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이 문학적 상상력으로 구축하고자 한 것
그리고 미래의 독자에게 남긴 당부
“보이지 않는 잉크에 민감한 사람이 되길”
“보이지 않는 잉크는 이를 알아보는 독자가 발견하기 전까지 행간에 그리고 행의 안팎에 숨어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잉크〉, 20-21쪽
《보이지 않는 잉크》에서 토니 모리슨은 자신의 문학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매우 자세한 ‘창작 노트’를 공개한다. 토니 모리슨 문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그가 작가로서 가닿고자 했던 세계에 대한 이해를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데 매우 기쁠 것이다. 푸른 눈을 갖길 원하는 검은 피부의 소녀를 그린 데뷔작 《가장 푸른 눈》, 흑인 여성들의 우정을 다룬 《술라》, 흑인 정체성을 찾아가는 남성을 그린 《솔로몬의 노래》, 어린 딸이 노예로 살지 않기를 바라며 그 딸을 스스로 죽인 실제 노예 여성 마거릿 가너를 모티프로 삼은 《빌러비드》, 1920년대 재즈를 재해석하고 재개념화한 《재즈》에 이르기까지, 그가 들려주는 소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글을 쓰려는 그의 모든 시도가 결국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자기 존중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가 끊임없이 개인의 기억과 역사적 기억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어붙여 공통의 흑인 기억을 만들고자 했던 지난한 노력은 묵직한 울림을 불러일으킨다.
1993년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토니 모리슨의 연설은 청중을 압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우화에 가까운 문장으로 말문을 열었다. “아주 오랜 옛날 나이 든 한 여인이 살았습니다. 앞은 보지 못했지만 지혜로웠습니다.” 지혜롭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나이 든 여인, 그리고 이 노파의 통찰력을 시험하기 위해 손안에 새 한 마리를 들고 찾아온 젊은이들. 그들 중 하나가 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노파에게 맞혀보라고 하자 노파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들고 있는 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새가 너희 손안에 있다는 것이란다. 너희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란다.” 우리 ‘손안의 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지혜롭긴 하지만 앞 못 보는 노파가 아닌, 아직 경험과 힘이 부족하더라도 다가올 미래에 더 많은 지분이 있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잉크’ 또한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모리슨이 ‘손안의 새’(24쪽)에 빗대어 이야기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토니 모리슨은 “독자는 텍스트를 해석할 뿐만 아니라 [작가의] 쓰기를 돕는다”고(19쪽) 말했다. 그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잉크에 민감한 사람은 작가가 쓴 것, 그리고 쓰지 않은 것을 모두 알아볼 수 있다. 모리슨은 독자들이 작가의 텍스트, 세상이라는 텍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란다. ‘보이지 않는 잉크’는 착취와 혐오의 인류 역사 속에서 가려진 진실을 찾고자 하는 독자들,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살아갈 젊은 세대에게 토니 모리슨이 남긴 진중한 충고이자 당부이다. 크나큰 문학적 유산이다.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직 쓰인 게 없다면 당신이 써야 한다”
‘늘 인종이 먼저 거론되는 작가’ 토니 모리슨의 비상한 투쟁
“제가 인종이라는 가옥에 살아야 한다면 다시 짓는 게 중요했습니다. (……) 가능하다면 이 가옥을 완전히 뒤바꾸는 것이 필수였습니다.”
―〈인종의 의미〉, 143쪽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직 쓰인 게 없다면 당신이 써야 한다”는 아마도 토니 모리슨이 한 말 중 대중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각인된 말일 것이다. 이 말은 ‘늘 인종이 먼저 거론되는 작가’ 토니 모리슨이 미국 백인 남성 문학에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새긴 주문이자 각오에 가까웠다. 모리슨에게 ‘읽고 싶은 글’ ‘아직 쓰이지 않은 글’이란 흑인의 역사와 문화가 왜곡 없이 표현되고, 백인 남성 작가들이 400년간 그들의 정전(正典) 문학을 만들기 위해 악용하고 날조한 흑인의 의미를 바로 세우는 글이다. 토니 모리슨은 작가로서의 사명을 미국 백인 남성이 흑인에게 씌운 날조된 가면을 벗기고, 흑인의 정체성과 문화를 재구축하는 데 두었다.
《보이지 않는 잉크》에는 비상한 투쟁에 가까운 토니 모리슨의 문학적 추적이 담겨 있다. 그는 영문학자로서 2006년 프린스턴 대학교수를 퇴임하기까지 강단에 꾸준히 섰고, 문학평론가의 면모가 도드라지는 연구에 매진했다. 〈인종의 의미〉 〈흑인의 의미〉 〈입에 담지 않은 차마 못할 말〉 등의 글에서 미국에서 인종의 의미, 백인 남성이 흑인을 타자로 삼아 구축한 ‘미국성’에 대한 모리슨의 중요한 탐구를 살펴볼 수 있다. 모리슨은 미국 백인 남성 중심 문학계의 맹점이 무엇인지, 그들이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정전을 목록화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왜 거기에 흑인 문학이 누락됐는지 예리하게 파헤친다. 모리슨은 ‘미국식 아프리카니즘’이라고 이름 붙인 이 연구를 통해 백인 남성이 아프리카적 존재의 착취를 어떻게 합리화했고, 그들을 타자화했는지 그 욕망의 기저를 적나라하게 파고든다.
또한 모리슨은 소설 창작과 문학비평 외에도 1983년 랜덤하우스 출판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20년간 편집자로 일하면서 6, 70년대에 소개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아프리카 작가들의 문학을 발굴하고 알리는 데 힘썼다. 그가 들려주는 제임스 볼드윈, 치누아 아체베, 마틴 루서 킹 등 당대 흑인 작가들과 나눈 지적 교류와 우정 이야기는 무엇보다 그가 사람과 세상에 기울인 온정이 잘 느껴지는 부분이고, 그런 만큼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 잉크》는 토니 모리슨의 문학적 상상력을 뒷받침한 번뜩이는 직관과 지적인 노력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그 깊이와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점과 같은 책이다. 토니 모리슨이 작가의 책임을 다해 현대 지성사의 야만과 오만을 지적하고, 흑인과 여성의 역사를 재구축한 사유의 지층이 실로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루어졌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토니 모리슨은 블랙 아메리카가 아니다. 화이트 아메리카도 아니다. 그는 우리 중 그 누군가도 아니다. 그는 우리 모두다. (……) 토니 모리슨은 미국 문학의 선견자 그 이상이다. 그는 우리의 위대한 가수다. 그리고 이 책은 아마도 그의 가장 중요한 노래일 것이다.
- [뉴욕 타임스]
역사, 사회, 문학, 언어, 그리고 언제나 인종에 대한 날카롭고 예지력 넘치는 분석가. 이 책은 순수한 탁월함으로 폭발한다.
- [보스턴 글로브]
사람들은 그의 말을 길게 인용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의 지성과 도덕적 명쾌함은 눈이 부시다. 우리가 어떻게 덜 불공평하고 덜 혐오스러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선견지명 또한 마찬가지다.
- [가디언]
모리슨의 문제의식, 비평적 태도는 그의 문학적 시각만큼이나 독창적이다. 그의 문체는 위엄 있고, (화려한 수사보다는) 난해하며, (목소리가 크기보다는) 끈질기고, 권위 있으며, 맹렬하다. 그는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니다. 그는 우리 시대를 향해 뇌성을 치는 예언자다.
- [코먼윌]
모리슨의 작품은 위대한 소설가, 지식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더 강해질 수 있는 기반을 보여준다.
- [비치]
모리슨은 우리 문화 의식을 위한 재능과 필요 그 둘 다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는 가장 날카로운 비평가 중 한 명이다.
- [루트]
창조적인 과정, 인종,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놀랍도록 탁월한 견해로 가득한 이 산문집은 우리의 숨통을 틔운다.
- [숀덜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