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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버드 | 2014-11-09 | 추천1 | 댓글0
자본주의는 경쟁을 부추기고, 낙오자를 처벌한다. 노동자들은 불만이 많다. 허나, 비판하는 노동자들의 목표도 자본가가 되는데 있어,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술이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이행되었듯이, 사랑도 그러해야 한다. 설렘을 느끼는 것, 위험에 빠지기 위해서 사람들은 만나고, 약속을 만들어낸다. 돈이 매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기에, 젊은이들은 취업에 목숨을 건다. 돈이 있는 사람이 우월하고, 없으면 열등한 위치에 처한다. 중요한 것은 돈인지 아이인지 물어봐야 한다.
자본주의는 본성과 다르게 훈련을 통해 익숙해지게 한다. 자본을 가진자가 그렇지 않은 자보다 우위에 있다. 우리가 가진 자유는 소비의 자유다. 돈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돈을 가지고 있는 기업의 요구에 맞게 자신의 스펙을 맞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노예다. 인문학자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못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획일화된 노예로 전락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연봉이 많아도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배부른 노예라고 하네요.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인간 중심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사랑이 중요한데, 생리적인 것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사랑,연대, 공감이라고 하네요.
몸은 나를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매개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육체적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프다. 몸은 나라는 의식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고, 존재와 우주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몸을 말할 때 이미 생명이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알아야 나와 내 몸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몸 안에 회로가 잘 뚫리지 않으면 감정 또한 부정적이되고, 그렇게되면 도미노처럼 집중력도 떨어지고 하는 일도 안 된다고 한다. 디지털 문명은 우리 몸을 소외시킨다고 합니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대부분의 질병은 자의식 과잉에서 비롯된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이 내 안의 척도가 된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이너스 건강법. 덜먹고, 덜쓰고 배설해야 한다고 말한다. 배설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다.
호흡이 수명인데, 밤에도 일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호흡은 빨라집니다. 우리 몸이 원하는 것은 순환이라고 합니다. 순환하려면 삶이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느끼고, 만들어내야 합니다.
결혼연령이 높아진 현대의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던 짝짓기가 지난한 일이 되어버렸다. 결혼을 하더라도,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 상처를 준다. 자책과 원망이 반복된다.
사랑은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자신에 대한 탐구도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알고 이해하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문학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나 자신에게 진실된 삶, 이웃과 더불어 사는 도덕적인 삶,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멋진 삶과 의미 있는 죽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훌륭한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고, 고귀한 것을 행함으로써, 자신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줍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에서 남들보다 앞서고, 절제하는 일에서 남들보다 앞서고, 탁월성을 따르는 것에서 남에게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첫 출발이고, 이를 삶속에서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성찰하는 것은, 결국 내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란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P123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의해 드러납니다. 내가 살아온 삶,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 그 전체 스토리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려질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추한 현실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삶 그 자체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고상한 사랑이라는 것은 그저 육체적 관계에만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훌륭한 사람이 되게끔 해주는 교육으로서 기능을 합니다.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한 열망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시간속의 존재. 최상의 아름다움까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추구하는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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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크레 | 2014-11-05 | 추천0 | 댓글0
일곱명에게 듣는 인문학강의를 모아놓았다고 해야하나
사실 이중에 아는 사람은 강신주 밖에 없긴하지만
인문학에서 가장 기본되는 질문이랄까
나는 누구인가 어떤존재인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저마다의 충고랄까
쉽지않은 내용이지만 강연내용을 책으로 묶어서 내서인지
읽기가 그렇게 어렵지않았다
구어체같기도 하고
이해하기쉽게 풀어나가는 형식이고
길지않으면서도 압축해서 설명해준달까
각기 다른 특징으로 말해주는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그저 아등바등 사는데에 급급한것같다
그러다보니 행복이나 만족 여유가없이
하루하루를 산다기보다는 그냥 흘려보낸다는 느낌이다
나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내가 진짜 원하는거이 무엇인지 생각해본적이없었던것같다
경쟁에 치이다보니 힘겹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나라는 존재가 너무 작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우울증이나 자살이 늘어나는게 아닌가싶다
자신이 더없이 소중하고 가치있다고 느낄일이 거의없기때문이 아닐까싶다
새삼스럽게 이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어렵게 희박한 확률로
나라는 존재가 생겨났는지 듣다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못났다고 남과같지않다고 자학하기보다
자신스스로에 애정을 갖고 자신감을 가지고 사랑할줄아는태도가 필요한듯싶다
이론과 일상의 경계에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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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 2014-10-08 | 추천0 | 댓글0
모두가 노란색 유리 안경을 끼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누군가가 맨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진실을 말한다면 누가 옳은 것일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유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끼고 있는 안경에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맨 눈으로 세상을 보면 더 맑고 깨끗하게 잘 보인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이 책에 나오는 7인의 석학은 자신들이 맨 눈으로 보고 있는 세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끼고 있는 안경을 벗고 자기 자신과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바르게 보라고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나의 생물학적인 조건뿐 아니라 내가 처한 사회와 환경의 조건과도 밀접하다. 학창시절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기 존재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삶의 추구와 방식의 문제로 귀결되곤 한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현실 세계에 다가갈수록 나를 잊어버리고 무수히 많은 타자 속에서 타자의 가치와 기준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적응하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소심하게 길들여지고 삶은 살아볼 만한 유쾌한 의미가 있는 자유로운 세상이 아니라,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하루하루 고달프게 살아야 하는 시련의 장으로 인식된다. 그러는 사이 삶의 의미 따위를 묻는 것은 사치스런 정신적 취향처럼 보이기 쉽상이다.
우리는 산다. 어제 살았고, 오늘 살고 있고, 내일도 살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타인의 가치와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내 나름의 가치와 나만의 시선과 내 기준을 가지고 살 때라야 우리는 진정으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최진석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 살아가는 일은 정해진 것을 수용하는 것도 아니요, 정해진 것을 학습하는 것도 아니요, 정해진 것을 실천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 번이라도 내가 그것들을 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나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잘 살기 위해서 너무 많이 배운다. 이제는 배우는 일이 학교를 졸업하고도 일상이 된 삶의 체제로 들어서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평생 학습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왜냐면 자본주의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쉬지 말고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타인의 그러한 논리를 수용하고 오늘 하루도 시간을 아껴가며 배운다. 자기계발서도 부지런히 읽고 섭렵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와 동시에 또 다른 타인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내 기준 하나를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최진석 교수는 배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배우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배우는 것이 습관이 되면 자기표현에 장애를 갖게 됩니다. 우리가 배우는 대상은 다른 사람의 표현일 뿐입니다. 언제까지 다른 사람이 표현해낸 것을 습득하기만 해야 할까요. 어느 순간이 되면 배우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배움은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해야 합니다.
표현의 동작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배움은 경계를 품는 것이 아니라 이념의 한쪽에 서는 것과 같습니다. 배울 때는 표현의 동력이 있어야 하고, 읽을 때는 쓰는 동력이 있어야 하며, 들을 때는 말하는 동력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활동은 읽기와 쓰기 사이, 배우기와 표현하기 사이, 듣기와 말하기 사이에서 이뤄집니다. 그럴 때 인간의 눈빛은 야성을 되찾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계에 서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 경계성을 회복하려는 야성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는 내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어느 한 쪽에 수동적으로 갇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 자신으로 살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보통 '살아 있다'고 표현합니다.]
내가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생명체의 특징인 살아 있는 운동이 없고, 살아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엄밀히 말해 살아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있는 척하고 있을뿐 살아있지 않다는 진실을 깨닫게 해준다. 적어도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오지 않았다는 진실을.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 이대로는 아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이론과 일상의 경계에서 살아야 한다. 이 책은 나 자신을 찾아 변화하라고 촉구한다.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미지의 세계와 맞닥뜨려야 하는 위험과 두려움이 있다. 타인의 인생이 아닌 참된 내 인생을 찾아 두려움을 깨고 위험을 감수할 용기만 있다면, 이 책은 그 사람에게 추동력을 주는 지침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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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lsk | 2014-10-04 | 추천0 | 댓글0
이번에 지인에게 선물받은 "나는 누구인가".
한동안은 인문학이 굉장히 어려운 학문이다보니 사람들의 관심에 벗어나 있었다.
게다가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그 이용가치가 떨어진다며...
그렇지만 이제 그 가치를 재조명 받고 있는 인문학!!!
이번 책은 7인의 석학이 강연한 내용을 담은 책으로 인문학에 대해 조금 더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중간 목록 중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여러 요인들...예를 들면 취업 직장 결혼 등으로 지치거나 절망에 빠진 청년들에게 더 좋게 다가오는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오래간만에 머리에 쥐가 좀 나는 책을 봤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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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步 | 2014-10-01 | 추천12 | 댓글22
우리는 살면서 종종 근원적인 의문을 떠 올릴 때가 있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지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그런 의문들을 생각할라치면 내가 왜 사는지, 내가 누구인지 하는 질문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혹자는 하루하루 살기도 바쁜 요즘 세상에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말하기도 하겠지만,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다 이젠 제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어김없이 떠 오르는 생각이기도 하다. 이렇게 살고 있는 나는 누구이고,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흔히 인문학을 인간을 탐구하고 인생을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그런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바로 이 두 가지 질문이다. 고대로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민했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또한 궁극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 [나는 누구인가]에서는 바로 이런 질문을 대한 답을 7명의 학자들이 찾아 나서고 있다.
먼저 철학자 강신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들 개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는 무조건 돈을 가진 사람이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열등한 지위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누구나가,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정신 없이 앞으로만 내 닫는다. 자본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내일을 꿈꾸게 만들고, 돈을 더 많이 모으면 더 좋은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유혹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우리의 본성과 관계없이 그러한 유혹과 훈련을 통해 익숙해지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못하면,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획일화된 노예로 전락한다며,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연대와 공감을 가진 삶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디지털시대의 몸의 순환에 대해 알려준다. 디지털혁명으로 인해 사람들은 육체노동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지만, 육체노동으로부터 벗어나면 마음은 바빠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육체와 정신의 괴리가 생기면서 몸은 무력해지고, 정신은 엄청난 비만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자의식의 과잉이야말로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대부분의 병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우리 몸 안에 있는 것을 덜어내는 마이너스 건강법을 제안한다. 덜 먹고, 덜 쓰고, 더 덜어내는 삶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 지켜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은 힐링이 아니며, 또한 이데올로기 비판도 아니고 오직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고 김상근 교수는 말한다. 그러기에 인문학은 심리학적 힐링이나 과도한 비판적 성찰로 나아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힐링은 겉으로 드러난 상처를 건드리지만 인문학은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고, 이데올로기 비판이 아니라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한다. 고대 피렌체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인간을 이해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나 자신을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인문학이 태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그는, 인문학이 추구하는 기본가치는 나 자신에게 진실된 삶, 이웃과 더불어 사는 도덕적인 삶,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멋진 삶과 의미 있는 죽음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태수 교수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드러난다고 말한다. 아름다움 자체는 어려운 것이고, 그것에 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것에 도달하려고 자꾸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삶도 아름답다고 그는 역설한다.
슬라보예 지젝 교수는 디지털적인 삶 속에서 공적인 공간이 얼마나 사유화되고, 인간이 어떻게 통제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사회적 역동성을 살펴보면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변화가 촉발되어 점차 거대한 변화가 이루어졌다며, 사유하고 그 곳에서 우리의 사소한 변화가 우리 사회에 올바른 혁명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음을 강조한다. 자신이 지켜야 하는 가치와 이념의 기준을 자신 외부에 두고 있다면, 자신이 직접 기준의 생산자로 등장하는데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최진석 교수는 말하고 있다. 자신이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기준의 수행자가 아니라, 기준의 생산자가 되겠다는 것이라며, 죽기 전까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충고하는 것과 충고 듣는 것을 꼽고 있다. 그것이 내 인생을 내 의지대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다만 충고를 규칙과 혼동하지 말라고 한다. 더불어 자신에 대한 신뢰와 자신에 대한 사랑은 죽기 전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정용석 교수는 태초부터 종말까지 나는 단 하나였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살아온 인구가 약 150억명 쯤 되지만 나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런 나이기에 나를 사랑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하지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다면 이웃을 도울 때 비로소 진정한 이기주의자가 된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인문학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무리 눈을 씻고 읽어보아도 내가 누구인지는 책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그렇지만 내가 나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결국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화두가 아닐까 싶다. 돈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끊임없는 자문은 나를 보다 자유롭게 해주고, 또한 획일화된 속박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 대한 사유를 다시 한번 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