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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ronology Of Marc Bolan & T-Rex # 1947년 : The Birth Of ‘White Swan’ & 어린 시절 이스트 런던,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리던 유태인 노동자 부부 시메온과 필리스 펠드는 둘 다 과일 팔거나, 화장품 판매원, 트럭 운전사 등 많은 일들을 전전하는 전형적인 노동자 계층의 부부였다. 1947년 9월 30일,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이들은 아이에게 마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마크는 자신은 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얘기하곤 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가 아주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어떤 인간들과도 달랐다." 마크의 부모는 그가 아주 강하고 거친 소년이었다고 얘기한다. 학교에서 싸우는 것은 늘 그의 몫이었고, 실제로 샥스(Sharks)라는 지역 갱 단의 멤버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의 음반들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던 어린 시절의 마크가 가장 좋아하던 음악은 그가 자라난 런던과는 아주 먼 나라 미국 개척자들에 대한 노래였다. 빌 헤이즈의 ‘The ballad of david crockett’이 그 곡이었는데, 어느 날 음악에 관심을 보이는 그의 아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빌 헤이즈의 음반을 사러 간 아버지의 사소한 실수가 마크의 인생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바꿔 놓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빌 헤이즈와 ‘빌 헤일리’를 혼동했던 것이다. 8살의 나이에 빌 헤일리의 (이후 시대에 길이 남을 로큰롤 곡인) ‘Rock around the clock’을 들은 마크는 단번에 그의 음성이 이끌리고 말았다. 마크는 단번에 락앤롤과 사랑에 빠졌고, 자신이 기타를 만들고, 부모님를 졸라 8살에 드럼 세트를 받았다. 그리고 9살 때 그런 아들을 위해 그의 부모는 자신들의 한달 봉급에 해당하는 16파운드짜리 기타를 사주었다. 12살 때 베이시스트로 들어간 수지 앤 더 훌라우프라는 3인조 밴드가 그의 첫 밴드였는데,밴드의 보컬이었던 헬린 샤피로는 밴드를 떠나 음반을 발표하며 차트 1위에 오르게도 했다. 그것을 보고 마크는 학교를 그만 두고 자신의 기회를 찾기 시작한다. 13살 때, 그는 모드 패션에 빠져 든다. 그의 모든 돈을 옷을 사는데 썼다고 한다. 후에 이 시기를 얘기하며 마크는 그가 옷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40벌이 넘는 옷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 입고, 정말로 모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단다. 그런 모드 소년 마크는 어느 기자의 눈에 뛰어 모드 잡지를 장식하며 모델 일을 하기도 했다. 15살 이후 그는 파리를 여행하면서 위자드(The Wizard)라고 불리는 흑마술사을 만난다. 그와 몇 달을 그의 부엉이와 샴 고양이와 지낸 후, 로마 근처의 숲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런던으로 돌아 온 마크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데카 레코드의 프로듀서 짐을 만나 그의 첫 번째 싱글 ‘The wizard’를 만든다. 당시 마크 펠드(Mark Feld)라는 자신의 이름이 뮤지션의 이름으로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 그는 마크 보우랜드(Mark Bowland)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는데, 이 때부터는 기독교 식의 ‘K’를 ‘C’로 바꾸고 ‘W’와 ‘D’를 빼버린 마크 볼란(Marc Bolan)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데카에서 만든 두 장의 앨범은 실패작에 그치고 만다. 당연히 데카 레코드는 그를 내던졌다. # 1966 : 솔로활동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첫번 째 실패에도 불구하고 전혀 좌절하지 않은 채 마크는 사이먼 내피어 벨이라는 프로듀서에게 전화를 해서 ‘나는 노래하는 사람인데, 누구보다도 위대한 락 스타가 되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함께 해 줄 훌륭한 매니저가 필요하다’고 대뜸 말한다. 데모를 보내라는 사이먼에게 직접 기타를 들고 찾아간 마크는 그의 앞에서 자신이 만든 노래들을 직접 불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의 노래가 모두 끝난 뒤 사이먼은 스튜디오에 전화를 해서 마크의 음악을 위해 예약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녹음된 음악을 받아주는 레코드 회사가 하나도 없었다. 마크는 자신의 꿈이 산산조각 난 줄 알았지만 결국 사이먼은 컬럼비아 레코드의 OK를 얻어냈다. # 1967 : John`s Children & Tyrannosaurus Rex 이 해 6월, 싱글 ‘Hippy gumbo’가 발매됐다. 그러나 런던 라디오의 DJ였던 존 필을 제외한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혹평을 했지만 마크는 두 번째 싱글 ‘Ready, steady, go’를 발표했다. 첫 번째보다는 나았지만 시기가 안 좋았다. 지미 헨드릭스의 첫 영국 TV출연과 그에 대한 영국인들의 환호 속에서 마크의 이름은 가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마크의 솔로 작업들은 ‘안녕~’이란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끝이 나고 말았다. 사이먼은 당시 지미 페이지가 활동하던 야드버즈와 존스 칠드런(John`s Chidren)이라는 밴드의 음반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는데, 마크 볼란은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들어가게 된다. 존스 칠드런으로서는 작곡을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기타리스트가 필요했고, 마크 볼란으로서는 후(The Who), 지미 헨드릭스와 같은 레이블에서 음반을 낼 수 있다면 (존스 칠드런은 이들과 같은 레이블에 소속되어 있었다) 더 이상 다른 것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기타리스트였던 마크 볼란의 독특한 목소리는 리드 보컬이었던 앤디 엘리슨의 백 보컬에서나 들을 수 있었지만, 라이브 무대에서 마크 볼란의 모습은 다른 멤버들 속에서 유독 두드러져 보였다. 매일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는 멤버들과 달리 마크 볼란은 아주 가끔 와인을 마시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의 시간 대부분을 곡을 쓰는데 보냈다. 자연히 이들의 합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마크는 자신이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자신의 락 밴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존스 칠드런을 떠난다. 그렇게 해서 마크는 자신의 첫 밴드를 만들었는데, 첫 오리지널 라인업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어쨌거나 밴드를 만든 그는 밴드 이름을 생각했다. 결국 자신의 밴드 이름을 다이노서로 하기로 결심했지만 뭐가 약했다. 평범한 다이노서는 성에 안차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가장 포악한 것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티래노소러스 렉스 Tyrannosaurus Rex다. 리허설도 못했고, 공연 전까지 단 한번 함께 연습한 채 코벤드 가든에서 가진 이들의 첫 무대는 처참했다. 관객들의 야유 속에서 무대를 내려온 이들은 곧 뿔뿔이 흩어졌고, 남은 것은 낡은 어쿠스틱 기타를 가진 마크 볼란과 달랑 봉고만을 가진 스티브 툭 두 명이었다. # 1968 : Single Debut 락앤롤 스타의 큰 꿈을 가지고 시작한 티래노소러스 렉스는 봉고와 어쿠스틱 기타를 가진 2인조로 붕괴되었고, 그만 음악 역사에서 조용히 사라지기에 충분한 모습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마지막 남은 것이 하나 있었다. BBC방송의 ‘존 필 세션’으로 지금도 유명한 바로 그 존 필이었다. 초기부터의 마크의 가장 큰 팬이었던 존은 자신의 방송에서 티래노서러스 렉스 같은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음악을 틀곤 했었다. 불법 방송이 금지되자 존은 자신이 일하기 시작한 미들 어쓰 클럽의 하우스 밴드 자리를 티래노소러스 렉스에게 제공했다. 이후 BBC 라디오 방송 일을 하게 되면서도 그는 이들의 든든한 지원자였다. 존의 이런 도움 속에서 티래노소러스 렉스는 자신들의 팬 층을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곧 많은 대학 공연과 페스티벌에 초대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티래노소러스 렉스는 앞으로 마크 볼란이 보여줄 것들의 잠복기이고 해빙기였다. # Tony Visconti`s Mission Impossible 조 카커, 프로콜 하럼, 무브, 그리고 데이빗 보위의 작업을 프로듀서하던 토니 비스콘티는 회사로부터 하나의 임무를 부여 받았다. 그러나 그건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작전이었다. 바로 비틀스를 대신하여 세계를 열광시킬 넥스트 비틀스를 찾는 것이 임무였기 때문이다. 만남은 UFO에서 이루어졌다. 삼백 명 가량의 히피들이 모여 있던 나이트 클럽 UFO의 무대에서는 한 사람이 기타를 치며 마치 공상 과학 소설에나 나올법한 가사를 웅얼거리고, 그 옆에서는 봉고를 치며 한 명이 하모니를 넣고 있었다. 토니의 생각에 이런 공연에 수백 명이 모였다는 것도 의아했고, 그의 생각에 이들은 넥스트 비틀스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마크 볼란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전형적인 히피 풍의 옷을 입고, 길고 검은 머리를 집시처럼 늘어뜨린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기묘하고 특이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고, 그를 외국인으로 생각한 토니는 스티브에게 다가가 자신을 소개했다. 마크가 영어를 못하는 줄 알고. 그러나 곧 듣게 된 마크의 말은 의외였다. "당신은 우리가 만난 일곱 번째 프로듀서에요, 그 중에는 애플 레코드의 신인을 찾으러 온 존 레논도 있었다구요." 하하~ 하지만 이것은 마크가 머리를 굴려서 만들어 낸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결국 적중했다. 토니는 다음날 아침 바로 회사에 자신이 정말 흥미로운 밴드를 찾아냈는데, 이미 애플 레코드에서 접근을 했다고 상사와 얘기하던 중 마크 볼란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자신들이 로비에 있는데, 오디션을 봐도 되냐고. 마크와 스티브는 자신들이 가져온 러그를 깔고 그 위에 앉아 어젯밤의 곡들을 연주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계약을 했다. # 1968 : Album Debut 7월, 결국 첫 앨범이 발매됐다. 그들의 오랜 동지인 존 필의 극찬을 뒷면에 박고서. 토니는 티래노소러스 렉스의 신자와도 같았다. 그는 자신이 마크 볼란의 재능에 대해 느낀 것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했고, 이들의 음악을 만드는 데 자신의 모든 노력을 했다. 이러한 토니의 노력은 이후 마크 볼란과 T-Rex의 성공을 얘기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 하나의 젊은 뮤지션 데이빗 보위에게는 큰 희생이었다. 사실 마크 볼란과 데이빗 보위는 십대 시절부터 친구사이였다. 데이빗이 가까스로 마크보다 일찍 음반을 발매하고 빛을 보긴 했지만 이들은 비슷한 과정을 굴러온 친구였다. 토니는 마크와 일하기 이전에 데이빗과 작업을 했지만, 이제 데이빗을 버리고 마크에게 왔다. 위트있고 공격적인 마크의 음악과 달리 데이빗의 음악은 음악 비즈니스 쪽으로 다가갔다. 둘 사이의 우정은 여전했지만 음악적으로 이들은 서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되었다. 첫 앨범은 차트 34위까지 올라갔지만 평론가들의 평은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자신들의 음악이 평론가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데 마크는 만족했다. 마크는 자신을 뮤지션이라기보다 시인이고 이야기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론가들이 음악보다도 그의 가사를 분석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행복해 했다고 한다. 이 당시 마크의 인터뷰들은 신비로움, 난장이 요정, 요술과 마술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반지의 왕(The Lord Of King)이었고, 그 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또한 자신의 음악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토니에게 그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들은 도노반, 지미 헨드릭스, 핑크 플로이드, 로이 하퍼, 제스로 툴 등과 함께 많은 페스티벌에 참여했고 그 해 말, 이들의 두 번째 앨범 < Prophets, Seers, And Sages, The Angels Of The Ages >가 발매됐다. 지난 앨범보다 결과는 좋았지만 마크의 눈에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러나 앨범의 순위와는 상관 없이 그들을 원하는 공연은 점점 더 많아졌다. 이들의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은 어린 음악 팬들이 아니라 20대 후반의 LSD에 경도되었던 당시의 히피들이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시드 배릿과 같이 마크 볼란은 견고한 컬트 지지자들의 우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컬트 히어로가 되는 것이 마크의 목표는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적어도 영국 안에서 가장 위대한 락 스타가 되는 것이었다. 히피들이 좋아하고 안하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런 태도는 결국 그를 수퍼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했지만 스티브와는 점점 더 불화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 1969 : Bye! 스티브 툭 마크는 그가 어느 앨범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기던 73페이지의 시집 < The Warlock Of Love >를 출판한다. 이 시집은 그가 티래노소러스 렉스의 음악에서 얘기하던 가공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 시집으로 마크는 평론가들에게 밥 딜런, 도노반, 짐 모리슨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되는데, 당시 베스트셀러가 됐던 이 책은 현재는 100달러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두 장에서 보여지는 긴 앨범 타이틀은 세 번째 앨범에서는 한 단어로 짧아졌다. 바로 마크와 스티브의 얼굴이 컬러 사진으로 실려 있는 < Unicorn >이다. 이 앨범 역시 가상의 얘기들을 다루고 있지만 지난 두 장의 앨범에서 생긴 로열티 덕분에 프로듀서인 토니는 더욱 정교한 레코딩 기재를 가지고 보다 훌륭하게 녹음되었다. 마크가 콘웰에서 먹었던 수프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Romany soup’같은 곡은 22트랙으로 녹음되어 믹싱에만 5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며칠 만에 완성된 지난 앨범들에 비하면 정말 오랜 시간을 들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앨범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매된 앨범이기도 한데, 미국에 받아들여지기에 이들의 음악은 너무나 낯설었다. 지금은 고전이 되었고, 마크와 스티브가 만들어 낸 가장 훌륭한 앨범으로 여겨지지만. 마크와 스티브가 만들어 낸 마지막 앨범이기도 한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결국 스티브는 티래노소러스 렉스를 떠난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미키 핀(Micky Finn)이다. 미키는 음악적으로 스티브에 비견될 퍼커션 주자도 아니었고, 그처럼 백 보컬을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마크는 그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마크가 그의 650cc 모터사이클에 마크가 사랑에 빠졌다고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들의 만남은 성공이었다. 마크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함께 작업할 동지를 찾은 것이다. # 1970 Tyrannosaurus Rex Goes Electric & First T-Rex 누구도 이들이 이런 변화를 보일 줄 예상하지 못했다. 마크와 미키가 만든 첫 싱글은 이전과는 다른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처음으로 일렉트릭 기타가 이들의 음악 속에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3월, 앨범 < Beard Of Stars >가 나왔다. 이들의 공연에서 보여지는 일렉트릭 기타와 헤비한 연주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지만 결과는 마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다음 앨범을 준비하던 중 이들은 다시 미국 투어를 계획했는데, 이 역시 큰 성공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전과 같은 커다란 경제적 손실은 없었고, 그 공연으로 이들은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얻었다. 10월, 드디어 티렉스(T-Rex)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싱글을 발표한다. 아니 이제 티렉스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2월, 앨범 < T.Rex >는 변형 쟈켓의 모습으로 발매되었다. 이 때 스티브 커리가 베이스 주자로 밴드에 가담했다. # 1971 : The Year Of The Electric Warrior 이 해가 시작될 때 ‘Ride a white swan’은 차트 탑 텐을 장식하고 있었다. 당시 1위 곡은 허비 플라워스가 지키고 있었는데, 마크는 그에게 어떻게 자신의 첫번 째 넘버 1 싱글인 ‘Ride a white swan’을 막을 수 있었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드디어 2월 19일, ‘Ride a white swan’이 여전히 차트 12위에 머물러 있는 중에 발매된 싱글 ‘Hot love’는 3월 20일 티렉스의 넘버 1 싱글이 된다. 6주간의 넘버 1을 비롯 24주간 차트에 머물렀던 앨범 < T-Rex >는 그들의 앨범 중 가장 오랫동안 차트를 지킨 앨범이기도 하다. 이들의 인기를 보고 마크가 떠나기로 한 플라이 레코드는 티래노소러스 렉스 당시의 곡들을 모은 < Best Of T-Rex >라는 앨범을 발매해 마크를 열 받게 하기도 했는데, 어쨌든 이 앨범 또한 큰 성공을 거둔다. 7월, 티렉스의 ‘Get it on’이 두 번째 넘버 1 싱글이 됐다. 마크는 팝 음악 계에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말을 했고 많은 팬들은 그 앨범을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9월, 드디어 팬들과 미디어의 환호 속에서 < Electric Warrior >가 발매됐다. 팬들이 비틀즈의 < Sgt.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 앨범과 비교를 하기도 하는 이 앨범은 이 해 영국의 베스트셀링 앨범 5위를 기록한다. 이 때부터 모든 TV 쇼들이 티렉스를 불렀고, 모든 신문들이 이들과 인터뷰 하기를 원했다. # 1972 : T-Rex To The Top 1972년은 많은 앨범과 싱글들, 그리고 티렉스가 드디어 팝 음악계의 정상의 위치에 오른 해로 기억된다. 티렉스는 당시 영국 최대의 음반사인 EMI와 성공적으로 계약을 했고, ‘Jeepster’는 차트 3위에서 바로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마크의 이전 레코드 회사는 그들의 옛 앨범인 < Prophets, Seers, Sages >와 < My Peoples Were Fair >를 더블 앨범으로 재발매했고 이 앨범 역시 차트 1위에 올랐다. 이들은 엠파이어 풀과 웸블리에서 큰 공연을 가졌고, 이 공연들에은 정말 비틀즈의 공연에 버금가는 많은 팬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루었다. 새로운 싱글 ‘Metal guru’가 차트 정상에 올랐을 때, 지난 레코드 회사는 마크 볼란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 Bolan Boogie >를 발매했고, 이 역시 차트 1위를 강타한다. 자신들의 인기를 보고 계속 옛 앨범들을 발매하는 플라이 레코드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모습에 마크는 화를 내고 실망했지만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음반들에서 나오는 로열 티 역시 만만치 않은 수입원이었다. 모든 TV와 신문의 관심을 가져다 준 < Electric Warrior >에 이어 발매된 < The Slider >는 발매 첫 날 10만장의 판매를 기록한다. 하지만 마크가 원했던 넘버 1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고, 이어 발표된 두 장의 싱글 역시 넘버 1의 자리에는 오르기 못했다. # 1973 : Marc Trucks On 이 해의 첫 싱글은 3월에 발매된 ‘20th century boy’이었다. 그리고 ‘Staggered’가 이어졌다. 싱글에 이어 발표된, 스튜디오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보다 대규모로 작업된 앨범 < Tanx >는 지난 해의 < Slider >와 같이 평론가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발매 첫 날 10만 장이 팔린 ‘The groover’는 기대와 달리 6위에 그치고 말았고, 1971년 이후 가장 낮은 순위이기도 했다. 마크는 이것이 티렉스 사운드의 마지막이 될 거라고 발표했으며, 그의 말대로 마크 볼란의 솔로 싱글과 앨범이 발매된다. 그리고 이것은 티렉스의 해산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 # 1974 : ‘Zinc’ Arrives But Goes Soon 이 해 1월 영국 투어에서 티렉스는 두 명의 드러머와 여러 명의 색스폰 연주자들, 그리고 백 코러스를 대동하여 이전보다 많은 변화를 보였다. 투어 동안 마크 볼란 & 티렉스라는 이름의 첫 싱글 ‘Teenage dream’이 발표됐지만 차트에서는 고작 3주 동안을 머물고 말았다. 차트에 대한 실망보다도 더 크게 다가왔던 실망은 2월, 7년 동안 함께 일을 해 온 토니 비스콘티가 티렉스를 떠난 것이다.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새 앨범이 나왔다. 마크는 분위기를 일신하여 데이빗 보위가 지기 스타더스트를 만들어 내며 많은 글램 락 팬들의 우상이 된 것처럼 자신의 이름을 ‘징크 앨로이(Zinc Alloy)’라고 바꾸고, 자신의 밴드는 ‘내일의 숨겨진 기수들(The Hidden Riders Of Tomorrow)’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 A Creamed Cage In August >로 타이틀이 붙여진 이 앨범을 발표하면서는 너무나 많은 반대와 우려 때문에 밴드명에서는 마크 볼란 & 티렉스라는 이름이 그대로 사용됐다. 징크 앨로이라는 캐릭터는 지기 스타더스트와는 달랐다. 데이빗 보위의 지기는 그가 캐릭터를 죽일 때까지 모든 이들의 우상이었지만, 거창한 홍보에도 불구하고 마크 볼란의 징크 앨로이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모두의 관심 밖에었던 것이다. # 1975-1976 Isolation Years 마크 볼란은 ‘이제 마술은 사라졌다’라는 말과 함께 또 다른 앞날을 준비하기 위해 영국을 떠났다. ‘글램 락은 죽었다. 나는 더 이상 장사꾼이 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하며. 마크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자신의 팬들이 급격하게 줄었다는 생각이었다. 많지 않은 다이 하드 팬들만이 그가 무엇을 할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크는 무언가를 더 가지고 있었다. 1975년, 마크는 2 장의 싱글을 발매했다. 7월에 발매된 ‘New york city’는 존경스럽게도 차트 15위까지 올랐다. 그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많은 팬들이 아직 그의 음악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 Bolan’s Zipgun >은 그에게 다시 큰 좌절을 가져다 주었다. 차트에 오르지조차 못하던 1968년의 상황으로 그를 되돌려 놓은 것이다. 그는 좌절 속으로 빠져 들었고, 그 해, 유일한 기쁨은 9월에 그가 동거하던 글로리아 존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롤란 볼란 뿐이었다. 1976년, 마크는 여전히 자신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3월 발매된 싱글 ‘London boys’는 40위에 그쳤지만 미디어들의 반응은 의외로 호의에 찬 것이었다. 마크에게 다시 희망을 가지게 해 준 것은 차트 13위까지 오른 두 번째 싱글이었다. 예전의 마크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였겠지만 지금의 마크에게는 너무나 희망적인 결과였다. 그리고 마크와 티렉스는 1971년 이후 가장 큰 공연을 준비했고 한달 후, 발매된 앨범 < Futuristic Dragon >. 이 앨범은 지치지 않고 마크와 티렉스의 음악을 기다려준 팬들에게는 긴 터널을 지나 만나는 빛과도 같이 반가운 앨범이었다. # 1977 : If… ‘마크가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까?’라는 것은 열광적인 팬들만이 가지고 있던 불가능한 생각은 아니었다. 마크는 다시 그 동안 늘어났던 술을 줄이고 몸무게를 빼고 데이빗 보위와 토니를 만나며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9월 16일, 모든 것이 불가능해 졌다. 운전을 배우지 않았던 마크 대신 운전을 하던 글로리아와 함께 클럽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급커브를 돌다가 글로리아가 길에서 벗어나 나무를 들이받고 만 것이다. 마크 볼란은 며칠 남지 않은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을 영영 맞지 못했다. 그리고 글로리아는 살아 남았다. # 2000년 이미 30년 전에 나타나고 사라진(그것도 영원히) 글램 락 스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여기까지 지루한 글을 읽은 분들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한마디. 아직까지 마크 볼란과 T-Rex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연대기 식의 지루한 얘기는 이제 뒤로 하고 당신의 플레이어에 ELECTRIC WARRIOR를 걸고 플레이를 하라는 것이다. 음악을 듣지 않고 이 글을 읽는 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재미도 없는 글을…
 
자료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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