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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08월 30일 리뷰 총점8.9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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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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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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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370g | 128*188*22mm
ISBN13 9788932035635
ISBN10 893203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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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MD 한마디
["한국 문학의 빛나는 고유명사" 은희경 신작] 1977년 기숙사에서 만난 여성들의 미묘한 관계 이야기는 '그 때'의 기억을 되짚으며 오늘의 나에게 안부를 묻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신형철의 말대로, "은희경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은 뉴스가 되지만, 그 작품이 '좋다'는 사실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는 걸 증명하는 소설. - 소설MD 김도훈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저자 소개 (1명)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은희경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새의 선물』을 썼다. 이 작품이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필명을 날리게 되었다. 한 해에 신춘문예 당선과 문학상 수상을 동시에 한 작가는 1979년 이문열, 1987년 장정일 이후 처음이었다. 또한 1997년에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로 제10회 동서문학상을, 1998년에 단편소설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 2000년에 단편소설 『내가 살았던 집』으로 제26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은희경은 등단한 다음 해부터 2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소화해냈다. 해마다 2000매 이상을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은희경 소설은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것과 무척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뒤에는 단순한 유머가 아닌 진한 페이소스를 숨기고 있다. 은희경 소설의 매력은 소설의 서사 진행 과정중 독자들 옆구리를 치듯 불쑥 생에 대한 단상을 날리는 데 있다.

그녀의 소설을 흔히 사랑소설 혹은 연애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은희경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상투성'', 그로 인해 초래되는 진정한 인간적 소통의 단절"이라고 한다. 그녀를 따라 다니는 또 하나의 평은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이나 인간에 대해 환상을 깨고 싶어한다. 그녀에 의하면 ''사랑의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이 치명적인 환상을 없애기 위해 사랑을 상대로 위악적인 실험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마이너리그』는 58년 개띠 동창생 네 친구의 얽히고 설킨 25년 여 인생을 추적하면서 '마이너리그'란 상징어로 한국사회의 '비주류', 그러나 실제로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해당될 수밖에 없는 '2류인생'의 흔들리는 역정을 경쾌한 터치로 그려낸 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갖가지 허위의식, 즉 패거리주의 학벌주의 지역연고주의 남성우월주의 등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하는 가운데, 주인공들의 마이너 인생을 애증으로 포옹한다. 작가는 권두의 '작가의 말'에서 "내게 주어진 여성이라는 사회적 상황은 한때 나로 하여금 남성성에 대한 신랄함을 갖게 했다. 이제 나를 세상의 남성과 화해하게 만든 것은 삶의 마이너리티 안에서의 동료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불완전한 도중(道中)에 있다"라고 말한다.

저서로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이너리그』, 『그것은 꿈이었을까』, 『비밀과 거짓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태연한 인생』, 『소년을 위로해줘』, 『빛의 과거』가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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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 335

출판사 리뷰

그때 그 여자들,
사적이며 공적인 ‘나’의 이야기

이야기는 중년 여성 김유경이 오랜 친구 김희진의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게 되며 시작된다. 대학 동창인 그들은 “절친하다거나 좋아하는 친구라고는 말할 수 없”고 “끊어진 건 아니지만 밀착될 일도 없”는, 어쩌다 보니 가장 오랜 친구가 된 묘한 관계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으나 전혀 다르게 묘사된 김희진의 소설 속 기숙사 생활을 읽으며, 김유경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다.

기숙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룸메이트다. 타의에 의해 임의로 배정된 네 명이 한 방을 쓰는데 ‘임의’의 가벼움에 비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은 터무니없이 크다. 국문과 1학년 김유경의 322호 룸메이트는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다. 최성옥과 절친한 송선미의 방인 417호 사람들(곽주아, 김희진, 이재숙)과도 종종 모이곤 한다.

1977년의 이야기는 3월 신입생 환영회, 봄의 첫 미팅과 축제, 가을의 오픈하우스 행사 등 주요한 사건 위주로 진행된다. 김유경의 서사가 굵직하게 이어지는 사이사이, 322호와 417호의 룸메이트인 일곱 여성들의 에피소드도 다채롭게 전개된다. 그들은 각자 “성년이 되어가는 문으로 들어가” “낯선 세계에 대한 긴장과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자기 인생을 만들어”간다(2016년 작가 인터뷰). 김유경은 말더듬증이라는 약점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내리누르며, 말과 행동이 필요한 순간 입을 다문다. 회피를 방어의 수단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세상의 어중간한 어디쯤에 위치시키려 한다. 한편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취향을 조용히 발전시키는 오현수, 남을 끌어내려 항상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김희진, 그와 비슷하지만 남의 눈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욕구 충족이 중요한 양애란이 그렇다. 지향점과 실제의 삶에 괴리가 심한 사람도 있다. 최성옥처럼 자신이 선택한 남성에 의해 그 괴리가 발생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교정하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매사 주요하게 지적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발을 헛디뎌버리는 곽주아 같은 경우도 있다. 그들은 “치졸하고 나이브”(「작가의 말」)하며, 소탈하기도 섬세하기도 하다. 선량하고도 얄미우며 까칠하면서도 유약하다. 마치 오늘의 우리처럼.

여러 문학평론가가 언급하듯, 한국 문학이 어떤 ‘인물’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근원적인 고민을 드러낸다고 할 때 많은 경우 그 ‘인물’ 앞에는 은연중 (남성)이라는 괄호 속 함의가 있었다. 여성들은 문학 속 ‘(남성) 인물’에 젠더를 교차해 자신을 이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의 경험에 중실한 입사 이야기initiation story”(신형철)인 『빛의 과거』는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이입의 거리를 좁힌다. 그렇기에 “은희경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한국 현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된다. “나와 닮은 목소리”(정세랑)로 쓰인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내 얼굴과 닮아 있는 소설 속 그들의 안부를 묻게 되는 것이다. “그 많던 여성 대학생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고요서사 차경희).

지금 눈앞에 도착한 기억의 빛
‘미지를 통과해 이제야 내게로 도착한 빛이었다’

『빛의 과거』에는 1970년대의 정치·문화적 시대상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그때 학생들은 독재 정권에 맞서 전단을 돌리고 어용 총장 임명에 항의해 검은 리본을 달았다.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구금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김유경은 치열하게 투쟁하지 않지만, 매사에 튀지 않고 나서지 않으며 한 발을 빼는 그의 삶의 방식 역시 돌고 돌아 시대 상황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김유경이 ‘모범’ 혹은 ‘평범’이라는 태도를 걸치기 시작한 큰 원인은 말더듬증이다. 군사 훈련을 연습하는 수업인 고등학교 〈교련〉 시간에 구령 외치기를 강요당하고부터 말더듬증 트라우마가 강화된 것으로 미루어보면, ‘회피’라는 수동적 처세 방식은 오롯이 김유경 개인의 나약함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듯하다. “훈육과 세뇌에는 탈출구가 없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뀔 수도 없으며, 끝없이 반복되는 그 틀의 궤적에 부딪히고 상처입고 위축되며 계속해서 눈치껏 나를 속이며 살아야 하는 걸까”(p. 245).

어길 수 없는 명령이 주어지고 그에 따르지 못하면 마땅히 불이익을 당해야 했던 시대의 폭압은 소설 곳곳에 공기처럼 배어 있는데, 지방 도시 출신인 김유경이 고속버스터미널에 귀향 표를 예매하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을 때의 경험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정수리 위로 대나무 장대가 수평으로 빠르게 왔다 갔다 하며 머리통이 솟아오르지 못하도록 위협했다. 조금이라도 허리를 폈다가는 노인이든 어린아이든 가리지 않고 머리통을 맞아야 했다. 그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위치를 바꾸라고 명령하면 군대에서 기합을 받듯이 무릎걸음으로 움직였다”(pp. 243~44).

한편, 풍부하게 묘사된 문화적 풍경은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맛동산과 인디안밥과 티나크래커, 밀감’을 차려놓은 입사 환영식에서부터 ‘알릿사’ ‘롯데’ ‘베르테르’ 같은 세계문학 속 남녀 주인공 이름을 적어 미팅 파트너를 정하는 방식, 카세트플레이어로 듣던 에프엠 방송 「밤과 음악 사이」와, ‘대학가요제’ ‘싱어롱 다방’ ‘음악감상실’, 찻집 〈로터리 다방〉〈가무〉, 경양식집 〈세실〉, 〈은파여관〉 등 시대를 대표하는 고유명사들을 포함한 은희경 특유의 세심한 ‘디테일’은 그 시대를 직접 겪은 독자들에게는 물론이고 겪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듯한 사소하고 정겨운 기쁨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휴대전화가 없던 그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2백 명 넘는 기숙사생의 연락을 책임지던 ‘귀한 전화’에 나만을 위한 연락이 걸려오는 일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온전히 전해지는 것은 은희경 문장의 힘 덕분이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호에 실린 디스크에는 “혹시나 만날지도 모르는 외계 생명체를 위한 지구의 자기소개서”(p. 161)가 들어 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환영 인사말, 당시 유행하던 노래와 보들레르의 시, 지구의 사진 등이 포함된 이 음반의 이름은 ‘지구의 목소리’다. 인간에게서 떠나 가장 멀리까지 간 보이저호에 실린 ‘지구의 목소리’처럼, 『빛의 과거』를 기억을 되짚으며 오늘의 나에게 안부를 묻는 은희경이 기록한 ‘어제의 목소리’라고 불러볼 수도 있지 않을까.

추천평

우리는 각자의 인생 속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감독이 됩니다. 그리고 관계하는 세계를 우리 자신의 눈으로 연출합니다. 내가 다른 감독의 작품 속에서 나도 모르게 주인공에게 상처를 입히는 조연으로 활약했던 순간이 대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이 책을 덮으며 저는 결코 알 수 없을 저의 필모그래피를 조용히 가늠해보았습니다.
어느 대학교 기숙사 안에서 각기 다른 주인공에 의해 다른 기억으로 남게 되는 ‘여성’이자 ‘여성들’의 서사. 1970년대와 2000년대라는 시절의 격차를 또렷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잊게 만드는 일을 은희경 작가님은 정말이지 눈이 부시도록 써놓았습니다. 언제나, 언제나, 이렇게 계속해서 훌륭함을 거듭하는 작가를 사랑하려면 이쪽에서도 그를 정확하게 찬양하기 위해 덩달아 거듭해서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아무래도 거기에 실패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은희경이라는 빛을 어떻게 안을 수 있을까요.
- 신요조(책방 무사)

같은 인물이나 사건을 다르게 기억하는, 혹은 기억하려 하는 유경과 희진을 통해 그 시절 여학생들의 청춘은 2017년에 다시 소환된다.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 “안 보이는 대다수”의 서사를 되살려낸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다소 쓸쓸한 질문이 남는다. 그 많던 여성 대학생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그들이 꾸던 꿈은 어떤 자취를 남기며 사그라들었을까, 혹은 피어났을까. 유경이 닿지 못한 흰빛의 잔상이 세공된 소설 덕분에 오랜 애틋함으로 남을 듯하다.
- 차경희(고요서사)

『빛의 과거』는 1977년에서 2017년까지, 한 기숙사에서 만난 여성들의 미묘한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다름’과 ‘섞임’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다룬다. 출신 지역과 계층적 배경과 성격의 단단하고 무른 부분과 은밀히 간직한 비밀까지 철저히 다른 기숙사생들이, 막 사회에 던져져 한 사람의 성인으로 빚어지던 때는 하필 독재 정권이 가장 강경한 시대였다. 젊음은 폭압 속에 방향을 가늠하고, 여성이기에 그 가늠은 이중적으로 어렵다. 소설은 인물들이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닥친 것을 40년을 오가며 조망하며, 이 은유는 너무나 정교하여 완벽히 조각된 가구가 못 없이 결합하는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것과도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읽는 내내 중얼거리고 말았다. 나의 은희경, 우리가 바라보고 걷는 등, 한국 문학의 가장 전율적인 작가…… 은희경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한국 현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나와 닮은 목소리를 드디어 만나 그이의 차분하지만 낯설고 독보적인 말에 과녁처럼 관통당하는 일이다.
이 소설은 삶을 아름답게 접어, 접힌 곳을 관통하여 렌즈를 끼운다. 그리하여 삶에서는 좀처럼 할 수 없는 입체적인 투시로 개인과 개인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이토록 다른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희비극 속에 중첩된 오해를 해소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내어놓은 예상외의 대답에 마음이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 정세랑(소설가)

은희경이 1970년대 말 서울 어느 여자대학교 기숙사 이야기를 썼다고 하면 우리가 다음과 같은 기대를 품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
첫째, 이 소설은 당대의 정치적 공기와 문화적 풍속도를 생생하게 복원해낼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정치적 중심부가 아니라 (반)주변부에서 더 미묘하게 흔들리는 주인공의 눈으로, 문화의 지역 격차를 예민하게 감지할 수밖에 없는 지방 출신 상경민의 눈으로 그릴 것이다.
둘째, 77학번 신입생의 첫 1년이 그려진다면 이 소설은 여성의 경험적 진실에 충실한 ‘입사 이야기initiation story’의 전형을 보여줄 것이다. 거기에 ‘제2의 화자’ 혹은 ‘소설 속 소설’과 같은 장치를 동원해 소설은 본래 ‘경합하는 진실들의 장’임을 입증하기도 할 것이다.
셋째, 이 소설은 또렷한 젠더 렌즈에 포착된 한국 근대성의 성별을 드러낼 것이다. 군사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시스템의 폭력이 여성 주체의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억압해왔음을 말할 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럿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여럿이 될 것이다.
넷째, 은희경 문학의 힘은 ‘무엇을’에도 있지만 ‘어떻게’에 더 있다. 관념어를 적재적소에 투입하고 빈틈이 없게 구문을 압착하여 서술 대상을 틀어쥐는, 특유의 악력握力 넘치는 문장이 매력적일 것이다. 그런 문장으로 씌어진 인간 연구와 지적 논평을 향유하는 것은 은희경 독자의 특권적 쾌락이다.
그리고 이변은 없다. 기대는 어김없이 충족된다. 은희경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은 뉴스가 되지만 그 작품이 ‘좋다’는 사실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 신형철(문학평론가)

올해의 책 추천평 (5개)

매년 진행되는 올해의 책 선정 행사에서 고객님들이 직접 작성해주신 추천평입니다.
2021
은희경이즈 뭔들
dms***** | 2021.11.03
2021
좋아요
psy***** | 2021.10.26
2021
저의 지난날을 반추하며 읽어보길
aga***** | 2021.10.26
2021
제 대학시절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같은공간이지만 서로 다른 시대에서 오는 차이점도 흥미로웠고 반대로 또다른 공통점을 찾을땐 숨은그림찾기 하는 기분이었
min***** | 2021.10.26
2021
늘 기대를 넘어서는 은희경 작가님
lsy***** | 2021.10.26

회원리뷰 (8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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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다시 은희경 작가의 시니컬함을 만나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가**자 | 2019-09-19

 

 

오래전 고급스러운 중식당에서 무척 정결하고 특특한 향과 맛을 가진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다. 오랜 기간 그때의 특별했던 향과 입맛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특별했던 경험은 기억나는데, 구체적으로 그 음식이 어떤 맛 때문에 그렇게 특별한 기억을 가지게 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맛본다면, 그때의 그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은희경 작가의 소설도 역시 내게 그런 의미일 때가 있다. 한때 그녀의 소설에 매료되어 [새의 선물]이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와 함께 그녀의 단편들을 반복해서 읽었었다. 특히 98년 이상작품문학상 수상 작품이기도 한 [아내의 상자]라는 단편소설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녀가 작품을 내는 횟수도 줄어들고, 나 역시 바쁜 일상에 치여 살다 보니 이제는 그때 그녀의 소설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가 점점 잊혀 간다. [빛의 과거]라는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그때의 나를 매료시키던 그녀의 소설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빛의 과거]는 2017년의 시대를 살고 있는 김유경이라는 여성이 대학 시절 기숙사에서 만나 오랜 기간 친구 아닌 친구로 지내 온 김희진이라는 소설가를 만나 1977년 여대 기숙사의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친구인 김희진이 오랜 전에 쓴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라는 소설을 읽으면 당시의 기숙사 생활을 회상한다. 당시 국문과 신입생이었던 그녀는 김희진과는 다른 방이지만, 선배들이 서로 친하다는 이유로 자주 어울리게 된다. 소설은 1977년대의 사회적인 분위기와 그 속에서 하나의 섬과 같았던 여대생의 기숙사의 분위기, 그리고 그 기숙사 속에서 만났던 다양한 인물들을 묘사한다.

 

시대를 묘사하는 솜씨와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내면을 묘사하는 작가의 솜씨는 여전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좀 밋밋한 맛이 들었다. '이것이 나를 매료키켰던 은희경의 소설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은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초반부를 읽었다. 초반부에서 그나마 관심을 끈 것은 시골에서 상경해서 서울의 문화에도, 기숙사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주인공의 어둡고 불안한 내면뿐이었다. 그나마 그것이 예전의 은희경 작가의 소설의 주인공들을 연상시키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멀리 떠나온 것 같지도 않았다. 여전히 나는 무력하고 방어적인 회색 지대에 갇혀 있었다. 나 자신의 실망스럽고 그러다 보니 의욕이 없어 방치하게 되고, 결국 해야 할 것을 제대로 못 해 무력감에 빠지고, 무력감은 쫓김과 불안을 낳고 그래서 자신감을 읽은 끝에 제풀에 외로워지고, 그 외로움 위에 생존의 의지인 자존심이 더해지니 남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고, 그러자 곧바로 소외감이 찾아오고, 그것이 또 부당하게 느껴지고, 이 모든 감정이 시간 낭비인 것 같아 회의와 비관에 빠지는 것, 그 궤도를 통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청춘의 방황만이 아니었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내 앞의 문을 열지 못하고 번번이 과거의 나로 굴러떨어지곤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세계의 부당한 규율에 복종했던 미성년 그대로였다. (P 86)

 

그러나 소설이 중반 정도 이르자 평범하다고 느꼈던 소설에서 점점 은희경 작가의 특유의 날카로움과 시니컬함이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랜 기억 속에 묻어 있던, 그녀의 소설에 대한 기억이 기억났다. 이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그녀의 소설을 좋아했던 이유가. 당시 내가 가졌던 세상에 내한 냉소. 다가갈 수 없어서 그냥 냉소하며 스스로를 가두던 어두운 시절의 기억. 그리고 그녀의 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던 시절. 그 모든 것이 점차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소설의 중반에서는 주인공이 기억하던 자신의 모습과 친구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자신의 모습이 전혀 다른 것을 보여 준다. 소설 속에서 그녀는 세 번째 공주라는 가식적이고 자기 세상 안에 갇혀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녀(김유경)는 문학소녀의 벗어나지 못한 유치하고 가식적인 인물이다. 또한 에고의 껍데기 안에 갇혀 세상을 자기 위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데, 그것이 오독이기 때문에 자자 부관적인 일기를 쓸 수밖에 없고 겉멋 든 자기 연출도 필요하다. 자기 의견을 쉽게 드러내지 않다가 결국에는 원하는 것을 차지하는 그녀를 화장인 '나'는 공주 중에서도 '세 번째 공주'로 분류한다. (P 165)

 

친구인 김희진이 그녀를 그렇게 바라본 데에는 이유가 있다. 브론스키라는 별명을 가진 김희진의 소개팅 남이 김유경에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브론스키보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두 남자와 모두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소설 속에는 주인공이 몰랐던 그 이유가 밝혀진다.

 

 

어찌 보면 소설을 읽고 주인공은 김희진이라는 친구를 무척 미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소설을 읽고서도 별로 발끈 해하지 않는다. 워낙 시니컬한 성격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 모든 것이 이미 지나간 이야기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1977년은 비록 좁은 여대 기숙사에 갇혀 세상을 두려움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며 서로를 오해하고 미워하던 시기지만, 또한 세상에 대한 기대심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고 사람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품던 빛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상처에 갇혀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에 남기며 그때를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증오한다. 너는 왜 너의 시각으로만 그렇게 세상을 보느냐고. 이런 다툼과 분쟁이 아마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니컬함일 것이다. 그런데 은희경 작가와 그녀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런 시니컬함을 한 단계 뛰어넘는다.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자기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지! 그건 그때 너의 시각이었고, 나도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 정도 시니컬함에 이르면 그것이 소설이 되고, 작품이 되는가 보다. 글을 쓰다 보니 나 역시 그녀의 시니컬함에 물들어 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잊었던 옛날의 달콤한 맛을 되찾은 것 같아 조금은 행복하다. 은희경 작가의 그 시니컬함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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