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시작된 곳에서 다시 피워낸 깊고 투명한 희망
그게 정말 길이었을까,
가쁜 숨 쉬고 땀 흘리느라
고개 숙이고 주위를 살피느라
정작 지나온 긴 나날은
보지도 못했네. 길이었을까.
헤치고 밝히며 온 발걸음은
춥기도 하고 바람도 불고
더워서 지치기도 했었지만
스쳐온 밤낮에 흩어져 있던
꽃냄새, 빗소리, 강물 빛까지
그게 온통 한 생의 속살이었네.
―「친구를 위한 둔주곡」 에서
시인은 매해 두세 달씩 고국에 머물곤 했지만 올해는 팬데믹 탓에 올 수 없었다. 여느 해 같았다면 고국에서 보냈을 시간 동안, 마종기는 차분하게 자신의 삶과 시력 60년을 반추하며 시적 기원을 찾아간다. 그는 이십대에 군사정권에 의해 투옥당했고 추방당하다시피 미국으로 향해야만 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는 직업은 시인에게 긍지와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사람의 신음 사이로 열심히 배어드는 일,/그 어두움 안으로 스며”(「신설동 밤길」)들어갈 때마다 마종기를 붙들어주는 것은 마음속 고향 서울의 노을을 닮은 “따뜻하고 편한”(「노을의 주소」) 모국어와 시였을 것이다. 시와 함께 그의 삶을 지탱해온 다른 한 축은 신앙이었다. 천주교 신앙은 낯선 세상에 던져진 채로 늘 “삶과 죽음”을 응시할 수밖에 없던 의사 마종기에게 시인으로서의 “고통과 희생과 보살핌”(「시인의 글」)을 기쁘게 자처하고 매 순간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하는 원동력이자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로써 “내 안에서 시작되고 그래서 내가 책임지고 내가 울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마종기 깊이 읽기』)라는 의연한 다짐이 가능했으며, “꺾이지 않았던 날들”을 모아 “꽃이나 열매로 이름을 새”기는 ‘후회 없는’ 경험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신설동 밤길」).
지금 같은 환란의 시기는 오히려 “무섭고 겁이 나도 돌아설 수가 없”는 때다(「파타고니아식 변명」). 길을 잃고 모든 것이 흔들리는 이때, 마종기는 초월적이며 거대한 존재인 대자연과 ‘신’에 한발 더 다가선다. 표제시이자 최근작인 「천사의 탄식」 초반부에서 그는 “창궐하는 역병”을 마주하고 무력함을 느낀 채 “60년 전 시인이 되겠다고 한 건방진 약속”을 취소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반문하고, 자신의 영혼에 귀를 기울이고, 거칠었던 삶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시의 말미에 이르러 오늘 들려오는 “탄식”은 호통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자주 들었던” “다시 시작하라는” “다정한” 위로임을 비로소 자각한다. 그렇게 시인이자 의사이자 신앙인이라는 정체성은 초월자 앞에 선 ‘인간’ 마종기 안에서 하나가 된다. 시집 『천사의 탄식』에 수록된 여러 시에는 이렇듯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고민하다가 마침내 작은 희망을 발견하고야 마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과정이 담겨 있다.
재회를 기다리는 청명한 이별
세상에는 도대체 몇 개의 마지막이 있을까.
―「마지막/시차 적응」에서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는 나이”(「갈리폴리 2」)에 이른 시인은 그리운 것이 많다. “어릴 때 살던 헌 집” 마당에서 챙겨 온 흙을 종종 들여다보며 소중히 간직한다. “혹시라도 내가 이국땅에서 갑자기 가면/이 한 줌 흙을 꼭 내 손에 쥐여달라”(「서울의 흙」)는 서러운 마음. “모든 사람이 태어난 나라에서 죽지는 못한다”(「갈리폴리 2」)고 하더라도 “이승을 하직한 후에는 안동에 와 살고 싶다”(「안동행 일지」)며 겨우 그 마음을 달랜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은 이별이겠지만/내 흙을 보고 있으면 이별도 부드럽다”(「서울의 흙」).
이처럼 ‘부드러운 이별’은 이번 시집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어머니, 아버지, 동생, 친구들…… 그리운 이름들을 가만히 하나씩 불러보고, 추억을 되새기며 애타게 그리워한다. 그렇지만 “지상의 날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자화상 2」) 쓰면서도 그 ‘떠남’이 절절히 슬프기보다 “청명하고 명랑한” 것은(「즐거운 송가」), 먼저 떠난 오랜 친구의 약속, “내 옆에 남겠다는 그 약속”(「는개의 시간」)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이치이든 삶에 대한 비유이든 “질긴 평생”을 마무리하는 “겨울의 끝날”은 “그 뒤에 오는” 봄이 있어 “오히려 정답다”(「겨울의 끝날」). 지극한 그리움 끝에 ‘다시 만나게 되면 반가워 웃을지 오래 참아 우는 얼굴일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어딘가 함께 모여 사는 곳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이 분명하므로(「다시 만나야 하니까」). “나이 들어가는” 길 위에서 “다행이다”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 오래 바라본 그리움과 이별의 슬픔은 그렇게 시인의 시선을 거쳐 쓸쓸하지만 따뜻한 위로가 되어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어둠 속에서 혼자일 때, 세상을 헤맬 때” “기댈 곳이 늘 있으니 다행이다”(「다행이다」).
[시인의 글]
시는 사랑의 한 표현 방법이고 체온 나눔이고 생환 훈련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한세상 시를 사랑하며 살았다. 시의 목표가 사랑이 아니라면 그런 시는 내게 필요 없는 존재다. 왜냐면 세상은 보기보다 잔인하고 외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시는 삭막한 세상에서 상처 치유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아마도 내 직업이 의사였던 때문일까. 내 관심사는 언제나 삶과 죽음, 고통과 희생과 보살핌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내게는 제스처이고 껍데기고 믿을 것이 못 되는 것들이었다.
의사였을 때는 보이는 것을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보는 것이 중요했고 들리는 소리를 확실하고 분별 있게 듣는 것이 필수였다. 그런데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보고 싶어서이고 들리지 않는 소리도 듣고 싶어서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시도하지 않는 시인이라면 시인의 감수성이나 상상력이란 것이 어디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지난 시집 이후에 발표한 시들,
아주 멀고 멀리 산 넘고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고달픈 말과 글을 모아서 고국에 보낸다.
5년 동안 모은 시들이지만 그게 내 평균 속도였으니
큰 게으름은 없었다고 믿고 싶다.
시를 읽어줄 당신께 감사한다.
2020년 9월
마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