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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otdoli | 2016-07-26 | 추천0 | 댓글0
사회적 역동성을 살펴보면 사소한 것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서 거대한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남에 대해 충고하기보다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보다 깊이 도달한 자신을 살피는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에 저항해야 한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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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vin | 2015-05-25 | 추천0 | 댓글0
지난 2013년 가을, 경희대학교의 평화의 전당에서 ‘나는 누구인가’란 주제로 대중을 위한 인문학 강의가 있었다.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주관한 공개 강좌였으며, ‘나는 누구인가’란 본질적 질문으로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와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에 대한 연속적인 특강 중 그 첫 번 째 기획이었다. 그리고 그 강의를 책으로 엮어 내었다. 현장의 생생한 강연자의 목소리와 열기에는 부족함이 있겠지만, 내용만큼은 책으로 보는 것 또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강사는 모두 일곱 명이다.
강신주: 대중 철학자이자 인문학 강연자.
고미숙: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김상근: (재)플라톤 아카데미의 책임교수 및 대표 강연자, 연세대학교 신학 교수.
이태수: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인제대학교 인간환경미래연구원 원장.
슬라보예 지젝: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 사회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최진석: 노자 강의로 유명한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정용석: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1편. 강신주 – 자본주의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을 권리
우리는 자본주의의 세상에 살면서, 내가 편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본주의와 결부해서 말하지 않으면서 불편하고 힘든 것에 대해서 자본주의와 결부해 이야기한다는 말로 서문을 띄운다. 그렇게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강북 사람들의 꿈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강남 사람이 되는 데 있다고 꼬집는다. 이것은 버트런드 러셀이 말한 ‘거지가 질투하는 대상은 자기보다 형편이 좀 더 나은 다른 거지다’란 말과도 통하는 얘기다. 이렇게 신랄하게 우리의 내면을 비추면서도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로 우리에게 ‘설렘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인문학이나 철학이나 예술은 일상에서 벗어나 그 생경한 느낌의 세계와 위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교육과 학습을 통해 훈련되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종교적인 체계와도 같다고 말하며, 그 속에서 우리의 자유는 소비의 자유 뿐이라고 말한다. 내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돈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소비를 할 때에만 우리는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흔히 나 자신을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주인이라고 하고,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노예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경우보다 타인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모두가 노예의 사람을 살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현실입니다.
현대는 아이의 진리 탐구를 걱정해서 성적 떨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부모는 없으며, 내 아이가 아프리카 전쟁터에서 의술을 펼치기 바라는 마음으로 의사가 되라고 하는 부모가 없습니다.
우리가 경매에서 집을 살 때에도 이익을 취하고자 하기 보다, 경매에 나오는 집들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자고 말한다. 우리의 인간성과 자유를 찾기 위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배가 고프면 나 역시 배가 고프더라도 참고 상대를 위해 내 밥을 내어주는 것처럼, 욕구를 극복하여 고귀한 인간성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2편. 고미숙 – 현대인을 이해하는 세 가지 화두: 몸, 돈, 사랑
우리 몸에는 의식으로 전혀 포착할 수 없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있으며, 내가 듣는 나의 목소리와 타인에게 전달되는 나의 목소리도 전혀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육체노동으로부터 벗어나면 마음이 바빠지기 마련이며, 그래서 몸은 무력해지고 정신은 엄청난 비만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자의식이 과잉 되면 ‘인정 욕망’으로 인해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이 내 안의 척도가 된다고 한다. 그 척도의 기준이 곧 화폐이며, 어느 새 우리는 화폐의 지배를 받게 된다고 일러준다.
현대인의 많은 스트레스 관련 질병이나 의식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마이너스 건강법’을 소개한다. 이것은 현대보다는 스트레스가 치명적이지 않았던 시대에 나온 ‘동의보감’에서도 소개되어 있는 것으로, 무조건 덜 먹고, 덜 쓰고 모든 것을 덜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돈이 개입하면 이미 상품이 되므로 주의를 요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마이클 샌덜 교수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돈과 인간관계에 대한 그녀의 말 한마디가 촌철살인 같이 가슴에 들어온다.
억만장자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을 대개가 그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은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행복도 훈련받아야 한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는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한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한없이 추락하면서 그 감정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하여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 혁명을 요구한다. 그리고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는 사람을 모으는 능력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식에게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3편. 김상근 – 인간에 대한 학문, 인문학을 말하다
플라톤 아카데미 재단의 책임교수이자 가장 대표적인 강연자이다. 그는 플라톤 아카데미의 강좌를 기획하고 함께 나와 강연을 한다. 그런 만큼 그의 강연은 강연 학기의 주제를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선 인문학의 기원부터 얘기한다.
인문학은 키케로가 ‘후마니타스(Huminitas)’라는 개념으로 탄생했으며, 이것은 ‘탁월함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문학을 통해 탁월함을 추구해서 역사적인 인물로 만들기 위한 공부와 훈련 방식이라고 소개한다. 이것이 중세 시대에 ‘인간다움’이 ‘인간의 의무’로 변했고, 르네상스에 이르러 프란체스코 페프라프카에 의해 피렌체에서 플라톤 아카데미를 세움으로써 근대적인 인문학이 탄생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는 ‘인문학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논한다. 그리고 인문학의 기본 가치를 나 자신에게 진실된 삶, 이웃과 더불어 사는 도덕적인 삶,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멋진 삶과 의미 있는 죽음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내던져진 첫 번째 질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세 명의 인물을 소개한다.
우선 키루스 대왕. 한글 성경에서는 ‘고레스’란 이름으로 번역되어 유대인을 바빌로니아로부터 해방시킨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약한 군대였던 페르시아 군을 이끌고 당시 막강했던 리디아 군과 맞섰다. 그 때 페르시아 군을 이끌며 그가 병사들에게 했던 연설이 소개되었다.
나는 승자에게 주어지는 상을 얻기 위해서는 적을 추격하고 타격하고 죽여야 한다는 것을 그대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승자는 모든 좋은 것을 차지하고, 고귀한 말을 듣게 되며, 자유민이 되고, 지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패자는 그 반대의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면, 나와 같이 싸웁시다.
그는 전리품이나 승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싸우라고 외쳤다. 김상근 교수는 그렇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 앞에 키루스 대왕을 첫 번째로 내세운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옳은 것인가’란 반문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민을 보여준다. 자기를 위한 못된 인간은 이기적이다. 그러나 올바른 일을 행하는 데에, 혹은 절제하는 일에, 혹은 탁월성을 따르는 것에 다른 누구보다 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반전이 있었다.
다음은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승리와 아테네를 황금 시대로 이끌었던 페리클레스를 소개한다. 그는 스스로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민중들을 규합하는 연설에 능했다. 그의 연설문이 다시 소개된다.
우리가 먼저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겠지만 먼저 공격당하면 대항할 것이라고 말합시다. 우리 선조들은 페르시아인들에게 대항할 때, 운보다도 지혜를, 힘보다는 용기로 물리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은 이제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 있음을 명시하고, 전쟁의 위험 앞에 너무 망설이지 마십시오. 자긍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희망을 품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죽는 것보다 자신의 비겁함을 말미암아 굴욕을 당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전쟁의 폐해를 두려워하여 그를 반대하는 무리들에게 페리클레스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은 내게 화를 내지만 나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식견이 있고, 본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조국을 사랑하고, 돈에 초연한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식견이 있으나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생각이 없는 것이고, 이 둘을 가졌어도 애국심이 없다면 공동체를 위하지 않을 것입니다. 애국심이 있다고 해도 뇌물에 약하면 자기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것입니다.
페리클레스가 말한 네 가지 덕목, 식견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애국심과 물질적 욕심으로부터 초연한 그를 탁월한 인간의 표상으로 우리에게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사람은 마키아벨리에 의해 기록이 남은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이다. 그는 자기의 메디치 가문을 위해 ≪군주론≫을 집필하여 바쳤지만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마키아벨리가 참회의 의미로 그에 대한 기록을 통해 세상에 남겨진 인물이다. 카스트루초는 군주론의 주인공이었던 ‘체사레 보르자’처럼 냉혹하고 역량있는 인물이었고, 태어나 포도밭에 버려진 채 발견되었지만 영주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도 감기에 걸려 죽게 되었다. 마키아벨리는 이처럼 어이 없는 영웅의 죽음을 두고 양자인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는 말에 글의 의미를 남겼다.
자신을 사랑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평생을 바쳐 열심히 살아왔는데, 도대체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이런 세상에서는 너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네가 전쟁을 치르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면 너는 평화의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이 방법이 내가 애쓰고 위험을 무릅쓰고 노력해서 얻은 결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김상근 교수가 전하는 메시지는 세 가지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하고, 타인의 비난과 반대가 있더라도 그것이 바른 길이라고 판단되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누구인지를 성찰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란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의 말에 실린 그 의미는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과도 일맥상통한 것 같다.
나는 매일 ‘내일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나는 오늘 이 일을 할 것인가?’를 자문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 생각이 들 때까지 그 답을 구하고자 했다.
4편. 이태수 –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이 아름답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는 외침으로 그의 강연은 시작한다. 인간은 인간 존재 자체를 스스로 문제 삼을 수 있는, 반성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것을 설명하며 그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철학을 선호했던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한다.
음식도 지금 먹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음미하면 더 맛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굶주린 짐승이 먹이를 삼킬 때처럼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만 해서는 음식 맛을 즐길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로 그저 허겁지겁 살아버리면 사는 맛을 알 길이 없겠지요. 살면서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제대로 사는 것입니다.
삶의 자세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이야기가 잘 나와있는 것이 ‘향연’이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이들과 사랑에 대하여 설명하며,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랑은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 자기 자신이 이미 확실하게 보유한 것은 갈망하지 않지만 아직 갖지 못한 것, 즉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을 갈망하기에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의 아름다움을 아직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해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 자체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며, 그보다 낮은 단계에서 알 수 있는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특정한 사례들뿐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아름다움 자체는 어려운 것이나 그것에 도달하려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삶, 그 삶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로 그의 강연은 끝을 맺는다.
5편. 슬라보예 지젝 – 사유하라, 그리고 변화하라
이스라엘의 학생들은 유럽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아우슈비츠를 견학하며 나라가 없을 때의 설움을 배우는 시간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또한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란 말을 함께 배우며, 이러한 자세가 한층 더 성숙한 사고라고 배운다.
우리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비교해도 결코 가볍지 않은, 특히 여전히 남아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들이 있다. 그리고 그 상처들로 인해 여전히 국민 감정과 국가 정책은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 지젝은 한국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가 옳다고 얘기한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란 말 자체가 오히려 위선적이라고 말한다.
지젝은 슬로베니아의 철학 박사이며,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의 사상을 접목한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 역시 약소국의 국민인 것이다. 우리가 ‘슬로베니아’라고 생각할 때 여기는 느낌처럼, 세계의 강대국들은 ‘대한민국’을 똑같이 그처럼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슬픔을 이해하고 있고, 그들 또한 함께 겪었을 일이기에 이처럼 강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의 트라우마를 잘 이해하고 있고, 그만큼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은 젊은이들이나 장년층의 자살률이 그 어느 국가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어느 면으로는 그동안 수입도 늘었고 영양 상태, 자유, 해외여행 가능성 등 많은 부분들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들의 일상은 사막화되었고, 삶의 리듬은 초고속으로 가속화되었으며, 각자는 더욱 개인화되었고, 고용은 취약해져 끝없는 경쟁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소외와 고립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본주의가 정말 글로벌 할 수 있을까요?’란 질문을 던진다. 수백 년 동안 진행된 유럽의 자본주의와 다른 사회에 적용된 자본주의를 비교한다. 무슬림 사회는 급격히 자본주의를 적용하며 전통 문화가 붕괴하기 시작하자 이를 막기 위해 배타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자크 라캉은 ‘신이 없다면 모든 것들이 다 금지될 것이고 신이 있다면 모든 것들이 허용될 수 있다’란 주장을 했으며,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처럼 ‘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하면 못할 것이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폭탄 테러, 대량 학살 등이 신의 이름으로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정착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그는 쾌락을 누리는 행위가 거의 종교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성함’이란 종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집단적으로 행하는 모든 의식에 그 이름이 붙을 경우 이런 집단적인 ‘트랜스’현상이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예로 『강남스타일』 현상을 소개했다. ‘강남’을 풍자하는 사회 비판적인 내용임에도 외국어로 된 가사를 무조건 따라하는 모방 현상으로 전 세계에 퍼졌는데, 세계인들이 그렇게 빠져든 이유 중 하나를 ‘사람들은 혐오하는 것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역설적이면서도 외설적인 쾌락주의라고 말한다. 이것에 필요한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이라고 소개한다.
한편으로 극단적인 보수주의도 경계한다. 그러면서 2014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이슈가 된 ‘액트 오블 킬링 The Act of Killing’이란 영화를 소개한다. 이 영화는 1965년 인도네시아의 군사 정권 쿠데타 중에 있었던 대학살을 2000년대에 다큐멘터리화 한 것이다. 가해자들은 그 때의 일을 자랑스럽게 재연하는, 극단적으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중국계에 의해 자본주의화 되는 것을 혐오하여 250만 명을 죽였으며, 예순이 넘은 정치인 ‘앙와르 콩고’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 지 자세히 설명하다가 피해자의 입장을 배역해 본 것을 화면으로 보면서 비로소 “내가 정말 죄를 지은 것일까?”란 말을 내뱉는다. 가해자들은 자기들의 행동이 죄가 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더욱 자본주의화가 되고, 우리가 더욱 이기적일수록 사회는 그만큼 이익을 얻습니다. 다시 말해 최고의 위기는 무언가 선한 것을 행하려 할 때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우리가 이기주의를 추구하면 할수록 그만큼 공동선(善)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모순은 사람들이 단순히 자본주의적 이기주의를 글로벌 공동체로 연결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이기주의로 만든 영적 전체주의가 문제인 것이지요.
그는 이제 공동선을 추구하고, 공적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해도 이기주의적인 사회적 기준으로 바라보면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 그는 다친 노파를 도와준 남성이 오히려 소송을 당해 ‘지나친 친절을 하는 것을 보면 그가 자기를 밀어서 다치게 하였다’는 판결을 받은 사례를 얘기한다. 요즘은 지나가는 사람을 차에 태워 주다가 사고가 나면 그 사람이 입은 피해를 모두 배상해 주어야 하는 시대이다. 그리고 공공 장소에서 성행위를 하는 얘기를 들며 이제는 공적 영역이 사라지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웹사이트에서 노출 사진을 올리는 것은 사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현상을 설명한다. 그렇지만 에드워드 스노든과 같은 내부고발자의 행위는 공적 영역을 보호하는 행동임을 강조한다. 이처럼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혼란스러움에 대하여 칸트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이성의 공적인 이용과 사적인 이용을 모순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칸트에게 있어서 국가 기관, 국가 관료주의는 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떤 특정 이해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 과학만이 공적이라는 것이지요. 즉, 공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떤 논쟁을 할 수 있고, 어떤 집단적인 사적 이해의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칸트에게 있어서 이성의 사적인 사용은 바로 국가 기관들이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진정한 지식인은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올바른 접근법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언급을 하며 두 가지 위험을 제기한다. 하나는 인터넷은 국가 기밀과도 연계될 수 있다는 것과 두번째는 디지털 통제로 사생활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진정한 위험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사실상 문제는 우리는 통제 당하는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실험쥐는 자신이 통제되는지 모른 채 자유롭게 행동하고 있다고 믿으며 사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살고 있는 지도 모르기 때문에 스노든이나 어산지 같이 내부고발자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왜 자유를 갈구하는 것일까? 트루먼 쇼란 영화에서 보듯이, 우리는 통제되는 지 모르고 살아가는 한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문제는 통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자유를 갈구 하는 것이다. 트루먼이 그 세계에서 뛰쳐나왔다고 하여, 통제에서 벗어났다고 하여 그는 진정 자유로운 것일까? 그가 추구한 것은 무엇일까? 그 세계에서 벗어나더라도 결국 그 세계와 똑같은 세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통제 당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기분 나빠 할 지라도, 지금 내가 통제를 당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알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기분 나쁠 지라도, 정말 그러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지나치게 그런 것을 의식하여 행동한다면 정신장애가 올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그러한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유한한 자원과 유한한 기회, 유한한 선택의 기회에서 약자는 늘 밀려왔고 소수에게만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러한 기회를 가졌던 사람들도 그 다음 기회에서는 결국 자신도 패배자가 되는 것을 경험했어야 했다. 그래서 '메멘토 모리'로부터 '마시멜론'의 이야기까지 우리는 늘 그 다음을 의식하는 사람이 되어야 끝까지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경구들이 만들어졌다. 결국 다시 선택의 문제다. 우리는 지금 조선시대 왕보다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고,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더 자유롭게 살고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귤은 왕조차도 마음대로 맛볼 수 없는 것이었으며, 왕이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으며 그들처럼 살기를 꿈꾼다. 우리는 그를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는 시간적 여유를 많이 누렸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신하들과의 갈등하는 장면보다 신하들이 굽신거리며 따르는 장면이 더욱 인상깊다. 새벽에 일어나 신하들의 보고를 받는 장면보다 저녁에 연회를 베풀고 그만의 정원을 거니는 것이 더욱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것을 볼 때 결국 우리가 마음 속에서 바라는 것은 남을 통제하는 자유다. 왕이 가졌던 자유는, 그조차도 가끔 뜻대로 할 수 없었지만, 타인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자유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말과 내 의지를 따르게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때에 불러 나타나게 할 수 있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처참하게 귀양 보낼 수도 있는 것을 원한다. 소위 정치에서 말하는 권력은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일상에서도 우리는 작은 권력을 원한다. 그 이외에는 우리는 통제되고 있는 것이든, 통제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지젝은 브라질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한다. 초대한 사람들에 의해 사창가로 이끌려 갔는데, 그곳의 매춘부들은 대학 교육까지 받은 - 심지어 자기와 라캉과 같은 정신분석학자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수준을 가진 - 젊은 여성들이었고, 무엇보다 얘기를 나누다가 2차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고객이 아니라 그녀들이었다는 것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는 이런 것을 사소한 혁명이라고까지 말한다.
디지털 미래의 운명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기계와 사물인터넷이라고 하는 것의 도움으로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누릴 것이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왕이 되고 싶고 왕처럼 살고 싶지만, 왕이 된 다음 여유로워진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란 얘기를 한다. 그는 결국 현대인은 남은 시간에 TV에서 드라마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릴 자유는 시간적 자유보다는 권력의 자유가 아닐까?
6편. 최진석 –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최진석 교수는 최근 그만의 독특한 노자에 대한 설명으로 특히 주목 받고 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강연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는 남들 앞에서 질문을 할 때 항상 남들의 반응을 의식한다. 그러나 그는 질문은 질문일 뿐이며, 그저 관심과 호기심의 발로였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인류 역사의 모든 창조적인 것은 다 엉뚱한 질문에서 나왔음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늘 선진국들이라 일컫는 외국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준을 만드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개인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영역은 항상 이삿짐처럼 초라해 보입니다. 아무리 값비싼 가구나 살림살이도 이사를 가기 위해 밖으로 드러내놓는 순간 초라해지고 맙니다. 집 안의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하고 있을 때는 그럴 듯하고 멋들어져 보이던 살림도 집 밖으로 나앉아 누구나 쪼이는 햇볕 아래 놓이면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일까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기준에 견주었을 때 부족하지 않은 인간이 없고, 죄인 아닌 인간이 없고, 결함 없는 인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결국 이삿짐처럼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 가장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것에 대해 월등한 성취를 이룬 두 철학자로 니체와 장자를 꼽는다.
장자의 이야기에 ‘윤편’이라는 제나라의 수레바퀴를 깎는 사람이 환공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물었다. 그가 옛 성인의 말씀이라고 하자, 그가 읽고 있는 책은 ‘성인들이 남긴 찌꺼기일 뿐’이라고 한다. 제나라 환공은 관중과 함께 전국시대 제나라를 당대 중국 최고의 국가로 만든 왕이다. 그런 그에게 윤편은 자기의 기술이 말로만 전할 수 없는 것처럼 성인의 말씀 또한 말로만으로는 습득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을 최진석 교수는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며 읽고 있는 것은 그것이 생산되는 그 순간까지만 진리였을 뿐,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자기 자신에게 맞춰져 있는 감각의 완성도에 집중하여야 한다고 풀이한다. 우리가 지금의 기준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성인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나 스스로가 성인이 된 것 같은 생각에 빠지는 것처럼, 혁신에 대해 토론하고 혁신의 이론을 접하면서 마치 모두가 혁신한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철학자 함석헌 선생의 말을 빌려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이야기한다. 예전 정의와 도덕으로 무장하여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정의와 도덕이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성장하지 못한 것은 혁명을 하는 개별자들이 혁명되지 않은 채 혁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또 한가지는 자유를 위해 경계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이념 속에 고정되지 않고 경계에 서서 유연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오래도록 들어온 ‘중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으로 ‘거침없이 나를 표현하라’고 한다. 우리가 수많은 책을 읽는 것은 언젠가 나도 책을 쓸 수 있기 위해서이고, 우리가 배우는 것은 언젠가 나도 가르칠 수 있는 입장이 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는 내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고 읽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배우는 것이 습관이 되면 자기표현에 장애를 갖게 되므로 배움은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표현의 동작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배움은 경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이념의 한쪽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는, 바로 ‘충고하고 충고 받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죽기 전까지 버려서는 안 될 것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신뢰와 무한 사랑을 꼽는다. 보편적 이념은 외부의 기준으로 찌꺼기에 불과한 것이고, 자신이 도달한 깊이와 간격 만큼, 그 만큼의 세계가 내 것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바람직한 것이라면 사회가 원하는 것이고, 바라는 것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겠지요. 해야 하는 것이라면 사회가 원하는 것이고, 하고 싶은 것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입니다.
7편. 정용석 – 나는 이미 기적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성적이 떨어져서, 좋은 대학에 못 가서, 취업에 실패해서, 연인과 헤어져서, 빚이 많아서 식음을 전폐하거나 죽음을 생각한다. 그러나 정용석 교수는 그렇게 자신을 내팽개쳐 버리기에 우리는 더없이 고귀한 존재라고 말한다.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텔레서는 파우스트 박사를 유혹하는 것을 허락 받기 위해 하느님에게 이렇게 고자질 한다.
인간들에게 이성만 없었어도 저들은 재미와 쾌락을 즐기며 잘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느님이 천상의 빛, 즉 이성을 주어 그것을 가슴에 안고 살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보기에 인간들은 이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짐승들보다도 훨씬 더 짐승답게 사는 데 사용한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윌 듀런트의 철학이야기에서 소개된 ‘브라만의 행복’이야기를 떠올렸다. 우리는 갠지스 강의 노파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도 행복할 수 있지만, 고고한 진리를 추구하는 브라만이 추구하는 행복은 그러한 행복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말과도 같은 내용이다.
우리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세상에서 질서를 가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0과 1이라는 숫자로 모든 것을 움직이는 컴퓨터 시스템처럼 네 개의 기호만 가진 유전자 정보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나’라는 개인의 고유성을 가지려면 10400분의 1이라는 확률을 가진다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란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첫째, 육체와 정신은 하나이고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둘째, 한 사람의 정체성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단 하나이다. 10422분의 1이라는 확률을 보라.
셋째, 이타는 궁극적인 이기를 완성한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다면 이웃을 도울 때 그 진정한 이기가 완성한다.
진실된 참 자아를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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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u | 2015-03-31 | 추천0 | 댓글0
인문학의 심화 연구 지원과 대중 확산을 위해 2010년에 설립한 공익재단인 플라톤 아카데미에서는 인문학자들의 연구와 성찰 결과를 함께 나누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그중에서 대학을 순례하면서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2013년 가을 학기에 경희대학교에서 개최한 인문학 공개강좌의 강의 내용을 담은 것이 <나는 누구인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핏 스쳐가는 잔상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친구가 생각난다. 친한 친구의 친구였다가 나중에는 나와 더 친한 친구가 되었던 그녀는 우리 또래 보다는 꽤 성숙했었다. 친구의 고모가 당시에 꽤 잘 알려진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대학교수의 조교로 있어서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에게 있어서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준 것이 바로 그 친구이다. 안병욱, 이어령 등의 저서를 탐독한 것도 그 시절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등의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아마도 그것이 인문학의 주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던 때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의 제목이자 인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주제이자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
그건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인 인간됨에 대한 성찰이자 사유이다. 인간은 반성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인문학의 첫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성찰을 삶 속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시대의 석학들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말해 줄 것인지 이 책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이 책의 구성은,
1부- 인간의 본질에 답하다 (강신주, 고미숙, 김상근, 이태수)
2부- 삶의 태도가 곧 당신이다 (슬라보여 지젝, 정용석, 최진석)

<강신주의 감정수업>등을 통해서 그의 생각을 엿 보았던 강신주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을 권리 등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 나간다. 어쩌면 그의 생각은 우리들이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생각을 말하는 것 자체가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기에 마음 속에만 가두어 두었던 자본주의 즉, 돈의 위력에 대해서 시원스럽게 말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위에 돈이 존재" (p. 27) 한다는 말을 우리는 차마 말하지 못하지만 강신주는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나는 누구인가' 자신에게 질문을 하도록 이끌어준다.
" 오늘날의 취업은 자본을 가지고 있는 쪽, 즉 화폐를 쥐고 있는 쪽의 요구에 맞춰 스펙을 쌓은 뒤 그곳에 자신을 파는 행위입니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피해입니다. " (p. 24)
이 문장을 읽을 때에는 서글퍼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독자들이 꽤 많을 듯하다.
" 자본주의는 소탐대실(소탐대실)의 전형적인 체계" (p. p. 27~28)
" 인문학자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못하면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획일적인 노예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 (p.p.28~29)
강신주가 이와같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요즘의 세태가 돈을 우선시하는, 모든 것의 목표 또는 목적이 돈이 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전 평론가인 고미숙, 그의 저서인 <고미숙의 열하일기>를 흥미롭게 읽었기에 그가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에도 관심이 간다. 디지털 문화를 향유하는 현대인은 세대를 넘어, 성차별을 넘어 그리고 국경을 넘어 디지털 혁명이 보편화되었다. 그런 사회 속에서 현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몸, 돈, 사랑이 화두가 된다.
그밖의 석학들의 글을 통해서 인문학의 탄생, 인문학이 추구하는 가치, 삶 속에서의 인문학의 실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중의 유일한 외국인인 슬로베니아 류블라랴나 출신의 슬라보예 지젝은 사회학자, 철학자, 정신분석학자인데, 외국인인 그가 본 한국, 한국인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특히 그는 변화에 대해서 말한다. " 사소한 변화가 혁명을 만든다" 고.
" 사회적 역동성을 살펴보면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변화가 촉발되어 점차 거대한 산사태와 같은 변화가 이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p. 171)

'나는 누구인가' 란 인간됨의 성찰이자 인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주제를 7명의 석학들은 자신의 학문적 바탕과 분야에 맞게 해석하고 설명해 준다.

분주한 삶 속에서 자칫 잊고 살게 되는 자아 찾기. 이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시절의 얕은 지식에 의존해서 당시로서는 심각한 사유를 했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죽음이란 무엇일까' 하는 나자신을 향한 질문들이 <나는 누구인가>와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시리즈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근간인 <어떻게 죽을 것인가>까지를 읽게 된다면 살아가는데 좀더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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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lim97 | 2015-02-23 | 추천0 | 댓글0
나를 찾아 떠나는 어행에서 나란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하나의 소개서 정도라고 생각하고 싶다. 요즘 드라마에서 다중성격장애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와서 주목을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크라테스도 얘기한 것처럼 나 자신을 아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이 시대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우리모두의 삶에서 이 책은 조그만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세상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들여다 보고 다양한 시간에서의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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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 | 2014-11-12 | 추천0 | 댓글0
책을 읽었는데,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을 들은듯한 느낌이다.
인문학은 심도있게 생각하는 학문인듯하다.
한가지 질문에 대하여 묻고 또 묻고 묻는
답은 없다 다만 스스로 생각할 뿐
가끔 인문학 강의를 하는 분들께 현실적인 나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나눠보고 싶다
쉽게 읽기가 쉽지 않은, 인문학
언젠가 구매해 놓은 논어 공자 맹자를 읽다보면 나도 인문학에 조금 더 가까이 가지 않으련가 싶다
어렷을적, 교회 학생회 수련회를 가서 Who am I 에 관하여 얘기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항상 끝은 다른 얘기로 끝났던거 같다
읽히는 책마다 단어 마디마디 눈에 그리고 마음에 들어온다.
책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이든다
아직 멀고도 멀었지만, 책과 함께하니 시간 틈틈이 읽을수 있음에 감사하다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인문학을 배우고 싶다는 나의 소망의 실천이 독서에 있다는 사실
책을 읽으면 일주일이 참 빠르다
5시 기상은 주말이후로 무너져, 눈을 뜨긴 뜨지만, 강의를 보는것은 어렵다
단지, 씻고 7시 출근하여 책을 읽고 있다
좀더 강단지게 마음먹고 다시 일주일 실천을 해봐야겠다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