을 의미했고 다음으로 프랑스를 가리켰다. 메이지시기의 일본은 비스마르크 정부의 군사와 과학의 효율성을 흠모했다. 그러므로 일본에게는 독일이라는 표본이 하나 더 있었다.

4) 평등과 등급제도의 대립

법률적 평등의 추세는 사회적 지위와 신분상승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이전보다 가족배경의 중요성이 낮아졌다. 19세기부터는 경제적 요인의 결정력이 높아졌다. 독립전쟁 과정에서 노예제를 폐지하여 유럽보다 등급질서의 성격이 상대적으로 옅어진 미국은 ‘보편적인’ 평등의 길로 나아갔다.

사회적 평등은 순전히 유럽의 사상은 아니었다. 수평주의, 박애주의, 지배자가 없는 사회 등 유토피아적 희망은 여러 문화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데 근대 유럽에서 기독교 박애주의를 기반으로 한 것이든, 자연법 정신을 기반으로 한 것이든, 공리주의나 사회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것이든 관계없이 평등사상은 국내정치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보수 세력의 저항은 피할 수 없었고 현대주의자와 전통주의자 사이의 문화적 투쟁은 불문율이 되었다.

반면 미국을 제외한 비유럽국가는 모두 등급질서의 가장 아래쪽에 자리 잡았다. 유럽 유대인에게 평등한 시민권을 부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뒤따랐다. 미국에서 노예제 폐지는 매우 빠르게 새로운 인종분리 제도를 발전시켰다. 새로운 사회적 차별은 처음에는 성숙한 문명과 열등한 문명의 대립으로 표현되었고 뒤에 가서는 서방에서는 거의 의심받아본 적 없는 인종주의적 관용어로 표현되었다. 평등의 원칙을 무시한 인종주의적 정책과 행위가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은 온전히 한 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인권, 반인종주의, 국가주권에 관한 보다 확고한 원칙, 민족자결권의 강화 등 국제규범에 관한 의식에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야, 즉 20세기 6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19세기의 ‘야만’과 결별했다.

5) 해방의 세기

19세기에 해방은 두 가지 의미로 쓰였다.
첫째, “자기해방 또는 사회 내부의 집단을 지적·법적·사회적·정치적 감독이나 차별 또는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지배형태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2381쪽)을 의미했다.
둘째, 민족의 해방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였다. 19세기에 세계를 발전시킨 동력 가운데 하나를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스터함멜은 ‘그렇다’라고 말한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의 평등’을 쟁취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더 많은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가져온 해방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다. 합법적인 제도로서 노예제는 서방국가와 식민지에서 사라졌다. 러시아에 살던 유대인은 유사 이래 가장 좋은 법률적·사회적 지위를 획득했다. 유럽에서 농민은 봉건적 의무와 부담에서 벗어났다. 노동자는 투쟁을 통해 결사의 자유를 획득했고 몇몇 유럽 국가에서는 선거권까지 쟁취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서야 공개적인 화두가 된 여성해방 문제에 대해 포괄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여성의 정치적 권리와 기회의 확대라는 면에서 영국제국의 자치령과 미국은 선두에 속했다. 여성이 배우자로서의 지위와 가정에서의 생활이 개선되었는지의 여부는 유럽에서조차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중산계급 가정은 그 자신의 고유한 속박 형식을 갖고 있었다.

이 시기의 혁명이 모두 해방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이 실패보다 더 흥미를 끈다. 그런데 모호한 경우도 있다. 프랑스대혁명이 그런 경우다. 대혁명 초기의 목표인 대의민주제는 몇 번의 제도변화를 경험한 후 제3공화국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현되었다. 자코뱅 독재시대의 직접 민주주의 방식은 1871년 파리코뮌 시대에 잠시 부활했다가 사라졌다. 1848-89년 혁명의 영향과 작용은 명확하지 않다. 완벽하게 실패한 혁명인 페루의 투팍 아마루(Tupac-Amaru) 봉기나 중국의 태평천국운동과 비교했을 때 이 혁명은 분명히 철저한 실패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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