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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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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을 찾아서

강상우 | 후마니타스 | 2020년 08월 18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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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08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04g | 130*193*20mm
ISBN13 9788964373569
ISBN10 8964373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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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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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저자 소개 (1명)

1983년 서울 출생. 대학에서 물리학과 컴퓨터 과학을 공부했다. 중편<백서>(2010)와 단편 <클린 미>(2014), <우리는 없는 것처럼>(2016) 등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영화를 만들었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첫 장편영화 <김군> (2018)으로 2018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2018 올해의 독립영화상, 2019 무주산골영화제 관객상, 2019 부산영화평론가협회... 1983년 서울 출생. 대학에서 물리학과 컴퓨터 과학을 공부했다. 중편<백서>(2010)와 단편 <클린 미>(2014), <우리는 없는 것처럼>(2016) 등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영화를 만들었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첫 장편영화 <김군> (2018)으로 2018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2018 올해의 독립영화상, 2019 무주산골영화제 관객상, 2019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 2020 들꽃영화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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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에필로그」중에서

출판사 리뷰

2014년 봄에서 2020년 봄까지… 7년여의 시간,
103명의 시민군, 목격자, 연구자, 활동가와 나눈 200회 이상의 인터뷰
광주 시민들을 탐문하며 던진 n개의 질문들

14킬로픽셀(14K) 해상도의 사진을 통한 디지털 포렌식 작업
연구자들조차 정설로 믿는 루머들을 생존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확인
영화에는 다 담지 못한, ‘실증적’으로 찾은 1980년의 ‘진실’

1980년을 경험하지 못한 1983년생 저자가 현재 시제로 다가간
1980년 5월 광주를 ‘증명’하는 ‘김군들’의 역사


다큐멘터리영화 [김군]의 강상우 감독이 쓴 책. 영화의 스크립트 자료나 제작 노트를 그대로 수록한 책이 아니다. 영화 제작 기간인 5년여의 시간에서 책 출간 몇 달 전까지, 총 7년여에 걸쳐 이어진 103명의 인터뷰, 광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횟수를 헤아릴 수 없는 탐문 내용을 바탕으로, 1980년 이후에 태어난 저자가 1980년 5월 광주를 회고담이 아닌 현재 시제로 다가가는 치열한 과정을 담았다.

저자는 사진 속 한 남자가 그를 기억하는 광주 사람들에게는 ‘김군’이라 불리며 5·18기록관 전시의 벽면을 장식하고, 보수 논객과 우익 커뮤니티 구성원에게는 ‘제1광수’로 불리며 광주항쟁을 주도한 북한특수군으로 몰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관통하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하나의 엄연한 역사 속에 존재하는, 알려지지 않은 무수한 이름들과 그들의 말해지지 않은 진짜 목소리들, 기록되지 않거나 삭제된 비공식 서사들을 ‘실증적’으로 쫓는다.

두 가지 본편 영화(영화제/극장 개봉)에는 포함되지 않은 미공개 자료, 연구자들조차 정설로 믿는 소문의 당사자들을 만나 직접 확인한 ‘진실’들, 사진의 촬영 장소와 시간대별 거리 정보, 그날의 날씨, 촬영 순간의 정황까지를 반영한, 14킬로픽셀(14K) 사진을 통한 디지털 포렌식 작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풍부한 도판 자료가 독자의 흥미를 일으킨다. 단언컨대, 사진 책으로도 손색없고 , 5·18 연구서로도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사진이 드러내거나 감추는 것
“우리는 그것이 진실인지를 늘 의심한다”

이미지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진실’을 판별할 수 있을까?

1/ ‘5·18 민주화운동’ 서사에서 밀려난 ‘무장 시민군’


‘김군’으로 대표되는 무장 시민군의 이미지는 피해자나 무고한 희생자라고 여기기에 적절치 않은 인상을 품고 있다. “사진이 촬영된 맥락을 알지 못한 채 프레임에 담긴 이미지만을 바라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모와 군복처럼 보이는 의상을 착용하고 총을 든 김군을 군인으로 생각할 것이다. (…) 설사 5·18기록관 2층 전시장이라는 공간적 맥락에서 이 이미지를 접한다 하더라도, 5·18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없는 관람자들은 ‘시민군’이라는 설명을 듣고 ‘정부군’에 맞서 동등한 위치에서 결투를 벌였던 무장 군인을 상상할 수 있으며, 5·18을 ‘반란’ 내지는 ‘내전’으로 생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33~34쪽).

저자는 뒤로 밀려나 있던 무장 시민군의 이미지가 30여 년 만에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 지만원 측의 북한군 개입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만원 측 주장이 “미국 CIA와 이스라엘 모사드 수준의 영상 분석팀”이 만든 영상 분석 기술로 포장되어, 5·18 북한군 개입설을 공유하는 수용자에게 과학적 분석에 근거한 팩트(fact)로 소비되는 것을 보면서, “‘5·18 민주화운동’ 서사에서 밀려난 무장 시민군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흥미로운 픽션”이라고 느낀다. 진영을 불문하고 대표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김군’의 이 사진이, “1980년 5월의 광주를 회고담이 아닌, 현재 시제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문득 5·18기록관이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조명하는 섹션에 김군의 사진을 선택한 것과, 지 씨가 김군을 광주에서 ‘600명의 북한특수군’을 주도했던 ‘제1광수’로 지목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그의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이라는, 동일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확실히 사진 속 남자의 모습은 당시 광주에서 촬영된 무장 시민군에게 흔히 보이는 눈빛과 복장, 무장 상태가 아니다. 광주 사건을 연구하고 이미지 자료들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일반에 공개된 5·18 시민군 사진 가운데 김군처럼 복장과 무장 상태, 표정에 이르기까지 시각적인 강렬함을 주는 시민군을 보지 못했다. 김군이 5·18 항쟁의 유일무이한 비주얼 아이콘으로 대두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람이라는 데는, 진영을 불문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것처럼 보였다.”(34쪽)

“1980년 5월 촬영된 한 청년의 이미지가 30여 년 뒤인 현재, 상반된 기억과 주장을 체현하는 논쟁의 한복판에 소환된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이 사진이 우리가 1980년 5월의 광주를 회고담이 아닌, 현재 시제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 씨의 비합리적인 주장과 관련해서는 여러 언론 매체가 일일이 사실을 확인하고 반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나는 김군이 왜 총을 들었고, 사진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알려졌음에도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 알고 싶었다. 그와 행적이 교차한 생존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기억을 따라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오답’이 분명한 지만원 씨의 ‘광수’ 세계관은 물론이거니와,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주입돼 온 ‘민주화운동’ 서사와는 또 다른, 현재의 공기에서 살아 숨 쉬는 기억들과 관계들의 망을 포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35~36쪽)

2/유일하게 ‘M1918 BAR을 소지한’, 동료 시민군의 부러움을 산 시민군

이창성 기자가 제공한 14K 해상도의 필름 스캔 데이터, 총 2398장의 사진을 통해 김군과 김군을 기억하는 사람을 찾기 시작한 저자는 김군이 머리에 맸다가 얼굴을 가리기도 하고 허리춤에 매보기도 했던 수건의 문구라든지, 김군이 소지했던 총이나 탄띠 등을 살피기도 하고, 그가 탔던 페퍼포그차나 트럭의 궤적을 쫓기도 한다. 또 같은 시간대에 다른 앵글로 촬영한 다른 기자들의 사진과 비교 분석하면서, 사진 후경에 희미하게 나오는 시계탑의 시각이나 목재 발판의 설치 유무, 그날의 날씨와 사진 속 그림자, 사진기자의 기억과 필름 롤의 앞뒤 순서를 맞춰 가며 김군의 행적을 정리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5·18 보도사진 중에는 유일하게 김군만이 소지했던(소지한 것이 사진으로 남은) M1918 BAR이라는 탄창식 자동 소총 위에 얹어 놓은 30구경 탄띠가 총에 맞지 않는 탄띠임을 알게 된다. 또 그가 탄 10번 트럭에 설치돼 있던 M2 브라우닝 머신건(캐리버50) 주변에도 탄띠가 없음을 보게 된다.

“총기를 다뤄 본 경험이 없는 우리는 총 위에 둘러진 탄띠가 주는 강한 인상 때문에 처음에는 이것이 기관총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만원 씨 역시 김군이 무장하고 있는 총이 M-240G 기관총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 총기 사진을 참고했을 때 우리는 이것이 기관총이 아닌 M1918 Browning Automatic Rifle(BAR)이라는 탄창식 자동 소총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지었다. 김군이 총 위에 얹어 놓은 30구경 탄띠는 카트리지 형태의 탄창으로 실탄을 공급받는 M1918 BAR에는 맞지 않는 탄띠다. 아마 그는 사용할 수 없는 탄띠를 총 위에 얹어 놓음으로써 자신이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그런 김군의 의도는 사진을 본 많은 이들에게 적중한 셈이다.”(52쪽)

“10번 트럭 운전석에 설치된 총기는 흔히 ‘캐리버50’이라 불리는 기관단총으로, 정식 명칭은 M2 브라우닝 머신건이다. 최대 사정거리는 6800미터이고 분당 600발까지 발사가 가능해, 장갑차를 관통시킬 뿐 아니라 비행기 격추도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만약 캐리버50이 장전돼 있었다면 50구경의 탄띠가 장착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진 속 캐리버50 주변에서 탄띠를 발견할 수 없었고, 오히려 도청 진압 후인 5월 27일 촬영된 계엄군의 사진에서 ‘구경50 탄환 100발’의 탄띠가 장착된 캐리버50을 찾아냈다. 우리는 김군이 탄 트럭에 설치된 캐리버50 역시 페퍼포그차에 있던 M1918 BAR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쏠 수 없는 빈총이었다고 판단했다.”(66쪽)

무기를 탈취하는 김군 일행을 목격했던 시민군 문관 씨는 2015년 8월 인터뷰에서 캐리버50 같은 총을 든 ‘사수’ 김군을 부러워했다고 증언한다. 시민군에게 총기 사용법을 가르쳤던 시민군 문장우 씨도 2016년 2월 인터뷰에서 김군의 얼굴을 기억해 내며, 김군이 총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기를 차지하고 장착했을 거라고 말한다. 책 나오기 전, 김군이 든 총이 빈총이라는 것을 영화에 왜 포함시키지 않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저자는, 그것이 자칫 확대되어 시민군의 무장 자체를 부정하는 쪽으로 쓰이지 않기를 바랐다고 답했다.

3/‘미국 액션 영화를 많이 봤을 것 같은’ ‘버드나무 가지를 머리에 꽂은’ 시민군

김군이 촬영된 마지막 날이기도 한 5월 23일 사진에는 전날 볼 수 없었던 버드나무 가지 장식이 보인다. 그가 착용한 방석모와 그가 탄 10번 GMC 트럭 적재함에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것이다. 2018년 7월의 인터뷰에서 시민군 최진수 씨는 트럭 뒷칸에 있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저거 가지고 위장막이 될까’ 생각했다”고 증언한다. 다큐멘터리영화 [오월애]에 출연하기도 했던 시민군 양동남 씨는 2016년 1월 인터뷰에서 김군의 행색을 보며 “미국 액션 영화를 많이 봤을 것 같다”고 말한다. “같은 시민군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김군이 버드나무 가지 등으로 자신과 탑승한 차량을 ‘꾸미는 방식’이 굉장히 영화적이라는 말이었다”(89쪽). 저자는 “어쩌면 나는 김군이 항쟁의 최전선에 선 투사여서라기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주변의 것들로 자신을 꾸밀 줄 알았고 꾸며야만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136~137쪽)고 말한다.

“그가 착용한 방석모와 10번 트럭 적재함에 꽂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버드나무 가지들은 일견 전쟁 사진처럼 보이는 이미지에 묘한 서정성을 부여한다. 여러 개의 타이어가 차량 전면에 설치된 시민군 트럭과 지프차 사진은 볼 수 있었지만, 버드나무 가지로 ‘조경’된 차량은 김군의 트럭이 유일하다. 버드나무 가지를 머리에 꽂은 시민군 역시 김군 한 사람뿐이다. 산속이나 정글도 아닌 도심 한복판에서 자신과 차량을 버드나무로 장식하는 행위가 계엄군에 대비한 위장으로 실용적인 선택이었는지는 의심스럽다.”(136~137쪽)

“김군과 버드나무의 관계를 생각할 때마다 김군이 분명 미국 영화를 많이 봤을 거라고 했던 양동남 씨의 말이 떠올랐다. 무지개 색깔의 수건을 두르고 카빈총을 든 모습이 촬영되면서 ‘제36광수’로 지목된 같은 무장 시민군의 관점에서조차 김군이 장식하는 방식에는 ‘일반적’인 시민군과는 차별화된 미적 자의식이 존재한다. 그는 계엄군의 학살이라는 엄중하고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이 바라는 자기의 이미지를 구현해 냈다. 냈다. 양동남 씨가 언급한 ‘미국 영화’는 [람보] 류의 액션 영화지만, 내게 있어 그러한 김군의 이미지는 항쟁으로부터 11년 뒤 제작된 제니 리빙스턴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파리는 불타고 있다](Paris is burning, 1991)를 상기시킨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던 1980년대 말 촬영된 이 영화는 뉴욕의 한 드랙볼 공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라티노(Latino) 및 흑인 드랙퀸들의 삶을 포착한다.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구현하는 데 집중하는 영화 속 인물들의 몸짓이 김군의 그것과 겹쳐졌다면 너무 과도한 투사일까? 어쩌면 나는 김군이 항쟁의 최전선에 선 투사여서라기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주변의 것들로 자신을 꾸밀 줄 알았고 꾸며야만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136~137쪽)

기록이 다 말해 줄 수 없는 것
말할 자격을 얻지 못한 ‘이름들’의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

일부러 간과했거나 묵인했던, 무심히 삭제된 비공식 서사들
하나의 역사로 정리되지 않는 각각의 역사들에 닿다

1/사라진 천변의 ‘넝마주이’


‘김군’이라는, 이름 아닌 이름을 유일하게 기억한 광주 시민 주옥 씨의 부모는 1980년 당시 남광주역 사거리에서 막걸리 대포집을 운영했다. 주옥 씨의 아버지 주대체 씨에 따르면 김군은 가게에서 약 1.2킬로미터 남동쪽에 있는 원지교(일명 석천다리) 밑에 거주하는 ‘넝마주이’ 청년들 중 하나였다. 원지교 천변에는 지금도 1980년 5월 23일 김군 사진에 나온 버드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김군의 사진 속 장식과 김군이 지낸 원지교의 환경을 연결한 저자는 “어쩌면 김군은 광주천에 무성하던 버드나무 가지를 애착인형처럼 몸에 지니고 다니며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137쪽)고 말한다.

“천변에는 수령이 몇 십 년은 돼보이는 건물 3~4층 높이의 버드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기록을 살펴보니 광주천이 범람할 경우를 대비해 버드나무를 제방에 심었고, 그 때문에 물의 흐름을 느리게 하고 땅의 침식을 방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관에서 의도적으로 조성 사업을 시행하기도 했지만, 예부터 광주천변에 버드나무가 많아 유동이나 유덕동처럼 ‘버들 류柳’ 자가 들어가거나 양림동과 방림동처럼 ‘수풀 림林’ 자가 들어간 지명이 천변 주변에 많다는 이야기도 있었다.”(136쪽)

항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원지교 부근을 매일같이 오가며 생활한 시민군 이성전 씨는 2016년 9월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같은 ‘건달’과 넝마주이 같은 ‘양아치’, 동네에서 ‘어영부영하던 청년’들을 구분”하면서, 5월 항쟁 전까지 많았던 천변의 넝마주이들이 이후에는 안 보였다고 말한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삼청교육대에는 “양아치들 말고 동네에서 어영부영하던 사람만 끌려갔다”면서, 넝마주이가 5·18 직후 사라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원지교 부근 주민들이 가진 넝마주이에 관한 기억이 제각기 다르면서도, 넝마주이들이 5·18 직후 사라졌다거나 넝마주이가 계엄군에 의해 죽었을 거라고 공통적으로 말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1980년 당시, 소년자활원을 운영한 원장과 사감 등을 찾아다니며 소문의 진실과 넝마주이들의 행방을 계속 쫓는다.

2/거리 ‘정화’ 정책의 일환으로 창설된 조직 ‘자활근로대’

1979년 10월 부마항쟁 직후, 박정희 대통령은 부랑인과 넝마주이 등 소위 불온한 ‘사회 전복 세력’들을 집단 수용해 부마항쟁과 같은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것을 시도 각지에 지시한다. 이로써 1980년 3월 광주 북구 운암동 1062번지에 넝마주이들을 집단 수용하는 시설이 건립된다. 옛날 신문에서 광주의 자활근로대 설립 담당자가 광주 서부경찰서 M 경사라는 사실을 알아낸 저자는 그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자활근로대 대원들이 항쟁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말을 듣는다. 1980년 5월 자활근로대에 입소해 현재까지 같은 자리에서 살고 있는 김종선 씨 또한 “거리 ‘정화’ 정책의 일환으로 창설된 조직”인 “자활근로대 ‘대원’들이 운암동 거주 지역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관할 경찰의 엄격한 감시하에 생활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숙사와 분리된 민가에서 지냈고 항쟁 당시 외출을 하기도 했던 김종선 씨의 증언만으로는 단정 지을 수 없다.

“국가는 자활근로대 창설을 통해 도시의 미관과 치안을 해친다고 판단됐던 수백 명의 넝마주이들을 격리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수용자의 규모와 수용 방식이 전적으로 몰이식 단속이 아니었다는 점에 비춰 보면, 광주 시내에서 넝마 일을 하던 모든 개인이 격리된 것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지교 아래 살던 김군 무리가 5·18 항쟁 당시 계엄군의 살상에 희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진압 이후 장기간 군과 관이 시위에 참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청년들을 색출하고 체포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천변에서 흔히 보이던 넝마주이 집단의 거주 형태가 5·18 이후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유들이 넘치고도 남았다.”(153쪽)

3/부랑인들을 단속하고 수용하는 시설 ‘무등갱생원’

저자는 여러 고물상 업체 운영자들이 언급한, 지게를 진 넝마주이들이 살았다는 ‘무등갱생원’에 대해서도 살핀다. 여러 연구자들이 무등갱생원생들이 5·18 때 죽었다는 소문을 정설로 믿고, 또 영화를 본 뒤 ‘김군’이 무등갱생원 출신의 넝마주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가 만난, 실제로 무등갱생원생이었던 증언자 다수는 무등갱생원과 관련된 세간의 의혹을 ‘나쁜 소문’이라고 일축하며, 원생들이 당시 무사했음을 재차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누구도 김군과 김군의 일행 사진을 알아본 이는 없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김군이 무등갱생원생일 확률은 희박해 보인다.

“우리는 무등갱생원과 관련된 소문들을 5·18 생존자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무장해제한 무등갱생원생들이 27일 새벽 사직공원 쪽으로 사라진 뒤 계엄군에게 살해됐다든지, 계엄군이 헬기로 무등갱생원생들을 데려갔다든지, 5·18 이후 무등갱생원이 폐쇄됐다는 내용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넝마주이들이 사라졌다는 소문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상황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159쪽)

“무등갱생원 원생들을 헬기로 다 싣고 갔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세요? 싣고는 안 갔어. 헬기가 여기서 떠갖고 여기 동네 민가를 조사는 했지. 조사는 해갖고, 집집마다 민가에 총이 안 나오니까 이제 그냥 다 방면을 [수색]했지. 방면을 수색하고 그냥 갔지.”(173쪽)

“우리는 월산동에서 탐문을 진행하며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김군 일행의 사진을 보여 주며 기억나는 얼굴이 있는지 물었다. 오랜 시간 골똘한 표정으로 사진을 들여다본 P씨는, 김군이 ‘완전히 직업적으로 넝마 생활 할 사람’ ‘자기 스스로 돈 버는 사람’ ‘갱생원에는 못 들어오는 사람’ 같아 보인다며, 일반적인 무등갱생원생들과는 느낌이 다르다고 말했다. J씨 역시 부랑인으로 시설에 온 대개의 원생들은 사진 속 김군처럼 이렇게 ‘앞서서’ 활동할 수 있는 성정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준선 씨와 윤갑성 씨, S씨 모두 전혀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면 김군이 무등갱생원생일 확률은 희박해 보였다.”(174쪽)

4/‘복잡한 애들’ ‘똑같은 따라지’ ‘황금동 성판매 여성들’

1980년 5월 당시 미성년자 부랑인을 단속해 소년자활원에 입소시키는 일을 했던 박봉진 씨는 천변에서 잠을 자고 넝마주이 일을 하던 ‘복잡한 애들’을 단속해 자활원에 데려 왔지만, 그들이 시설 생활을 견디지 못해 금방 이탈했다고 전했다.

구두닦이 일을 했던 서한성 씨는 넝마주이들과 생활이 달라 알고 지낸 사람이 없을 뿐, 구두닦이를 하는 자신이나 넝마주이가 ‘똑같은 따라지’였다고 말한다. 서한성 씨에게 항쟁 이전에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들 “모두가 ‘시민군’이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박선재 씨는 제자들을 귀가시키려고 버스에 탔다가 시민군에 합류했다. 그는 2016년 8월 인터뷰에서 끝까지 남은 사람 대부분이 ‘하층민’이었고, 그중에는 시체를 씻겨 주고 입관 하는 일을 도왔던 ‘황금동 성판매 여성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거가 한두 명이 아니어요. 여러 명이 있었어요. 배고픈다리. 석천다리서부터 조금 가면은 증심사 올라가는 데까지 가면은 애기들이 좀 ‘복잡한 애들’이 많았어.”(145~146쪽)

“그때는 모두가 자율적으로 활동했어요. 생각이 이심전심이라고 한마음으로 나서서 하고. 스스로 자기 일을 찾았고…… 끝까지 남은 자들도 대부분 하층민…… 황금동 ‘성판매 여성’ ‘배우지 못한 사람’ ‘가구공’ ‘구두닦이’가 주류를 이뤄요. 끝까지 남은 자들은 그 사람들이에요. 황금동 성판매 여성들. 그분들이 시체를 씻겨 주고 입관을 하면서 자신의 긍지라든가 자존감을 ……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고 전체적으로 사고 없이 오월[활동]을 했다고 보죠.”(119쪽)

5/부모를 살해한 장군의 이름을 딴 시설 ‘백선보육원’

백선보육원은 6·25 당시 백선엽 장군이 이끈 한국군이 빨치산 토벌을 명목으로 지리산 마을에 불을 질렀고, 여기서 살아남은 아이들을 광주에 데려와 만든 생활 시설이다. 저자는 부모를 살해한 장군의 이름을 딴 시설에서 자란 아이가 훗날 계엄군에 맞서 광주 항쟁에 참여했고, 30여 년 뒤엔 ‘광수’로 불리며 북한특수군으로 지목되는 영화보다 영화 같은 설정을 상상하면서, 애꿎은 사람들이 전쟁의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에 대해 날을 세운다.

“토벌로부터 살아남은 아이들은 부모를 살해한 장군의 이름을 딴 시설에서 자랐다. 레드 헌트(Red Hunt)라는 역사의 비극 속에서 설립된 백선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 성장해, 계엄군에 맞서 항쟁에 참여했고, 30여 년 뒤 다시 ‘제391광수’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북한특수군으로 지목된다는 설정을 픽션으로 쓴다면, 작가의 의도가 설익게 투영된 작위적인 세계관이라고 비판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엄연한 사실이라면? 정체를 모르는 존재들을 죽여도 되는 적으로 손쉽게 규정하는 군인들의 세계관이 애꿎은 사람의 실제 삶에 너무나 뼈아픈 영향을 주고 있었다.”(180~182쪽)

“김군에 대한 우리의 탐문은 계속해서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듯했지만, 당시 수용 시설이나 거리에서 생활했던, 등록되지 않은 개개인이 항쟁에 참여한 사실들을 새롭게 접할 수 있었다. 부랑인들과 넝마주이들을 단속하고 수용했던 각종 시설들에 대한 탐문을 진행하면서, 그리고 넝마주이 생활을 중단하고 다른 도시로 떠난 이들의 풍문을 전해 들으면서, 넝마주이들의 사라짐이 반드시 그 개인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넝마주이들이 사라진 시점인 5·18 당시 벌어진 계엄군의 학살이, 항쟁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저항한 10대, 20대 청년들에게 집중돼 있었으며 그 피해의 전모가 여전히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원이 확실치 않은 넝마주이들의 죽음과 당시 계엄군의 학살이 연관돼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지우기는 어려울 것이다.”(190쪽)

자신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김군들’과
증명할 길 없는 ‘광수들’

생존자의 기억은 왜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는가?


“행방이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혈연가족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김군의 경우, 본인이 직접 나타나야만 ‘사진 속 이 남자가 북한특수군이다’라는 주장의 공표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자신의 기억과 주변인의 확인, 객관적인 기록 자료들을 제시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승소에 희망을 걸 수 있었다. 사진 속 얼굴의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는 한, 그를 북한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법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행위인 셈이다.”(31쪽)

‘광수’가 아닌 ‘김군’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생존자가 스스로 나서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러나 신원을 알 수 없고 ‘몸’의 행방이 묘연한 김군의 경우, 이 규명은 거의 불가능하다.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김군’으로 남지만, 증명할 길 없는 사람은 ‘광수’로 남게 된다. 여전히 아무런 연고자가 없어 신원을 알 수 없는 이들과 ‘행방불명자’들과 유공자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숨어 지내는 이들이 남아 있다.

“항쟁이 끝난 뒤 신원을 알 수 없는 11명의 시신이 망월동 묘역에 묻혔다. 21년이 지난 2002년 이뤄진 시신과 행방불명자 가족들의 DNA 비교 분석을 통해 이 중 여섯 명이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무연고자의 시신이 매장된 묘역 앞에는 ‘무명열사의 묘’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한편 실종 신고는 됐지만 시신의 행방이 묘연한 실종자들 또한 존재한다. 국립 5·18민주묘지 1묘역 10구역 ‘행방불명자 묘역’에는 봉분이 없다. 사망한 사실은 확인됐지만 시신을 찾지 못한 희생자들의 영령을 기리는 비석들만이 서있을 뿐이다. ‘아무개의 묘’ 대신 ‘아무개의 령’이라고 표시된 비석의 수는 78개에 달한다. 행방불명자로 신청했으나 인정되지 못해 비석을 세우지 못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242명에 달한다.”(252쪽)

“김군의 죽음을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신원을 알 수 없으면서 시신의 행방이 묘연한, 이중으로 부정의 상황에 놓인 희생자이다. 계엄군의 살인이 있었다는 사실과 망자의 신원을 특정하기 위해 가장 직접적인 물증이 될 수 있는 ‘몸’은 이미 당시 학살을 자행한 계엄군에 의해 사라졌다. 현재까지 송암동·진월동 양민학살의 가해자인 11공수여단 63대대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으며, 이들의 범죄는 1990년대 전두환 씨를 비롯한 계엄군 지도부의 처벌로 면책됐다가, 그 처벌마저도 대통령 사면을 통해 무색해진 일이 있었다.”(253쪽)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경험하는 부분은 단연 5부 ‘5월 24일’이다. 특히 유력한 ‘김군’ 후보 이강갑 씨가 일터이기도 했던 도청에서 떠나는 마지막 근무 모습과 이강갑 씨와 최영철 씨의 오랜 오해가 드러나는 부분, 자기 대신 죽었다고 생각하는 동료 시민군을 잊지 못하는 최진수 씨의 과거 청문회 증언과 저자와의 인터뷰가 교차되는 부분, 여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거나 만날 길 없던 이강갑, 최영철, 최진수 씨가 한 자리에 모여 회포를 푸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

1980년 5월 24일, 훗날 ‘송암동 양민학살 사건’으로 불리는 현장에서 체포된 세 사람은 각자 모진 고문의 후유증과 동료에게 배신당한 서운함과 동료의 죽음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고통을 견디며 지내 왔다. 이강갑 씨는 함께 붙잡힌 동료들보다 극심한 고문을 당했고 예외적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사정을 몰랐던 최영철 씨는 이강갑 씨의 진술 때문에 자신이 고초를 당했다고 여겨 왔다. 최진수 씨는 광주를 떠나 살면서 30년간 자신이 시민군이었던 사실을 숨기며 지냈다. 하지만 그는 동료 시민군 죽음의 진상이 밝혀지길 바라며 1989년 광주 청문회와 2006년 국방부 조사에 응했다. 카메라 앞에 서서 증언하는 것을 망설이던 최진수 씨는 수개월 만에 촬영을 결심했고, 그의 증언이 김군에게 다가가는 마지막 퍼즐이 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1989년 광주청문회 때, 시위 진압 당시 대검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계엄군의 일관된 주장이, 총에 대검을 착용한 계엄군이 시민을 쫓는 사진이 증거로 제시되면서 거짓으로 드러난 사례가 있었음을 상기한다. 최대한 ‘실증적’으로 김군을 추적해 온 그는 “소위 객관적 증거만으로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생존자의 기억은 가장 강력한 ‘증거’이므로, 누군가는 살아남은 생존자의 기억과 그 사이의 개연성과 무수한 정황만을 제시하는 불완전한 자료들에 의존해, 진실을 찾는 지난한 작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영상과 사진처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소위 ‘객관적’ 증거만으로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자료만으로 판단했을 때, 우리는 가해자들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조작한 수많은 사건들의 존재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많은 음모론자들이 ‘팩트’의 부재를 근거로 홀로코스트나 일본군 성노예제를 부정하는 것처럼.

많은 경우 기록은 가해자의 편이다. 많은 일들은 기록될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나고, 기록된 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소각된다. 기록이 소거된 상황에서 남아 있는 것은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기억뿐이다. 기억은 때로 불완전하고, 시간이라는 변수에 따라 세세한 정황들이 뒤틀리기도 한다. 우리는 생존자들이 기억하는 순간에 대해 들으며 무언가를 ‘진실’로 입증하는 과정이 매우 연약한 기반 위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만 했다. 동시에 생존자의 기억은 (은유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법률적인 측면에서도) 가장 강력한 ‘증거’이므로, 누군가는 살아남은 생존자의 기억과 그 사이의 개연성과 무수한 정황만을 제시하는 불완전한 자료들에 의존해, 진실을 찾는 지난한 작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260~261쪽)

영화 [김군]에 쏟아진 찬사들

- “한국 다큐멘터리의 전환점” (김봉석 영화평론가)

- “올해의 가장 뛰어난 영화 중 한 편” (이동진 영화평론가)

-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호령하는 새로운 시각과 다른 방식”(44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 심사평)

- “서스펜스의 형식 속 찾아낸 청년 ‘김군들’의 역사”(이화정 [씨네21] 기자)

- “마지막까지 숨죽이며 지켜보게 만드는 연출의 힘” (허경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사진 한 장으로 역사의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경이로움”(허남웅 영화평론가)

- “5·18을 기억하는 새로운 전범이 나타났다” (정시우 영화저널리스트)

- “항쟁의 주역이었던 시민군을 중심에 두고, 그들이 누구이며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도 정직하게 비춘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 “1980년 광주의 시공간이 가진 집단적인 상징성을 넘어 그 안에서 기억되어야 할 인간의 개체성에 대한 진지한 탐색”(김지미 영화평론가)

- “역사의 시간을 현재의 절박한 시선으로 살아 내려는 시도”(홍은미 영화평론가)

- “모두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새로운 세대의 시선으로 다시금 탐색하고 성찰한다.” (장영엽 [씨네21] 기자)

-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한 1980년의 ‘진실’이 있다는 것” (정용인 [주간경향]기자)

- “진실을 찾는 걸음은 곧고, 담는 시선은 깊다. 잊지 말아야 할 삶들이 여기에 있다.” ( 이예지 [GQ]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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